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대륙에 대륙횡단철도를 놓다

1화: 멈춘 선로 위에 눈을 뜨다
콰아아앙——!
고막을 찢는 굉음과 함께 붉은 화염이 시야를 집어삼켰다.
밀폐된 시험장 안을 가득 채운 것은 짙은 유황 냄새와 숨을 턱 막히게 만드는 고온의 수증기였다. 폐포 깊숙이 파고드는 그을음 탓에 거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쿨럭! 컥, 쿨럭……!"
바닥을 짚은 손바닥에 날카로운 쇳조각과 석재 파편이 박혀 들었다. 살갗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작열통이 왼손을 타고 어깨까지 치달렸다.
'뭐지? 버스 사고였나?'
교통공학과 대학원생 이도현의 마지막 기억은 눈보라 치던 심야의 선로 답사 현장이었다. 동계 레일 마모도를 실측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빙판길에 미끄러진 대형 화물차의 전조등이 시야를 덮쳤던 감각이 아직도 생생했다.
하지만 지금 코를 찌르는 냄새는 디젤 연료나 아스팔트 먼지가 아니었다.
알싸하게 코를 찌르는 마력석 특유의 오존 냄새와 눅눅한 석탄 연기였다.
"도련님! 로웬 도련님! 정신 차리십시오!"
거친 쇳소리가 섞인 고함이 귓전을 울렸다.
두터운 가죽 방화포를 든 억센 손이 도현의 어깨를 붙잡아 뒤로 끌어당겼다. 시야를 가로막던 자욱한 연기가 걷히며 기괴한 광경이 드러났다.
높다란 석조 아치 천장과 벽면을 따라 얽혀 있는 구리 배관들.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서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찢겨 나간 거대한 강철 보일러였다.
보일러 측면은 흉측하게 벌어져 있었고 푸르스름한 빛을 뿜던 공명석 결정들이 바닥에 산산조각 난 채 흩어져 있었다.
"도련님, 살아 계신 겁니까? 제기랄, 내가 뭐랬습니까! 안전밸브도 없이 공명 배율을 올리면 무조건 터진다고 몇 번을 말했습니까!"
고함을 지르는 사내의 외형은 인간이 아니었다.
키는 도현의 가슴께에 불과했지만 어깨는 장정 둘을 합친 것만큼 넓었다. 그을린 잿빛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얼굴 그리고 왼쪽 팔에 달린 정교한 톱니바퀴 구조의 강철 의수.
드워프였다.
'로웬? 도련님? 드워프라고?'
그 순간 낯선 기억의 격류가 머릿속을 사정없이 헤집었다.
아르카디아 제국력 487년.
제국 최북단에 자리한 혹한과 고립의 땅 발테르 변경백령.
그리고 이 몸의 주인은 선대 변경백이 급서한 뒤 쓰러져 가는 영지를 떠안은 스물두 살의 장남 로웬 발테르였다.
원래의 로웬은 가문을 살리겠다며 광산의 폐마력석과 구형 보일러를 억지로 결합한 마도기관을 시험하다가 방금 전 일어난 폭발의 직격타를 맞고 즉사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이도현의 영혼이 깃든 것이다.
"……하아, 하아."
로웬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등부터 손목까지 피부가 붉게 짓물러 있었고 가느다란 마력 흉터가 핏줄처럼 돋아나 있었다. 평생 도면을 그리고 밸브를 조이느라 굳은살이 박인 손이었지만 체구는 영양 부족과 과로 탓에 뼈마디가 도드라질 만큼 앙상했다.
"이봐요, 로웬 도련님! 눈은 제대로 보입니까?"
드워프 장인 브람 오르트가 그을린 가죽 장갑으로 로웬의 뺨을 툭툭 쳤다. 투덜거리는 말투 속에는 깊은 안도감과 자책이 뒤섞여 있었다.
로웬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왼손의 화상 통증이 뼈를 깎는 듯했지만 엔지니어로서의 본능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파괴된 보일러 잔해 앞으로 다가갔다.
"어허, 도련님! 아직 불씨가 남았소!"
"……잠깐만요."
로웬은 찢겨 나간 강철 보일러의 파열 단면을 손끝으로 가만히 살폈다.
