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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12화

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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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은분이 묻은 검수 상자

계약서의 붉은 봉랍이 굳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로완은 유리 온실 벽에 붙은 수량표를 바라보았다.

납품 후보 60촉.

예비 12촉.

모주 회복상 12촉.

숫자는 충분했지만 식물은 숫자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뿌리가 하얗게 살아 있는지 절단면이 말라 봉합됐는지 운송 중 수분을 견딜 수 있는지까지 확인해야 했다.

한스가 여섯 포트를 가리켰다.

"이 아이들은 뿌리가 아직 짧습니다. 오늘 물을 조금 더 주면 내일까지는—"

"물을 더 주면 길어지는 게 아니라 부풀 뿐입니다."

로완은 포트 옆면의 배수 구멍을 살폈다. 맑은 물 대신 탁한 물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이 여섯 촉은 납품 후보에서 빼고 예비상으로 옮겨요. 모주를 더 잘라 숫자를 맞추지는 않습니다."

온실 문이 열리고 펠릭스가 들어왔다. 그는 눈을 털기도 전에 수량표부터 확인했다.

"황실 조달국에서 검수 기준을 보냈어. 열흘 뒤에 개체 수뿐 아니라 운송 후 회복성까지 본다더군."

"당연한 기준입니다."

"제국 약초 상단은 삼백 촉을 즉시 낼 수 있다고 압박 중이야. 우리가 육십 촉을 보내고 상태가 나쁘면 계약은 그쪽으로 넘어간다."

펠릭스는 탁자 위의 묽은 마나수 병을 집었다.

"이 정도 농도라면 포복경을 조금 빨리 깨울 수 있지 않나?"

로완이 병을 받아 들었다.

"마나가 뿌리의 호흡을 대신해 주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원칙을 따질 때가 아니야."

"원칙이 아니라 검수 조건입니다. 마나를 진하게 받은 묘는 잎이 먼저 부풀고 절단면이 먼저 무릅니다. 검수관은 꽃의 빛보다 뿌리의 활력을 볼 겁니다."

그는 수량표 아래에 작은 기록 칸을 더했다. 개체 번호, 모주 번호, 절단 시각, 첫 관수량, 배수 상태를 적는 칸이었다.

"살아 있다는 말을 믿게 하는 게 아닙니다. 살아 있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겁니다."

펠릭스는 잠시 표를 내려다보다가 마나수 병을 도로 놓았다.

"좋아. 필요한 표찰과 장부는 시엘버그 상단에서 마련하지."

그날 오후 문장 없는 회색 마차가 연구실 앞에 멈췄다.

황실 조달국 운송 담당자는 두꺼운 나무 상자와 은빛 봉인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검수용 표준 습윤 포장재입니다. 납품분은 반드시 이것으로 포장하십시오."

주머니 안에는 짙은 회색 이끼와 얇은 천 조각이 들어 있었다. 천 가장자리에는 은빛 가루가 눌어붙어 있었다.

한스가 주머니를 보며 말했다.

"사흘 전에도 이 사람이 시험용 상자 하나를 두고 갔습니다. 온실 뒤 선반에 놓으라고 해서 옮겨 두었는데요."

로완은 곧장 뒤쪽 선반으로 갔다. 은분이 발견된 포복경 열두 촉은 모두 그 상자 옆 증식상에 놓여 있었다.

운송 담당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시험용도 같은 표준품입니다. 사용하지 않은 게 문제라면 조달국에 보고하겠습니다."

로완은 대꾸하지 않고 천 조각을 잘라 회복이 늦은 포복경의 절단면에 눌렀다.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자 물이 퍼지지 않고 둥글게 맺혔다. 은빛 가루는 젖은 가장자리를 따라 얇은 막을 만들었다.

"절단면이 숨을 쉬지 못합니다."

한스가 포복경을 뒤집었다. 하얀 조직 위에도 회색 막이 번져 있었다.

"뿌리가 물을 못 먹는 겁니까?"

"물과 산소의 이동이 함께 막힙니다. 처음에는 멀쩡해 보여도 하루 뒤부터 잎이 처질 거예요."

실비아가 수정 감측판을 천 조각 위에 갖다 댔다. 수정판에 떠오른 은빛 선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

"기록 봉인에 쓰는 은분과 같은 계열이에요. 하지만 이건 물에 닿으면 마나 흐름을 한쪽으로 밀어냅니다."

로완은 봉인 주머니 안쪽을 살폈다. 접힌 천 뒤에 휘어진 선 세 개가 한곳으로 모이는 자국이 있었다. 자료실 장부와 계약 봉랍에서 보았던 문양이었다.

"이 표식도 표준품에 있습니까?"

운송 담당자의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저는 창고에서 받은 물품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식물에 닿는 재료를 확인하지 않고 사용할 수도 없었다.

로완은 포장재를 유리병에 넣고 밀봉했다.

"이건 쓰지 않습니다."

"황실 표준품을 거부하면 검수가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식물을 죽이는 물품을 거부할 권한은 있습니다. 시험 결과도 검수관 앞에 내놓겠습니다."

운송 담당자가 나간 뒤 로완은 나무 상자의 바닥을 살폈다. 나무판 아래에는 얕은 홈이 세 갈래로 파여 있었다.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자 홈은 물을 각기 다른 칸으로 모았다. 그중 한 칸에는 은분이 고여 있었다.

"이 상자는 물을 고르게 나르는 상자가 아닙니다."

펠릭스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열두 촉을 골라 망가뜨릴 수 있었다는 뜻인가?"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열두 촉의 기록과 은분이 고인 칸이 정확히 맞습니다."

