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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대공가의 막내딸로 입양되었습니다1화

괴물 대공가의 막내딸로 입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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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불길 속의 작은 숨결

타닥, 타다닥.

마른 장작이 쪼개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낡은 목조 창고의 널빤지가 시뻘건 불길을 머금고 비명을 지르며 터져 나가는 소리였다.

"불이야! 창고에 불이 붙었다!"

"원장 수녀님, 뒤쪽은 이미 다 탔어요! 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앞마당으로 피하십시오!"

바깥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고함과 흩어지는 발소리는 순식간에 아득해졌다.

다섯 살 리아는 창고 구석의 부서진 궤짝 뒤에 몸을 웅크린 채 굳어 있었다.

얇디얇은 낡은 마포 옷 사이로 살을 에는 듯한 열기가 파고들었다. 눈앞을 가득 채운 시커먼 연기가 목구멍을 긁으며 들이닥쳐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타는 듯 아팠다.

"쿨럭, 쿨럭……."

리아는 작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 고아원에서는 울거나 보채는 아이를 아무도 달래주지 않았다. 시끄럽게 굴면 밥을 굶기거나 어두운 지하실에 가둔다는 것을 다섯 살의 리아는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다들…… 나갔구나.'

창고 문이 활짝 열렸을 때 어른들은 큰 아이들의 손을 잡아채며 허겁지겁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구석에 웅크려 있던 키 작은 리아를 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먹을 것이 부족할 때도 가장 늦게 숟가락을 쥐었고 옷가지가 배분될 때도 구멍 난 옷만 받았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짐이었으니까. 아무에게도 쓸모없는 아이니까.

화르륵!

머리 위 천장에서 불타는 나무 기둥 하나가 굉음을 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사방으로 붉은 불티가 폭죽처럼 튀어 올랐다.

리아는 눈을 질끈 감고 무릎을 바짝 끌어안았다.

바로 그때였다.

팟. 파바박.

불티가 바닥을 구르며 튀는 순간 리아의 귓가에 낯설고 가느다란 소리가 닿았다.

—앗, 뜨거워! 뜨거워라!

—더 커질래! 다 태워버릴 거야!

그것은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주황빛과 붉은빛으로 타오르는 불꽃의 알갱이들이 조그만 새나 아기 도마뱀 같은 형상을 띠며 허공에서 파닥거리고 있었다. 불티의 끝자락마다 맺힌 작은 불의 정령들이었다.

리아는 어릴 적부터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우물가의 맑은 물방울에서 찰랑거리는 물의 요정들, 차가운 바람에 실려 오는 공기의 속삭임, 마른 화분 속에서 가늘게 신음하던 풀잎의 숨결.

하지만 어른들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돌아온 것은 매서운 손찌검과 헛소리하지 말라는 꾸중뿐이었다. 그래서 리아는 늘 입을 다물었다.

—화르륵! 잡아먹자!

기세가 오른 불의 정령들이 창고 벽을 갉아먹으며 리아의 발치까지 맹렬하게 쇄도했다.

불길의 뜨거운 숨결이 뺨에 닿자 리아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공포가 가슴을 짓눌렀지만 눈앞에서 고통스럽게 펄쩍펄쩍 뛰는 불의 알갱이들이 어쩐지 가엾게 보였다.

리아는 떨리는 작은 입술을 달싹였다.

"뜨, 뜨거워…… 아파하지 마……."

그리고 조심스럽게 폐 속의 맑은 공기를 모아 작은 입김을 후 하고 불어넣었다.

그것은 명령도 마법도 아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존재를 향해 건네는 다섯 살 아이의 서투르고 순수한 달램이었다.

순간 리아의 연둣빛 눈동자 가장자리에 은은한 햇살 같은 미광이 번졌다.

후우우.

아이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맑은 숨결이 불티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 숨결이 닿는 순간 사납게 날뛰던 불의 정령들이 흠칫 멈추어 섰다.

—어?

—시원해…… 맑은 냄새가 나.

—이 아이는 누구지? 왜 이렇게 다정한 숨을 쉬어?