전형적인 취성 파괴였다. 저급 강철의 불균일한 두께, 급격히 압축된 증기압 그리고 공명기가 폭주했을 때 압력을 빼내야 할 릴리프 밸브의 구경이 배관 면적의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설계 단계부터 터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증기압 상승 속도를 마력석의 열팽창 계수가 아득히 앞질렀고 내부 압력이 한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밸브가 막히며 폭발한 것이다.
로웬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안전장치 설계 용량이 공명 폭주 압력의 절반도 안 됐군요. 배출관 지름을 최소 두 배로 늘리고 압력 분산 바이패스를 달았어야 했습니다."
"……뭐요?"
렌치를 쥔 채 씩씩거리던 브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래의 로웬은 열정만 앞설 뿐 수치와 유체 배관 설계를 이해하지 못해 번번이 주먹구구식 실험을 고집하던 귀족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도련님, 방금 뭐라고……?"
브람이 되물으려던 찰나 시험장의 부서진 목조 문이 거칠게 열렸다.
"총감실 전령입니다! 로웬 도련님, 여기 계십니까!"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하급 행정관의 얼굴은 북풍보다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레나 회계관님께서 본성 집무실로 도련님을 급히 호출하셨습니다! 제국 재무부의 특별 전령이 방금 성문에 도착했습니다!"
제국 재무부.
그 단어가 떨어지자마자 로웬의 뇌리에 서늘한 경종이 울렸다.
선대 영주가 남긴 막대한 부채와 한 달 뒤로 예고된 제국의 강제 집행.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발테르 영지의 주성인 설원성(雪原城)은 거대한 돌무덤 같았다.
복도를 걸어가는 내내 벽면 틈새로 스며든 냉기가 옷자락을 파고들었다. 장작조차 아끼느라 성내의 공기는 바깥 설원과 다를 바 없이 차가웠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책상 앞에 선 여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단정한 붉은 갈색 단발머리에 각진 가죽 장부 가방을 든 여인.
발테르 영지의 회계관 마레나 키르스였다.
탁.
마레나는 로웬이 들어서자마자 책상 위에 두터운 양피지 서류를 내려놓았다. 붉은색 밀랍으로 압인된 제국 재무부의 쌍두독수리 문장이 선명했다.
"폭발 사고에서 살아나셨다니 다행이군요, 도련님."
마레나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시선이 로웬의 붕대 감긴 왼손에 머물렀으나 안타까움보다는 피로와 실망이 짙었다.
"하지만 안도할 여유는 없습니다. 방금 수도에서 도착한 제국 재무부의 최종 통고서입니다."
로웬은 서류를 집어 들었다. 문장은 간결하고 냉혹했다.
[제국력 487년 11월 1일 자.
발테르 변경백령의 체납 채무 14만 골드 리라에 대한 변제 기한 만료를 통보함.
향후 30일 이내에 원금의 최소 30%인 4만 2천 골드 리라를 변제하지 못할 시 제국 채무 조사관 벨만 남작이 영지에 진주하여 발테르 항구 통행세 징수권, 관세청, 소금창고 및 철광산 일체를 강제 압류함.]
30일.
로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영지 금고의 잔고는 얼마나 남아 있지?"
마레나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장부를 펼쳤다.
"금화 312닢, 은화 1,400닢입니다. 리라화로 환산하면 고작 1,700골드 리라 남짓이죠. 그마저도 다음 주에 지급해야 할 성벽 경비대 피복비와 비상 식량 대금입니다."
"원금 14만 리라에 대한 이자만 해도 월 1,200리라에 달할 텐데."
로웬의 입에서 막힘없이 튀어나온 계산에 마레나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냉정을 되찾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잘 알고 계시네요. 선대 백작님께서 광산 갱도 확장과 마차 도로 보수를 위해 빌린 사채와 차관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게다가 도련님께서 지난 석 달간 마도기관 연구랍시고 군수 상단에서 사들인 고압 구리관과 저급 마력석 대금만 8천 리라가 넘습니다."
마레나의 손가락이 붉은 장부의 마지막 줄을 톡톡 두드렸다.
"도련님의 그 쇠붙이 장난감이 오늘 시험장에서 터지며 날아간 돈이 영지민 수백 명이 겨울을 버틸 식량값이었습니다. 이제 30일 뒤면 벨만 조사관이 집행관들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들어올 겁니다. 그러면 발테르 가문은 빈털터리가 되고 영지민들은 굶어 죽겠죠."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원래의 로웬이 저지른 무모한 집착이 영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로웬은 변명 대신 서류를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갔다.
