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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萬神)의 영도자 : 귀신 부리는 소년6화

만신(萬神)의 영도자 : 귀신 부리는 소년

만신(萬神)의 영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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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닫힌 문의 울음

화장실 문틈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단순한 한기가 아니었다.

축축하게 젖은 시멘트 냄새와 피비린내가 섞인 악취였다. 바닥 타일 틈을 타고 검고 미끈거리는 액체가 실핏줄처럼 번져 나오고 있었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점점 더 날카롭게 갈라졌다. 울음소리라기보다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헐떡임에 가까웠다.

서아린은 문고리에 걸어 둔 붉은 실을 팽팽하게 당겼다.

"안에서 사기가 뭉치고 있어. 평범한 잡귀가 아니야."

"아저씨는 입구만 보라고 했어요."

강은우는 주머니 속 박 신방의 방울을 움켜쥐었다. 방울이 손바닥 안에서 미친 듯이 잘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 아저씨가 오기 전에 저게 복도로 쏟아져 나오면 어쩔 건데? 저건 결계로 덮어둘 수준을 넘었어."

아린의 손가락 끝에서 붉은 실이 검붉게 타들어가며 재가 떨어졌다.

쨍그랑!

화장실 안쪽에서 거대한 유리가 깨지는 굉음이 터졌다. 동시에 문을 단단히 묶고 있던 붉은 실 세 가닥이 툭 끊어졌다.

문틈 사이로 뿜어져 나온 검은 돌풍이 복도 창문을 흔들었다.

"들어간다!"

은우는 망설이지 않고 화장실 문을 발로 찼다.

끼익, 쾅!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공기의 온도가 영하로 곤두박질쳤다. 입김이 하얗게 서릴 정도로 지독한 냉기였다.

천장 형광등은 이미 깨져서 어두컴컴했고 깨진 거울 조각들이 세면대와 바닥에 흉기처럼 널려 있었다.

바닥에는 발목을 덮을 정도로 검은 물이 찰랑거렸다. 물 표면마다 죽은 사람의 눈동자 같은 기포가 뻐끔거리며 터졌다.

화장실 가장 안쪽, 굳게 닫힌 세 번째 칸 문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쾅! 쾅! 쾅!

안쪽에서 누군가 문짝을 부술 듯 두드리고 있었다.

문짝 틈새로 하얗게 질린 손가락 대여섯 개가 비져나왔다. 손톱이 전부 깨져 피를 흘리는 손가락들이 문틀을 긁어댔다.

"문 열어 줘! 나 여기 있어! 제발 문 좀 열어!"

비명과 절규가 타일 벽을 타고 메아리쳤다.

은우의 시선이 환풍기 쪽으로 향했다. 환풍기 틈새에는 복도에서 도망쳤던 검은 우산 문양의 먹물 덩어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그래, 더 울어라.’

‘너를 가둔 것들을 저주해라.’

먹물 덩어리는 환풍기 안에서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세 번째 칸으로 끈적한 검은 기운을 쏟아붓고 있었다.

명신의 목소리 표식이 갇힌 혼을 오염시켜 살귀로 부화시키려는 수작이었다.

"저 빌어먹을 게 기어코 여기까지 와서……!"

은우의 가슴속에서 할머니를 잃었던 밤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가슴 안쪽 주머니에서 깨진 영패 조각을 꺼내 쥐었다. 손바닥에 날카로운 모서리가 박히며 피가 흘렀다.

[소년이여, 분노에 삼켜지지 마라.]

백호령의 묵직한 포효가 귓전을 때렸지만 은우는 멈추지 않았다.

"저놈이 또 다른 사람을 먹으려고 하잖아요!"

은우의 손가락 사이에서 서슬 퍼런 백색 영기가 뿜어져 나왔다. 영기는 순식간에 형체를 갖추며 날카로운 백호참마검으로 변했다.

화장실 안의 검은 물이 백색 광채에 닿아 치이익 소리를 내며 증발했다.

그때 세 번째 칸 문이 굉음과 함께 박살 났다.

와장창!

부서진 문짝 사이에서 검은 머리칼 수천 가닥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머리카락 뭉치는 거대한 파도처럼 벽과 천장을 타고 은우와 아린을 향해 덮쳐왔다.

"강은우, 물러서!"

아린이 노트를 허공에 던지며 양손으로 붉은 실을 튕겼다.

실들이 공중에서 격자무늬로 엮이며 붉은 방벽을 세웠다. 쏟아져 내리던 머리카락들이 실에 걸려 불꽃을 튀겼다.

그러나 아린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실이 살을 파고들어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결계가…… 오래 못 버텨!"

머리카락 파도 한가운데서 피투성이가 된 형체가 솟구쳐 올랐다.

뒤틀린 팔다리와 찢어진 입을 벌린 흉측한 형체였다. 흉측한 얼굴 한가운데는 검은 사기가 뭉쳐 썩은 심장처럼 고동치고 있었다.

은우의 눈에는 그것이 할머니를 찢어발겼던 살귀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내가 끝낸다."

