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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을 잡았더니 서버 점검입니다1화

마왕을 잡았더니 서버 점검입니다

마왕을 잡았더니 서버 점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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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정기 서버 점검까지 72시간

콰아아앙!

마왕성의 검은 대리석 바닥이 비명을 지르며 갈라졌다.

공기를 짓누르던 칠흑의 마력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튀어 오르는 불똥 하나하나가 살을 태우고 뼈를 깎아내는 독기를 머금고 있었다.

"크하하하! 고작 인간 따위가…… 성검 한 자루에 명줄을 걸고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단 말이냐!"

마왕 아르카논의 거대한 형체가 검은 안개 속에서 일렁였다.

머리 위로 솟은 뒤틀린 뿔과 핏빛으로 번뜩이는 네 개의 눈. 그가 휘두른 흑염의 낫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피할 수 없었다. 아니 피하지 않았다.

한세온은 이를 악물며 그대로 몸을 앞으로 던졌다.

푸우욱!

검은 낫의 칼날이 세온의 왼쪽 어깨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끔찍한 고통과 함께 뜨거운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시야가 새하얗게 탈색될 정도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세온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피투성이가 된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잡았다."

"……뭐라?"

마왕의 붉은 눈동자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어깨를 내어준 대가로 세온은 마왕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거리는 고작 반 보. 마왕이 낫을 회수하거나 다음 방어 마법을 전개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각이었다.

세온의 오른손에 쥐어진 성검에서 찬란한 백금빛 섬광이 폭발했다.

지난 10년간 대륙의 끝에서 끝을 구르며 수만 번 휘둘렀던 검. 죽어간 동료들의 피와 눈물이 스며든 마지막 한 자루의 궤적이 마왕의 심장 정중앙을 겨누었다.

"꺼져라, 아르카논."

콰드득!

성검의 칼날이 마왕의 흉갑을 뚫고 검은 수정처럼 맥동하던 마력 핵을 관통했다.

"커, 헉……!"

마왕의 입에서 짙은 흑혈이 쏟아져 나왔다.

심장을 꿰뚫린 마왕의 거구가 허공에서 굳어졌다. 가슴팍에 박힌 성검을 중심으로 순백의 광휘가 거미줄처럼 퍼져 나가며 마왕의 육체를 조각내기 시작했다.

파사삭. 파삭.

살점이 타오르는 냄새 대신 마른 흙먼지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마왕의 살갗이 검은 잿가루로 변해 허공으로 흩날렸다.

세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성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10년이다. 네놈 하나를 죽이겠다고 우리가 바친 시간이."

마왕 아르카논은 부서져 내리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피를 흘리는 입꼬리를 기괴하게 비틀며 웃기 시작했다.

"크, 크큭…… 큭큭큭……!"

절망이나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자가 무지한 자를 비웃는 서늘한 조소였다.

"어리석은 인간 용사여."

"유언이라면 짧게 해라. 들을 가치도 없으니까."

"네놈은…… 네놈이 진정 세계를 구했다고 생각하는가?"

마왕의 목소리가 점점 갈라지며 흩어졌다.

"이것은 끝이 아니다. 네놈이 방금 끝마친 것은 고작 튜토리얼에 불과할 뿐."

"……뭐?"

"이제 하늘 위의 관리자 놈들이 청소하러 올 것이다. 네놈들이 흘린 피도, 눈물도, 저주받을 이 세계의 역사도 전부 말이다……."

그 말을 끝으로 마왕 아르카논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져 허공으로 흩어졌다.

거대한 육체는 한 줌의 검은 재가 되어 알현실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정적이 찾아왔다.

귀를 찢을 듯 울리던 굉음도, 뼈를 시리게 하던 마력의 폭풍도 거짓말처럼 멎었다.

쿵.

세온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의 잿더미를 적셨다. 헐떡이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왔지만 그보다 먼저 밀려온 것은 지독한 탈진과 멍한 허탈감이었다.

'끝났다.'

정말로 끝났다.

열아홉에 검을 쥐고 고향을 떠난 뒤로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던 10년이었다.

등 뒤에 남겨진 수많은 무덤들. 함께 웃고 울며 전장을 누비다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던 전우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세온!"

다급한 외침과 함께 발소리가 울렸다.

알현실 입구의 무너진 잔해를 헤치고 세 사람이 달려왔다.

은발을 흩날리며 달려온 성녀 리아 엘세르가 세온의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낡고 찢긴 순례복 차림이었지만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오직 세온을 향한 걱정만이 가득했다.

"숨 쉬세요, 제발……! 신이시여, 고통을 거두시고 이 상처를 보듬으소서!"

리아가 떨리는 두 손을 모으자 눈부신 신성력이 피어올라 세온의 어깨와 가슴을 감쌌다.

