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던전이 열렸다

8화: 복도의 감시자
철문 아래 틈으로 들어온 검은 발톱이 바닥을 깊게 긁었다.
끼기긱.
시멘트 바닥이 갈려 나가며 희끄무레한 돌가루가 일었다. 발톱은 멈추지 않고 위로 꺾여 철문 밑단을 쥐어뜯듯 움켜쥐었다.
"밀어!"
박태식이 낮게 외치며 방송실 교탁을 문짝에 온몸으로 밀어붙였다. 굵은 목덜미의 핏줄이 터질 듯 솟아올랐다.
민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방송용 랙 선반을 끌고 와 교탁 뒤를 받쳤다. 아름은 뒤에서 문고리 걸쇠를 양손으로 억눌렀다. 수진도 어깨를 맞대고 체중을 실었다.
김한결은 간이 절단창을 쥔 채 문틈을 응시했다. 틈새로 파고든 발톱은 사람 손가락의 세 배는 족히 되어 보였다. 검붉은 때와 마른 핏자국이 엉겨 붙은 흉측한 형상이었다.
한결은 숨을 멈추고 절단창 끝을 내질렀다.
캉!
날카로운 금속음이 복도를 울렸다. 칼날이 파고들기는커녕 두꺼운 강철판을 찌른 것처럼 손목으로 둔탁한 충격이 되돌아왔다.
동시에 한결의 시야에 붉은빛이 번쩍였다.
[경고: 네임드 몬스터 조우]
[이름: 복도의 감시자]
[등급: C+]
네임드 몬스터.
고블린 따위와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철문 너머에서 폐부를 찌르는 듯한 거친 숨소리가 훅 끼쳐왔다. 고블린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깊고 축축한 기운이었다.
크르르르.
낮게 깔리는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문틀을 타고 방송실 바닥까지 흔들었다. 놈은 문틈에 꽂힌 발톱을 지렛대 삼아 철문을 단번에 비틀어 올렸다.
뿌드득!
철문 위쪽 경첩에서 굵은 나사못 두 개가 튕겨 나갔다.
"태식아, 버텨!"
수진이 소리쳤지만 괴물의 완력은 다섯 사람의 무게를 통째로 밀어내고 있었다.
콰앙!
밖에서 거대한 몸체가 문짝을 들이받았다. 책상으로 만든 걸쇠가 산산조각 나며 쪼개졌다.
"피해!"
한결이 외치며 아름과 민수의 옷깃을 낚아챘다.
다음 순간 철문이 방송실 안쪽으로 굉음을 내며 뜯겨 나갔다.
먼지와 쇳가루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입구에 거대한 그림자가 우뚝 섰다.
2미터가 훌쩍 넘는 키였다. 어깨는 기형적으로 넓었고 양팔은 바닥에 닿을 만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온몸은 칼날도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질기고 검은 가죽으로 덮여 있었다.
가장 기괴한 것은 얼굴이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탁하게 굳은 백태만이 가득 차 있었다. 완전히 퇴화한 눈이었다.
대신 사람의 머리통만 한 뾰족한 귀가 쉴 새 없이 파닥거리며 공기의 떨림을 잡아내고 있었다. 콧구멍은 연신 들썩이며 방송실 안의 냄새를 들이마셨다.
크아아앙!
괴물이 천장이 울리도록 포효했다.
놈의 고개가 단번에 한 방향으로 꺾였다. 태식의 팔에 난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 냄새를 맡은 것이었다.
"이 괴물 새끼가!"
태식이 바닥에 굴러다니던 철제 의자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놈의 머리통을 향해 내리쳤다.
콰앙!
의자의 굵은 파이프 다리가 처참하게 찌그러졌다.
하지만 복도의 감시자는 고개만 살짝 젖혀졌을 뿐이었다. 놈의 길쭉한 팔이 채찍처럼 허공을 갈랐다.
퍽!
"컥!"
태식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 방송실 중앙 콘솔 모서리에 부딪힌 태식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어깨의 옷이 찢겨 나가며 네 줄기의 깊은 상처가 벌어졌다. 붉은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태식아!"