은우는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백호참마검에 순백의 영기를 응축시켰다. 세운교 아래에서 태훈에게 배웠던 감각, 악귀의 핵을 단번에 꿰뚫어 절단하는 궤적이었다.

칼끝이 흉물의 심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꽂히기 직전이었다.

휙!

은우의 눈앞으로 붉은 실 두 가닥이 날아들었다.

실은 은우의 칼날을 감아쥐며 궤도를 옆으로 비틀었다. 동시에 아린이 은우의 허리춤을 거칠게 걷어차며 그를 바닥으로 쓰러뜨렸다.

콰아앙!

은우의 참마검에서 뿜어진 백색 검기가 흉물 대신 화장실 타일 벽을 깊게 갈라놓았다.

물웅덩이에 나뒹군 은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아린을 노려보았다.

"미쳤어? 왜 막아!"

"멍청아! 칼 치워!"

아린이 손가락을 떨며 소리쳤다. 그녀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저걸 베면 어떡해!"

"저게 살귀가 아니면 뭔데? 저놈이 우릴 죽이려고 하잖아!"

은우가 검을 다시 쥐고 몸을 일으키려 하자 아린이 은우의 멱살을 잡고 거울 파편 쪽으로 그의 고개를 홱 돌렸다.

"똑바로 봐! 저건 살귀가 아니야! 악귀가 아니라고!"

"뭐?"

"억울하게 죽어서 여기 묶인 원귀야! 네 그 칼로 핵을 베어버리면 한이고 뭐고 영혼 자체가 찢겨서 소멸한다고!"

은우의 턱이 굳었다.

[……아린의 말이 맞다.]

백호령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저 혼은 아직 산 자의 피를 취하지 않았다. 악의로 변질되었으나 본체는 억울하게 죽은 자의 백(魄)이다. 네 칼은 악을 베는 무구다. 저 혼을 베면 윤회의 길마저 영원히 끊어진다.]

은우의 손에 들린 백호참마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영혼이…… 소멸한다고?"

"그래! 넌 귀신이면 다 베어 없애면 끝나는 줄 알았어?"

아린이 가쁜 숨을 내쉬며 은우를 밀쳐냈다.

은우는 멍하니 시선을 들었다.

영안의 초점을 다시 맞추자 흉측한 검은 머리칼과 핏빛 사기 껍질 속에 갇힌 진짜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괴물이 아니었다.

이 학교의 단정한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었다.

여학생은 차가운 변기 구석에 웅크린 채 깨진 스마트폰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 떨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거울 파편 위로 원귀의 기억이 환영처럼 겹쳐졌다.

붉은 렌즈 불빛이 번쩍이는 초소형 카메라.

화장실 문틈 아래로 불쑥 들이밀어지던 스마트폰.

‘단톡방에 다 올릴 거야.’

‘소문나기 싫으면 돈 가져와.’

비열한 속삭임과 협박.

도망칠 곳 없이 잠긴 칸 안에 갇혀 문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빌던 마지막 순간.

여학생은 수치심과 공포 속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나 아니야……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원귀의 찢어진 입에서 피 섞인 울음이 새어 나왔다.

"누가 문 좀 열어줘…… 제발……."

은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검을 쥔 손가락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베어야 할 적이 아니라 구해야 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은우가 가진 것은 오직 모든 것을 파괴하고 베어버리는 칼뿐이었다.

‘나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귀신을 보는 눈은 벨 줄만 아는 손보다 무거워야 한다.’

할머니가 생전에 신당 앞에서 쥐여주던 방울의 무게가 불현듯 은우의 손목에 묵직하게 전해졌다.

그때 환풍구에 붙어 있던 명신의 먹물 표식이 흉측하게 웃었다.

‘베지 못하는구나, 백호의 시료야.’

‘그렇다면 이 계집의 영혼은 우리가 먹겠다!’

검은 우산 문양이 팽창하며 여학생의 목덜미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원귀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콰광!

화장실 문밖에서 묵직한 쇠붙이가 바닥을 뚫는 소리가 울렸다.

"은우야! 아린아!"

최태훈의 거친 고함이었다.

화장실 입구 바닥에 부적이 빽빽하게 감긴 쇠말뚝 넉 대가 깊숙이 박혔다. 쇠말뚝 사이로 푸른 영기의 사슬이 연결되며 화장실 전체가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었다.

태훈이 문가에 버텨 서서 외쳤다.

"외부는 차단했다! 안에서 혼을 찢지 마라! 원귀의 사연을 듣지 못하면 학교 전체가 저주로 뒤덮인다!"

은우는 참마검을 흩어 없앴다.

손바닥에 남은 영패 조각을 주머니에 넣고 대신 할머니의 낡은 방울을 꺼내 들었다.

방울의 붉은 매듭이 은우의 손목을 감쌌다.

"안 베어."

은우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절대로 안 베어."

딸랑.

차갑게 얼어붙은 화장실 안에서 맑고 청아한 방울 소리가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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