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

8화: 봉인을 확인하는 사람
봉투를 받는 조건
다음 날 아침 송가장 서재의 창문에는 아직 안개가 걸려 있었다.
송 노부인은 책상 위에 낡은 봉투 하나를 올려 두었다. 누렇게 바랜 종이를 붉은 밀랍 세 겹이 붙잡고 있었다. 밀랍에는 구름 세 줄과 작은 원 하나가 눌려 있었다.
“이것이 북쪽 폐고의 위치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걸세.”
하륜은 봉투에 손을 대지 않고 겉면부터 살폈다.
“내용을 확인해도 됩니까?”
“자네가 열어야 알 수 있지 않나?”
“열 수 없습니다.”
송 노부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조사 의뢰를 받고도 문서 하나 열지 않겠다는 건가?”
“의뢰받은 것은 문양의 출처와 장부의 위치입니다. 봉투 안의 내용은 그 범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봉인을 훼손하면 조사자가 아니라 훼손자가 됩니다.”
윤아가 하륜의 옆에서 팔짱을 꼈다.
“열어 달라는 말로 시험할 거면 다른 사람을 찾으시오. 우리 국주는 종이 한 장도 함부로 안 건드립니다.”
송 노부인은 서랍에서 오래된 집안 인장을 꺼냈다.
“그럼 확인부터 하게. 봉인 세 겹. 붉은 밀랍. 구름 세 줄과 원 하나. 오늘 해시까지 내 손을 떠나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기게.”
하륜은 부속서를 펼쳤다.
“봉투를 조사 장소까지 가져갈 책임은 청운표국에 있습니까?”
“그렇네.”
“폐고에서 기록과 대조한 뒤 되돌려 드리는 것까지입니까?”
“그렇네.”
“봉인이 훼손되면 누가 확인합니까?”
송 노부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하륜은 부속서에 문장을 추가했다.
“봉인 훼손 여부는 송가장 보관자가 직접 확인합니다. 청운표국은 훼손하지 않은 외부 표식과 장부의 공개된 기록만 조사합니다.”
송 노부인은 서명한 뒤 봉인 위에 인장을 대고 눌렀다.
“북쪽 폐고는 낙수현 북문에서 버려진 짐수레 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돌다리 뒤에 있네. 옛 운송고를 관리하던 짐꾼 노경수가 위치를 알 거야.”
하륜은 봉투의 모서리와 봉인 번호를 적었다. 봉투는 별도 가죽 주머니에 넣고 봉인 번호를 적은 끈으로 손목과 연결했다.
윤아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사람이 아니라 봉투를 호위하는 기분이군.”
“사람은 자기 발로 도망칠 수 있지만 봉투는 누가 훔쳐 가도 소리치지 못합니다.”
두 사람은 송가장을 나섰다. 철강과 유발은 북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네 사람의 그림자가 안개 속에서 북쪽 산길로 길게 늘어졌다.
표식이 가리킨 가짜 길
노경수는 북문 밖 낡은 수레 아래에서 쐐기를 깎고 있었다. 그는 윤아가 내민 옛 표패를 보자 칼을 내려놓았다.
“그 표패를 아직도 가지고 있었나?”
“아버지 유품이다. 북쪽 폐고를 아는 사람을 찾는다.”
노경수의 시선이 하륜의 가죽 주머니에 머물렀다.
“그 안에 운송고 기록이 있나?”
“봉인된 의뢰인의 문서입니다.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폐고의 위치만 안내해 주십시오.”
노경수는 산허리를 가리켰다.
“돌다리를 지나면 흰 천 조각이 매달린 소나무가 보일 거야. 그쪽으로 가면 폐고가 나와.”
하륜은 길에 남은 바퀴 자국을 살폈다. 소나무 쪽에는 마른 흙 위로 수레가 지나간 흔적이 두 줄 있었다. 바퀴 자국은 산 안쪽이 아니라 낭떠러지 쪽으로 꺾여 있었다.
