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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의 망자를 달래는 안식 장례지도사5화

이계의 망자를 달래는 안식 장례지도사

이계의 망자를 달래는 안식 장례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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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황실 기사단의 방문

새벽 안개를 묵직하게 가르고 들어온 흰 마차가 묘역 입구의 자갈길 위에서 멈춰 섰다.

마차 바퀴에는 차가운 흙먼지와 함께 먼 길을 달려온 날카로운 흔적이 켜켜이 엉겨 있었다. 마구에 새겨진 순백의 깃발과 문짝 중앙에 칠해진 붉은 밀랍 인장은 제국 황실의 엄중한 권위를 증명하고 있었다. 두 마리의 백마는 숨을 쉴 때마다 코끝에서 거친 하얀 김을 뿜어냈다.

바스토가 도끼 자루를 고쳐 쥐며 침을 깊게 삼켰다.

“왕궁 봉인 인장이다. 성당 감찰 사제와는 차원이 달라. 하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우선 손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하진은 앞치마에 묻은 숯 가루를 손끝으로 털어내며 차분하게 마차 앞으로 나아갔다. 성당 사제 모르덴이 경고를 남기고 떠난 지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마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성당의 탐욕과는 전혀 다른 중압감을 품고 있었다.

마차 문이 열리자 은색 갑옷 위에 검은 비단 겉옷을 걸친 기사가 내렸다. 그의 가슴에는 제3황실 기사단을 상징하는 푸른 사자 문양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뒤이어 내린 수하 기사 네 명은 긴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사방을 날카롭게 경계했다.

기사단을 이끄는 자는 절제된 움직임으로 하진과 바스토를 둘러보았다. 날카로운 잿빛 눈동자에는 전장의 지친 기색과 거스를 수 없는 고압적인 위엄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서부 공공 묘역의 책임자가 누구인가?”

바스토가 허리를 굽히며 앞으로 조심스럽게 나섰다.

“제가 책임자 바스토입니다. 황실의 특사 경, 무슨 일로 이 누추한 묘역까지 행차하셨습니까?”

기사는 품 안에서 황금색 실로 엮은 봉투를 꺼내 보였다.

“나는 황녀 엘레나 전하의 보좌관이자 제3기사단 부단장, 케일런 폰 아스벨이다. 전선에서 이송된 중대한 유해를 처리하기 위해 왔다.”

케일런 경이 손짓하자 마차 뒤편에 연결된 철제 짐수레의 검은 덮개가 젖혀졌다.

그 순간, 강렬한 한기와 함께 썩은 피 냄새 그리고 오염된 마수 독성이 공기를 타고 묘역 전체로 퍼져 나갔다. 묘역 바닥의 풀잎들이 순식간에 검게 시들어 갔고 자갈 사이로 하얀 결빙 서리가 돋아났다.

처리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바스토 역시 도끼를 움켜쥔 손을 떨며 주춤했다.

철제 궤 안에는 사슬로 단단히 묶인 검은 관이 놓여 있었다. 관의 나무판은 내부에서 번져 나오는 마마(魔魔)의 기운 때문에 기괴하게 부풀어 오른 채 삐걱거렸다. 쿵, 쿵 하는 무거운 울림이 관 안쪽에서 거세게 터져 나왔다.

로만이 떨리는 목소리로 측정석을 확인했다.

“이, 이건 정화 전의 오염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마수의 독소가 시신의 잔류 마력과 결합해 완전히 폭주하고 있습니다!”

케일런 경의 표정이 지극히 어두워졌다.

“전방 갈리아 산맥에서 마수의 대군세를 막아내다 장렬히 전사하신 제3기사단 고위 기사, 브란트 경의 유해다.”

“기사님의 유해라고요?”

하진이 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자 케일런의 수하 기사들이 검을 반쯤 뽑아 들며 막아섰다. 차가운 쇠소리가 새벽의 침묵을 깼다.