정령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어 리아의 머리칼과 옷자락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리아를 향해 쏟아져 들어오던 거대한 화마가 아이의 몸 주변 반경 두 걸음을 경계로 둥글게 갈라져 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장막이 아이를 감싸듯 불길이 리아를 비켜서서 벽면 쪽으로만 번져 나간 것이다.

타닥, 파지직.

사방은 무너져 내리는 지옥도였으나 리아가 웅크린 원형의 공간만은 서늘하고 고요한 공기가 감돌았다.

리아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뺨에 닿는 불티 정령들의 간지러운 온기를 느꼈다.

'숨이…… 조금 가빠.'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 저려왔다.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지만 리아는 정령들을 향해 살며시 미소 지었다.

"고마워……."

그 작은 속삭임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콰지지직——! 쾅!

벽체 전체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불타던 창고 뒷벽이 거대한 힘에 밀려 통째로 박살이 났다.


부서진 목재와 흙벽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자욱한 연기와 불길을 찢고 들어온 것은 거대한 흑철색 갑주를 두른 사내였다.

카시안 아르젠.

북부 설원을 지키는 아르젠 공작가의 가주이자 왕국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괴물 대공'이라 부르는 남자였다.

"크윽……!"

카시안은 대검의 자루를 으스러져라 쥐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화마의 열기가 폐부를 찌를 때마다 뼛속 깊이 박힌 저주의 피가 끓어올랐다.

아르젠 직계의 혈통에 대대로 내려오는 '월식 저주'.

공포나 분노, 극한의 자극을 받으면 이성을 잃고 짐승으로 화하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지금도 그의 왼팔 소매 밑에서 검푸른 마수 비늘이 돋아나고 있었다. 살갗을 찢고 돋는 비늘의 고통에 턱관절이 뻐근하게 조여들었다.

카시안은 국도 순찰 중 고아원 화재를 목격하고 달려왔다.

사람들은 이미 앞마당으로 도망친 상태였다. 보통의 화재라면 기사단에게 진압을 맡기고 지나쳤을 터였다.

하지만 창고 안쪽에서 비정상적인 마력 파동이 감지되었다.

단순한 불길이 아니었다. 사납게 날뛰는 화염의 중심에서 말도 안 되게 맑고 깨끗한 자연 정령의 맥동이 감돌고 있었다.

'마수인가 아니면 불장난을 치는 흑마법사의 수작인가.'

카시안은 살기를 뿜어내며 잿더미와 연막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목도한 순간 대공의 서슬 퍼런 은빛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건……."

무너져 내리는 불바다의 한가운데.

사방의 목재가 숯이 되어 타들어 가는 와중에 오직 한곳만이 멀쩡했다.

둥글게 비워진 좁은 공간에 마른 나뭇가지처럼 작고 여린 아이가 홀로 웅크려 있었다.

먼지투성이가 된 은회색 곱슬머리.

헐벗은 채 잿가루가 묻은 발목.

그리고 아이의 주변을 장난치듯 맴돌며 불길을 가로막고 있는 수십 개의 붉은 불티 알갱이들.

아이는 다섯 살을 갓 넘겼을까 싶을 만큼 작았다. 바람만 불어도 바스러질 것 같은 체구였다.

'인간 아이다.'

대공은 순간 검을 쥔 손을 멈칫했다.

적도 마수도 아닌 그저 버려진 어린 계집아이였다.

그때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투명할 정도로 맑은 연둣빛 눈동자가 카시안의 시선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를 법도 한데 아이는 그저 동그란 눈으로 거대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티 없는 순수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지지직——!

머리 위를 받치고 있던 거대한 주 대들보가 불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였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수백 근 무게의 거목이 아이의 정수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조심해라!"

카시안의 몸이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그것은 냉철한 북부 대공의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전쟁터를 구르며 수없이 사람을 베어 온 손이 아이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뻗어 나간 것이었다.

콰아아앙!

카시안이 바닥을 박차고 쇄도하여 아이의 작은 몸을 품 안으로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모피 망토를 번쩍 들어 올려 등 뒤로 내리꽂히는 화염 대들보를 틀어막았다.

쿠구구궁!

등 뒤로 둔중한 충격과 함께 살을 태우는 열기가 쏟아졌다.

