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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10화

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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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백지 위의 배차표

벽에 붙은 빚의 무게

청운표국 대청마루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금태성이 떠난 마당에는 깊게 파인 바퀴 자국만 남았다. 대청 구석에 모여 앉은 표사들의 안색은 흙빛이었다.

“소금 한 줌 서신 한 장도 못 들어오게 한답니다. 만금상이 관아와 손잡고 길목을 막으면 우린 며칠이나 버팁니까?”

어깨에 붕대를 감은 노칠이 마른기침을 뱉었다. 젊은 표사 마중원도 무릎을 끌어안았다.

“혼례함 때도 죽을 고비를 넘겼잖소. 목숨 걸고 뛰어봤자 빚 갚고 나면 푼돈인데 일감마저 끊기게 생겼으니…….”

만금상이 관문과 큰길을 쥐고 거래처를 막는다면 소형 표국은 보름도 버티지 못할 터였다.

철강이 주먹으로 마룻바닥을 쾅 내리쳤다.

“빌어먹을 놈들! 삼천 냥 빚으로 사람 목줄을 죄다니. 국주님, 방법이 없는 겁니까?”

윤아가 쌍도의 칼집을 쥔 채 묵묵히 하륜을 바라보았다.

하륜은 말없이 일어나 구석에서 커다란 백지 두 장을 가져와 벽면에 붙였다. 먹을 찍은 붓을 쥐고 벽 앞에 섰다.

“노칠 아저씨, 중원아. 철강과 유발 형님도 이리 와서 보십시오.”

차분한 목소리에 표사들의 시선이 벽으로 쏠렸다. 하륜은 백지 상단에 굵은 글씨로 숫자를 써 내려갔다.

‘청운표국 총 채무: 삼천 냥. 변제 만기: 석 달 뒤.’

그 아래로 줄을 긋고 항목을 쪼갰다.

‘어제 송가장 혼례 패물 배송 잔금: 은전 아홉 냥.’
‘현재 표국 금고 보유금: 은전 열한 냥 닷 푼.’
‘표마 여섯 마리 하루 사료비: 닷 푼.’
‘선대 국주 및 부상 표사 하루 약값: 넉 푼.’
‘한 달 고정 지출 총합: 은전 스물여덟 냥.’

표사들의 숨이 턱 막혔다.

남은 돈은 열한 냥인데 한 달 고정 지출만 스물여덟 냥이었다. 석 달 뒤 삼천 냥의 만기까지 숫자는 명확했다.

유발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걸…… 우리한테 다 보여주시는 겁니까?”

선대 시절에도 장부는 닫힌 서랍 속에 있었다. 표사들은 얼마를 벌고 왜 빚이 쌓이는지 모른 채 주는 대로 품삯을 받아왔다.

하륜이 뒤를 돌아보며 표사들의 눈을 마주했다.

“알아야 싸울 수 있습니다. 어디에 구멍이 났는지도 모르면서 노를 저으면 배는 가라앉을 뿐입니다.”

위험을 계산하는 법

하륜은 두 번째 백지에 붓을 대었다.

“지금껏 표행은 도박이었습니다. 대충 운임을 정해 길을 떠났고 다치거나 죽으면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했습니다.”

철강의 어깨가 움찔했다. 지난 수년간 그들이 겪어온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청운표국은 그렇게 일하지 않습니다. 길을 떠나는 사람의 목숨값을 어림짐작으로 때우지 않겠습니다.”

하륜은 백지에 세 단어를 적었다.

‘거리, 무게, 험로 위험도.’

“이것이 청운표국의 새로운 운임 산정 기준입니다. 십 리당 기본 운임에 짐의 무게를 곱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 도사린 위험도를 1급부터 4급까지 나누어 책정합니다.”

하륜이 표사들을 향해 붓끝을 겨누었다.

“평탄한 관도는 기본 운임만 받습니다. 하지만 험로나 산적 출몰지는 정당한 위험 할증료를 청구합니다. 그 할증료의 삼 할은 현장에서 칼을 뽑은 표사에게 즉시 현금으로 지급합니다.”

“삼 할을…… 우리가 바로 받는다고요?”

유발의 목소리가 떨렸다. 위험수당이라는 개념 자체가 강호 표국에는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표행 중 다치면 치료비 전액을 표국이 부담하며 장애가 남거나 목숨을 잃으면 가족의 생계비를 장부에서 우선 지급할 것입니다.”

