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치유하는 심야 백반집

1화: 마지막 밤의 된장국
진눈깨비가 섞인 늦가을비가 좁은 골목길의 낡은 보도블록을 차갑게 적시고 있었다.
서울 변두리 재개발 예정 구역의 끝자락. 번화가의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조차 닿지 않는 달밤골목 3번지에는 낡은 목재 미닫이문을 단 10평 남짓한 식당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유리창 한구석에 붉은 시트지로 붙여둔 상호는 '온기백반'.
주방 안쪽에서 서도윤은 젖은 행주로 스테인리스 조리대를 몇 번째 문지르고 있었다. 단정하게 정돈된 짧은 흑발 아래로 짙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걷어붙인 셔츠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뚝과 손등에는 오랜 시간 불과 칼을 다뤄온 요리사 특유의 옅은 화상 자국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도윤의 시선이 조리대 모퉁이에 놓인 흰색 A4 용지로 향했다.
[알림: 금일부로 영업을 종료합니다. 그동안 찾아주신 이웃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가게를 지켜오던 어머니 한서진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꼭 한 달째였다.
장례를 치르고 홀로 남은 도윤은 냉장고에 남아 있던 식자재를 소진하며 한 달 동안 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헌터 협회 공문서와 게이트 경보 앱만 쳐다보며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이 외진 골목의 오래된 백반집은 지나치는 풍경에 불과했다.
달밤골목의 상권은 날이 갈수록 죽어갔고 손님은 하루에 서너 명이 고작이었다.
"어머니 말씀대로 이제 닫을 때가 됐나 봅니다."
도윤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벽에 걸린 낡은 괘종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시곗바늘은 밤 11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주방 한가운데에는 어머니가 식당 문을 열 때부터 써왔다는 커다란 무쇠 국솥이 여전히 약한 가스 불 위에서 미세한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뚜껑 틈새로 멸치와 다시마를 진하게 우려낸 육수 냄새와 구수한 집된장 향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남은 재료로 끓여둔 마지막 된장국이었다.
도윤은 안내문과 테이프를 집어 들고 홀로 걸어 나왔다. 4인용 나무 테이블 세 개와 창가 쪽 2인석 하나가 전부인 작은 공간이었다. 의자마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났다.
미닫이문을 열고 바깥 유리창에 안내문을 붙이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부아아앙——!
골목 입구에서부터 빗물을 튀기며 질주해 온 오토바이 배기음이 식당 처마 밑에서 뚝 끊겼다.
끼이익!
빗길에 미끄러지듯 멈춰 선 배달용 스쿠터였다. 오토바이 뒷좌석에는 게이트 잔재물 운송용 금속 보관함이 위태롭게 실려 있었고 배달 라이더의 상의는 비와 진흙으로 엉망이었다.
철컥.
식당 미닫이문이 거칠게 열렸다.
"저기…… 밥, 밥 됩니까……?"
문턱을 넘은 사내는 헬멧 바이저를 올리지도 못한 채 문틀을 짚고 헐떡였다.
방수 재킷 가슴팍에는 헌터 협회에서 발급한 'C급 화물 각성자' 인식표가 빗물에 젖어 번쩍이고 있었다. 사내의 전신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어 있었고 무릎과 어깨가 눈에 띄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도윤은 손에 쥐고 있던 폐업 안내문을 등 뒤로 감추며 사내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만 오늘 마감했습니다. 재료가 다 떨어져서요."
"아무거나…… 제발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국물이든 누룽지든 따뜻한 것 한 입만……."
사내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찢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는 헬멧을 벗으려 손을 올렸지만 손가락 마디마디가 뒤틀리듯 경련하고 있었다. 가죽 장갑 끝자락에서는 통제되지 않은 푸르스름한 마력 불꽃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단순한 추위나 허기가 아니었다.
각성자가 마력을 과도하게 소모하거나 정신적 한계에 몰렸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잔향 오염의 초기 증상이었다. 저 상태로 비바람 치는 도로를 달리다가는 오토바이째로 가드레일에 처박히거나 심장마비로 쓰러질 것이 뻔했다.