로완은 오염된 포복경을 납품 대상에서 제외했다. 절단면을 깨끗한 물로 씻고 숯가루를 얇게 입힌 뒤 새 배지에 눕혔다.

"살아나더라도 시료로 보관합니다."

한스가 뒤쪽 선반에서 새 표찰을 가져왔다.

"비교상에서 뿌리를 잡은 포복경이 열두 촉 있습니다. 크기는 작지만 절단면은 깨끗합니다."

로완은 뿌리 끝과 잎맥을 확인했다.

"이 열두 촉을 예비로 올립니다. 모주 회복상은 건드리지 않아요."

납품 수량은 다시 60촉이 되었다.

로완은 공식 포장재 대신 새 운송 상자를 설계했다. 바닥에는 자갈을 깔고 그 위에 씻은 마른 이끼를 놓았다. 포트와 포트 사이에는 숯 조각을 세워 공기층을 만들고 물은 젖은 심지를 통해 천천히 공급하도록 했다.

한스는 상자마다 공기 구멍을 냈다. 실비아는 수정판으로 마나가 특정 칸에 쏠리지 않는지 확인했다. 펠릭스는 시엘버그 상단의 봉인을 붙이고 담당자와 봉인 시각을 직접 적었다.

"이름까지 적습니까?"

"한 번이라도 열리면 흔적이 남아야 합니다."

"그럼 내 이름도 걸지."

펠릭스는 인장 옆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열흘째 새벽까지 연구실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로완은 60촉의 잎 뒷면과 뿌리 끝을 마지막으로 검사하고 포트 안쪽에도 번호표를 넣었다.

그때 황실 조달국 검수관 세 명과 운송 담당자가 들어왔다.

"조달국 지정 포장재가 보이지 않는군요."

운송 담당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책임자가 황실 표준품을 임의로 거부했습니다."

펠릭스가 밀봉 유리병과 시험 기록을 탁자에 올렸다.

"훼손된 건 이쪽 포장재입니다."

검수관은 시료를 확인한 뒤 희생용 포복경을 살폈다. 표준 포장재에 닿은 절단면은 회색으로 변해 있었고 잎자루는 처져 있었다. 깨끗한 이끼로 싸인 대조 포트는 잎을 곧게 세우고 있었다.

실비아가 감측판을 들었다.

"병원 포자 반응은 없습니다. 표준 포장재가 절단면의 산소 이동을 막았습니다."

검수관은 은분이 남은 천의 안쪽을 뒤집었다.

"이 문양은 조달국 표준 봉인입니까?"

"수도 기록국에서 내려온 자재입니다. 저는 받은 대로 운반했을 뿐입니다."

"받은 곳은 어디입니까?"

운송 담당자의 입이 닫혔다.

"중간 창고입니다. 위치는 별도 운송표에 있습니다."

펠릭스가 운송 장부를 펼쳤다.

"여기에는 창고명이 없는데."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검수관은 그에게 별도 운송표를 제출하라고 명령한 뒤 로완의 상자를 열었다.

포트가 하나씩 장부와 대조됐다. 한 상자의 모서리에서 잎 하나가 처져 있었지만 로완은 숨기지 않았다.

"세 번째 칸의 공기 구멍이 이끼에 막혔습니다. 뿌리는 살아 있으니 예비 한 촉으로 교체하겠습니다."

한스가 같은 모주 번호의 포트를 가져왔다. 로완은 교체 시각과 이유를 장부에 적었다.

검수관은 마지막 포트까지 확인한 뒤 서류에 서명했다.

"조건부 검수 통과입니다. 60촉은 북부 치료소로 운송합니다. 격리 시료의 분석 결과에 따라 다음 증식 계약의 포장 규격은 다시 정합니다."

"그 조건을 계약서에 기록해 주십시오."

검수관이 서류를 넘기는 사이 운송 담당자가 봉인 주머니를 회수하려 했다. 펠릭스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것도 증거입니다."

운송 담당자의 얼굴이 굳었다. 검수관은 봉인 주머니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다.

사람들이 떠난 뒤 로완은 대체 상자 하나를 다시 열었다. 자갈 사이에 젖은 은분 한 알이 붙어 있었다.

실비아가 신목 정원의 배수 도면을 펼쳤다. 로완은 은분이 갈라진 각도를 상자 바닥의 홈과 겹쳐 보았다.

세 갈래의 각도와 길이가 북쪽 결계 아래에서 갈라지는 우회 배수선과 거의 같았다.

"이건 기록 봉인의 문양이 아닐지도 몰라요."

실비아가 낮게 말했다.

"물길을 표시한 표식일 수 있습니다."

로완은 은분을 유리병에 넣었다. 온실 너머 북쪽 정원의 검은 가지가 바람에 흔들렸다.

첫 납품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식물의 운송 상자와 신목의 물길에 같은 흔적을 남겼다.

"부교수님. 북쪽 배수선의 세 갈래 분기점을 다시 열어야겠습니다."

"이번에는 장부만 보지 않겠다는 뜻이군요."

"물이 실제로 어디로 흐르는지 확인하죠."

로완은 검수 통과 장부와 은분 시료를 나란히 놓았다. 60촉은 북부 치료소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로완은 장부를 덮지 않았다.

상자 바닥에 남은 세 갈래 홈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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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남의 이름 뒤에 숨어 곡을 쓰다 과로사한 무명 작곡가 강하진이 음악이 마법이 되는 판타지 아카데미의 마력 제로 낙제생 하진으로 빙의한다. 퇴학 직전 24시간 루프와 [신들의 작곡 시스템]을 이용해 지구의 화성학과 거장들의 선율을 대기 에테르 유도식으로 변환하며 악보 한 장으로 아카데미와 제국을 뒤흔드는 천재 작곡가의 대마법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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