“흰 천은 길을 가리키는 표식이 아닙니다.”
하륜이 돌다리 아래의 진흙을 가리켰다. 말발굽 네 개가 찍혀 있었고 그중 두 개는 안쪽으로 향했다. 나머지 두 개는 돌아 나온 흔적이 없었다.
“누군가 사람을 낭떠러지 쪽으로 유도했습니다. 폐고는 산허리 안쪽입니다.”
그 순간 산 위에서 짧은 휘파람 소리가 났다.
철강이 도끼를 들어 올렸다.
“국주님. 손님이 아니라 사냥꾼이 온 것 같습니다.”
화살 하나가 돌다리 난간에 박혔다. 두 번째 화살은 하륜의 가죽 주머니를 향했지만 윤아의 쌍도가 중간에서 쳐 냈다.
“봉투를 내놓아라!”
산허리 뒤에서 검은 복장의 무사 다섯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리에는 금빛 줄이 들어간 패가 달려 있었다.
“만금상의 사람들인가?”
윤아가 묻자 맨 앞의 무사가 칼을 뽑았다.
“내용은 몰라도 봉인이 어디로 가는지는 안다. 17번을 다시 열기 전에 넘겨라.”
하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상대는 봉투의 내용이 아니라 17번이라는 번호를 알고 있었다.
윤아가 먼저 뛰었다. 쌍도가 첫 무사의 칼을 비틀어 냈고 철강의 도끼가 돌바닥을 후려쳤다. 유발은 노경수를 뒤로 밀어 화살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하륜은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가죽 주머니의 끈을 왼손에 감았다. 붕대 아래의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국주. 폐고로 가!”
윤아가 무사 하나를 걷어차며 소리쳤다.
하륜은 가짜 표식이 가리킨 길을 버리고 안쪽 바위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바위 뒤에는 오래된 수레길이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봉투는 봉인된 채였고 조사할 장부는 폐고 안에 있었다.
불타는 장부
폐고의 문은 반쯤 무너져 있었다. 안쪽에서는 타는 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하륜이 문을 밀자 선반 두 곳에 불이 붙어 있었다. 불길은 장부가 쌓인 안쪽으로 번지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창문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유발이 그의 발목을 걸었다. 사내가 칼을 휘두르자 철강이 도끼자루로 막았다. 윤아는 그 틈에 사내의 손목을 꺾었다.
“불부터 꺼!”
하륜은 벽 쪽의 젖은 포대를 찢어 장부 선반에 덮었다. 철강이 썩은 기둥을 쳐서 불길 사이에 통로를 만들었다.
하륜은 선반 위의 장부 묶음을 끌어냈다. 표지에는 ‘북창 운송고 인계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는 회색 봉투 하나가 끼어 있었다. 검은 끈과 구름 세 줄의 봉인이 보였고 원의 크기는 송가장의 인장과 달랐다.
하륜은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이것도 봉인 문서야?”
윤아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주인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불 속에 두면 타.”
“꺼내되 열지는 않겠습니다.”
하륜은 회색 봉투를 장부와 함께 끌어냈다. 겉면에는 흐릿한 글자가 남아 있었다.
‘북창 제17호. 송가장 수취 보조 진무백.’
윤아의 숨이 멎었다.
“아버지 이름이 왜 거기 있어?”
“아직 모릅니다. 글자와 봉인 상태만 기록하겠습니다.”
하륜은 장부의 겉장과 인계 번호만 적었다. 회색 봉투의 끈은 건드리지 않았다.
천장의 들보가 크게 삐걱거렸다. 철강이 마지막 물통을 선반에 부었고 유발은 붙잡힌 사내를 끌어냈다.
하륜은 장부 묶음과 회색 봉투를 서로 다른 포대에 넣었다. 장부에는 임시 번호를 매겼고 회색 봉투에는 ‘소유자 확인 전 이동 금지’라고 적었다.
