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무적으로 세상을 씹어먹음

2화: 두 번째 자폭과 검은 결정
보스 마수의 등뼈가 기괴한 진동음과 함께 비틀렸다.
검은 마력이 잔뜩 응축되다 못해 보라색 화염 형태로 사방에 터져 나왔다. 1차 폭발이 공간 바닥을 녹여 내렸다면 이번 2차 폭발은 심층부 전체를 짓뭉개 버리는 마력 폭풍이었다.
한길의 시야 구석에서 돌던 초침 감각이 정확히 0.0초에 도달했다.
[절대 무적(EX)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
"발동."
한길의 짧은 읊조림과 동시에 붉고 보랏빛이 섞인 마력 충격파가 그를 정면에서 직격했다.
하지만 마력 폭풍은 한길의 피부에 닿자마자 거짓말처럼 거품처럼 사라졌다. 물리적인 질량도 마법적인 폭발력도 1초라는 절대 법칙 앞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했다.
열기와 압력이 완전히 무력화된 1초 동안 한길은 단 한 순간도 멈춰 서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마수의 가슴 한가운데 깊숙이 박힌 검은 결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12미터."
한길은 지면을 딛고 전속력으로 튕겨 나갔다.
1초 무적 상태에서는 바닥에 넘쳐흐르는 녹아내린 마력액조차 그의 발목을 잡지 못했다.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붕 떠서 달린 한길은 단 0.6초 만에 마수의 무릎 앞까지 도달했다.
마수의 핵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2차 자폭의 중심점. 남들이라면 뼛가루조차 남지 않고 증발할 일점이었다.
한길은 망설이지 않고 마수의 벌어진 가슴 틈새로 오른손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손끝에 차갑고 단단한 촉감이 걸렸다. 마수의 핵 깊은 곳에서 거칠게 맥동하는 검은 결정이었다.
[경고: 고마력 정수와의 직접 접촉. 생체 손상 위험이 존재합니다.]
붉은 시스템 경고 창이 안구 앞으로 떠올랐지만 무적의 1초는 아직 0.2초 남아 있었다. 생체 손상이라는 마력의 부작용조차 1초 동안은 완벽한 0이었다.
한길은 이를 악물고 결정을 강하게 꺾어 뜯어냈다.
오도독!
마력선이 끊어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묵직한 검은 결정이 한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동시에 무적의 1초가 끝났다.
쿠쿠쿠쿵!
무적 효과가 소멸함과 동시에 2차 폭발의 잔여 충격파와 뜨거운 열풍이 한길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전술 장갑 겉면이 순식간에 검게 그을렸다.
한길은 망설이지 않고 몸을 오른쪽으로 굴렸다.
쿠앙!
그가 바로 서 있던 자리에 무너진 보스룸 천장의 대형 암석이 쏟아져 내렸다. 충격으로 튀어 오른 돌가루와 날카로운 파편이 한길의 전술 조끼와 팔뚝을 쓸고 지나갔다.
"훕!"
한길은 무릎을 꿇은 채 가쁜 숨을 내쉬며 오른손을 강하게 쥐었다.
전술 장갑 안쪽에서 검은 결정이 둔탁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겉보기엔 단순한 마석처럼 보였지만 마력이 흐르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마수 본연의 스킬과 마력을 집약한 핵심 정수였다.
[획득: 변이된 보스 마수의 핵 정수]
[특성 흡수 및 쿨타임 영향 분석 가능 물품입니다.]
"역시 그냥 마석이 아니었어."
한길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는 없었다. 핵을 잃은 보스 마수의 거구시체가 비틀거리며 굳어가기 시작했고 심층부 전체의 마력 균형이 파괴되면서 본격적인 던전 붕괴가 시작되었다.
두두두두!
천장에서 주먹만 한 낙석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보스룸을 떠받치던 네 개의 수정 기둥 중 두 개가 이미 사선으로 금이 가며 굉음을 내고 넘어가 버렸다.
시야 한쪽에 초침 감각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쿨타임 9.8초.
방금 1초 무적을 사용했으니 앞으로 9.8초 동안 한길은 완벽한 F급 짐꾼에 불과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암석 하나만 정수리에 직격해도 뇌진탕으로 즉사할 수 있는 처지였다.
"나갈 길부터 찾는다."
한길은 검은 결정을 상의 안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고 자세를 최대로 낮췄다.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바쁘게 움직였다.
낙석이 떨어지는 궤적과 각도.
천장 균열이 번지는 방향.
바닥 암반이 솟구치는 주기.
스킬 등급 측정기에는 나타나지 않는 한길만의 미친 프레임 분석 능력이 최고조로 작동했다.
왼쪽에서 낙석 세 개가 연달아 떨어진다. 0.4초 간격. 오른쪽 암석 지대는 1.2초 뒤에 솟구치며 뒤집힌다.
"지금이다."
한길은 웅크리고 있던 다리에 힘을 주고 솟구쳤다.
