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

20화: 빈 장부의 출고 종
아카데미 북문을 다시 지날 때 증거 마차의 바퀴에서는 아직 숲의 진흙이 떨어지고 있었다.
로완은 짐칸에 올라 오염 청월 열매 세 상자의 결박을 확인했다. 유리병 네 개를 감싼 짚은 젖어 있었지만 입구에 찍은 임시 봉랍은 그대로였다. 포박된 길버트는 마차 맞은편에서 그 손놀림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학장실 앞에는 제국 조달청의 파견 감찰관과 낯선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녹색 외투의 남자가 먼저 길버트를 보고 입을 굳혔다.
감찰관은 아카데미 제조소의 첫 독자 생산분을 확인하러 와 있다가 학장의 급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가 손에 든 검수대장에는 아직 잉크가 마르지 않은 제조소 시료 번호가 적혀 있었다. 로완은 그 번호부터 새 검수지의 맨 위에 옮겼다.
"수도 약초 상단의 대리인입니다. 제3하역소 물품의 소유권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러 왔습니다."
펠릭스가 코웃음을 쳤다.
"도주 마차를 따라왔나?"
"상단 물건이 압수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폐기 예정인 불량 열매와 세척액을 범죄 증거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로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스에게 빈 검수지를 건넸다.
"마차에서 내리는 순서대로 상자와 병의 봉인을 적어. 열기 전 무게도."
한스가 저울을 끌어오고 실비아가 수정 감측판을 켰다. 펠릭스는 숲길에서 물건이 있던 자리와 압수 시각을 감찰관에게 짧게 진술했다. 길버트의 품에서 나온 붉은 밀랍 문서도 별도 봉투에 넣었다.
한스는 젖은 장갑을 벗고 새 장갑으로 갈아꼈다. 상자마다 밧줄 매듭의 방향이 달랐다. 그는 세 개의 매듭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다음에야 하나씩 봉랍을 덧찍었다.
"제가 잡은 사람이 무슨 말을 바꾸든 상자까지 말을 바꾸게 할 수는 없죠."
길버트가 시선을 내렸다. 한스는 더는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감찰관이 말했다.
"서명과 직인의 진위는 본청에서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당장은 내용과 압수 경위를 분리해 기록하겠습니다."
알버스 듀란 학장은 책상 위에 놓인 양피지를 읽었다. 그의 시선이 '제조소 중독 사고'라는 문구에서 멈췄다.
"폐기물이라면 왜 조제 가마솥의 선반으로 갔지?"
상단 대리인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로완은 삼중 봉인해 가져온 제조소 시료와 숲 마차의 열매를 나란히 놓았다. 각기 다른 열매를 세라믹 칼로 잘라 약산성 침전 시약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두 절단면에서 은빛 입자가 과육 밖으로 밀려나와 바닥에 가라앉았다.
"같은 상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 곳의 열매가 같은 방식으로 조직이 망가졌다는 것은 확인됩니다."
실비아가 감측판 눈금을 기록했다.
"안식 마나 침출수에 은분이 섞인 파동도 겹칩니다. 정상 열매에서는 보이지 않는 결이에요."
학장은 대리인에게 시선을 들었다.
"제3하역소의 보관 물량과 출고 장부를 지금 보전한다. 황실 감찰관과 공동으로 봉인하겠네."
"정식 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 사이 장부가 사라지면 무엇을 조회하라는 건가?"
감찰관이 자신의 인장을 꺼냈다. 상단 대리인은 더 말하지 못했다.
길버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뒤쪽 건조실을 보십시오. 출고 종이 울리면 거길 비우라고 했습니다. 저는 상자만 실었습니다."
한스가 길버트의 어깨를 붙들었다.
"누가 시켰는지도 말해."
길버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로완은 그의 입보다 상자에 묻은 희끄무레한 짚 가루를 보았다. 건조실이라면 아직 씻겨 나가지 않은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학장이 감찰관에게 낮게 말했다.
"수도까지 말을 달려야 한다면 지금 출발해도 늦을 수 있소. 장부부터 잡읍시다."
제3하역소는 북쪽 옛 운송로 끝에 붙은 벽돌 건물이었다. 굴뚝에서는 희미한 수증기가 났다. 열린 마당에 쌓인 정상 약초 상자들 사이로 당직자가 나와 일행을 막았다.
