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제구력이 SSS급

3화: 0.05도의 승부
신일고 5번 타자는 타석에 들어오자마자 배트를 짧게 잡았다.
강민재가 당한 바깥쪽 승부를 지켜본 눈이었다. 오른발을 홈 플레이트 쪽으로 붙이고 배트 끝을 바깥쪽 모서리에 한번 갖다 댔다.
“이번에도 거기 던져봐.”
대웅은 대꾸하지 않았다. 마스크 안에서 입술을 다물고 바깥쪽 아래에 미트를 댔다.
2사 만루.
3루 주자가 흙을 차며 리드 폭을 늘렸다. 안타 하나면 두 명이 들어왔고 공이 타자의 팔꿈치를 스쳐도 한 점이었다.
준혁은 고개를 저었다.
몸쪽.
대웅의 미트가 잠시 멈췄다. 타자는 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있었다. 미트를 존 안쪽으로 옮기자 타자의 몸이 바로 옆에 보였다.
준혁은 글러브를 가슴 앞에 세웠다.
미트까지 이어지던 선이 타자의 몸 가까이에서 두 갈래로 벌어졌다. 한 줄은 볼이었고 다른 한 줄은 존 안쪽에 걸쳐 있었다.
[목표 변경: 몸쪽 경계선.]
[수평 투구 방향 보정: 바깥쪽으로 0.05도.]
[홈 플레이트 부근 도달점 이동: 약 1.6cm.]
고작 0.05도.
그 작은 차이를 무시하면 타자가 피할 공이 됐다. 반대로 너무 넓히면 배트가 가장 쉽게 닿는 곳으로 들어갔다.
준혁은 투수판에 오른발을 붙였다. 1루 주자의 발이 베이스에서 멀어지자 한번 눈길을 주었다. 주자가 멈춘 뒤에야 왼발을 들었다.
주황색 선이 검지 끝에 겹쳤다.
쉬익!
타자의 팔꿈치가 몸에 붙었다.
배트는 어깨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대웅은 공을 잡은 자리에서 미트를 멈췄다. 타자의 시선이 공을 쥔 미트와 구심의 오른팔 사이를 오갔다.
“저게 들어왔다고요?”
구심은 턱으로 타석을 가리켰다. 타자는 입을 닫고 다시 발을 디뎠다.
신일고 벤치에서 숫자가 날아왔다.
“백삼십오.”
스피드건을 들고 있던 선수가 화면을 옆자리 동료에게 내밀었다.
“직구야. 그냥 백삼십오라고.”
대웅의 귀에도 그 말이 박혔다.
135km/h.
받아본 공의 빠르기도 그 정도였다. 무서운 건 속도가 아니었다. 방금 공은 타자의 팔꿈치 아래를 지나 미트 안쪽 가죽에 박혔다. 대웅이 놓은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공을 돌려주면서 준혁의 얼굴을 보았다.
마운드 위의 친구는 모자를 고쳐 쓰고 있었다. 홈런 타자를 잡았을 때보다 더 조용한 얼굴이었다.
타자는 앞발을 조금 떼었다.
배트 손잡이도 가슴 앞으로 당겼다. 몸쪽이 오면 팔을 접어서라도 치겠다는 자세였다.
준혁의 눈앞에서 붉은 스윙 띠가 안쪽으로 옮겨갔다.
대웅이 바깥쪽에 미트를 댔다. 이번에는 준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공은 낮은 바깥쪽 직구였다.
따악!
타자가 허리를 굽히며 배트 끝을 뻗었다. 공이 1루 쪽 파울 라인 밖으로 튀어 신일고 덕아웃 앞을 굴렀다.
노 볼 투 스트라이크.
타자는 고개를 흔들면서도 배트를 놓지 않았다. 몸쪽을 준비했는데 바깥쪽이 왔다. 이제 어느 한쪽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세 번째 사인은 낮은 직구.
준혁은 존 아래를 골랐다. 대웅이 무릎을 낮추며 몸을 공 뒤에 놓았다.
쉬익!
배트 끝이 움찔했다. 타자는 상체를 숙였다가 힘을 빼며 공을 보냈다.
“볼!”
대웅이 낮게 공을 받아냈다.
1볼 2스트라이크.
“안 속아.”
타자가 타석의 흙을 긁었다. 두 발 사이가 조금 더 벌어졌다. 배트 손잡이가 몸 가까이 붙었다.
준혁은 공을 건네받은 뒤 3루를 보았다.
주자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타구 하나를 기다리는 얼굴. 그 너머에서는 김태수 감독이 덕아웃 기둥을 쥐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바깥쪽으로 도망갔을 상황이었다.
맞히지 말자. 가운데만 피하자.
