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주식은 무조건 오른다

14화: 먼저 물은 사람들
새 공시 알림은 장이 끝난 뒤에 떴다.
강진호는 커서를 움직이지 않고 화면 오른쪽 아래의 작은 창을 바라보았다. 금갑건설. 기업어음 발행 예정. 제목은 건조했다. 제목만 보면 회사가 늘 하던 자금 조달을 한 번 더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알림을 열었다.
공시 본문은 길지 않았다. 발행 예정 금액과 만기와 표면금리가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만기는 다시 석 달이었다. 금리는 직전 발행보다 또 올라 있었다. 비고란에는 짧은 문구가 붙어 있었다.
투자자 협의 후 확정 예정.
강진호는 그 문장을 바로 노트에 옮기지 않았다.
먼저 이전 공시를 열었다. 그다음 서유리가 보낸 비교표를 열었다. 금갑건설, 태운건설, 서린산업. 세 회사의 칸은 아직 듬성듬성했다. 공개 공시가 모든 조건을 친절하게 알려 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빈칸을 비워 둔 채 확인된 숫자만 적었다.
금갑건설: 3개월. 금리 추가 상승. 투자자 협의 문구.
태운건설: 6개월. 금리 유지.
서린산업: 해당 기간 발행 공시 없음.
펜 끝이 잠시 멈췄다.
미래의 기억은 빈칸을 다 알고 있었다. 금갑건설이 더 짧은 돈을 더 비싸게 사게 될 것도 알고 있었다. 그 끝에서 누가 먼저 발을 빼고 누가 마지막까지 버티다 쓰러지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트에는 지금 공시된 것만 들어가야 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유리였다.
"봤어요?"
"보고 있습니다."
"문구 봤죠?"
"투자자 협의 후 확정 예정."
"그게 붙으면 편한 발행은 아니에요."
강진호는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았다.
"단정할 수 있습니까?"
"못 하죠. 회사마다 표현 습관이 다르고 발행 규모도 다르니까요. 담보나 인수 조건이 공개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요."
"비교표에는 어떻게 남깁니까?"
"확인된 항목만 남겨요. 금리는 직전 대비 상승. 만기는 3개월 유지. 비고에 투자자 협의 문구. 해석은 보류."
강진호는 그대로 적었다.
서유리가 말을 이었다.
"다만 시장이 편하면 굳이 저런 말을 앞에 안 붙입니다. 조달이 이미 끝났거나 거의 끝났으면 예정 문구도 단순해요. 투자자 협의라는 말은 사는 쪽이 조건을 묻고 있다는 뜻일 수 있어요."
"그 뜻일 수 있다."
"네. 그 이상으로 쓰면 안 돼요."
강진호는 짧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채권 쪽 선배한테 물어볼게요. 회사 내부 자료 이야기는 안 합니다. 공시 문구랑 조건만 놓고요."
"부탁합니다."
통화가 끊겼다.
강진호는 노트 아래에 한 줄을 더했다.
조건 악화 확인. 해석 보류.
그는 일부러 주문 화면을 열지 않았다.
문장이 움직이고 숫자가 움직였다. 이제 손이 움직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더 움직이면 안 됐다.
서유리의 두 번째 전화는 한 시간 뒤에 왔다.
강진호는 자취방 책상 위에 비교표를 펼쳐 놓은 채 전화를 받았다. 창밖에서는 늦은 버스가 골목을 지나갔다. 낮은 엔진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서유리가 말했다.
"선배가 말을 아끼네요."
"어떤 식으로요?"
"처음에는 건설사 기업어음 전반이 예전처럼 편하지 않다고 했어요. PF 얘기 나오고 단기차입 만기 얘기 나오니까 투자자들이 조건을 꼼꼼하게 본다고요."
"금갑건설 이름은요?"
"제가 공시 예시로 세 회사 이름을 같이 말했어요. 태운건설, 서린산업, 금갑건설."
"반응이 달랐습니까?"
"금갑건설에서 잠깐 멈췄어요."
강진호는 펜을 들었다.
"뭐라고 했습니까?"