도윤은 잠시 망설였다. 안내문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흠뻑 젖은 사내의 눈동자 속에서 넘실거리는 절박한 공포를 마주한 순간 차마 그를 빗속으로 다시 밀어낼 수 없었다.
'밥 굶겨서 돌려보내지 마라. 식당 문턱을 넘은 사람은 무조건 손님이다.'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씀이 귓전을 스쳤다.
도윤은 등 뒤의 안내문을 앞치마 주머니 속으로 찔러 넣었다.
"창가 쪽에 앉으세요. 국은 아직 따뜻합니다."
사내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하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창가 2인석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헬멧을 벗어 테이블 위에 얹어놓자 땀과 빗물에 젖은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서른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청년이었다.
"물부터 한 잔 드세요. 찬물 말고 따뜻한 보리차입니다."
도윤은 주전자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리차 한 컵을 따라 청년의 앞에 내려놓았다.
청년은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쥐었다. 컵을 입가로 가져가는 동안에도 찻물이 찰랑거리며 테이블 위로 방울져 떨어졌다.
도윤은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던 밥솥의 뚜껑을 열었다. 갓 지어낸 백미 밥의 구수한 단내가 주방 가득 퍼졌다. 놋쇠 밥공기에 밥을 꾹꾹 눌러 담지 않고 고슬고슬한 결을 살려 넉넉하게 펐다.
가스레인지 위에 뚝배기를 올리고 국솥의 뚜껑을 열었다.
펄펄 끓는 무쇠 국솥 안에서 깊고 묵직한 된장 육수를 듬뿍 퍼서 뚝배기에 담았다. 멸치 대가리와 내장을 일일이 발라내고 무쇠 팬에 바싹 덖어 비린내를 날린 뒤 다시마와 무를 넣고 세 시간 동안 맑게 우려낸 육수였다. 거기에 시골 장독에서 3년 묵힌 집된장을 체에 곱게 걸러 풀었다.
도윤은 도마 위에 씻어둔 애호박 반 개와 두부 반 모를 올렸다.
도마를 울리는 칼질 소리가 주방에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착, 착, 착.
도톰하게 깍둑썬 애호박과 부드러운 촌두부 그리고 팽이버섯과 대파를 뚝배기에 아낌없이 털어 넣었다. 센 불을 올리자 된장국물이 보글보글 거품을 일으키며 끓어올랐다. 마지막으로 칼칼한 감칠맛을 위해 청양고추 반 개를 얇게 썰어 얹었다.
냉장고에서 밑반찬 찬통을 꺼냈다.
달콤 짭조름하게 볶아낸 잔멸치 볶음 한 접시.
들기름에 달달 볶아낸 묵은지 지짐 한 접시.
그리고 계란 세 개를 풀어 방금 부쳐낸 따끈따끈한 계란말이 두 토막.
단출하지만 정갈한 1인용 백반 한 상이 완성되었다.
도윤은 쟁반을 들고 홀로 나갔다.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김을 뿜어내는 된장찌개 뚝배기와 고봉밥 그리고 세 가지 반찬이 청년의 앞에 차려졌다.
"메뉴는 이것뿐입니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청년은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뽀얀 수증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구수하면서도 달큼한 된장 냄새가 차갑게 식어 있던 식당의 공기를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청년의 메마른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잘…… 잘 먹겠습니다."
청년은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손가락의 떨림이 멈추지 않아 숟가락이 뚝배기 테두리에 부딪히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조심스럽게 첫 국물을 떠서 입안으로 넣었다.
뜨겁고 진한 국물이 혓바닥을 지나 목구멍을 타고 식도로 흘러내렸다.
멸치 육수의 깊은 감칠맛 뒤로 묵은 된장의 구수함과 애호박의 자연스러운 단맛이 퍼져나갔다. 뒤이어 청양고추의 은은한 칼칼함이 차갑게 굳어 있던 뱃속을 쿵 하고 두드렸다.
"……읍."
청년의 목구멍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주방 입구에 서서 손님을 지켜보던 도윤의 눈앞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청년의 젖은 어깨와 목덜미 주변에서 스멀거리던 푸른 마력 불꽃 위로 검은 연기 같은 실선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도윤은 헛것을 보았나 싶어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연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타닥, 타다닥.