하지만 북부의 마수 가죽으로 벼려낸 모피 망토는 불길을 튕겨내며 묵직하게 버텼다. 카시안은 왼팔을 휘둘러 짓눌려 오던 통나무를 옆으로 거칠게 쳐냈다.

통나무가 바닥을 구르며 사방으로 거대한 불꽃이 일었다.

"하아…… 하아……."

카시안은 무릎을 꿇은 채 품 안의 아이를 감싸 쥔 팔에 힘을 주었다.

그의 품 안에서 아이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매캐한 유황 냄새 속에서 아이의 몸에서는 갓 피어난 풀잎 같은 서늘하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크륵…….'

그 순간 카시안의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극도의 긴장과 충격으로 인해 억누르고 있던 월식 저주가 통제 불능으로 치솟은 탓이었다.

왼팔 소매가 터져 나가며 돋아난 흑청색 비늘이 팔꿈치를 지나 어깨 쪽으로 번져 올라가고 있었다.

살갗이 찢어지고 뼈가 뒤틀리는 끔찍한 고통.

이성이 암흑 속으로 침식당하며 눈앞이 핏빛으로 물들기 직전이었다.

카시안은 아이를 밀쳐내려 했다.

폭주가 시작되면 자신의 손으로 이 작은 아이의 목을 꺾어버릴지도 몰랐다.

"저리…… 가라. 나를 건드리지…… 마라."

카시안이 이를 악물며 으르렁거렸다. 목소리는 이미 쇠를 긁는 마수의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이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품 안에서 버둥거리던 작은 손을 뻗어왔다.

리아는 남자의 왼팔에 돋아난 흉측한 비늘을 보았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비명을 지르며 '괴물'이라고 도망쳤을 모습이었다.

하지만 리아의 눈에는 그 비늘 밑에서 시퍼렇게 멍든 채 비명을 지르는 무언가가 보였다.

너무 아파서 어쩔 줄 모르는 남자의 고통이 리아의 가슴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왔다.

'아저씨가…… 울고 있어.'

소리를 내어 울지 못하는 거대한 어른이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리아는 작은 손바닥을 카시안의 차갑게 굳은 턱과 목덜미에 조심스럽게 가져다 댔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쉰 뒤 가만히 내쉬었다.

후우.

아이의 입김이 서리 낀 남자의 살갗에 닿았다.

파아아앗.

그 찰나 리아의 다섯 손가락 끝에서 눈부신 연둣빛 온기가 싹을 틔우듯 번져 나갔다.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카시안의 살갗을 타고 혈관 깊숙한 곳으로 흘러들었다.

찌르르.

"……!"

카시안의 숨이 멎었다.

불길 속에서 타오르던 끔찍한 작열통이 거짓말처럼 씻겨 나갔다.

어깨를 타고 뇌수를 갉아먹으려던 마수의 광기가 봄눈 녹듯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어깨까지 번져가던 검푸른 비늘이 스르르 피부 밑으로 잦아들며 제자리를 찾았다.

'이게…… 무슨…….'

카시안은 떨리는 눈으로 제 품 안의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평온이었다.

수많은 고명한 신관들이 정화 의식을 거행해도 결코 멈추지 않던 아르젠의 저주가 이 작디작은 아이의 손길 한 번에 잠잠해진 것이다.

머릿속에서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내 엘레나의 나지막한 음성이 스쳐 지나갔다.

'카시안, 언젠가 당신의 상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봄의 정령이 찾아올 거예요. 그때가 되면…… 부디 그 아이의 손을 놓지 마세요.'

엘레나. 당신이 말했던 것이 바로 이 아이였단 말인가.

리아는 안도한 듯 배시시 웃으며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아저씨…… 이제 안 아프지요……?"

아이의 작은 몸이 축 늘어졌다.

무리하게 정령의 숨결을 뿜어낸 탓에 기력이 다해 기절한 것이었다.

카시안은 아이의 가녀린 숨소리를 들으며 숨을 삼켰다.

심장 한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는 충격이 전신을 관통했다.

쿠구궁!

창고의 남은 벽마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카시안은 대검을 칼집에 꽂아 넣고 망설임 없이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다.