찢겨 나갔던 근육과 혈관이 신성한 온기 속에서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피가 멎고 극심했던 통증이 가라앉자 세온은 간신히 숨을 내뱉었다.

"리아……."

"말하지 마세요. 아직 마력 독기가 다 빠지지 않았어요."

리아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마왕의 잿더미를 보며 안도와 슬픔이 뒤섞인 숨을 삼켰다.

"해냈군요. 정말로 우리가 해냈어요."

그 뒤로 카엘 로던이 비틀거리며 걸어와 부서진 돌기둥에 등을 기댔다.

손에 쥐었던 단검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은 그는 땀과 그을음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하! 진짜 뒤지는 줄 알았네. 야, 용사님. 나 방금 전까지 저 괴물 뿔에 꿰여서 통구이 되는 상상만 백 번은 했다고."

카엘은 가슴팍을 두드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끝났지? 진짜 끝난 거 맞지? 이제 나 은퇴한다. 왕도고 뭐고 따뜻한 남쪽 바닷가에 가서 과수원이나 차릴 거야. 더 이상 칼 들 일은 죽어도 없어."

"아직 긴장을 풀면 안 돼요."

날카롭고 또렷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붉은 머리를 짧게 자른 마도공학자 미라 제린이었다. 그녀는 한쪽 눈에 장착된 황동 증폭 렌즈를 연신 깜빡이며 옥좌 주변의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손에 든 마도 기록판에 깃펜을 바쁘게 놀리던 미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해요. 마왕이 소멸하면 방출되어야 할 잔류 마나가 주변으로 퍼지지 않아요. 마치 허공에 뚫린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데이터처럼 증발하고 있어요."

"데이터?"

세온이 묻자 미라는 렌즈를 만지작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 학회 전문용어예요. 마나의 기본 입자 구성 정보 같은 건데…… 어쨌든 마왕성의 마도 회로 자체가 외부에서 강제로 차단되는 느낌이에요."

"어려운 소리 하지 마라, 제린. 괴물이 뒈졌으면 그냥 끝난 거지."

카엘이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살아남았다.

출발할 때는 마왕을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 대륙의 절반이 불타고 왕국들이 무너지는 지옥도 속에서 오직 서로만을 의지해 여기까지 왔다.

세온은 피 묻은 손을 들어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너희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먼저 떠나간 이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하나하나 부르며 세온은 마침내 찾아온 안식을 음미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웅——.

기이한 파동이 마왕성 전체를 뒤흔들었다.

지진이 아니었다.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법칙 자체가 삐걱거리는 듯한 소름 끼치는 이명이었다.

"……어?"

카엘이 고개를 들었다.

알현실의 무너진 천장 너머 검붉은 마계의 하늘이 보였다.

붉게 타오르며 소용돌이치던 먹구름이 일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딱 멈추어 섰다. 허공을 떠돌던 불씨도, 흩날리던 잿가루도 허공에 박제된 듯 정지했다.

소리가 사라졌다.

바람 소리도, 거친 숨소리도, 무너진 돌무더기의 바스락거림조차 지워진 완벽한 무음(無音).

찌이이익.

하늘 한가운데에 새하얀 균열이 그어졌다.

그것은 번개나 마법의 흔적이 아니었다. 맑은 청백색의 기하학적 선들이 격자무늬를 그리며 하늘 전체로 뻗어 나갔다.

마치 거대한 유리창 위에 글씨를 새겨 넣듯 허공에 푸른빛을 띤 투명한 직사각형 창이 떠올랐다.

대륙의 하늘 절반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공지창이었다.

[정기 서버 점검 안내]

  • 대상 서버: 엘데라 (서버군 07)
  • 점검 사유: 튜토리얼 퀘스트 '마왕 토벌' 완료에 따른 무결성 검증 및 잔여 프로세스 정리
  • 점검 일시: 현재 시점으로부터 72시간 후
  • 점검 내용: 전 대륙 데이터 무결성 검사, 잔여 인과율 로그 정리, 전체 데이터 롤백(초기화) 진행

[주의: 점검 개시 시점(72:00:00) 이후 미등록 데이터는 모두 삭제되며 모든 상태는 초기 생성 시점으로 복구됩니다.]

세온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흔들렸다.

글자 하나하나가 망막에 똑똑히 박혀 들어왔다.

서버 점검.

튜토리얼 퀘스트.

데이터 롤백.

전체 초기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차갑고 기계적인 의미는 뼛속까지 시리게 파고들었다.

"저게 뭐지?"

세온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마왕의 낫이 가슴을 뚫고 들어왔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세온은 곁에 있던 리아를 돌아보았다.

"리아, 저 하늘에 뜬 글자가 보이나?"

"네……?"

리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하늘을 뒤덮은 청백색의 거대한 사각 창이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리아의 표정에는 공포나 경악이 없었다.

오히려 경건하고 황홀한 감정이 그녀의 얼굴에 번져 나가고 있었다.