그 생각으로 던진 공들은 손을 떠날 때마다 더 멀리 빠졌다. 타자를 피하려던 공이 결국 주자를 홈으로 보냈다.
준혁은 검지로 실밥을 눌렀다.
지금 타자가 지키는 것은 몸쪽 전체가 아니었다. 허리 높이에서 배트를 접어 내밀 수 있는 좁은 공간이었다.
그보다 아래.
무릎 위를 스치며 안쪽 선에 걸리는 길.
준혁이 고개를 젓자 대웅의 미트가 바깥쪽에서 사라졌다. 대웅은 짧게 숨을 뱉고 몸쪽 낮은 곳에 미트를 세웠다.
이번에는 되묻지 않았다.
[결정구 목표: 몸쪽 하단 경계선.]
[추천 궤적 갱신 완료.]
초구에서 맞춘 0.05도를 무작정 더하는 게 아니었다. 타자가 옮긴 발과 미트의 높이를 기준으로 새로운 선이 그어졌다.
준혁의 왼발이 흙을 찍었다.
쉬이익!
타자는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돌렸다.
몸쪽이었다. 읽었다.
그런데 공은 손잡이보다 몸 가까운 길을 지났다. 타자가 팔꿈치를 더 접는 동안 배트 머리가 늦게 따라왔다.
공은 존의 안쪽 선을 스쳤다. 배트는 그 바깥을 지나갔다.
퍽!
“스트라이크! 아웃!”
대웅이 마스크를 벗었다.
타자는 돌아가지 못하고 배트 끝을 플레이트 옆에 댔다. 방금 지나간 위치에 배트를 가져가려면 팔을 더 접어야 했다. 그제야 입이 조금 벌어졌다.
세 주자가 베이스에서 발을 떼고 신일고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추가 실점 없이 이닝 종료.
김태수는 기둥에서 손을 떼었다. 손가락 자국이 흙먼지 위에 남아 있었다.
구원 투수의 실전 여덟 공.
그 안에서 만루가 사라졌다.
“어깨는?”
준혁이 덕아웃에 들어오자 김태수가 먼저 물었다.
“괜찮습니다.”
“팔꿈치도?”
준혁은 오른팔을 접었다 폈다.
“통증 없습니다.”
감독은 대웅 쪽을 보았다. 대웅은 아직 왼손에 미트를 끼고 있었다. 미트 안의 공을 오른손으로 눌렀다가 떼고 다시 눌렀다.
“받기 어땠어?”
“댄 데로 왔습니다.”
“그건 봤어.”
대웅은 미트를 무릎 옆에 댔다.
“처음엔 혹시 몰라서 빠질 쪽도 생각했는데요. 마지막에는 그냥 여기만 봤습니다.”
미트가 흔들리지 않았다.
김태수는 방금 타자의 스윙을 떠올렸다. 몸쪽을 기다렸는데도 배트가 공을 비껴갔다. 느린 직구를 배트 중심으로 옮기는 데 실패했다.
좋은 날이라고 설명하기에는 같은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났다.
“한 이닝 더 보자. 올라간 뒤로 열다섯 공 안에서 끊는다.”
준혁은 감독을 보았다.
“지금 여덟 개다. 무리해서 힘 올리지 마.”
“네.”
김태수는 타석으로 걸어가는 충주정보고 타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뒤에 붙어. 투수가 끊어줬으면 우리가 나가야지.”
준혁은 벤치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먼저 아웃된 두 타자가 헬멧을 벗은 채 배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타석에서 공 하나가 빠졌다.
대웅이 준혁 옆에 앉았다. 미트를 배 앞에 세운 채로 몸쪽 아래를 짚었다.
“여기까지 들어올 줄은 몰랐다.”
“불편했냐?”
“치는 놈이 불편하겠지.”
대웅이 미트를 접었다.
“다음에는 내가 먼저 댄다. 네가 고개 흔들 때마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준혁은 웃다가 물병 뚜껑을 놓쳤다. 뚜껑이 벤치 아래로 굴렀다.
대웅이 몸을 숙여 주워줬다.
“왜. 네가 더 놀랐냐?”
“조금.”
정말 조금이었다. 던지고 싶은 곳에 던졌고 공은 생각한 길로 갔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필요 없던 공이 갑자기 동료들의 기대를 받자 가슴 안쪽이 낯설게 조여 왔다.
따악!
충주정보고 타자가 배트를 놓고 뛰었다. 공이 유격수 앞으로 튀었다. 유격수는 바운드에 맞춰 앞으로 나오며 공을 건져 1루로 던졌다.
타자의 스파이크가 베이스를 밟기 전에 1루수의 미트가 닫혔다.
“아웃!”
준혁은 물병을 내려놓았다.
