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한 랭커가 던전을 무시함

2화: 문 좀 닫자
서울 안전구역 동문 상공이 먹물을 엎지른 것처럼 새까맣게 물들었다.
사이렌이 찢어지는 소리로 울렸다.
― 위잉! 위잉!
동문 감시탑 확성기에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상공 결계선에 돌발 게이트 발생!"
"코드 레드다! 전원 차단벽 안으로 철수해!"
바리케이드 앞에 서 있던 피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아이를 안은 여자는 바닥을 기다시피 하며 철문 안쪽으로 몸을 던졌다.
동문을 감싸고 있던 푸른 결계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치지지직!
검은 틈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결계에 부딪힐 때마다 굵은 불꽃이 튀었다. 결계 표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지며 매캐한 유황 냄새가 쏟아졌다.
강아린이 세검을 뽑아 들었다. 푸른빛 마력이 칼날을 따라 파르르 떨렸다.
"결계 직격형이라고? 이런 위치에 게이트가 열릴 리가 없는데……!"
그녀는 고개를 돌려 성운의 팔을 붙잡으려 했다.
"한성운 씨! 어서 방공호로 피해요! 결계를 직접 갉아먹는 이상 변종이에요!"
성운은 팔을 가볍게 뒤로 빼며 손길을 피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붉은 금이 번쩍이는 검은 균열.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는 지독할 정도로 익숙했다.
피비린내와 썩은 쇠 냄새 그리고 공간이 뒤틀릴 때 풍기는 역겨운 마력 찌꺼기. 발할라의 마왕성 앞에서 숱하게 맡았던 차원문의 악취였다.
성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구라더니 냄새는 저 동네랑 다를 게 없네."
"혼잣말할 때가 아니에요! 빨리 피하지 않으면……!"
아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늘이 갈라졌다.
콰아아앙!
푸른 결계 한가운데가 뚫리며 검은 구멍이 벌어졌다. 그 틈새에서 칠흑 같은 날개를 펄럭이는 마수 세 마리가 쏟아져 나왔다.
박쥐 몸뚱이에 독수리 부리를 단 거대한 괴물들이었다. 양 날개 폭이 5미터를 넘었고 번들거리는 발톱은 자동차 보닛도 종잇장처럼 찢을 듯 흉흉했다.
"흑익수(黑翼獸)다!"
감시탑 경계병이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B급 비행 마수 세 마리 급강하! 진입로에 민간인이 있다!"
철문이 덜컹거리며 닫히기 시작했다. 바닥에 엎어진 아이는 울음조차 터뜨리지 못한 채 숨을 헐떡였다.
끼에에엑!
공기를 찢는 괴성과 함께 선두의 흑익수가 아이와 여자를 향해 내리꽂혔다.
아린이 바닥을 박차며 아이 앞을 가로막았다.
"물러서요!"
검끝에서 푸른빛의 마력 칼날이 솟구쳤다. B급 헌터다운 기민한 움직임이었지만 날아드는 마수는 셋이었고 속도는 눈으로 쫓기 힘들 만큼 빨랐다.
'적어도 아이는……!'
아린이 이를 악물며 어깨를 내던지려던 찰나였다.
성운이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느릿하게 내딛는 듯한 걸음이었지만 아린의 시야에는 그가 언제 앞으로 나갔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야."
성운의 입에서 짧은 핀잔이 튀어나왔다.
"먼지 날리잖아."
그는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칼집에서 검신이 채 반 뼘도 빠져나오지 않았다.
채앵.
맑고 가벼운 쇳소리가 한 번 울렸을 뿐이다. 성운은 검을 뽑자마자 도로 칼집에 밀어 넣었다.
투둑.
공중에서 기괴한 침묵이 흘렀다.
내리꽂히던 흑익수 세 마리의 몸통에 일직선의 은빛 선이 그어졌다. 날카로운 궤적은 마수들의 가죽과 뼈뿐만 아니라 두르고 있던 검은 돌풍까지 양단했다.
푸화학!
검은 피가 허공에 분수처럼 터졌다. 세 마리의 거대한 몸뚱이가 여섯 조각으로 갈라지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잘려 나간 날개와 몸통이 바리케이드 앞마당에 나뒹굴었다.