"아…… 아름다워요. 하늘에서 신성한 서광이 내려오고 있어요."

"서광이라고? 저 글자가 안 보여?"

"글자라니요? 저것은 신들의 은총이에요. 우리가 마왕을 쓰러뜨린 것을 하늘의 신들께서 축복해 주시는 거예요. 저 따스한 빛의 고리가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리아의 목소리에는 티끌만 한 의심도 없었다.

세온은 경악하며 카엘을 쳐다보았다.

"카엘, 너는? 저기 적힌 공지문이 안 읽혀?"

카엘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뭔 헛소리야, 세온. 마왕이 죽으면서 남긴 마력 찌꺼기가 하늘에 번진 거잖아. 번쩍번쩍해서 눈부셔 죽겠구만 글자는 무슨 놈의 글자야. 너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헛것 보는 거 아니냐?"

"미라! 렌즈로 봐봐! 저기에 분명히……!"

미라는 증폭 렌즈의 배율 다이얼을 빠르게 돌리며 하늘의 격자무늬를 응시했다. 그녀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믿을 수 없어요. 대기 전체에 극도로 정밀한 기하학적 마나 간섭 무늬가 펼쳐져 있어요. 이건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파형이 아니에요. 하지만 글자라뇨? 제 렌즈에는 판독 불가능한 고대 암호문 형태의 노이즈로만 잡혀요."

동료들의 반응을 확인한 세온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볼 수 없다.

그들에게는 저 거대한 글자가 보이지 않고 오직 신의 축복이나 단순한 마력의 잔향으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오직 세온의 눈에만 저 차가운 문장이 읽히고 있었다.

'튜토리얼……?'

마왕 아르카논이 죽어가며 내뱉었던 유언이 벼락처럼 뇌리를 때렸다.

  • 네놈이 방금 끝마친 것은 고작 튜토리얼에 불과할 뿐. 이제 관리자 놈들이 청소하러 올 것이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패배자의 악에 받친 헛소리가 아니었다.

10년 동안 피를 흘리며 싸워온 이 전쟁이.

고향을 잃고 울부짖던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이.

세온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던 동료들의 마지막 유언이.

전부 저들이 말하는 '튜토리얼'에 불과했단 말인가?

그리고 72시간 뒤에는 점검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지워진단 말인가?

띠링——.

고막을 꿰뚫는 날카로운 전자음이 세온의 귓가를 강타했다.

세온은 비명을 참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늘의 거대한 공지창 옆으로 오직 세온의 시야 한가운데에만 붉은색의 반투명한 알림창이 쏟아져 내렸다.

[경고: 규격 외 파라미터 감지]

[개체 '한세온'의 인과율 고정치 초과 발생]

  • 원인: 마왕 '아르카논' 최종 타격 및 의식 소멸 트리거 직접 실행
  • 판정: 시스템 무결성 오류 개체

[오류 조정 프로토콜에 따라 해당 개체에 특수 권한을 임시 이양합니다.]

[고유 권한 획득: '최종 클리어러(Final Clearer)']

  • 효과: 관리자 공지 및 시스템 로그 열람 가능
  • 효과: 세계 롤백 시 인과율 간섭 권한 부여 (제한적)

[점검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71:59:59]

하늘에 떠 있던 거대한 숫자의 마지막 자리가 60에서 59로 깎여 내려갔다.

째깍.

마치 거대한 시계의 초침이 세계의 심장을 짓밟으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세온? 왜 그러세요? 얼굴이 너무 창백해요!"

리아가 놀라 세온의 팔을 붙잡았다.

카엘도 장난기를 지우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다가왔다.

"어이, 친구. 진짜 어디 심각하게 다친 거 아니야? 야, 리아! 신성력 더 부어봐!"

"아니에요, 외상은 전부 아물었는데…… 세온의 마력 파형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어요!"

동료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자신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이 세계가, 살아남았다는 기쁨을 나누는 지금 이 순간이, 고작 72시간 뒤면 전부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그들의 기억도 상처도 존재했던 흔적조차 하얗게 지워져 버린다는 사실을.

세온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부서진 성검을 집어 들었다.

검신에 비친 자신의 검은 눈동자 위로 붉은 오류 로그와 71시간 59분의 카운트다운이 선명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신들이 세계를 지우겠다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겁고 서슬 퍼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10년이었다.

죽을힘을 다해 기어 올라온 이 삶을 동료들이 목숨을 바쳐 만들어낸 이 내일을 정기 점검 따위로 지우게 둘 수는 없었다.

"누구 마음대로 리셋이야."

세온의 입술 사이로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온……?"

리아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세온은 피투성이가 된 검을 고쳐 쥐며 하늘의 거대한 공지창을 노려보았다.

세계의 종말까지 남은 시간은 72시간.

관리자라 불리는 신들을 향한 용사의 진짜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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