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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하늘에서 떨어진 방주
삐비비빅!
아폴로-01호 브리지의 붉은 경보가 꺼지지 않았다. 파노라마 화면에는 하늘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흰 점들이 줄지어 찍혔다.
“파편군 선두가 고도 120킬로미터를 통과했습니다. 예상 지상 접근까지 스물여덟 분.”
한수가 손끝으로 점 하나를 확대했다. 나머지와 달리 그 점만은 뜨거운 대기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헤르메스의 장거리 레이더가 더 아래를 훑을 때마다 지구의 가장자리에서 흰 빛줄기가 갈라졌다. 누군가 유리병을 깨뜨려 기지 위에 쏟는 듯했다.
[고밀도 중심체 추정 질량 : 18~26톤.]
[낙하 오차 범위 : 발사 패드 동측 11킬로미터.]
[위험 지역 : 주 연료 패드, 동쪽 임시 숙영지.]
최현우가 엔진 시험 스위치를 내렸다. 선체 아래에서 뿜어지던 헬륨의 흰 기둥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칠다운 시험 중지. 추진제 공급 밸브 잠그고 주 탱크 압력은 유지해. 비우는 동안 맞으면 더 위험하다.”
한수가 송민호에게 밸브 격리 명령을 보냈다. 스피커 너머에서 철문 닫히는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연료는 이미 팔백 톤 넘게 들어갔습니다. 주입을 멈춰도 지금 선체를 옮길 수는 없습니다.”
발사대의 거대한 고정 암을 푸는 데만 스무 분이 넘게 걸렸다.
윤슬은 화면에 표시된 동쪽 숙영지를 보았다. 연료 기술자들의 가족과 보급대가 머무는 조립식 막사였다. 수백 명이 조금 전까지 노바 테라의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다.
“사람부터 뺀다.”
그녀가 소총과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도현이 물었다.
“어디로?”
“서쪽 암반 방호벽. 하울러를 대피로에 세울 거야. 떨어지는 작은 것까지 다 피할 수는 없으니까.”
대답하자마자 윤슬이 브리지를 뛰쳐나갔다.
도현은 헤르메스 레이더 영상을 다시 보았다. 수십 개의 점은 하나의 긴 꼬리처럼 움직였다. 맨 앞의 큰 물체를 그냥 폭파하면 뒤의 꼬리가 빗발처럼 퍼질 터였다.
“호위 포드로 날려버리면요?”
“그 자리에서 수천 조각이 된다.”
최현우가 즉시 고개를 저었다.
“열여덟 톤이 대기권에서 다 타지 않으면 기지와 숙영지에 흩뿌리는 꼴이야.”
도현은 브리지 창 너머 40미터 관측 타워를 바라보았다.
헤르메스가 파편에 쏘는 추적 펄스는 대기층에 부딪혀 흩어졌다. 궤도에서 내려다본 한 점만으로는 낙하 끝을 읽을 수 없었다. 지상에서 반사 신호를 받아야 했다.
“그럼 어디로 떨어질지 먼저 알아야죠.”
끼기기긱.
관측 타워의 방위각 링이 한 칸씩 돌아갔다. 박 씨와 서동주는 수동 구동축 양쪽에 몸을 걸었다.
도현은 타워 아래 관제실에서 접시의 각도를 지켜봤다.
“헤르메스 광링크 끊긴다!”
서동주가 외쳤다.
도현은 휴대 콘솔에서 케플러 데이터의 지상 저장 상태를 확인했다. 아카이브는 이미 브리지와 대륙 망에 복제되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머리 위의 하늘이었다.
“접시를 돌리면 헤르메스와의 초고속 광학 연결이 끊겨. 다시 영점 잡는 데 시간이 걸릴 거야.”
박 씨가 얼룩진 장갑으로 방위각 링을 두드렸다.
“알아요. 지금은 그쪽에서 보내는 좁은 빔보다 파편에서 튀어 돌아오는 넓은 펄스가 필요합니다.”
“전환하세요.”
접시가 남쪽 하늘로 틀어지자 푸른 광학 링크 표시가 검게 변했다. 대신 낙하체의 금속 표면에서 튄 짧은 반사 펄스가 화면에 찍혔다.
[지상 추적 레이더 : 파편군 포착.]
[중심체 표면 반사면 : 불규칙.]
[선체 식별 신호 : 플라스마 간섭으로 해독 불가.]
“마찰열 때문에 거리값이 튄다.”
한수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갈라졌다.
도현은 캠봇을 타워 난간 위에 앉혔다. 드론의 시간 신호를 브리지와 동기화하고 헤르메스의 광학 추적점과 지상 레이더의 반사점을 겹쳤다.