마치 젖은 나뭇가지가 타들어 갈 때 나는 듯한 불쾌한 냄새가 도윤의 코끝을 스쳤다. 그것은 일반적인 음식 냄새나 매연 냄새가 아니었다. 공포와 불안이 썩어 문드러진 듯한 차갑고 비린 잔향이었다.
도윤의 머릿속으로 낯선 감각의 파편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차가운 진흙비.
발이 푹푹 빠지는 게이트 주변의 폐허.
뒤에서 쫓아오는 정체 모를 괴성의 울림과 아무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고립감.
'이건…… 뭐지?'
도윤은 숨을 멈추고 제 가슴팍을 짚었다. 심장이 서늘하게 조여들었다.
그것은 눈앞의 청년이 온몸으로 겪어냈을 공포의 감각 조각이었다.
검은 연기 실선들은 청년의 몸에서 빠져나와 공중으로 흩어지더니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된장국의 따뜻한 흰 수증기와 뒤엉켰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검은 실선들이 수증기의 열기에 녹아내리듯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청년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이어갔다.
그는 밥 한 숟가락을 듬뿍 떠서 뚝배기 국물에 적신 뒤 푹 익은 두부와 애호박을 얹어 입안 가득 밀어 넣었다. 뜨거운 밥알이 씹힐 때마다 얼어붙었던 턱관절이 풀렸고 굳어 있던 위장이 온기를 머금으며 편안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들기름에 볶은 묵은지를 밥 위에 얹어 우물거리던 청년의 눈가에 기어이 굵은 눈물방울이 맺혔다.
"흐윽……."
청년은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밥을 삼켰다.
"죄송합니다…… 너무 맛있어서 그만……."
"천천히 드세요. 밥 더 필요하시면 말씀하시고요."
도윤은 차분하게 목소리를 내며 청년의 손을 살폈다.
놀랍게도 숟가락을 쥐고 있던 청년의 손가락 떨림이 눈에 띄게 잦아들어 있었다. 손등을 타고 튀던 푸른 마력의 불꽃도 완전히 가라앉아 정상적인 각성자의 은은한 숨결로 돌아와 있었다.
청년은 뚝배기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밥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달그락.
숟가락을 내려놓은 청년이 길고 깊은 숨을 토해냈다. 하얗게 질려 있던 그의 뺨에 건강한 혈색이 돌고 있었다.
"살 것 같습니다…… 정말로요. 오늘 밤은 정말 끝인 줄 알았는데."
청년은 지갑에서 구겨진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백반 오천 원입니다. 너무 많이 내셨어요."
"아닙니다, 사장님. 목숨값을 치른 기분이라 이것도 모자랍니다."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여몄다. 그의 눈빛에는 아까 식당 문을 밀고 들어올 때의 혼란과 공포 대신 차분한 생기가 깃들어 있었다.
"가게 문 나서면 바로 협회 야간 지정 병원에 가봐야겠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려고 미련을 떨었는데 밥을 먹고 나니 이제야 제정신이 드네요. 의사 선생님한테 검사받고 며칠 쉬어야겠습니다."
청년은 도윤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빗길 미끄러우니까 천천히 가시고요."
딸랑.
도윤의 배웅을 받으며 청년이 문을 열고 나갔다.
골목 밖으로 멀어지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점차 잦아들었다.
식당 안에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도윤은 창가 테이블로 다가가 텅 빈 뚝배기와 그릇들을 쟁반에 담았다.
그리고 주방으로 돌아와 무쇠 국솥 앞에 섰다.
가스 불을 끈 지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국솥에서는 여전히 은은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도윤은 국솥의 뚜껑을 열어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짙은 육수 표면 위로 아까 청년의 몸에서 피어올랐던 검은 실선의 잔상이 아주 미세한 티끌처럼 맴돌다가 사그라들었다.
'착각이 아니었어.'
도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 여전히 손님의 공포와 따뜻한 된장국의 온기가 아릿하게 남아 있었다.
도윤은 앞치마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영업 종료' 안내문을 꺼냈다.
구겨진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끝내 안내문을 가게 문에 붙이지 못하고 조리대 서랍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식어가는 새벽 골목의 어둠 속에서 온기백반의 작은 불빛은 아직 꺼지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