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7화: 아날로그 심문
철문은 벽의 일부처럼 보였다.
윤슬이 녹슨 배관 세 개 사이에 손을 넣어 짧게 두 번 두드렸다. 한참 뒤에 한 번 더 두드리자 빗물이 바닥을 타고 흐르는 소리까지 멎은 듯했다.
도현은 캠봇을 어깨 높이에서 내렸다. 렌즈의 붉은 점은 꺼질 듯 말 듯했다. 목 뒤 단자는 아직도 화상처럼 뜨거웠다.
"여기가 수문이야?"
"수문 앞." 윤슬은 철문을 향한 채 말했다. "안쪽은 네가 볼 곳이 아니야. 아직은."
철문 반대편에서 금속이 긁혔다. 낮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윤슬."
"돌아왔다."
"혼자는 아니네."
윤슬은 도현 쪽을 보지 않았다.
"길에서 주웠어."
"그건 살아 있는 말이야?"
도현이 대답하려 했지만 윤슬이 먼저 손을 들었다. 문 너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오늘 비가 멎은 뒤 첫 번째로 꺼진 불은 어디였지?"
윤슬의 고글 아래 눈가가 아주 조금 굳었다. 그녀는 젖은 손등을 문 아래 틈에 밀어 넣었다.
"동쪽 빗물 탱크. 펌프가 타서 껐어."
잠시 뒤 안쪽에서 작은 레버가 돌아갔다. 철문 한가운데의 좁은 판이 열리자 총구와 한쪽 눈이 나타났다.
눈의 주인은 윤슬보다 먼저 도현의 캠봇을 보았다. 다음에는 목 뒤 단자를 보았다.
"캡슐 출신이군."
"강도현이야."
"이름은 나중에." 남자가 말했다. "그 장난감부터 꺼."
도현은 캠봇을 내려다봤다. 화면에는 아직도 숫자 하나만 떠 있었다.
[OFFLINE LIVE STREAM]
[REC 00:11:42]
[현재 시청자: 0]
"못 꺼요."
윤슬의 고개가 느리게 돌아갔다.
"조건 잊었어?"
"빛은 안 켤게. 위치도 안 남길 거야. 그런데 이걸 끄면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기록도 없어져."
문 너머의 남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기록? 네가 데리고 온 건 기록 장치가 아니라 발신기야."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테나의 드론이 캠봇의 파형을 좇던 모습이 도현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약하게 보내는 전파도 오래 이어지면 방향을 가리키는 실이 될 수 있었다.
윤슬이 낮게 말했다.
"렌즈를 꺼."
"사람은 안 찍을게."
"그 말로는 안 돼."
도현은 젖은 무릎을 굽혀 캠봇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손목의 상처가 쑤셨다. 고장 난 조명을 손톱으로 뜯어 내고 송출 모듈 옆의 얇은 단자를 빼냈다.
"캠봇. 수동 모드. 위치 태그 삭제. 마이크는 수신 전용. 렌즈는 내 손보다 위로 못 돌게 고정."
캠봇의 렌즈가 한 번 흔들렸다.
[송출 출력: 최저]
[위치 데이터: 차단]
[음성 입력: 차단]
도현은 캠봇을 뒤집어 바닥만 향하게 했다. 화면에는 빗물과 자기 피 묻은 손가락만 잡혔다.
"이 상태면 전파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그가 문 너머를 향해 말했다. "그래도 안쪽을 보거나 듣지는 못해요. 오래 켜 두면 위험해지는 것도 알아요."
"어떻게 알아?"
"내가 방금 전까지 그 위험을 피해 왔으니까."
문틈의 눈이 가늘어졌다. 윤슬은 잠시 도현의 손과 캠봇을 번갈아 보았다.
"내 보증으로 들여보내." 그녀가 말했다. "문제 생기면 내가 수문 당번을 더 설게."
"윤슬."
"내가 데려왔어."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손은 소총의 안전장치 위에 있었다. 도현은 그제야 그녀가 자신을 믿어서가 아니라 책임을 피하지 않아서 이 말을 한다는 걸 알았다.
철문 너머에서 긴 한숨이 흘렀다.
"장비는 기록함. 사람은 손부터 보여."
철문 옆 벽돌 하나가 밀리며 작은 금속 상자가 나왔다. 상자는 수문 바깥에 달려 있었다. 안쪽으로 가는 선은 없었다.
도현은 캠봇을 완전히 넣지 않았다. 상자 뚜껑 안쪽에 바닥을 향한 렌즈만 고정했다. 금속판이 송출을 더 약하게 죽일 터였다.
"이 상태면?"
"살아남고 싶으면 질문은 하나씩 해."
철문이 손바닥만큼 열렸다.
안쪽은 정비소의 지하 같았다. 낡은 공구대 위에 손전등이 엎어져 있고 빗물 탱크에서 뻗은 고무 호스가 벽을 따라 이어졌다. 전기가 아닌 등유 냄새와 젖은 천 냄새가 났다.
벽 한쪽에는 녹슨 스패너와 잘린 전선이 크기별로 걸려 있었다. 공구 아래에는 빈 통조림 깡통을 납작하게 눌러 만든 물받이가 줄지어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누군가가 물받이를 옮겼다. 그 손은 늙어 보였지만 움직임은 빨랐다.