"오늘 출고는 끝났습니다. 남은 건 폐기실뿐입니다."
감찰관이 공동 수색 문서를 펴 보였다.
"문을 열어 주시오."
그때 안쪽에서 맑은 쇳소리가 울렸다. 댕, 댕, 댕. 마당 구석의 배수구로 탁한 물줄기가 쏟아졌다.
한스가 먼저 뛰었다. 배수로 끝의 손잡이를 힘껏 돌리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물길이 멎었다. 물에 떠가던 짚과 청월 열매의 푸른 껍질이 쇠망에 걸렸다.
밸브 손잡이를 붙든 한스의 손등에 핏줄이 솟았다. 배수망 아래로 이미 흘러간 물에는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는 망에 남은 조각만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몸으로 물길을 가렸다.
"폐기실을 비운다면서 왜 하필 우리가 오자마자 씻어 냅니까?"
당직자가 헛기침했다.
"평소 세척 시간입니다."
로완은 망에 걸린 짚 한 가닥을 핀셋으로 집었다. 끝이 잘린 열매 껍질에는 은빛이 얇게 들러붙어 있었다. 버린 열매의 썩은 냄새는 없었다. 대신 덜 마른 과육을 급히 말렸을 때 나는 떫은 단내가 났다.
"이건 오래된 폐기물이 아닙니다. 방금 손질한 열매예요."
그가 벽돌 건물의 좁은 환기창을 가리켰다. 창 아래에는 잘게 부서진 참숯과 은분을 머금은 짚이 띠처럼 쌓여 있었다. 바람은 창 안에서 밖으로 불고 있었다.
"세척수는 건조실에서 내려왔습니다. 안에 있는 걸 감추려고 물을 튼 겁니다."
실비아가 환기창 아래에서 감측판을 들었다. 푸른 눈금 아래로 거칠게 떨리는 은빛 선이 솟았다.
"벽 너머에 오염 열매가 있습니다. 적은 양이 아니에요."
펠릭스가 호위병에게 문을 지키라고 지시했다. 당직자가 옆문으로 물러나자 다른 호위병이 먼저 그 길을 막았다. 감찰관과 학장이 각자의 봉인을 확인한 뒤 건조실 자물쇠를 열었다.
문틈에 꽂혀 있던 작은 나무쐐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을 잠근 뒤에도 안에서 누군가 환기 틈을 벌려 놓았던 것이다. 로완은 쐐기를 천에 싸서 당직자의 발 앞에 놓았다. 당직자의 눈길이 잠깐 그쪽으로 쏠렸다.
안에서는 뜨거운 공기와 마른 풀 냄새가 밀려왔다. 선반마다 청월 열매 상자가 놓여 있었다. 어떤 상자는 정상 상단 표식을 달고 있었고 어떤 상자는 새 종이로 모서리를 감쌌다. 눈으로만 보면 구분할 수 없었다.
숲에서 압수한 세 상자는 이미 학장실의 검수 창고에 묶여 있었다. 여기에 놓인 것은 아직 장부에도 제대로 오르지 않은 별도 물량이었다. 로완은 열매 하나를 잘못 남겨 두면 제조소의 가마솥이 아닌 누군가의 약잔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았다.
"정상 납품분까지 전부 건드릴 수는 없습니다."
감찰관이 말했다.
"건드릴 필요 없습니다. 구분할 수 있습니다."
로완은 선반을 따라 걸으며 바닥의 짚을 보았다. 왼쪽 선반의 짚은 노르스름했고 손에 쥐면 유연하게 접혔다. 오른쪽 끝 선반의 짚에는 손끝에 묻어나는 은빛 가루가 남아 있었다. 건조 열기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차이였다.
"우선 이 구역을 격리하십시오. 열매는 상자마다 다른 자리에서 세 개씩 확인하겠습니다."
상단 당직자가 얼굴을 붉혔다.
"당신이 마음대로 상품을 훼손할 권리는 없소!"
"감찰관 앞에서 채취합니다. 정상 상자도 같은 수로 표본을 뽑죠."