피보라가 사방으로 흩날렸지만 성운의 몸에는 단 한 방울도 닿지 못했다. 투명한 결계가 핏물을 허공에서 튕겨 냈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피난민들은 멍하니 잘린 마수 사체를 쳐다보았다.
아린의 세검이 허공에서 멈췄다.
'뭐가 지나간 거지?'
검을 다 뽑지도 않았다. 기합도 없었다. 그저 칼집을 살짝 비틀었을 뿐인데 B급 비행 마수 셋의 숨통이 동시에 끊어졌다.
감시탑 위의 경계병들도 얼어붙었다.
하지만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우르르릉!
상공의 검은 균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흑익수 세 마리가 죽자마자 게이트 안쪽에서 한층 거대한 마력 파도가 밀려들었다.
지름 10미터 남짓하던 균열이 수십 미터로 찢어지며 붉은 번개가 소용돌이쳤다.
구멍 너머의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붉은 안광이 번뜩였다. 맹수들의 울부짖음과 날갯짓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 비상! 게이트 2차 팽창 감지! 마력 반응 A급 돌파!
― 전 대원 즉시 후퇴!
아린의 안색이 다시 창백해졌다.
"A급……? 저런 게 도심 한복판에 쏟아지면……!"
동문 일대는 물론 안전구역 외곽 전체가 쓸려 나갈 규모였다. 최소한 대형 길드의 정예 공격대가 와야만 수습할 수 있는 재앙이었다.
"피해야 해요! 한성운 씨, 어서……!"
아린이 다급하게 성운을 불렀다.
그러나 성운은 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배를 슬쩍 문지르더니 찌푸린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저거 다 쏟아지면 여기 밥집도 다 박살 나겠네."
"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10년 만에 왔는데 국 한 그릇 먹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
성운이 혀를 찼다.
그의 다리에 가볍게 힘이 들어갔다.
콰아아앙!
성운의 발끝에서 방출된 힘이 공간을 딛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슈우우웅!
성운의 신형이 중력을 비웃듯 수직으로 치솟았다.
아린의 시야에서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 저 사람 어디 가?!"
"하늘로 뛰어올랐다고?!"
단숨에 수십 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른 성운은 소용돌이치는 검은 게이트 바로 앞에 멈춰 섰다.
붉은 번개가 성운을 집어삼키려 날뛰었다. 구멍 안쪽에서는 수십 마리의 마수가 침을 흘리며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러나 성운은 머리칼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번개는 그의 몸에 닿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바스러졌다.
성운은 오른손을 뻗었다.
검을 뽑지도 않았다.
그는 허공에 벌어진 차원의 틈새, 그 날카로운 검은 경계면을 맨손으로 덥석 쥐었다.
마치 덜 닫힌 미닫이문의 문짝을 붙잡듯이.
"……?!"
아래에서 지켜보던 아린의 눈이 커졌다.
공간의 균열을 손으로 잡는다고?
차원문은 질량을 가진 물체가 아니라 뒤틀린 시공간의 통로였다. 맨손으로 쥘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운의 손아귀에서는 푸른빛과 은빛이 뒤섞인 절대적인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발할라의 차원을 부수고 마왕의 심장을 으스러뜨렸던 만렙의 힘.
지구 시스템으로는 등급조차 매길 수 없는 절대자의 마력이 검은 균열 전체를 강제로 옭아맸다.
콰드득! 콰지지직!
강철판이 구겨지는 듯한 비명이 허공을 갈랐다.
성운이 팔을 안쪽으로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문 좀 닫고 다녀라."
쩌저적!
성운의 손아귀를 기점으로 검은 구멍이 우그러들기 시작했다.
게이트 안쪽에서 쏟아져 나오려던 마수들의 비명이 처절하게 끊겼다. 억지로 벌어졌던 차원의 틈이 거대한 압력에 밀려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쾅!
허공에서 한 차례 둔탁한 폭음이 울렸다.
붉은 번개도 검은 연기도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지름 수십 미터에 달하던 검은 게이트는 허공에 은색 불꽃 몇 점만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먹구름이 걷히듯 햇살이 다시 쏟아져 내렸다.