대청 안이 고요해졌다. 노칠이 성치 않은 어깨를 감싸 쥐었다.

“국주님, 허면…… 나처럼 칼도 못 쥐는 늙은이나 중원이 같은 놈들은 어찌 됩니까? 우리는 현장에 나가지도 못하는데 쫓겨나는 것입니까?”

하륜이 다가가 노칠의 거친 손을 감싸 쥐었다.

“표국은 달리는 자들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봉인을 확인하고 수레를 정비하며 창고를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누구도 안심하고 달리지 못합니다.”

하륜이 벽의 백지에 새로운 직무를 적었다.

‘검수 및 창고 관리 반장: 노칠.’
‘차량 및 마구 점검 반장: 마중원.’

“아저씨는 짐의 무게를 가장 정확히 맞히고 중원이는 수레 굴대의 이상을 소리만으로 압니다. 두 분께 검수와 정비 직무를 맡기겠습니다. 현장에 나가지 않아도 매달 은전 한 냥의 고정 보수를 드립니다.”

“국주님…….”

노칠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고 마중원도 눈가를 훔쳤다. 짐짝 취급을 걱정하던 이들에게 그것은 당당한 노동의 몫이었다.

윤아가 미소를 머금었다. 하륜은 투명한 규칙으로 사람들의 자존감을 세워주고 있었다.

철강이 가슴을 활짝 펴며 외쳤다.

“국주님! 이 철강이 4급 위험길이라도 국주님이 가라 하시면 지옥 끝까지 뛰겠습니다!”

“도끼질만 잘한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앞으로는 짐표를 읽고 봉인 번호를 대조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하륜의 핀잔에 대청 안에서 웃음이 터졌다. 침울하던 공기는 가시고 살아남겠다는 독기가 표사들의 눈빛에 서리기 시작했다.

닫힌 마방의 문

그때 마당 쪽에서 거친 말울음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들렸다.

낙수현 마방의 주인 조 마두였다. 뒤따라온 일꾼 둘의 수레는 텅 비어 있었다.

윤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조 마두? 사료 들어오는 날인데 수레가 왜 비어 있어?”

조 마두가 곤혹스러운 낯빛으로 하륜을 바라보았다.

“서 표두, 사정이 생겼소. 오늘부터 청운표국에는 콩과 건초를 공급할 수 없게 되었소. 수레 수리도 당분간 어렵소.”

철강이 눈을 부라렸다.

“돈을 내는데 사료를 안 준다는 게 말이나 돼?”

“나라고 이러고 싶겠소? 만금상 도 서리가 다녀갔소. 청운표국에 꼴 한 단이라도 파는 날에는 관도 통행증을 취소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단 말이오!”

하륜의 거절을 듣자마자 말의 먹이부터 끊어 표국의 발을 묶으려는 속셈이었다.

하륜이 대청을 내려와 조 마두 앞에 섰다.

“조 마두님, 지난달 초하루에 맺은 사료 공급 계약서를 기억하십니까?”

“계약서요? 그야 장사치들끼리 쓰는 종이지만…….”

“그 종이에 석 달간 사료를 독점 공급받는 조건으로 선금 석 냥을 드렸습니다. 계약서 제5조에는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납품을 중단할 경우 받은 선금의 세 배를 배상하고 표국의 운송 차질 손해를 전액 배상한다고 적혀 있지요.”

조 마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세 배 배상이라니요? 그건 관행으로 적은 문구 아닙니까!”

“법과 관아의 문서에 관행이란 없습니다. 지금 사료를 끊으시면 당장 관아 형방으로 가겠습니다. 만금상의 협박 때문에 계약을 깼다는 사실을 조 현령 앞에서 공술하십시오. 선금의 세 배인 아홉 냥에 오늘부터 발생할 손실금 열 냥을 합쳐 즉시 마방의 말들을 가압류 신청하겠습니다.”

“가압류라니! 진 국주, 왜 이러시오!”

하륜의 눈빛은 서늘했다.

“저희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만금상의 협박이 무서워 계약을 깨시겠다면 그 손해는 마방이 짊어지셔야 합니다.”

조 마두가 식은땀을 흘렸다. 법조항을 들이밀며 재산을 압류하겠다는 하륜의 기세는 실질적인 공포였다.

하륜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조 마두님을 벼랑 끝으로 몰고 싶지는 않습니다. 큰 마방에서 대놓고 싣고 오기 껄끄러우시다면 다른 방법을 쓰지요.”