"그 회사는 설명보다 조건을 먼저 보라고 했어요. 그리고 요즘처럼 업황 좋다는 말이 많은 때일수록 짧은 만기와 높아지는 금리를 조심하라고요."
"위험하다는 말은 했습니까?"
"아니요. 그런 말은 안 했어요. 오히려 그 단어는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직 시장에서 소문으로 굴릴 단계도 아니고 실제 발행이 되는 이상 유동성 위기라고 단정하면 틀릴 수 있다고요."
"그럼 기록은 경계성 발언입니다."
"맞아요. 채권 시장 관계자 익명 코멘트. 회사 위험 단정 아님. 하지만 투자자들이 회사 설명보다 만기와 금리를 먼저 보기 시작했다는 분위기."
강진호는 서유리의 말을 그대로 나눠 적었다.
채권 시장: 설명보다 조건.
짧은 만기와 상승 금리 경계.
위험 단정 금지.
서유리가 숨을 골랐다.
"진호 씨."
"네."
"이런 발언이 나오면 더 사고 싶어질 거예요. 아니면 팔고 싶어지겠죠. 표현이 뭐든 손이 먼저 갈 겁니다."
그 말은 정확했다.
강진호는 비교표 한쪽에 놓인 선물옵션 계좌 접수증을 보았다. 이제 계좌는 열려 있었다. 예탁금도 들어가 있었다. 그는 시장이 흔들릴 방향을 알고 있었다.
다만 알고 있다는 사실은 증거가 아니었다.
"오늘은 주문하지 않습니다."
"오늘만요?"
"반복 확인 전까지요."
"반복이라는 말 좋아요. 한 번 흔들린 건 사건이 될 수도 있고 잡음일 수도 있어요. 두 번 세 번 같은 방향이면 그때는 시장도 고개를 돌립니다."
강진호는 마지막 줄을 적었다.
반복 확인 전 주문 없음.
그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미래의 붕괴를 기다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것은 현재의 작은 경고를 미래의 결론처럼 쓰지 않는 일이었다.
다음 날 오전 박태성은 강진호를 팀장 자리 옆 작은 테이블로 불렀다.
테이블 위에는 새 열람대장이 놓여 있었다. 이전 대장보다 칸이 많았다. 수령 시간, 수령자, 요청 부서, 회람 여부, 반납 여부 옆에 외부 질의 관련 여부라는 칸이 새로 생겨 있었다.
박태성은 그 칸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전략기획실에서 만든 양식이야."
"네."
"요즘 금갑건설 CP 관련해서 바깥에서 묻는 사람이 늘었다고 하더군. 기자인지 채권 쪽인지 모르겠지만 회사 안에서는 귀찮아졌어."
강진호는 대장을 내려다보았다.
그 질문들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 자료를 넘기지는 않았다. 내부에서만 알 수 있는 숫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 선을 지켰기 때문에 지금 대답할 수 있었다.
"제가 확인할 내용은 수령 경위와 회람 여부입니까?"
"그래. 판단하지 말고 적기만 해. 외부 질의가 붙은 자료면 표시하고 바로 나한테 올려."
"알겠습니다."
박태성은 의자를 뒤로 밀었다.
"그리고 강진호 씨."
"네."
"회사 이름으로 외부 통화하지 마. 증권사든 기자든 리서치든. 신입이 밖에서 금갑건설 얘기하고 다닌다는 말 나오면 네가 맞든 틀리든 끝이야."
"회사 자료나 회사명으로 외부 질의를 한 적 없습니다."
박태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말은 잘해."
"주의하겠습니다."
"주의만 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내가 막아 줄 수 있는 것도 선이 있어."
못 막는다는 말 속에는 이미 막고 있다는 뜻이 섞여 있었다.
강진호는 그 말을 이용하기로 했다. 박태성은 통제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 통제가 전략기획실의 직접 접촉을 막는 벽이 된다면 지금은 벽으로 쓰면 된다.
자리로 돌아오자 김미나가 책상 옆에 컵라면 하나를 세워 놓았다.