멀리 비닐천 뒤에서는 작은 램프 하나가 꺼졌다 켜졌다 했다. 전기를 아끼려는 손길이었는지 신호였는지 도현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여럿이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 숨소리까지 줄이고 있었다.
도현이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이 그의 팔을 잡았다. 한 명은 얇은 철판을 잘라 만든 조끼를 입은 남자였다. 다른 한 명은 회색 머리를 짧게 자른 여자로 작은 손전등을 도현의 눈에 비췄다.
"손목." 여자가 말했다.
도현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맥을 짚고 손바닥의 상처를 뒤집어 봤다.
"목 뒤도."
도현이 고개를 숙이자 모두의 시선이 단자에 모였다. 윤슬이 소총을 내린 채 옆에 섰다.
"그걸로 기계 문을 열었어." 누군가 중얼거렸다.
"기계 문 옆에서만 잠깐." 도현이 말했다. "전력도 거의 없어요."
"그 말을 믿으라고?"
남자가 도현의 재킷 주머니를 뒤졌다. 예비 배터리와 손전등, 빈 손잡이만 나왔다. 삼각 고정핀은 드론의 냉각 팬에 남겨 두고 왔다.
"캡슐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 아테나가 돌려보낸 거라고 했어." 회색 머리 여자가 말했다. "우릴 찾으라고."
도현의 목이 말랐다. 이곳의 누구도 그의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없었다. 백만 개의 반응이 밀려오던 방송에서는 한 마디만 던져도 웃음과 박수가 따라왔다. 여기서는 대답 하나가 수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아요." 그가 말했다. "저도 내가 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는 몰라요."
윤슬이 그를 흘겨봤다.
"그런데 캡슐 안에 있을 때 내 구독자 백만 명이 다 AI였다는 걸 알았어요. 그 뒤로는 누가 내 말을 듣는지 직접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왔고요."
정비소 안쪽에서 누군가 짧게 코웃음 쳤다.
"사람 보겠다고 여기까지?"
"네."
도현은 대답하고 나서야 그 말이 얼마나 초라하게 들리는지 알았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때 구석에서 금속 컵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기침했다. 다른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물을 아끼라고 타일렀다. 비닐천 뒤에서는 어린아이가 잠꼬대를 했다.
캠봇이 잡지 못하는 소리였다. 그러나 도현의 귀에는 어떤 방송 효과음보다 선명했다.
회색 머리 여자가 손전등을 내렸다.
"미라야. 여기서 의심받는 건 기분 나쁜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일이지."
"알아요."
"모르면 지금부터 배워."
수문을 지키던 남자가 문 쪽을 다시 확인했다. 그의 이름은 한수라고 했다. 한수는 도현에게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오늘 밤만. 공구실 앞 의자에서 자. 안쪽 복도는 윤슬 없이는 못 들어가. 카메라는 계속 바닥만 찍는다. 사람 얼굴이 한 번이라도 걸리면 넌 내보내는 걸로 끝나지 않아."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수는 대답 대신 수문 쪽의 잠금봉을 하나 더 내렸다.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지하 정비소 안에 길게 울렸다.
도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안전한 곳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더 무거운 약속 안으로 들어왔다는 걸 알았다.
윤슬은 공구실 앞의 접이식 의자를 발끝으로 펴 주었다. 의자 하나와 담요 반 장이 전부였지만 그녀는 다른 곳을 가리키지 않았다. 도현은 그 작은 배려가 허락과는 다른 것임을 알아차렸다. 여기서는 물 한 모금과 잠자리 하나도 누군가의 몫에서 떼어 내는 일이었다.
그는 젖은 재킷을 벗지 못한 채 의자 곁에 섰다. 빗물 탱크의 펌프가 멎어 있는 자리에서 금속이 식는 소리가 났다. 그 사이로 낮은 말들이 이어졌다. 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다음 교대는 누가 설지, 아이가 열이 있는지 묻는 목소리였다.
도현은 무의식적으로 캠봇 쪽을 보려 했다가 시선을 거뒀다. 저 소리들은 콘텐츠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허락을 얻기 전까지는 자신의 증명에도 쓸 수 없는 삶이었다.
바깥 기록함 속 캠봇 화면에는 젖은 콘크리트와 낡은 운동화 끝만 비쳤다. 시청자 수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수문이 닫히기 전 렌즈를 향해 아주 낮게 말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들어오는 거였어요. 누군가를 찍는 방송은 안 할게요. 허락받기 전까지는."
윤슬이 그의 곁을 지나며 중얼거렸다.
"그게 방송이 돼?"
도현은 잠시 생각했다.
"돼야 해. 이제는."
미라가 비닐천을 걷어 공구실 쪽을 가리켰다.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바람을 막아 주는 구석이었다. 도현이 한 걸음 옮기려던 순간 비닐천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윤슬 언니."
모두가 멈췄다.
어린 목소리는 수문 바깥의 어두운 기록함을 가리켰다.
"저게 진짜 밖으로 나가는 눈이야?"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화면 속 숫자는 여전히 0이었다. 그래도 렌즈 너머에 있을지 모르는 누군가보다 먼저, 그 질문을 한 아이가 여기 있었다.
그는 캠봇을 더 낮게 내렸다.
"아직은 아니야."
그리고 처음으로 그 말이 약속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