케일런 경이 손을 들어 기사들을 제지한 뒤 하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다. 브란트 경은 후방의 보병 대대를 무사히 탈출시키기 위해 홀로 마수의 수장과 동귀어진하셨다. 그러나 마수의 독니에 깊이 오염되어 육신에 사악한 마령이 깃들었다.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한 시간 내로 리치 주니어급의 고위 언데드로 깨어나 묘역 전체를 살육할 것이다.”

바스토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리치 주니어라니…… 그런 고위 언데드가 여기서 깨어나면 묘역뿐만 아니라 인근 평민 마을까지 전부 초토화됩니다! 케일런 경, 어서 정화 사제들을 부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케일런 경이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

“성당의 고위 사제들조차 이 오염을 정화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오염을 억누르려던 사제 셋이 도리어 마수 저주에 걸려 쓰러졌다. 그래서 황녀 전하께서는 시신이 완전히 각성하기 전에 묘역의 특수 소각로를 이용해 성마석의 불길로 흔적도 없이 잿더미로 만들라 명하셨다.”

그의 시선이 하진과 바스토를 향했다.

“즉시 소각로에 불을 지펴라. 브란트 경의 유해와 관을 통째로 불태워 없앤다.”

처리사들은 살았다는 안도감과 공포에 젖어 서둘러 나무 땔감과 석유 통을 챙기려 했다.

“잠깐 멈추십시오.”

하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묘역 입구의 긴장을 갈랐다.

처리사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케일런 경의 잿빛 눈동자가 하진에게로 쏠렸다.

“시신 처리사. 황녀 전하의 명이다. 감히 방해할 셈인가?”

“소각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진은 관을 감싼 철사슬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차가운 마수 독소가 손바닥을 찔렀지만 가슴 안쪽에서 솟아오른 안식의 성력이 독소를 조용히 걷어 냈다.

“불길은 육신을 태울 수 있지만 영혼에 맺힌 억울함과 사악하게 뒤엉킨 마수 독소를 태우지 못합니다. 이 상태로 태운다면 마수의 저주와 망자의 한탄이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이 지역 전체에 끔찍한 저주를 내릴 것입니다.”

케일런 경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감히 황실의 결정에 토를 다느냐. 그렇다면 네놈에게 다른 대안이라도 있다는 뜻인가?”

“안식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하진은 관의 사슬 틈새로 보이는 찌그러진 검은 갑옷을 짚었다.

“브란트 경은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전장에 남았습니다. 그의 손가락은 죽어서도 가문의 맹세 인장이 새겨진 가슴 갑옷을 꼭 쥐고 있습니다. 가문과 황실에 대한 충성이 마수의 독성에 더럽혀진 채 불타버린다면 영혼은 영원히 구천을 떠돌게 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수하 기사 하나가 분노하며 고함을 쳤다.

“단순한 시신 처리사 주제에 고위 기사의 영혼과 마수 독소를 운운하다니! 부단장님, 이 자의 무례를 베어버리고 즉시 소각해야 합니다!”

케일런 경은 손을 들어 기사를 멈추게 했다. 그는 하진의 눈빛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오염된 관 앞에서도 조금도 떨지 않는 눈빛, 망자의 존엄을 대하는 숭고한 태도에 묘한 위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 로만이 떨리는 손으로 인계 장부를 꺼내 케일런 경 앞으로 나섰다.

“경,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 하진 씨는 얼마 전 구울화 직전이었던 징집병 토비와 수문 수리공 세딘 씨의 유해를 안식 장례로 완벽히 정화했습니다. 여기 성당의 측정석 수치와 비교한 장부 기록이 있습니다.”

로만이 내민 장부를 훑어본 케일런 경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장부에는 성당의 강제 정화 예식보다 하진의 안식 절차가 마력 오염 수치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추었음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었다.

케일런 경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오염 수치가 제로에 가깝게 떨어졌다고……? 성당의 고위 정화석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이 말단 묘역에서 해냈단 말인가?”

하진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브란트 경의 유해를 소각로에 넣기 전에 제게 세 시간의 시간을 주십시오. 갑옷을 벗기고 마수 독소를 씻어 내며 용사의 마지막 존엄을 되찾아 주겠습니다. 만약 세 시간 내에 마력 폭주를 가라앉히지 못한다면 저를 유해와 함께 소각로에 던지셔도 좋습니다.”