“다, 다른 방법이라니요?”

“마방 대신 남쪽 화전민 농가 세 곳을 통해 콩과 건초를 우회 입고시키십시오. 운송은 저희가 직접 맡겠습니다. 만금상에는 거래를 거절당해 농가 꼴을 구해 먹인다고 둘러대십시오.”

만금상의 감시를 피하면서 위약금 책임을 면하고 대금까지 챙길 수 있는 활로였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야 내야 감지덕지지요! 최고의 건초로 빼돌려 두겠소!”

조 마두는 연신 허리를 굽히며 도망치듯 마당을 빠져나갔다. 윤아가 팔짱을 끼며 피식 웃었다.

“종이 쪼가리가 칼보다 무섭다는 말을 이제야 알겠군.”

골목의 짐을 묶다

오후가 되자 시장 쪽에서 뜻밖의 손님이 표국 대문을 두드렸다. 기름때 묻은 앞치마를 두른 참기름집 고 노인이었다.

“저어…… 청운표국이 아직 문을 열었소?”

하륜이 마당으로 나가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청운표국 국주 진하륜입니다. 어르신,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고 노인은 눈치를 살피며 품에서 짚으로 묶은 기름병 세 개를 꺼내 보였다.

“만금상 표국에 갔더니 기름병 서너 개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더구먼. 맡기려면 은전 한 냥을 내놓으라는 게요. 이 기름을 이웃 현 조카 혼례상에 꼭 보내야 하는데 배송비가 열 배는 더 드니 어찌할 바를 몰라…….”

만금상은 대형 화물 수송에만 집중하느라 골목 소상인들의 소액 화물은 외면하거나 폭리를 취하고 있었다.

하륜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어르신, 수신처가 어디입니까?”

“낙양현 동문 앞 기와집 골목이네. 내일까지는 꼭 들어가야 하는데…….”

하륜은 대청 벽의 새 배차표를 살폈다.

“유발 형님, 내일 아침 인근 창고로 수레 부속을 가지러 가지요?”

“예, 국주님. 낙양현 관도를 스쳐 지나가는 길입니다.”

“그 동선에 고 어르신의 기름병을 얹습니다.”

하륜은 백지 위에 ‘합배송 제1호’라는 항목을 신설했다.

“깨지기 쉬운 액체 화물이니 2급 위험 표물입니다. 다만 기존 경로에 합적하므로 운임은 엽전 쉰 닢만 받겠습니다. 완충 포장 비용 닷 푼을 더해 쉰다섯 푼입니다.”

“쉰다섯 푼? 정말 그 돈만 받고 낙양현까지 가져다준단 말이오?”

고 노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은전 한 냥의 이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대신 표단에 적힌 기한인 내일 미시까지 도착하지 못하거나 기름병이 깨진다면 표국 규정에 따라 기름값의 두 배를 배상해 드립니다.”

하륜은 표단을 작성하여 고 노인에게 건넸다. 노칠이 다가와 기름병을 조심스럽게 받아 짚단을 덧댄 나무 상자에 고정했다. 상자 겉면에 붉은 먹으로 ‘합배송-01’ 표식을 적고 봉인 끈을 둘렀다.

고 노인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엽전 꾸러미를 내밀었다.

“고맙소, 진 국주! 내 시장 골목 상인들에게 청운표국이 작은 짐도 귀하게 여겨준다고 널리 알리겠소!”

손에 쥔 돈은 은전 반 냥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골목길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고 오가지 못해 발을 구르는 수많은 약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발이 합배송 상자를 수레에 실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국주님! 내일 점심 전까지 낙양현 조카 처소에 한 방울도 안 흘리고 꽂아 넣겠습니다!”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서두르다 깨뜨리면 배상해야 합니다.”

하륜의 경고에 유발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양이 낙수현 기와지붕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대청 벽에 붙은 백지 위에는 표사들의 이름과 배차 노선과 투명한 숫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새로운 규칙으로 무장한 청운표국의 물류망이 태동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표국 밖 골목 어귀의 담벼락 뒤편에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흙먼지와 핏자국으로 얼룩진 삼베옷을 입은 청년 하나가 몸을 숨긴 채 청운표국의 대문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청년은 품속의 보따리를 필사적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그의 등 뒤 먼 골목길에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서늘한 살기를 띤 그림자들이 낙수현 골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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