캠봇은 파편 대신 타워와 브리지에 144.120MHz 동기 신호를 보냈다. 두 관측치를 맞추기 위한 시계였다.
두 영상이 처음에는 반 박자 어긋났다. 도현이 손끝으로 보정값을 밀자 흰 점이 한 자리에 붙었다.
그런데 중심체의 뒤편에 가느다란 직선이 나타났다. 열에 휘어진 날개도 바위의 균열도 아니었다.
한수가 같은 형상을 두 번 더 잡을 때까지 누구도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세 번째 반사에서 직선 아래 원형 고리가 드러났다.
“저거 도킹 칼라잖아요.”
도현의 말에 최현우가 화면을 당겨 보았다.
“구시대 유인 수송정의 접속부다. 폐기됐다고 기록된 궤도 셔틀 중 하나일 수도 있어.”
막사에 도착한 윤슬에게도 영상이 전송되었다. 그쪽에서는 이미 대피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짐 놓고 방호벽으로 가!”
윤슬의 외침 사이로 아이가 울었다. 한 노인이 신발끈을 매려 허리를 숙이자 보급대원이 등을 내주었다. 무전기 속 발소리가 한꺼번에 서쪽으로 쏠렸다.
“사람이 탔을 수도 있다는 거야?”
“백 년 전 물건이에요. 살아 있다고 말할 근거는 없어요.”
도현은 짧게 숨을 삼켰다.
“하지만 없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죠.”
플라스마가 걷히는 찰나 선체 측면의 낡은 구조 글자가 한 프레임 보였다.
[구조 분류 : 유인 수송정.]
[중심체 내부 열원 : 확인 불가.]
박 씨가 축을 붙든 손에 힘을 주었다.
“접시가 더는 못 돌아간다. 기어 온도가 다시 떨어지고 있어!”
도현은 억지로 축을 더 밀지 않았다. 지금 잡은 각도에서 얻은 몇 초의 관측치로도 낙하지를 줄일 수 있었다.
박 씨는 서동주에게 구동축을 맡기고 연료 패드의 작업자들을 데리러 내려갔다.
브리지에서 한수의 계산 결과가 도착했다.
지상 관측값을 더하자 궤적이 두 갈래로 벌어졌다. 문제는 끝까지 속도를 잃지 않는 중심체였다.
[현재 예상 충돌점 : 주 연료 패드와 동쪽 숙영지 사이.]
[오차 반경 : 2.4킬로미터.]
[남은 시간 : 17분.]
동쪽 숙영지는 먼지와 발소리로 가득했다.
“뛰지 마! 방호벽까지 줄을 따라가!”
윤슬이 넘어질 뻔한 아이를 붙잡았다. 콘티넨털 하울러 01호가 숙영지와 발사 패드 사이에 거대한 차체를 비스듬히 세웠다. 작은 파편을 막을 엄폐물일 뿐 거대한 중심체와 정면으로 부딪치면 쇳조각이 될 것이었다.
브리지 스피커로 최현우의 음성이 나왔다.
“동쪽 폐채석장 쪽으로 충돌점을 네 킬로미터만 밀면 된다. 그곳은 지금 비어 있나?”
윤슬은 산등성이를 올려다보았다. 채석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아직 보급 작업자 세 명이 있었다.
“삼 분 줘. 내가 직접 확인할게.”
“포드는?” 도현이 물었다.
“헤르메스 호위 포드 열한 기 중 가장 각도가 좋은 한 기만 쓸 수 있다. 고출력 광학 빔을 중심체 한쪽 면에 쏘아 표면을 태우면 아주 작은 측면 추력이 생긴다.”
“한 번으로 충분해요?”
“추적이 끝까지 이어지면.”
정화된 헤르메스 방어망은 도현의 접속을 받아들였다. 광학 방어기 사용에는 발사 책임자 최현우의 승인이 필요했다.
최현우가 포드의 상태창을 띄웠다.
[3번 호위 포드 광학 방어기 : 최대 출력 허용 9초.]
[과열 시 냉각계 영구 손상 예상.]
[사용 후 호위 가용 포드 : 10기.]
도현은 목 뒤 신경 단자에 케이블을 꽂았다. 날카로운 냉기가 눈 뒤에서 퍼졌다. 타워의 반사점과 헤르메스의 광학점이 서로 어긋날 때마다 그는 생체 감각으로 지연을 고쳐 입력했다.
너무 빨리 붙은 점은 뜨거운 외판에서 튄 허상이었다. 도현은 눈앞에 겹쳐 보이는 궤적을 지우고 타워가 세 번 연속 잡은 점만 남겼다. 관자놀이가 찌르듯 아팠다.