쿠웅!
그가 조금 전 밟고 있던 바닥이 뒤로 붕괴하며 아래쪽 마력 틈새로 꺼져 내렸다. 한길은 아슬아슬하게 부러져 떨어진 기둥의 단면을 발판 삼아 다음 암석 위로 뛰어올랐다.
낙석 하나가 어깨를 스치며 전술 조끼를 찢발겼다. 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한길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쿨타임 5.2초.
앞으로 반만 더 버티면 된다.
그러나 던전은 한길의 계산보다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보스룸 입구로 향하는 통로 위쪽에서 집 한 채 크기의 거대한 암반이 통째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입구가 막히면 매몰이었다. 1초 무적이 있어도 산소가 차단되고 수백 톤의 바위에 깔리면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달려!"
한길은 이빨을 부서져라 씹으며 잔해를 밟고 질주했다.
거대한 바위가 통로를 가로막으며 내려오는 속도는 초당 3미터 이상. 한길과 입구 사이의 거리는 8미터.
정상적인 F급의 육체 능력으로는 도저히 닿지 못할 거리였다.
쿨타임 1.1초.
0.7초.
0.2초.
바위가 지면에 부딪히기 직전 틈새는 겨우 50센티미터 남짓이었다.
[절대 무적(EX)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
"발동!"
한길은 망설임 없이 바위 아래의 좁은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쿠우우웅!
수십 톤의 바위가 지면을 때리며 짓눌렀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쥐포처럼 납작하게 으깨졌을 압력이었지만 무적 상태의 한길에게는 그저 거대한 바위가 자신을 지나쳐 가는 환영에 불과했다.
바위가 지면을 때리는 순간 한길은 무적의 1초를 이용해 바위의 물리적 마찰력을 완전히 무시한 채 슬라이딩으로 통로 밖을 향해 튕겨 나갔다.
스르륵!
지면과의 마찰도, 눌러오는 바위의 질량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길은 단 1초 만에 좁은 바위 밑 틈새를 유유히 통과해 외곽 통로로 탈출했다.
탁!
무적 효과가 끝남과 동시에 그가 지나온 보스룸 입구가 완벽하게 암석으로 봉쇄되었다.
쿠구구구.
뒤쪽에서 쿠르릉거리는 진동이 낮게 깔렸다. 심층부는 완전히 매몰되었다.
한길은 거친 숨을 내쉬며 바닥에 입을 맞추듯 엎드려 있었다. 온몸이 흙먼지와 마력 재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팔다리 곳곳에 찰과상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후, 살았네."
한길은 핏물이 섞인 침을 뱉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상 탈출용 환기구 틈새로 축축하고 차가운 바깥 공기가 흘러들고 있었다.
던전 게이트 외부.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밤하늘의 짙은 먹구름 아래로 주홍색 경고 등불이 번쩍였다.
"상황 보고해."
대한이능력관리청의 현장 통제관이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다가왔다.
그 앞에는 국내 1위 길드 정상의 공격대장 차성현이 서 있었다. 그의 화려한 방어구에는 약간의 그을음만 남아 있을 뿐 상처 하나 없었다.
"보스가 사망 직전 변이 자폭을 일으켰습니다. A급 이상으로 위험도가 급상승해 긴급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차성현의 목소리는 지극히 평온했다.
"짐꾼 한 명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통제관이 서류판을 보며 물었다.
차성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붉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F급 강한길 헌터 말입니까? 공포에 질려서 작전 지시를 위반하고 혼자 보스룸 안쪽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제가 손을 뻗어 구하려 했지만 2차 자폭이 터지면서 보스룸 전체가 붕괴했습니다. 시신 회수는 불가능합니다."
옆에 서 있던 B급 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 대장님이 목숨 걸고 구하려 했는데 그 F급이 말을 안 들었습니다."
"계약서상 위험 동의 항목도 완료된 건입니다."
차성현은 가볍게 혀를 찼다.
"저 등급 헌터들이 현장 통제에 안 따르면 이런 사고가 나지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통제관은 씁쓸한 표정으로 사망 처리 도장을 찍었다.
"알겠습니다. 차 대장님 이하 공격대원들은 고생하셨습니다. 변동 던전 사고로 공식 처리하겠습니다."
그들 뒤쪽, 게이트 외곽 펜스 너머의 어두운 잡목림 속.
젖은 나무 기둥 뒤에 서 있던 한길은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차성현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 하나하나가 빗소리 사이로 똑똑히 들려왔다.
'공포에 질려 달려들었다고?'
한길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자신을 방벽 밖으로 밀쳐내고 문을 닫았던 차성현의 무표정한 눈빛. 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무능해서 죽은 짐꾼으로 포장하는 능청스러움.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한길은 주먹을 쥐고 참았다.
지금 당장 뛰쳐나가 차성현의 멱살을 잡아봐야 S급 헌터의 권력과 길드의 영향력 앞에 F급 짐꾼의 말 따위는 묻힐 뿐이었다. 던전 안에는 CCTV도 없었다.