깃털보다 가벼운 생명의 무게가 그의 단단한 가슴에 안착했다.

카시안은 바닥을 박차고 불타오르는 잔해를 뛰어넘어 밖으로 질주했다.


화르륵, 콰창!

뒤편에서 창고 전체가 완전히 주저앉으며 거대한 불기둥을 뿜어냈다.

새하얀 눈이 깔린 고아원 앞마당으로 뛰쳐나온 카시안은 차가운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저, 전하!"

"공작 전하께서 나오셨다!"

눈 덮인 마당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던 아르젠의 호위 기사들이 일제히 달려왔다.

마당 한구석에는 대피한 고아원의 원장 수녀와 교사들 그리고 아이들이 멍하니 서 있었다.

카시안이 품에 은발의 아이를 안고 걸어 나오자 원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공, 공작 전하……! 무사하셨군요! 주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원장은 덜덜 떨며 카시안의 발치에 엎드렸다.

카시안의 은빛 눈동자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살을 에는 북부의 칼바람보다 더 매서운 안광이었다.

"묻겠다."

카시안의 낮고 서늘한 음성이 마당을 짓눌렀다.

"모두가 빠져나왔다고 보고한 것이 네년이었지."

"그, 그것이……!"

원장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말을 더듬었다.

"그 아이는…… 그저 뒤뜰 청소를 시키던 말단 고아일 뿐입니다! 워낙 조용하고 굼뜬 아이라 미처 챙기지 못했을 뿐…… 일부러 버려둔 것이 아니옵니다!"

변명이었다.

아이 하나를 창고 구석에 버려두고 도망친 자들의 추악한 핑계.

카시안은 엎드린 원장을 더 이상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품 안에 안긴 작은 생명체에게로 향했다.

영하를 밑도는 혹한의 겨울밤.

아이의 발은 신발도 없이 흙투성이가 된 맨발이었고 입고 있는 것은 거친 누더기 한 벌이 전부였다.

손발 끝이 꽁꽁 얼어붙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런 차가운 세상에서 홀로 버텨왔단 말인가.'

카시안은 묵묵히 자신의 모피 코트 앞섶을 풀었다.

그리고 널찍한 코트 안자락으로 아이의 작은 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제 가슴팍 깊숙이 품었다.

남자의 단단한 근육과 심장 박동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체온이 아이의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품 안의 온기가 따뜻했는지 리아가 가느다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보이는 것은 잿가루 묻은 남자의 날카롭고 다부진 턱선이었다.

"아저씨……."

리아는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혹시 또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혼나는 것은 아닐까.

자신 때문에 이 무섭고 커다란 귀족 어른이 화가 난 것은 아닐까.

카시안은 품 안에서 도토리처럼 바들바들 떠는 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평생 전장만을 누비며 명령과 살육에 익숙했던 사내였다. 아이를 안아보는 것도 두 아들이 갓난아기였을 때 이후 십수 년 만이었다.

남자의 투박한 손이 어색하게 움직였다.

카시안은 거친 가죽 장갑을 벗고 온기가 도는 손바닥으로 아이의 이마에 묻은 검은 그을음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손길은 서툴렀지만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괜찮다."

카시안이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웅얼거리듯 뱉어냈다.

"불길은 끝났다."

리아는 멍하니 남자의 은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무섭고 사나운 늑대 같은 눈이었지만 그 안에는 기이할 정도로 깊은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고아원에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온기였다.

리아는 저도 모르게 남자의 두터운 옷자락을 작은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카시안은 기사들을 향해 돌아서며 단호하게 명령했다.

"마차를 대기시켜라. 즉시 영지로 복귀한다."

"예, 전하!"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카시안은 아이를 다시 한번 제 품 깊숙이 고쳐 안았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국도변의 설원 위에서 괴물이라 불리던 대공의 품에 작은 봄의 숨결이 깃들고 있었다.

카시안이 낮게 물었다.

"이름이 뭐냐."

리아가 연둣빛 눈망울을 깜빡이며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그 순간 카시안의 품속에서 잠잠해졌던 리아의 손끝 온기가 다시금 부드럽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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