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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11화

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

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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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문턱에 선 사람

문밖의 말발굽

담벼락에 기대 있던 청년이 비틀거렸다. 품에 안은 보따리보다 어깨에 번진 피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첫 말이 골목 모퉁이를 돌자 청년은 벽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발끝이 배수로 턱에 걸렸다. 말굽이 돌바닥을 찍는 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났다.

“문을…… 열어 주십시오.”

청년이 청운표국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좁은 골목을 긁었다.

윤아가 먼저 대문으로 나갔다. 청년이 그녀의 팔을 붙잡기도 전에 검은 말을 탄 사내 셋이 골목 입구에 나타났다. 제각기 다른 겉옷을 입었지만 칼집에는 같은 검은 끈이 감겨 있었다.

“그놈을 넘겨라.”

맨 앞의 사내가 말에서 내리며 칼을 빼 들었다. 청년은 보따리를 품에 바짝 끌어안았다.

“저 사람들…… 누이가 어디 있는지 말하라면서…….”

“철강, 사람부터 안으로.”

윤아가 짧게 명령했다. 철강이 청년의 겨드랑이를 받쳐 문턱을 넘겼다. 수레에 실린 ‘합배송-01’ 상자가 두 사람 옆에서 흔들렸다.

칼끝이 상자를 가리켰다.

“군수 장부 열쇠를 어디에 숨겼지? 그 상자냐?”

하륜의 머릿속에 송가장 서재의 닫힌 서랍이 스쳤다. 그곳을 입에 올리는 순간 추격대의 칼끝이 송 노부인에게 향할 터였다. 그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유발이 수레 앞으로 나섰다. 하륜은 상자 앞의 봉인 끈을 보았다. 고 노인에게 내일 미시까지 낙양현에 닿게 하겠다고 적어 준 화물이었다.

“어느 관아에서 오셨습니까?”

하륜이 골목으로 한 걸음 나갔다.

“그게 왜 필요하지?”

“사람을 데려가고 남의 표물을 열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쪽도 이름 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

앞장선 사내가 코웃음을 쳤다.

“도둑을 쫓는데 표단이 필요하냐? 저놈이 훔친 것이 황실 물건이다.”

하륜은 청년을 돌아보았다. 청년은 고개를 흔들었지만 입술만 떨렸다. 하륜은 그 말을 믿었다고도 거짓이라 여긴다고도 하지 않았다.

“도난 신고한 사람의 성명과 잃어버린 물건의 인계 기록을 보여 주십시오.”

“말이 많군.”

사내가 칼끝을 내밀었다. 윤아의 쌍도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말 대신 칼을 내면 여기서부터 내가 상대한다.”

기록하는 눈

하륜이 노칠에게 눈짓했다. 노칠은 대청 벽의 배차표 옆에서 빈 장부를 들고 대문으로 내려왔다. 성치 않은 어깨로 붓을 쥐었지만 손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방문 시각, 석양 직후. 기마 세 명. 신분 고지 없음.”

노칠이 일부러 또렷하게 읽으며 적었다. 시장으로 돌아가던 참기름집 고 노인이 그 소리를 듣고 걸음을 돌렸다. 다른 가게 문도 반쯤 열렸다.

앞장선 사내의 얼굴이 굳었다.

“장부를 치워라.”

“문전에서 일어난 일은 남겨야 합니다.”

노칠은 붓으로 사내들의 칼집에 감긴 검은 끈까지 적었다. 이름을 남기지 않으려던 자들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불편할 터였다.

하륜은 국주 인장을 꺼내 들었다.

“이 청년의 신원은 아직 확인 중입니다. 다쳤으니 먼저 상처를 살필 겁니다. 죄가 있다면 관아에 신고하십시오. 정식 문서와 입회인이 오면 그때 확인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그놈이 필요하다니까!”

셋째 사내가 말을 돌려 낮은 담 옆으로 붙었다. 그가 발판에 발을 올리는 순간 윤아가 담 안쪽으로 뛰어올랐다. 쌍도의 칼등이 그의 손목을 눌렀다. 사내는 손을 빼며 땅으로 떨어졌다.

