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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음성메시지1화

미래에서 온 음성메시지

미래에서 온 음성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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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17분의 경고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낡은 다세대주택 3층. 습기를 가득 머금은 가을 밤공기가 계단참을 따라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강도윤 경위는 오랫동안 칠이 벗겨진 철제 현관문 앞에 서서 장갑을 낀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먼지 냄새와 오래된 곰팡이 냄새가 좁은 복도를 채우고 있었다. 3개월 전 실종되었다가 일주일 전 기적적으로 집으로 돌아온 윤하린의 거처였다.

"도윤 선배, 윤하린 씨 본인과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은 게 어제 오후 4시예요."

파트너 한서린 경위가 계단을 올라오며 신분증 목걸이를 정돈했다. 날카로운 눈매에 피로함이 서려 있었다.

"돌아온 뒤로 경찰 신변 보호도 한사코 거부했잖아. 집 바깥으로 한 걸음도 안 나오고 창문마다 암막 블라인드를 내려놓았고."

도윤이 낮게 중얼거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디지털 도어록은 이미 수사용 마스터키로 해제되어 있었다.

집 안은 어두웠다. 거실 겸 주방에는 뜯지 않은 배달 음식 용기와 사흘 치 통조림 캔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30미터 남짓한 원룸 안쪽 창문은 서린의 말대로 두꺼운 검은색 암막 커튼으로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마치 외부의 그 무엇도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막고 내부의 빛조차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봉인해 둔 공간 같았다.

서린이 플래시를 비추며 방 안쪽을 수색했다.

"사람 흔적은 없어요. 옷가지 몇 개가 사라졌고 방금까지 사람이 앉아 있던 것처럼 침대 솜이 눌려 있어요. 또다시 스스로 잠적한 걸까요?"

"아니, 스스로 나간 거라면 이걸 두고 갔을 리가 없어."

도윤이 거실 구석 식탁 위에 놓인 투명 증거물 봉투를 가리켰다. 봉투 안에는 지난 실종 수사 당시 회수되어 수사팀이 보관하다가 귀가 후 본인에게 전달했던 윤하린의 구형 스마트폰이 들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전원이 꺼진 채 증거물 봉투 속에 고이 잠들어 있어야 했다. 윤하린 본인이 돌아온 뒤 새 단말기를 개통해서 썼기 때문에 이 구형 폰은 단순 보관용 증거물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순간 증거물 봉투 안에서 나직한 기계음이 울렸다.

위잉.

도윤과 서린의 시선이 동시에 투명 봉투로 쏠렸다. 꺼져 있던 구형 스마트폰의 창백한 화면이 액정 백라이트를 밝히며 환하게 점등했다. 외부 전원 케이블도 연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뭐죠? 저 휴대폰, 전원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상태로 봉인해 둔 거 아니었어요?"

서린이 플래시 빛을 휴대폰으로 가져가며 눈을 찌푸렸다.

단말기는 이동통신사 기지국 신호를 잡는 안테나 아이콘이 완전히 죽어 있었다. SIM 카드조차 제거된 상태였다. 그러나 액정 중앙에는 통화 앱이 아닌 로컬 시스템 알림 창이 하나 떠오르고 있었다.

[새 음성메시지가 수신되었습니다.]
[발신 시각: 2038-10-14 20:43:12]

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2038년 10월 14일 오후 8시 43분. 정확히 지금 이 순간 수신된 메시지였다. 기지국 통신도 와이파이 연결도 끊긴 기기 안으로 방금 수신 알림이 도착한 것이다.

도윤은 장갑을 낀 손으로 증거물 봉투의 봉인을 잘라내고 휴대폰을 꺼냈다. 차가운 유리 액정 위에 손가락을 대자 수신함 화면이 열렸다.

발신자 번호는 표시되지 않았다. 대신 파일 이름 자리에 기묘한 기호와 숫자가 조합되어 있었다.

[NODE17_REC_204312.wav]

"선배, 함부로 재생하지 마세요. 수사 방해용 악성 코드이거나 조작된 무선 신호일 수 있어요."

서린이 경계하며 도윤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도윤은 묘한 불길함에 이끌리듯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스피커폰을 활성화했다.

칙― 지직.

스피커 너머로 마치 강풍이 부는 철교 밑에서 녹음된 것 같은 찌르르한 저주파 잡음이 흘러나왔다. 금속이 마찰하는 듯한 고주파 잔향이 귀를 파고들더니 이어 낮고 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도윤아, 나다."

도윤의 손가락이 굳어졌다. 옆에 서 있던 서린 역시 흠칫 놀라며 도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강도윤 자신의 음성이었다.

단순히 흉내 낸 목소리가 아니었다. 도윤 본인만이 아는 흉부의 울림, 문장을 시작할 때 살짝 억누르는 낮고 거친 호흡 그리고 말끝을 정돈하며 들이마시는 쉼표까지 완벽하게 일치했다.

"시간이 없다. 잘 들어라. 윤하린은 17분 뒤에 죽는다."