'타이밍이 아니야.'
한길은 냉정하게 숫자를 셈했다.
차성현의 스킬 쿨타임, 공격 범위 그리고 정상 길드의 영향력.
그 모든 것을 꺾으려면 자신에게 더 절대적인 힘이 필요했다. 1초 무적이라는 무기를 가진 이상 그 힘을 증명할 기회는 반드시 온다.
한길은 젖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빗속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차성현이 고급 전용차에 오르는 뒷모습을 뒤로한 채 한길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다음 날 오전. 대한이능력관리청 서울 본청 전투분석실.
단정한 제복 차림에 지적인 안경을 쓴 서연우 팀장이 모니터 화면을 노르스름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어제 발생한 수도권 외곽 변동 던전의 마력 파동 그래프와 생체 스캔 로그가 띄워져 있었다.
"이상한데."
서연우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렸다.
"팀장님, 무슨 문제 있습니까?"
부하 직원 하나가 커피 잔을 들고 다가왔다.
"정상 길드가 제출한 A급 변동 던전 붕괴 보고서야. 차성현 대장은 보스 자폭으로 심층부가 완파되었다고 보고했지."
"예. F급 짐꾼 한 명 사망 사고 처리되었고요."
서연우는 스펙트럼 분석 창을 확대했다.
"1차 자폭 때 보스룸 내부의 마력 밀도는 생명체가 0.1초도 버틸 수 없는 수치였어. 그런데 보스룸 중앙에 남아 있던 짐꾼 강한길의 생체 신호가 1차 폭발 직후에도 끊이지 않았어."
"네? 센서 오류 아닙니까? 그 마력 폭풍 속에서 F급이 버텼을 리가 없잖아요."
"오류라고 보기엔 이상해."
서연우가 데이터를 가리켰다.
"폭발 충격파가 직격하는 바로 그 1초 동안 강한길 헌터의 생체 반응에 가해진 타격 수치가 정확히 '0'으로 수렴했어. 마력 저항도, 물리적 충격도, 열 피해도 전혀 입지 않은 완전 무결한 0 지대가 형성된 거야."
부하 직원이 안경을 고쳐 쓰며 모니터를 봤다.
"피해가 0이라고요? A급 방어 스킬을 겹겹이 둘러도 충격파로 마력 감소는 생기는데. 스킬 마력 소비 로그도 없는데요?"
"그래. 마력 소비 로그도 없어. 마치 세상의 법칙 자체가 1초 동안 그 사람을 피해서 지나간 것처럼."
서연우는 펜으로 턱을 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강한길, F급 각성자. 측정 마력량 최하위."
그녀는 한길의 인적 사항 서류를 출력했다.
"이 사람, 진짜로 죽은 게 맞을까?"
서연우의 눈빛에 지적인 호기심과 날카로운 경계심이 동시에 떠올랐다.
같은 시각, 서울 외곽의 낡은 자취방.
한길은 커튼을 치고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던전에서 목숨 걸고 가져온 검은 결정이 몽환적인 보랏빛 마력을 내뿜고 있었다.
한길이 손을 가져가자 시스템 창이 열렸다.
[변이된 보스 마수의 핵 정수를 감지했습니다.]
[정수 흡수를 진행하시겠습니까?]
[흡수 시 고유 특성 '절대 무적(EX)'의 구조적 개편이 시작됩니다.]
한길은 망설이지 않았다.
"흡수."
손끝에서 뻗어 나온 검은 마력선이 결정을 감싸 안았다. 결정이 스르륵 녹아내리며 한길의 손바닥 피부 밑으로 스며들었다.
뜨거운 마력이 전신을 한 바퀴 돌고 뇌수로 직행했다.
머릿속에서 투명한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쾌감이 터졌다.
[정수 흡수 완료.]
[고유 특성: 절대 무적(EX)의 쿨타임이 감소합니다.]
[쿨타임: 10.0초 $\rightarrow$ 9.5초 (0.5초 감소)]
[새로운 전술 메커니즘 '마력 피드백'의 기틀이 형성됩니다.]
한길은 눈을 떴다.
시야 한구석에 돌고 있는 초침의 속도가 미세하게 빨라져 있었다.
0.5초.
남들에게는 눈 깜박할 사이의 사소한 시간일지 몰라도 0.001초 프레임을 계산하는 한길에게 0.5초의 쿨타임 감소는 생존율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리는 혁신적인 변화였다.
"쿨타임을 줄일 방법이 진짜 있었어."
한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마석과 마수의 정수를 모을수록 1초 무적의 제약은 사라진다. 쿨타임이 줄어들수록 그를 막을 수 있는 던전도, 사람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한길은 휴대폰을 꺼내 각성자 전용 던전 입찰 앱을 켰다.
"우선 자금부터 만든다."
혼자서 D급 던전을 싹쓸이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