로완은 한스가 표시한 상자번호를 읽고 세라믹 칼을 새 천에 닦았다. 정상 선반의 열매는 절단면이 매끈했고 푸른 과즙이 일정하게 배어 나왔다. 시약을 떨궈도 바닥에 가라앉는 입자가 없었다.
오른쪽 선반의 첫 열매는 칼끝을 대자 얇은 유리 껍질처럼 과육이 갈라졌다. 은빛 가루가 틈에서 밀려났다. 두 번째와 세 번째도 같은 반응이었다. 남은 세 상자의 여러 위치에서도 결과가 반복됐다.
"정상 상자는 그대로 두십시오. 이 세 상자와 접촉한 짚, 포대만 따로 봉인합니다."
감찰관이 지시를 적었다. 당직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곳에서 정상 물량을 모두 빼앗겼다고 항변할 구실도 사라졌다.
한스가 가장 아래 포대를 들어 올리다 멈췄다.
"로완, 여기 종이가 있습니다."
젖은 포대 밑에 두꺼운 출고 장부가 숨겨져 있었다. 표지는 물을 먹었지만 속장의 글씨는 살아 있었다. 펠릭스는 장부를 건드리기 전에 감찰관을 불렀다. 두 사람은 펼친 자리와 순서를 적은 뒤 원본과 옆에 끼운 필사본을 각각 봉인했다.
장부의 새벽 기록에는 청월 열매 재포장 네 상자가 적혀 있었다. 세 상자는 건조실 잔류. 마지막 한 상자는 출고 종과 함께 수도 방향으로 떠났다.
한스는 장부 귀퉁이에 묻은 물기를 천으로 조심스럽게 눌렀다. 조금 전에 울린 종은 세척을 시작하는 신호였고 출고 종은 동이 트기도 전에 울렸다. 그는 손에 쥔 천을 내려놓으며 수도로 뻗은 길 쪽을 보았다.
"말을 빨리 보내도 저쪽 마차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마차가 멈추는 곳으로 먼저 소식을 보내야지."
펠릭스가 장부의 다음 줄을 가리켰다.
수령인 칸만 네모나게 도려내져 있었다.
"이미 한 상자가 나갔군."
펠릭스가 이를 악물었다.
로완은 장부를 덮지 않았다. 날카로운 칼자국 아래쪽 장에는 흐린 눌림이 남아 있었다. 그는 창 쪽으로 장부를 돌려 빛을 비스듬히 받았다.
"이름은 없습니다. 하지만 운송 경로는 남아 있습니다."
종이의 눌린 선을 손가락으로 짚자 '서문 냉장 환적장'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앞장의 출고 서식에서 복사된 압흔이었다.
"최종 수령인은 누구죠?"
실비아가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환적장에서 다시 찾아야 합니다."
감찰관은 수도 서문 검문소로 보내는 긴급 보류 전령문을 썼다. 실비아는 오염 상자의 감측 눈금과 포대 가장자리의 세 갈래 문양을 기록해 붙였다. 학장은 제조소와 조달청에 같은 문양이 찍힌 청월 열매를 사용하지 말라는 통지를 보냈다.
펠릭스가 전령의 말 안장을 직접 살핀 뒤 고삐를 놓았다. 말이 옛 운송로를 박차고 수도 방향으로 달려갔다.
전령이 길모퉁이에서 사라진 뒤에도 누구 하나 건조실 문을 닫지 못했다. 감찰관은 도려낸 장부 조각이 남아 있는지 바닥까지 살폈다. 펠릭스는 호위병 둘을 보내 하역소의 다른 출입구를 봉쇄했다.
로완은 다시 건조실로 들어갔다. 세 상자의 안쪽 바닥을 검사하던 한스가 작은 붉은 밀랍 조각을 집어 들었다. 상단 표식 아래 감춰진 봉랍에는 황실 납품 상자에 쓰는 왕관 무늬가 찍혀 있었다.
"이걸로 위에까지 보내려 했던 겁니까?"
"낡은 상자를 다시 썼을 수도 있어. 그것부터 확인해야 해."
로완은 밀랍을 봉투에 넣었다. 왕관 무늬가 붙은 물건이 실제로 어디에 닿았는지는 아직 누구도 몰랐다.
"그 상자가 환적장에서 풀리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