"비난은 달게 받겠습니다, 마레나 경. 하지만 지금 당장 자책하고 있을 시간은 없습니다."
"……뭐라고요?"
"30일입니다. 30일 안에 4만 2천 리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뜻이죠."
로웬은 창문을 열었다. 매서운 눈보라가 집무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설원성 망루에서 내려다본 영지는 거대한 얼음 감옥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침엽수림 너머로 험준한 산맥이 영지를 가로막고 있었고 산맥 아래로 길게 뻗은 유일한 마차 도로가 보였다.
도로 위는 아수라장이었다.
무릎 높이까지 쌓인 눈더미 속에 수십 대의 짐마차가 바퀴가 빠진 채 멈춰 서 있었다. 지친 마부들이 채찍을 휘둘렀지만 짐마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게 우리 영지의 현실입니다."
뒤따라 올라온 마레나가 턱짓으로 마차 행렬을 가리켰다.
"북부의 겨울은 여섯 달 동안 이어집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남부 곡창지대에서 소금과 밀을 싣고 출발한 마차가 이곳에 도착하는 데 두 달이 걸립니다. 그마저도 열 대 중 세 대는 마차가 부서지거나 도적에게 털리죠."
"운송비는 얼마나 뛰지?"
"평소의 열 배입니다."
마레나가 단호하게 답했다.
"마차 조합 놈들은 동계 위험 할증을 붙여 폭리를 취합니다. 밀 한 포대 가격이 남부 항구에서는 은화 석 닢인데 이 성문에 도착하면 금화 한 닢이 됩니다. 광산에서 캐낸 철광석과 석탄은 운송비가 무서워서 성 밖 창고에 썩어가고 있고요."
로웬의 회색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교통의 단절.
마차는 눈길에서 마찰 저항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바퀴가 진흙과 눈에 빠지면 말 한 마리가 낼 수 있는 견인력은 평지의 10분의 1로 급감한다.
말을 늘리면 사료 소비량이 늘어나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
제설을 하거나 도로를 넓힌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선로다.'
마찰력을 줄이고 눈을 뚫고 달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
지면에 고정된 두 줄의 강철 궤도와 기계적 동력이었다.
로웬의 시선이 설원성 북동쪽 구릉지대로 향했다.
그곳에는 3년 전 채산성이 맞지 않아 버려진 옛 철광산과 저급 마력석 폐광이 있었다.
"마레나 경, 폐광산에 버려진 광차 궤도가 아직 남아 있습니까?"
"……예? 광차 선로요?"
마레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광산 내부와 선광장 주변에 광석을 나르던 목제 궤도와 낡은 주철 레일이 일부 깔려 있긴 합니다. 이미 녹슬고 방치된 지 오래인데 갑자기 그건 왜 묻습니까?"
"광산에서 이곳 설원성을 거쳐 남쪽 얼지 않는 강 하류의 환적 부두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대략 7킬로미터 남짓입니다만."
"경사도는?"
"구릉지대라 완만합니다. 과거에 마차 도로를 닦으려다 포기한 평탄면이 이어져 있죠."
로웬의 머릿속에서 노선도가 그려졌다.
구배 15퍼밀 이하. 곡선 반경 300미터 확보 가능.
폐광산에 쌓여 있는 수만 톤의 철광석과 저급 마력석 그리고 남쪽 부두로 통하는 최단거리 7킬로미터.
"방법이 있습니다."
로웬이 나지막이 말했다.
"30일 안에 4만 2천 리라를 벌어들일 방법."
마레나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로웬을 바라보았다.
"도련님,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마차 조합에 사정을 해도 식량 수송조차 못 맞추는 판국에 무슨 수로 그 거액을 만든다는 겁니까?"
"마차를 버릴 겁니다."
로웬이 망루 난간을 짚으며 돌아섰다.
"마차 대신 궤도를 깔고 짐을 실어 나를 겁니다."
집무실 책상 위에 커다란 양피지 백지가 펼쳐졌다.
로웬은 숯을 깎아 만든 필기구를 쥐고 거침없이 선을 긋기 시작했다. 손등의 화상 자국이 욱신거렸지만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사각, 사각.