아름이 경악하며 외쳤다.
괴물은 쓰러진 태식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딛었다.
한결은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도약했다.
놈의 신경이 태식에게 쏠린 찰나였다. 한결은 간이 절단창을 쥔 두 손에 온 체중을 실어 괴물의 드러난 옆구리를 깊숙이 찔렀다.
푸욱!
가죽을 뚫고 칼날이 들어가는 감각이 손끝에 전해졌다.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파고든 깊이는 고작 손가락 한 마디에 불과했다. 두꺼운 근육과 뼈까지는 전혀 닿지 못했다.
괴물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거칠게 비틀었다.
쩌정!
절단창 끝에 테이프로 고정했던 커터칼날이 버티지 못하고 반 토막 나며 부러졌다.
놈의 거대한 발톱이 한결의 가슴팍을 향해 쇄도했다.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파열음이 귓전을 때렸다.
한결은 본능적으로 바닥을 굴렀다.
쿠구구궁!
발톱이 스쳐 지나간 바닥의 리놀륨 타일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며 콘크리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태식은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고 한결의 무기는 부러졌다. 놈은 피 냄새에 취해 날뛰며 다시 발톱을 치켜들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치이이익——!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맹렬한 하얀 연기가 괴물의 얼굴을 뒤덮었다.
수진이었다. 벽에 걸려 있던 분말소화기 안전핀을 뽑아 놈의 얼굴과 콧구멍을 향해 직격으로 분사하고 있었다.
크에에엑!
예민한 후각을 자극받은 괴물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거칠게 기침을 토해냈다.
"민수야, 지금!"
수진이 외쳤다.
민수는 공포에 질려 있으면서도 수진의 신호를 놓치지 않았다. 민수는 콘솔 뒤편으로 기어가 마이크 연결 케이블을 대형 모니터 앰프 단자에 무작정 쑤셔 박았다. 그리고 메인 볼륨 노브를 끝까지 비틀어 올렸다.
끼이이이이익——!
귀청을 찢을 듯한 초고주파 하울링이 방송실 천장 스피커 네 개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악!
복도의 감시자가 온몸을 비틀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소리와 진동에 극도로 특화된 괴물의 고막에 마이크 피드백은 뇌를 직접 쑤시는 것과 같은 극통이었다. 괴물은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벽과 캐비닛을 마구잡이로 들이받기 시작했다.
"태식이 부축해!"
한결이 소리치며 달려가 태식의 다른 쪽 팔을 어깨에 걸쳤다. 아름이 반대편을 받쳤다.
수진이 빈 소화기통을 내던지고 방송실 안쪽에 위치한 두꺼운 철문을 가리켰다.
"녹음실! 저기 방음 부스야!"
다섯 명은 미친 듯이 몸을 날려 녹음 부스 안으로 뛰어들었다.
수진이 문을 닫고 회전형 잠금 레버를 힘껏 돌렸다.
철컥!
두꺼운 방음문이 닫히자 바깥의 찢어지는 하울링과 괴물의 비명이 일순간 둔탁한 울림으로 잦아들었다.
부스 안으로 들어선 태식이 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쿨럭... 젠장..."
태식의 입술 사이로 피거품이 섞여 나왔다.
아름이 떨리는 손으로 교복 셔츠 소매를 찢어 태식의 어깨 상처를 꽉 동여맸다.
"숨 깊게 쉬지 마. 태식아, 내 눈 봐."
아름이 침착하게 태식의 뺨을 두드리며 의식을 붙들었다.
민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 헐떡였다.
"저게 뭐야... 고블린 같은 게 아니잖아... 우릴 다 찢어 죽이려고..."
한결은 부러진 절단창의 알루미늄 자를 내려다봤다. 손잡이를 감은 박스테이프가 피와 땀에 젖어 끈적였다.
쿵!
녹음 부스 정면의 대형 강화 유리창이 크게 흔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유리창으로 쏠렸다.