"오늘은 점심 먹기 전까지 이거라도 먹어요."
"아침부터 라면입니까?"
"그럼 어제 저녁을 먹었어야죠."
강진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김미나는 팔짱을 끼고 그를 보았다.
"뜯어요."
그는 포장을 뜯었다. 김미나는 물을 받아 오더니 컵라면에 부어 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삼 분 뒤에 확인할 거예요."
강진호는 젓가락을 놓지 않았다.
누군가의 걱정은 때로 감시보다 더 오래 사람을 붙든다. 그는 그 사실이 불편하면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라면이 익는 동안 새 열람대장의 첫 줄을 채웠다.
수령 시간.
수령자.
요청 부서.
회람 여부.
외부 질의 관련 여부.
기록은 족쇄였다. 동시에 방패였다. 나중에 누군가 이 대장을 들여다보면 강진호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도 보게 될 것이다.
퇴근 후 증권사 지점은 거의 비어 있었다.
강진호가 번호표를 뽑기도 전에 전날의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계좌 확인하러 오셨습니까?"
"주문 가능 상태와 대주 물량만 확인하겠습니다."
직원은 화면을 열었다. 지점 창구의 형광등 아래에서 숫자들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선물옵션은 거래 가능합니다. 예탁금도 반영돼 있고요. 다만 처음 거래면 주문 전에 만기와 손실 구조를 다시 보셔야 합니다."
"지수 풋옵션은 지금 사면 어느 위험이 큽니까?"
"방향보다 시간이요. 시장이 결국 내려도 만기 안에 움직이지 않으면 손실이 납니다. 옵션은 기다리는 비용이 매일 빠져요."
강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갑건설 대주는요?"
직원은 조회 화면을 몇 번 넘겼다.
"물량이 조금 있긴 한데 얇습니다. 오래 들고 가기는 어렵고 회수 통보가 오면 상환해야 합니다. 담보 비율도 신경 쓰셔야 하고요."
"대주가 가능한 것과 하락에 베팅할 수 있는 것은 다르군요."
"그렇죠. 빌릴 수 있다는 말은 끝까지 들고 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강진호는 그 문장을 노트에 적었다.
대주 가능은 보유 가능이 아니다.
그는 주문 메뉴가 있는 화면을 보았다. 클릭 한 번이면 금갑건설을 향해 처음으로 손을 뻗을 수 있었다. 아직 작게 시작할 수도 있었다. 소액이라면 문제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쉬웠다.
하지만 작은 주문도 주문이었다.
주문이 찍히는 순간 그 앞의 모든 기록은 이유가 된다. 이유가 약하면 주문도 약점이 된다.
"오늘은 확인만 하겠습니다."
직원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계속 확인만 하시네요."
"확인한 기록이 필요해서요."
"그런 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필요합니다."
지점을 나왔을 때 밤공기가 차가웠다. 강진호는 곧장 자취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을 샀다. 김미나가 확인하지 않아도 오늘은 먹어야 했다. 몸이 무너지면 기록도 끊긴다.
자취방 책상 앞에 앉은 그는 노트를 펼쳤다.
금갑건설 추가 CP: 3개월. 금리 추가 상승. 투자자 협의 문구.
비교: 태운건설 6개월 금리 유지. 서린산업 해당 기간 발행 공시 없음.
채권 시장 코멘트: 설명보다 조건. 짧은 만기와 상승 금리 경계. 위험 단정 금지.
대주: 물량 얇음. 회수 위험.
풋옵션: 방향보다 시점. 시간가치 감소.
마지막 줄은 천천히 썼다.
주문 없음. 보류 사유: 조건 악화의 반복 확인 전.
강진호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는 아직 금갑건설을 치지 않았다. 계좌는 열렸고 수단도 확인했다. 손가락은 버튼 앞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대신 시장에서 처음으로 같은 말이 나왔다.
금갑건설은 설명보다 조건을 보라고.
그 말은 아직 칼이 아니었다. 하지만 칼을 꺼내기 전에 어디를 겨눠야 하는지 알려 주는 첫 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