[동화율 : 99.1%.]
흰 파편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금속판 하나가 회전할 때마다 레이더 점이 중심체에서 달아났다. 잘못된 면을 쏘면 궤도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다.
“도현아. 마지막 세 명 들어왔어.”
윤슬의 무전이 들렸다. 숨이 거칠었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채석장 비었다. 우리 쪽도 방호벽 안이다.”
최현우가 승인 화면을 열었다.
“사격한다.”
“3번 포드 냉각계는 끝입니다.”
열 기로 줄어든 호위망이 화면에 미리 그려졌다. 도현은 그 빈자리까지 보고 대답했다.
“알아요. 한 번만 쓰겠습니다.”
“잠깐요.”
도현은 광학 조준점이 선체의 접속 고리를 스치자 포드의 빔을 왼쪽 외판으로 옮겼다.
“승무원실일지도 모르는 부분은 피하세요. 외판만 태웁니다.”
9초 동안 3번 포드의 광학 방어기에서 가느다란 빛이 떨어졌다. 선체 한쪽에서 하얀 증기가 피어올랐다. 중심체 뒤의 꼬리가 미세하게 꺾였다.
여섯 번째 초에 타워의 반사점이 사라졌다. 서동주가 굳어 가는 구동축을 어깨로 밀어 접시를 마지막 눈금에 걸었다. 신호가 돌아왔을 때 도현의 손은 아직 조준값 위에 있었다.
[예상 충돌점 : 동쪽 폐채석장.]
[오차 반경 : 310미터.]
포드의 표시등 하나가 영원히 꺼졌다.
실제로 떨어지는 모습을 봐야 했다.
먼저 작은 것들이 왔다.
차르르륵!
발사 패드의 빈 난간과 하울러 장갑판에 붉은 금속 알갱이가 부딪쳤다. 박 씨가 연료 패드 옆에 남은 작업자를 끌어당겨 콘크리트 방호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방금 잠근 2번 배관 위에서 작은 불똥이 튀었다. 패드 담당자가 방호벽 틈으로 손전등을 비춰 밸브의 압력 눈금이 그대로인지 확인했다.
“머리 숙여!”
한예원이 바이오스피어 돔의 외부 셔터를 내렸다. 투명한 지붕에 불꽃 두 줄기가 스쳤으나 내부 식물 수로는 흔들리지 않았다.
멀리 동쪽 산등성이가 한순간 낮처럼 밝아졌다.
윤슬은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세 작업자의 헬멧을 세었다. 셋 모두 방호벽 안에서 귀를 막고 있었다. 그제야 그녀도 무릎을 굽혔다.
콰아아앙!
폐채석장 위로 검은 기둥이 솟았다. 몇 초 뒤 도착한 충격파가 브리지 창을 두드렸다. 한수는 두 손으로 콘솔을 잡고 흔들리는 수치를 읽었다.
[주 연료 패드 압력 : 정상.]
[아폴로-01호 선체 손상 : 없음.]
[바이오스피어 순환 : 정상.]
[잔여 카운트다운 : 47시간 32분.]
브리지에서 긴 숨이 터졌다. 도현은 신경 케이블을 뽑자마자 의자에 기대었다. 코끝에서 따뜻한 피가 한 방울 떨어졌다.
윤슬의 대피 완료 표시가 브리지에 들어왔다. 도현은 그제야 손등으로 코를 훔쳤다.
“하늘길은?”
최현우가 마지막 파편의 궤적을 확인했다.
“밀집체는 사라졌어. 남은 작은 조각들도 대기에서 소멸 중이야. 발사 경로는 다시 계산하겠지만 배는 살아 있다.”
“그리고 포드는 열 기가 됐죠.”
최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은 캠봇을 채석장으로 보냈다. 렌즈가 먼지 사이에 비스듬히 박힌 검은 선체를 비췄다. 표면은 탔지만 중앙의 작은 원통은 아직 형체가 남아 있었다.
지지직.
카메라 화면 아래에 낯선 신호가 떴다.
검게 탄 선체의 틈에서 녹색 점이 깜빡였다. 심박인지 장치의 마지막 전력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구시대 유인 수송정 구조 비컨 수신.]
[생체 유지 캡슐 : 1기 작동.]
[예비 냉각 잔여 시간 : 41분.]
도현이 몸을 일으켰다. 윤슬도 방호벽에서 뛰어나왔다.
“살아 있는 사람일까?”
“아직은 몰라요. 확인하러 갑시다.”
방금 지켜낸 하늘길 아래에서 누군가가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