바스토가 놀라 하진의 소매를 잡았다.

“하진! 제정신인가? 상대는 고위 기사의 오염된 시신이야! 잘못되면 뼈도 못 추려!”

“망자의 존엄을 포기하고 편한 길만 찾는다면 우리는 시신 처리사가 아니라 그저 시신을 치우는 도축업자에 불과합니다.”

하진의 단호한 선언에 묘역 전체가 고요해졌다.

케일런 경은 한참 동안 하진을 노려보았다. 이윽고 그는 장부를 닫고 허리춤의 검집을 턱 짚었다.

“좋다. 세 시간을 주겠다.”

수하 기사들이 깜짝 놀라 부단장을 바라보았다.

“부단장님! 황녀 전하의 소각 명령을 어기시는 겁니까?”

“황녀 전하께서 진정 바라시는 것은 마수 독소의 확산을 막고 브란트 경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다.”

케일런 경은 하진을 차갑게 가리켰다.

“단, 조건이 있다. 나와 기사단이 처리실 안에서 모든 과정을 눈으로 감시할 것이다. 만약 시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리치화의 징후가 보이면 즉시 너를 포함해 유해를 베어버릴 것이다.”

“그 조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진은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한 뒤 곧바로 처리사들을 향해 돌아섰다.

“바스토 씨, 중앙 처리실의 대형 석재 운반대를 청소해 주십시오. 로만 씨는 깨끗한 끓인 물 세 통과 특수 소독용 허브 오일 그리고 차콜 가루와 삼베 수의를 준비해 주십시오.”

하진의 지시에 묘역 사람들의 움직임이 일사불란해졌다. 두려움에 떨던 처리사들도 하진의 차분한 목소리에 마음을 가다듬고 물통을 날랐다.

철제 궤의 사슬이 풀리고 브란트 경의 검은 관이 중앙 처리실의 넓적한 돌다이 위로 옮겨졌다.

관 뚜껑을 열자 시커멓게 일그러진 마수 오염 물질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관 안에는 찌그러지고 핏자국으로 얼룩진 은빛 갑옷을 입은 거구의 기사가 누워 있었다.

투구 사이로 보이는 기사의 얼굴은 절반 이상이 검게 부패해 있었고 입에서는 짐승의 르르르 하는 기괴한 마찰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가락 끝은 칠흑 같은 갈고리처럼 변해 가슴 갑옷의 문양을 긁어대고 있었다.

케일런 경이 검 손잡이에 힘을 주었다. 기사단원들의 전신에서 서슬 퍼런 투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하진은 겁먹지 않고 허브 오일을 적신 따뜻한 천을 들었다.

“브란트 경.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단단한 갑옷을 벗고 편히 쉴 시간입니다.”

하진은 경건한 손길로 기사의 투구를 고정하는 가죽 끈을 풀기 시작했다.

갑옷 틈새로 마수의 부패 독소가 하진의 손등을 덮쳤지만 하진의 체내에서 피어오른 맑은 안식의 성력이 은은한 푸른빛을 발하며 오염을 차단했다.

그 신비로운 빛을 목격한 케일런 경의 눈빛에 다시 한번 깊은 경악이 스쳐 지나갔다.

하진은 차분하게 찌그러진 흉갑의 나사를 하나씩 풀어내며 마수 독소로 엉겨 붙은 기사의 육신을 복원하기 위한 첫 단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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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남의 이름 뒤에 숨어 곡을 쓰다 과로사한 무명 작곡가 강하진이 음악이 마법이 되는 판타지 아카데미의 마력 제로 낙제생 하진으로 빙의한다. 퇴학 직전 24시간 루프와 [신들의 작곡 시스템]을 이용해 지구의 화성학과 거장들의 선율을 대기 에테르 유도식으로 변환하며 악보 한 장으로 아카데미와 제국을 뒤흔드는 천재 작곡가의 대마법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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