밖으로 나오자 윤아가 사내의 허리에서 붉은 밀랍 조각을 찾아냈다. 하륜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세로 줄의 간격과 눌린 방향이 관아 영장 사본에서 본 흔적과 같았다.
“금태성의 봉인입니다.”
“저놈들이 기록을 없애려 했어.”
“확실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누가 명령했는지는 아직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하륜은 밀랍 조각을 별도 봉투에 넣었다.
“송가장으로 돌아갑니다. 먼저 회색 봉투의 상태를 의뢰인에게 확인받겠습니다.”
확인받지 않은 문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송 노부인은 해 질 무렵 서재에서 일행을 맞았다. 하륜은 불에 그을린 장부를 책상 위에 올리고 회색 봉투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장부를 열어 보게.”
“겉장과 인계 번호만 확인했습니다.”
윤아의 시선이 회색 봉투에 꽂혔다.
“북창 제17호. 송가장 수취 보조 진무백. 이 문구는 봉투 겉면에서 확인했습니다. 안의 내용은 보지 않았습니다.”
송 노부인이 회색 봉투를 바라보았다.
“그 봉투는 무엇인가?”
“폐고의 장부 사이에 있었습니다. 구름 세 줄의 봉인이 있으나 송가장의 인장과는 원의 크기가 다릅니다. 소유자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열어서 확인하면 되지 않나.”
“열 수 없습니다.”
송 노부인의 손이 책상을 내리쳤다.
“자네는 내 앞에서 내 집안의 과거를 들고도 열지 않겠다는 건가?”
“노부인의 봉투도 열지 않았습니다. 소유자가 확인되지 않은 이 봉투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인을 확인할 사람을 정해 주십시오.”
하륜은 회색 봉투의 겉면을 가리켰다.
“이 봉투가 송가장의 것인지 황실 운송고의 보관품인지부터 확정해야 합니다. 확인 없이 열면 내용이 진실이어도 인수 기록은 거짓이 됩니다.”
송 노부인은 가까이 다가와 봉인의 모양을 살폈다. 그녀의 얼굴이 굳었다.
“이건 우리 집안 것이 아니네. 황실 운송고의 관리자가 쓰던 봉인이야. 구름 안쪽의 작은 점은 운송고 관리자의 표식이지.”
윤아가 낮게 물었다.
“그럼 아버지는 황실 운송고에서 물건을 받은 겁니까?”
“수취 보조란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네. 어떤 물건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
하륜은 확인된 사실과 추정을 다른 줄에 적었다.
“봉투의 소유권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봉인 상태 확인자는 송 노부인. 현재 보관자는 청운표국. 개봉 책임자는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송 노부인은 그 문장을 읽었다.
“자네는 내게 확인하라고 요구하는군.”
“의뢰인이 확인해야 할 물건과 표국이 조사할 기록을 나눠야 합니다. 오늘 계약은 문양과 장부 위치입니다. 봉투의 내용은 새 계약 없이는 볼 수 없습니다.”
윤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륜은 아버지의 이름을 보고도 추측으로 빈칸을 채우지 않았다.
송 노부인은 회색 봉투 위에 손을 올리지 않은 채 말했다.
“봉인 상태를 내가 확인하겠다. 하지만 오늘은 열지 않겠다. 내일 옛 운송고 관리자의 생존 여부부터 알아보세.”
“확인 시각과 상태를 기록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붉은 밀랍 조각도 내놓게.”
송 노부인은 밀랍 조각을 보는 순간 표정을 바꾸었다.
“이 흔적은 옛 운송고 장부를 폐기할 때 쓰던 인장과 같다.”
하륜은 회색 봉투를 다시 포대에 넣고 봉인 번호를 적었다. 봉투는 열리지 않았고 검은 열쇠도 여전히 송 노부인의 서랍 안에 있었다.
그러나 청운표국이 조사해야 할 길은 하나 더 늘어나 있었다.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봉인 문서가 서재 바닥에서 조용히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