하늘은 맑고 평온했다.
바람에 날리던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동문 앞에는 그 누구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탁.
성운이 가볍게 지면에 내려앉았다.
그는 옷소매에 묻은 보이지 않는 먼지를 툭툭 털어 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잡벌레들이 자꾸 기어 나오네."
주변은 완벽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감시탑 위의 경계병은 쥐고 있던 망원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수비대장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게이트가…… 닫혔어?"
"보스 몬스터도 안 나왔는데…… 방금 저 남자가 쥐어짜서……?"
바리케이드 뒤에 숨어 있던 피난민들도 넋을 잃고 성운을 바라보았다.
아린은 들고 있던 세검을 떨어뜨릴 뻔했다.
'게이트를 손으로 닫았어.'
지구에서 게이트를 닫는 방법은 내부 보스를 처치하거나 자연 소멸할 때까지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저 남자는 하늘로 뛰어올라 게이트를 멱살 잡듯 구겨 닫아 버렸다.
저건 B급도 A급도 아니었다. 국내에 몇 명 없다는 S급 헌터들조차 이런 황당한 짓을 벌이지는 못한다.
성운이 굳어 있는 아린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왔다.
"저기요."
"……네? 네!"
아린이 놀라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성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제 배를 툭툭 쳤다.
"아까 말한 식당 안 닫았겠지?"
"……식당이요?"
"그래. 밥 나온다는 곳."
아린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하늘을 찢고 내려오던 재앙을 맨손으로 우그러뜨린 괴물이 지금 진지하게 묻고 있는 것은 고작 국밥 한 그릇의 안위였다.
"아…… 네. 골목 안쪽에 있어서 여파는 안 갔을 테니까요."
"그럼 빨리 가자. 배고파서 쓰러지겠다."
성운이 앞장서서 바리케이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수비대원들은 성운이 다가오자 기겁하며 양옆으로 길을 텄다. 총구를 겨누기는커녕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수비대장 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무전기를 움켜쥐고 구석으로 물러섰다.
"본부! 긴급이다! 동문 게이트 파괴 확인!"
― 뭐? 파괴? 무슨 소리야!
"미등록자입니다! 어떤 남자가 맨손으로 게이트를 찢어서 닫아 버렸습니다! 지금 안전구역 내부로 진입 중입니다!"
무전기 너머에서 경악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성운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활짝 열린 철문을 지나 안전구역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바깥의 황량한 폐허와 달리 안쪽은 빽빽한 가설건물과 천막들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아린이 종종걸음으로 성운의 곁을 따라붙었다.
그녀의 시선은 쉴 새 없이 성운의 옆모습을 훑었다. 평범한 옷차림에 나른해 보이는 인상. 도저히 방금 전 하늘을 갈랐던 존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저기…… 한성운 씨."
"왜."
"정체가 뭐예요? 각성자 협회 소속이 아니신 건 확실한데 해외 길드에서 오셨어요? 아니면 비밀 특수 부대 같은……."
"그냥 백수야."
성운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백수요? 백수가 게이트를 손으로 닫는다고요?"
"귀찮게 하잖아. 문을 열어 뒀으면 닫아야지."
성운의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투여서 아린은 할 말을 잃었다.
골목을 두 번 꺾어 들어가자 낡은 함석지붕을 얹은 작은 식당이 나타났다.
삐걱거리는 간판에는 희미하게 지워진 글씨가 적혀 있었다.
― 서울식당.
가게 안쪽에서 구수한 고기 육수 냄새가 바람을 타고 풍겨 나왔다.
성운의 코끝이 반응했다.
10년 동안 맡지 못했던 진짜 고향의 냄새였다. 마왕의 피 냄새도 차원의 유황 냄새도 아닌 평범하고 따뜻한 밥 냄새.
성운의 입꼬리가 아주 희미하게 올라갔다.
"냄새 좋네."
그가 미닫이문을 옆으로 밀었다.
드르륵.
가게 안쪽에서 허름한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바깥에서 울린 굉음 때문에 냄비를 쥔 손을 떨고 있던 참이었다.
성운은 문지방을 넘으며 아주 자연스럽게 소리쳤다.
"이모, 국밥 두 개요. 고기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