하얀 분말가루를 뒤집어쓴 복도의 감시자가 부스 유리창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놈은 눈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방음문 틈새로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숨결과 유리창을 두드리는 온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쿵!
괴물이 이마로 강화 유리를 들이받았다.
쩌적.
두꺼운 이중 강화 유리 표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길게 뻗어 나갔다.
민수가 턱을 덜덜 떨었다.
"유리... 깨져... 저거 깨지면 여긴 독 안에 든 쥐라고..."
수진이 부스 안을 둘러봤다.
"창문은 없어. 환풍구는 사람 머리도 안 들어갈 크기야. 도망칠 곳은 없다."
"그럼 어떻게 해?"
민수의 목소리가 울먹임으로 번졌다.
한결은 유리창 너머의 괴물을 응시했다.
놈의 거대한 몸체와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부서져 가는 유리.
"1층 매점으로 도망치는 것도 안 돼."
한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수진이 한결을 돌아봤다.
"매점 셔터 때문이지?"
"그래."
한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점 셔터는 이미 손상이 18퍼센트야. 저 놈을 달고 1층까지 내려가면 셔터는 1분도 못 버티고 뜯겨. 거기 남은 부상자들이랑 아주머니, 선생님까지 전부 몰살당해."
태식이 핏물을 뱉어내며 거칠게 웃었다.
"결국... 여기서 저 새끼를 찢어 죽여야 끝난다는 거네."
"그래."
한결이 가방을 바닥에 쏟아냈다.
가방 안에서 매점 물품들이 굴러떨어졌다. 미처 조합하지 않은 굵은 컴퍼스, 순간접착제, 스테이플러 심, 남은 테이프 롤, 그리고 방송실 바닥에서 주워 온 두꺼운 마이크 스탠드 파이프.
한결의 망막에 조합 시스템의 푸른 문자들이 쉴 새 없이 명멸했다.
놈의 약점은 이미 확인되었다.
극도로 발달한 청각과 후각.
그것은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고주파 소음에는 뇌가 흔들릴 정도의 통증을 느끼고 자극성 분말에는 호흡을 가누지 못한다.
두꺼운 가죽으로 뒤덮인 등이나 어깨와 달리 목덜미 안쪽과 무릎 뒤 힘줄은 급소를 노릴 수 있는 유일한 틈이었다.
"내가 무기를 만들게."
한결이 컴퍼스와 마이크 스탠드 파이프를 잡았다.
[조합 제작 후보 검색 중...]
[마이크 스탠드 + 대형 컴퍼스 침 + 순간접착제]
[결과: 관통형 충격 창]
[제작 비용: 45포인트]
한결이 고개를 들어 동료들을 바라봤다.
"유리가 깨지면 놈은 소리와 냄새가 나는 쪽으로 먼저 덤벼들 거야. 한 명이 시선을 끌고 한 명이 놈의 청각을 흔들어야 해. 그리고 다리를 묶어야 내가 목을 찌를 수 있어."
수진이 바닥에 뒹굴던 작은 예비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후각은 내가 맡을게. 놈이 들어오는 순간 면상에 한 번 더 쏠 거야."
태식이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상처를 부여쥔 손에는 부러진 의자 다리가 단단히 쥐여 있었다.
"다리통은 내가 건다. 내 팔 한 짝 뜯겨도 저 새끼 무릎은 꺾어 놓을 테니까 찌르기나 똑바로 해."
아름이 태식의 옆에 섰다.
"내가 태식이 뒤에서 균형 잡을게."
민수도 떨리는 손으로 남은 케이블 선을 양손에 단단히 감아쥐었다.
"나... 나도 걸려 넘어지게 발목은 잴 수 있어..."
도망칠 곳은 없었다.
물러설 자리도 없었다.
쩌저적!
강화 유리가 비명을 지르며 하얗게 갈라졌다. 괴물의 검은 이빨이 유리 파편 너머로 흉흉하게 드러났다.
한결의 손안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제작."
새로운 무기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괴물의 흉포한 포효와 함께 마침내 유리창이 거대한 파열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