정밀한 축척과 등고선을 반영한 노선도가 백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발테르 제1호선 계획안: 광산-성채-항구 단선 화물 궤도]
- 총연장: 7.2km
- 궤간: 1,200mm (발테르 표준궤)
- 주요 수송 화물: 폐광산 철광석 및 저급 마력석, 귀환 시 남부 곡물 및 소금
"미쳤군요."
옆에서 도면을 지켜보던 마레나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선로를 깔고 그 위를 달리는 마도 수레를 만들겠다고요? 방금 전 시험장에서 터진 게 바로 그 마도기관이었습니다! 게다가 레일을 깔 강철은 어디서 구하며 인부는 무슨 돈으로 고용합니까?"
로웬은 숫자로 답했다.
"폐광산에 방치된 구형 궤도를 수거해 재활용합니다. 전 구간에 새 강철 레일을 깔 돈은 없지만 광산 갱도 안에 묻힌 침목과 레일을 모아 궤간을 1,200밀리미터로 재정렬하면 1단계 단선 부설이 가능합니다."
"노동력은요?"
"겨울철 일거리가 끊겨 굶주리고 있는 광부 조합과 영지민들을 유급 일당제로 고용합니다. 임금은 당장 금화가 아닌 영지 곡물 교환증과 화물선 완공 후의 운임 지분 채권으로 지급합니다."
"채권이라고요? 귀족의 종이쪽지를 믿고 엄동설한에 땅을 팔 광부는 없습니다!"
"마차 조합이 떼어가는 운임의 3분의 1 가격으로 광석과 석탄을 항구까지 날라 준다면요?"
로웬의 반문에 마레나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로웬은 도면 옆에 수송 단가 비교표를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마차 한 대가 실을 수 있는 화물은 1톤. 말 네 마리와 마부 둘이 달라붙어 설원성에서 항구까지 왕복 사흘이 걸립니다. 사료비와 통행세를 제하면 톤당 운송비는 40골드 리라."
로웬의 목탄이 장부의 숫자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하지만 증기기관을 얹은 화물 궤도차는 한 번에 50톤을 끕니다. 소요 시간은 왕복 네 시간. 톤당 운송비는 석탄과 마력석 소모량을 합쳐도 4골드 리라 이하로 떨어집니다. 마차 운송비의 10분의 1입니다."
"……!"
마레나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녀는 영지 최고의 회계관이었다. 숫자의 거짓말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동시에 숫자가 증명하는 진실의 파괴력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운송비가 10분의 1로 줄어든다면 폐광산에 쌓인 철광석과 석탄이 즉시 현금으로 바뀐다. 30일 안에 항구에 쌓인 광석 화물 계약만 선취해도 4만 2천 리라의 계약금을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계산이 아니었다.
"단……."
마레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그 기관차가 정말 움직여야 한다는 전제하에서죠. 방금 터져버린 그 괴물딱지를 브람 영감이 30일 안에 다시 만들어낼 수 있습니까?"
"터진 원인은 이미 찾아냈습니다."
로웬이 단호하게 말했다.
"폭주하는 마력을 억지로 밀어 넣지 않고 보일러의 증기압과 안전 제동을 정밀하게 제어하면 됩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법칙에 맞게 설계하면 반드시 달립니다."
그 순간이었다.
도면 위에 얹혀 있던 로웬의 왼손 손끝을 타고 찌릿한 진동이 스쳐 지나갔다.
징——.
얼어붙은 대지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궤도가 그의 손가락 끝에 닿아 미세하게 맥동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
멈춰 서 있는 선로의 무게와 앞으로 놓여야 할 길의 결핍이 신경망을 타고 뇌리로 흘러드는 찰나의 전율이었다.
'선로감응.'
원래의 로웬에게는 없었던 오직 길을 설계하는 자에게만 주어진 미지의 감각이었다.
로웬은 손을 거두며 주먹을 쥐었다.
"마레나 경."
"……말씀하십시오, 도련님."
어느새 마레나의 말투에서 냉소적인 비아냥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믿기 힘든 계획에 발을 담그려는 실무자의 긴장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일 새벽 영지 창고의 곡물 재고 전량을 실사합니다. 그리고 브람 영감의 공방으로 가서 부서진 보일러의 개조 설계를 시작하죠."
로웬의 회색 눈동자가 창밖의 어두운 설원을 똑바로 응시했다.
"한 달입니다. 제국의 집행관들이 이 성문에 도착하기 전에 설원 위에 첫 번째 철길을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