철강도 도끼를 수레 바퀴 앞에 세웠다.

“표물에 손대면 받는 건 운임이 아니라 도끼자루다.”

유발은 그 사이 합배송 상자의 봉인 번호를 확인했다. 마중원이 굴대에 꽂힌 나무쐐기를 다시 조였다. 누구도 상자를 열지 않았다.

하륜이 노칠에게 말했다.

“접수 목록에서 별도 열쇠 의뢰가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노칠이 장부를 넘겼다.

“없습니다. 오늘 수레에는 참기름병 세 개뿐입니다.”

하륜이 사내를 보았다.

“지금 말씀하신 이름으로 받은 표물은 없습니다. 저 상자는 고 노인의 물건이고 봉인 번호가 있습니다. 훼손하면 손해를 물어야 합니다.”

고 노인이 골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내 기름병에 무슨 장부 열쇠가 들었다는 게요? 내가 봉인하는 걸 봤소!”

구경하던 상인 둘이 수레를 보았다. 앞장선 사내는 혀를 찼다. 칼을 거두며 청년을 향해 말했다.

“문이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말 세 필이 골목 어둠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말발굽 소리는 멀어지지 않았다. 시장 뒤편을 크게 돌아 표국 뒷담 쪽으로 향했다.

열쇠를 보지 못한 사람

대청에는 젖은 천과 등잔이 놓였다. 윤아가 청년의 어깨를 씻자 얕게 베인 자국 아래 오래된 멍이 드러났다. 청년은 이를 악물다가 기름병 상자를 보며 몸을 떨었다.

“저 상자 때문에…… 나까지 죽을 뻔했습니까?”

“저 상자는 참기름입니다.”

하륜이 맞은편에 앉았다.

“이름부터 말씀하십시오.”

“연민석입니다. 송가장에 들어간 연씨가 제 누이입니다.”

하륜의 붓이 멎었다. 그는 17번 표단 사본을 펴고 청년에게 보여 주지 않은 채 물었다.

“누님이 송가장에 무슨 일로 들어갔습니까?”

“혼례 때 일손이 부족해서 찬모를 구한다 했습니다. 두 달 전부터 거기서 잤고 저는 성 밖 물레방앗간에서 누이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언제 만나기로 했습니까?”

“어젯밤입니다. 누이가 안 오기에 기다렸습니다. 새벽에 저놈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누이는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물레방앗간 물길이 끊겨도 거기서 기다리라 했어요. 그래서 해가 뜰 때까지 떠나지 못했습니다.”

민석은 말을 멈추고 손목의 멍을 문질렀다. 밧줄 자국이 자줏빛으로 남아 있었다.

연민석은 보따리를 풀었다. 안에는 젖은 여벌옷과 짧은 종잇조각이 있었다. ‘해 진 뒤 물레방앗간. 연.’이라는 글자가 번져 있었다.

“누이가 남긴 건 이것뿐입니다. 글씨가 같습니까?”

하륜은 표단의 의뢰인 서명과 쪽지를 나란히 놓았다. ‘연’ 자의 끝획이 같은 방향으로 꺾였다. 같은 손일 가능성은 높았으나 그것만으로 형제임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

“누님이 맡긴 함에는 어떤 번호가 붙었습니까?”

“열일곱. 누이가 그 숫자를 자꾸 외웠습니다. 제가 물으면 기억할 일 아니라고 했고요.”

윤아가 천을 갈아 얹었다.

“그런데 왜 여기로 왔지?”

“저놈들이 누이도 저도 청운표국에 열쇠를 숨겼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가 봐야 이름만 듣고 문을 닫을 것 같았습니다.”

“열쇠를 봤습니까?”

“아니요. 무슨 장부인지도 모릅니다. 처음엔 제가 뭘 훔쳤다는지도 몰랐습니다. 저놈들이 누이 목숨을 들먹이며 물었습니다.”

“한 놈은 누이가 먼저 도망쳤다고 했고 다른 놈은 아직 붙잡아 두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말이 진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청년의 손이 떨렸다. 윤아는 묶은 천을 조금 느슨하게 했다.