점수는 여전히 8 대 1.
대웅이 무릎 보호대를 고쳐 매며 일어났다.
“가자. 이번에도 안 준다.”
6회초 첫 타자는 타석 바깥 뒤쪽에 섰다.
신일고 6번 타자였다. 오른손으로 배트를 쥔 그는 플레이트에서 반 걸음 떨어졌다. 몸쪽 공을 앞에서 끊어 칠 공간을 만든 자세였다.
그의 뒤로 강민재가 덕아웃 펜스에 팔을 얹었다.
“급하게 돌리지 마. 몸쪽 와.”
준혁에게도 들릴 만큼 큰 목소리였다.
대웅이 몸쪽에 미트를 댔다가 타자의 발을 보고 잠깐 멈췄다. 준혁은 바깥쪽을 가리켰다.
대웅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 공이 바깥쪽 무릎 위를 지났다.
“스트라이크!”
타자의 앞발은 움직였지만 배트는 나오지 않았다. 몸쪽에 맞춰 둔 손이 반대쪽으로 풀리지 못했다.
두 번째 공.
대웅은 다시 몸쪽 아래에 미트를 댔다. 타자는 무릎을 굽히며 손잡이를 몸에서 조금 떼었다.
준혁은 그 움직임을 확인하고 던졌다.
따악!
타자가 배트를 짧게 돌렸다. 공이 배트 안쪽에 맞아 포수 뒤로 높게 떴다.
대웅이 마스크를 벗고 뒤로 뛰었다. 그러나 공은 백네트 위로 넘어가 철망 밖에서 떨어졌다.
파울.
노 볼 투 스트라이크.
대웅이 홈으로 돌아와 마스크를 다시 썼다.
준혁은 타자가 타석에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다. 헬멧을 고쳐 쓰는 손이 느렸다. 배트 손잡이를 몸에서 떼었는데도 공은 안쪽을 때렸다.
타자는 이번에는 오른쪽 팔꿈치를 조금 더 들었다.
준혁의 눈앞에서 스윙 띠가 넓어졌다. 낮은 몸쪽을 지킬 길이 열리는 대신 손 가까이의 높은 공간에는 빈틈이 남았다.
그는 대웅을 보고 턱을 아주 조금 올렸다.
대웅이 타자의 허리 위 몸쪽 모서리에 미트를 세웠다.
[목표: 몸쪽 상단 경계선.]
[타자 위치 변화 반영 완료.]
발을 뒤로 뺐다고 경계선까지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공이 지나가야 할 홈 플레이트의 폭은 그대로였다.
준혁은 가이드 끝을 바라보았다.
이 공은 높아 보여도 존에 걸렸다. 피한다고 놓아주면 삼진이었다. 치려면 들었던 팔꿈치를 급하게 접어야 했다.
그 선택을 타자에게 넘긴다.
쉬이익!
타자의 앞발이 내려왔다. 배트가 따라 나왔다.
공이 손 가까이 다가온 순간 타자의 어깨가 먼저 뒤로 빠졌다. 뒤늦게 접힌 팔을 따라 배트 머리가 공 아래를 지나갔다.
퍼억!
대웅의 미트는 공을 받은 자리 그대로였다.
“스트라이크! 아웃!”
홈으로 스피드건을 향하고 있던 신일고 선수가 측정을 끝내고 화면을 내려다봤다.
“이번에도 백삼십오인데…….”
김태수는 기록지에 세 번째 삼진 표시를 그었다. 펜 끝이 종이를 깊게 눌렀다.
직구만 열한 개.
상대 타자 세 명이 연달아 돌아섰다. 이제 누구도 신일고 덕아웃에서 웃지 않았다.
대웅이 공을 돌려주며 미트를 한번 쳤다.
“계속 와!”
준혁은 공을 받았다. 하얀 가죽이 손바닥에 가볍게 닿았다.
6회초 1사.
주자는 없었다. 어깨도 아프지 않았다. 김태수가 덕아웃 앞에서 준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준혁은 다음 타자를 기다리며 실밥을 고쳐 쥐었다. 내야수들이 몸을 낮췄다. 이번에도 끊어줄 거라 믿는 얼굴들이었다.
손끝이 굳었다.
그는 공을 한번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 그런데 검지가 실밥을 누르는 힘은 더 세졌다.
머릿속에서 오래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볼넷 주면 끝이야.
기억 속에서 공이 비에 젖어 미끄러졌다. 어깨를 찌르던 통증까지 따라왔다.
준혁은 오른팔을 움직였다. 지금의 어깨는 멀쩡했다.
7번 타자가 타석에 발을 디뎠다.
눈앞에는 여전히 반듯한 선이 떠 있었다.
준혁은 그 선 위로 떨리는 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