음성 속 목소리는 급박했다. 누군가에게 쫓기며 어두운 골목을 질주하는 듯 헐떡이는 숨소리가 잡음 사이로 섞여 들었다.

"오후 9시 정각. 마포나루 옛 보급창고 지하 주차장 입구다. 검은 비닐 우의를 입은 놈이 뒤에서 접근한다. 망설이지 말고 총을 빼라."

도윤은 숨을 멈췄다. 찌르르한 전자 잡음이 다시 스피커를 메웠다.

"다시 말한다. 9시 정각이다. 네가 늦으면 윤하린은 죽고 사건은 영원히 묻힌다. 윤하린을 살려라, 강도윤."

뚝.

42초 분량의 음성 파일이 끝나자 스피커는 거짓말처럼 침묵에 빠졌다.

방 안에는 두 사람의 거친 호흡 소리만 남아 있었다.

서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휴대폰과 도윤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도윤 선배... 방금 그 목소리, 선배 목소리잖아요? 선배가 윤하린 씨 휴대폰에 따로 녹음해 둔 음성이에요? 아니, 말도 안 돼. 9시 정각이라니요?"

"내가 녹음한 적 없어."

도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기괴함보다 더 도윤의 덜미를 잡은 것은 메시지 속 억양이었다. 음성 속 남성은 도윤 자신의 목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말끝을 맺는 태도가 자신보다 훨씬 서늘하고 타협이 없었다. 마치 수많은 실패와 희생을 치르고 난 뒤의 사람처럼 지독하게 단단한 결의가 깔려 있었다.

도윤은 휴대폰 액정에 찍힌 시계를 노려보았다.

2038년 10월 14일 오후 8시 44분.

예고 시각인 오후 9시 정각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16분이었다.

"선배, 이거 딥페이크 음성 합성 장난이에요. 요즘 광역수사대 형사들 목소리 따서 범죄 예고 장난치는 놈들 수두룩해요. 윤하린 씨 위치부터 추적해서 관할 파출소에 지원 요청을―"

"아니, 딥페이크가 아니야."

도윤이 단호하게 서린의 말을 끊었다.

"내 성대는 7년 전 사고 때문에 왼쪽 후두 신경에 미세한 마비가 있어. 특정 고음으로 올라갈 때 아주 미세하게 주파수가 끊겨. 저 음성에는 그 결함까지 그대로 들어 있었어. 딥페이크 알고리즘은 내 목소리의 그 흉터까지 복제하지 못해."

도윤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원룸을 뛰어쳐나갔다. 서린이 뒤를 따라 계단을 내달렸다.

"선배! 마포나루 옛 보급창고면 여기서 차로 차 막히지 않아도 최소 10분 이상 걸려요!"

"그러니까 지금 출발해야 해!"

빌딩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가을비가 가늘게 흩날리고 있었다. 도윤은 흑색 SUV 수사 차량의 운전석 문을 열고 몸을 던졌다. 서린이 조수석에 올라타자마자 엔진이 굉음을 내며 폭발하듯 쏘아져 나갔다.

도윤은 운전대를 잡은 채 대시보드에 블루투스 마이크를 연결하고 국립과학수사원 신호분석실 류지안 연구관의 직통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건조한 여성의 목소리가 연결되었다.

  • 광수대 강도윤 경위님. 이 시간에 국과수 직통 라인으로 전화를 주시다니 미제 사건 건입니까?

"류 연구관님, 방금 내 휴대폰으로 파일 하나를 보냈습니다. 윤하린 사건 증거물 폰에서 추출한 음성 파일입니다. 지금 당장 신호 주파수 분석해 주세요. 딥페이크 합성 여부와 배경 잡음 패턴 확인이 필요합니다."

차량이 연남동 골목을 벗어나 성산로 대로변으로 급격히 회전했다. 타이어 마찰음이 빗길 위에서 비명을 질렀다.

전화선 너머에서 키보드 타자 치는 소리가 맹렬하게 이어졌다. 지안의 침착하면서도 건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 파일 수신했습니다. 즉시 1차 스펙트럼 분석 들어갑니다... 잠시만요.

몇 초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자동차 와이퍼가 전면 유리창의 빗물을 거칠게 닦아냈다. 대시보드의 디지털시계 숫자가 8시 48분으로 바뀌었다.

  • 이상하네요, 강 경위님.

지안의 목소리에 전에 없던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 음성 지문 분석 결과, 음성의 성대 진동과 인후두 공명 주파수가 강도윤 경위님의 생체 데이터와 99.8% 일치합니다. 기존 딥페이크 생성 모델이 가지는 디지털 불협화음 잔재가 전혀 없어요. 이건 진짜 강 경위님이 직접 마이크에 대고 말한 음성입니다.

"내가 직접 녹음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위조 가능성은요?"

  • 위조가 아닙니다. 하지만 더 이상한 건 배경 잡음이에요. 일반적인 휴대전화 마이크 대역인 300Hz에서 3.4kHz 사이 외에, 16Hz 이하의 초저주파 위상 불균형 잡음이 일정하게 깔려 있습니다. 마치... 특정 공간의 자장 격차를 통과하면서 신호가 부풀어 오른 것 같아요.