하륜은 장부에 적었다. ‘연민석이라 자칭. 17번 의뢰인 연씨의 동생이라 진술. 글씨 유사. 신원 최종 확인 전.’

“누님을 찾고 싶습니다.”

연민석이 낮게 말했다.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살아 있어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륜은 그제야 청년을 제대로 보았다. 펼쳐 놓은 보따리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젖은 옷과 누나가 오기를 기다린 자리의 흔적뿐이었다.

“지금은 상처를 멎게 하십시오. 밖에는 우리가 서겠습니다.”

마당에서 짧은 금속음이 났다. 마중원이 등잔을 들고 마구간 쪽으로 뛰었다.

두 종류의 약속

“누가 고삐를 건드렸습니다!”

마중원의 외침에 모두 마당으로 나갔다. 합배송 수레의 왼쪽 말 고삐에 반쯤 끊긴 자국이 있었다. 겉에서는 멀쩡했지만 안쪽 가죽이 얇아져 있었다. 아침에 무게가 실리면 끊어질 상태였다.

담 위에서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윤아가 도약해 칼집으로 담 위에 걸친 손목을 내리쳤다. 그림자는 짧게 비명을 삼키고 담 밖으로 뛰어내렸다. 철강이 뒤쫓았지만 골목 끝 말 울음소리만 돌아왔다.

“상자는?”

하륜의 질문에 노칠이 수레를 살폈다.

“봉인은 그대로입니다. 기름병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중원은 끊긴 고삐를 하륜 앞에 펼쳤다.

“칼끝으로 안쪽만 그었습니다. 겉만 보고 출발했으면 마차가 뒤집혔을 겁니다.”

마중원은 검지로 절단면을 더듬었다. 낡아서 터진 가죽과 달리 가장자리가 깨끗했다. 그는 예비 고삐를 가져오라고 유발에게 손짓했다.

유발이 이를 갈았다.

“저놈들이 내가 낙양현으로 가는 걸 아는군요. 날 밝기 전에 고삐를 갈고 바퀴를 다 살피겠습니다.”

하륜은 열린 대문에서 대청 벽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표사에게 모두 공개한 배차표가 골목의 낯선 눈에도 읽혔다. 그는 노칠에게 다음 배차부터 출발 시각을 적은 종이는 안쪽 벽에 붙이라고 지시했다. 표사들의 눈에서는 숨기지 않되 지나가는 자에게 노선을 내줄 필요는 없었다.

“그 전에 부상당한 사람을 수레 밑에 숨기면 놈들의 눈을 피할 수 있지 않습니까?”

철강이 연민석 쪽을 돌아보았다. 민석도 순간 수레를 보았다. 하륜은 고개를 저었다.

“고 노인이 맡긴 건 기름병입니다. 그 상자를 사람 숨기는 데 쓰면 봉인도 약속도 깨집니다. 더구나 저쪽은 수레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어쩝니까?”

윤아가 물었다. 그녀는 이미 민석의 앞에 서 있었다.

하륜은 대청 벽의 배차표를 떠올렸다. 말의 사료도 고삐의 교체도 기름병의 기한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오늘 문턱을 넘은 사람의 목적지와 지켜야 할 시각은 어디에도 없었다.

“화물과 사람의 길을 따로 정해야 합니다.”

하륜은 빈 표단 두 장을 펼쳤다. 한 장에는 ‘합배송-01. 낙양현. 내일 미시’라고 적었다. 다른 장에는 ‘보호 대상 연민석’이라고 썼다.

그 밑의 목적지 칸은 비어 있었다.

문밖에서 말발굽이 다시 멎었다. 대문에 무거운 물건이 탁 부딪혔다. 철강이 빗장을 잡고 윤아가 칼집을 쥐었다.

“관아 형방에서 왔다. 문을 열어라.”

하륜은 아직 마르지 않은 표단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누가 관아의 이름을 내세우든 문을 열기 전에 신분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 사이 목적지 없는 사람의 표단은 여전히 빈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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