도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초저주파... 위상 불균형이라고요?"

  • 네. 데이터가 공간을 통과할 때 생기는 잔향 부호입니다. 제가 이 잡음 패턴을 이전에 본 적이 있어요. 7년 전, 폐기된 양자통신 연구 프로젝트... '노드 17'의 초기 시험 데이터에서 남았던 잔향 부호와 구조가 매우 닮았습니다.

7년 전. 노드 17.

그 단어가 지안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도윤의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봉인해 두었던 아득한 기억의 조각이 벼락처럼 터져 나왔다.

2031년 늦가을. 민관 합동 연구소의 폐쇄 구역. 당시 보안 요원으로 단기 근무하던 도윤은 굉음과 함께 연구소가 붕괴되던 사고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사고 직후 작성된 비공개 보안 보고서의 맨 아랫줄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었다. 그 뒤로 도윤의 기억 속에는 정확히 47초 동안의 공백이 굳은살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류 연구관님, 노드 17 잔향이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 실험은 7년 전에 완전히 파기되고 연구소도 철거됐습니다."

  • 저도 데이터 그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이 음성 파일의 헤더 기록을 보면 무선 기지국을 거친 기록이 없습니다. 양자 얽힘 부호화와 유사한 방식으로 데이터가 단말기 로컬 메모리에 직접 새겨진 흔적이 있어요. 발신 시각은 8시 43분 12초. 수신 시각도 동일합니다.

서린이 조수석에서 지안의 말을 듣고 도윤을 찌릿하게 바라보았다.

"도윤 선배, 노드 17이라니요? 선배가 7년 전에 근무했다던 그 연구소 이름 아니에요? 왜 오빠 사건이랑 연결된 기호가 거기서 나와요?"

서린의 목소리에 경계심과 의혹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 서린의 오빠 한재민 역시 7년 전 노드 17 연구소의 시스템 엔지니어였고 사고 직후 실종된 상태였다.

"나중에 설명할게. 지금은 윤하린부터 찾아야 해."

도윤은 엑셀을 끝까지 밟았다. 차량이 마포대교 진입로 옆 옛 보급창고 진입 도로로 꺾어 들어갔다.

대시보드 시계는 8시 54분을 지나고 있었다.

살해 예고 시각까지 남은 시간은 단 6분.

어둠 속에 갇힌 마포나루 옛 보급창고 일대는 강변의 습한 안개와 가빗불로 시야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1970년대에 군용 보급창으로 쓰이다가 폐기된 콘크리트 건물들은 잡풀과 낡은 철제 펜스로 둘러싸여 한낮에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경찰청 본서에 지원 요청 무전 칠게요. 마포서 강력팀도 소환해야 해요!"

서린이 무전기 마이크를 집어 들자 도윤이 손을 뻗어 막았다.

"안 돼. 수사망을 펼치면 범인이 윤하린을 발견하기 전에 도망치거나 표적을 바꿀 거다. 메시지는 분명히 말했어. '9시 정각, 마포나루 옛 보급창고 지하 주차장 입구'라고."

"선배! 저 음성이 진짜 미래의 예고인지, 범인이 선배를 유인하려고 파놓은 함정인지 어떻게 확신해요? 만약 범인이 선배 목소리를 조작해서 우리를 끌어들이는 거라면요?"

"나도 확신 못 해!"

도윤이 운전대를 거칠게 꺾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만약 저 음성이 진실이고 내가 망설이느라 9시 정각에 현장에 닿지 못해서 윤하린이 죽는다면... 난 평생 그 목소리를 내 자신의 죄책감으로 안고 살아야 해!"

차량이 보급창고 외곽의 녹슬어 문드러진 철문을 부술 듯 통과했다. 빗물 웅덩이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8시 57분.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두운 콘크리트 벽면과 경사 진 지하 주차장 진입로 입구를 비추었다. 빗줄기 사이로 낡은 가로등 하나가 위태롭게 번뜩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로등 불빛 아래.

검은색 장우산을 쓴 여자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지하 주차장 경사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윤하린이었다.

3개월 전 실종되었다가 귀가한 뒤 그 누구의 접촉도 피하며 숨어 지내던 윤하린이 홀로 이 폐허 같은 보급창고 지하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윤하린이다!"

서린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 순간 윤하린의 뒤편 콘크리트 기둥 그늘 속에서 검은색 비닐 우의를 뒤집어쓴 한 형체가 소리 없이 튀어나왔다. 빗물에 젖은 오른손에는 서늘한 쇠붙이가 길게 번뜩이고 있었다.

음성메시지가 예고했던 그대로였다.

검은 비닐 우의. 뒤에서 접근하는 칼.

도윤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확장되었다.

대시보드의 시계 숫자가 8시 59분에서 9시 00분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도윤은 브레이크를 조타하며 권총 집의 똑딱이를 풀었다. 17분 전에 도착한 자신의 목소리가 귓전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망설이지 말고 총을 빼라, 강도윤!'

도윤은 차 문을 차고 빗속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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