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 현장직은 결재를 안 기다린다

3화: 장부에 없는 배송
자동문 사이로 젖은 장화 한 쌍이 들어섰다.
본청 소각팀의 우비 어깨 위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손에 쥐어진 것은 하청용 부적이 아니었다. 묵직한 영물 봉인봉과 은색 염화 분말 통이었다. 소각팀 대원이 서하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청 조사원 윤서하 맞지? 비켜라. 소각 작업 들어간다."
서하는 물러서지 않고 점퍼 안쪽에서 현장 기록 패드를 들어 올렸다. 패드 화면에는 붉은 경고창이 또렷하게 켜져 있었다.
[현장 물증 추가: 비인가 봉인선]
[소각 전 증거 보존 권고]
서하는 소각팀 대원의 시선에 맞춰 패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지금 태우면 정산 차액 책임은 소각팀이 집니다."
"뭐?"
"본청 배정 코드는 AG-0217-78이고 현장 잔혼 상태창 코드는 AG-0217-73입니다. 끝자리가 안 맞는데 증거 보존 권고까지 떠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강제 소각하면 하청 과실이 아니라 소각팀 절차 위반으로 정산이 묶입니다."
소각팀 대원의 손가락이 염화 분말 통 위에서 머뭇거렸다. 그들은 현장의 영체보다 감사 정산 삭감을 더 무서워했다. 하청이든 본청이든 귀신보다 돈과 규정에 묶이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무전기에서 강도윤의 쉰 목소리가 찢어져 나왔다.
- 윤서하. 말장난으로 시간 끌지 마. 소각팀장한테 무전 들어갔다.
"말장난 아닙니다. 팀장님, 패드 감찰 열람에 한지우 감찰관 이름 떠 있습니다."
무전 너머의 소음이 순간 딱 끊겼다. 강도윤이 입을 다문 것은 본청에서도 감찰관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를 알기 때문이었다. 서하는 그 정적을 놓치지 않고 소각팀 대원에게 나직하게 덧붙였다.
"딱 3분 줍니다. 3분 뒤에도 분류 오류 증명이 안 되면 제 발로 나갑니다. 대신 정산 책임은 제가 떠안겠다는 사인을 패드에 남기겠습니다."
소각팀 대원은 옆 동료와 눈빛을 주고받더니 턱으로 밖을 가리켰다.
"3분이다. 3분 지나면 억지로 끌어낸다."
자동문이 닫히며 밖의 빗소리가 다시 멀어졌다.
서하는 망설이지 않고 편의점 구석 냉장고 뒤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성에 낀 유리문 안쪽에서 민채가 불안하게 떨고 있었다. 여자의 손끝이 바닥에 떨어진 컵라면 봉지를 건드릴 때마다 검은 물방울이 흩어졌다.
"3분이라고 했어요?"
민채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저 사람들 들어오면 저 끝나는 거죠?"
"그렇게 안 둡니다. 대신 당신 도움이 필요합니다."
서하는 보조 라우터가 붙은 벽면으로 손전등을 비추었다. 뜯겼다가 다시 붙은 봉인 스티커 사이로 붉은 비인가 봉인선이 가는 뱀처럼 얽혀 있었다. 붉은 선은 시스템의 일반적인 인터페이스와 달랐다. 하청의 표준 장비로는 접속 로그를 열 수 없는 특수 봉인이었다.
"이 라우터는 02:05부터 02:17까지의 영상만 따로 잘라낸 보조 장치입니다. 본청 메인 서버에는 전송을 끊고 이 안쪽에만 저장해 둔 겁니다."
"제가... 접속해야 해요?"
"직접 만지지는 마세요. 전자기기에 영기를 얹는 것만 해 주면 됩니다. 방금 결제 기기 화면에 숫자를 띄웠던 것처럼 라우터 보드에 냉기를 밀어 넣으세요."
민채가 숨을 삼켰다. 여자는 떨리는 손을 보조 라우터 근처로 가져갔다. 젖은 편의점 조끼에서 차가운 서리가 뿜어져 나오며 라우터의 꺼진 불빛을 감쌌다.
치직, 치지직.
꺼져 있던 보조 라우터의 램프가 녹색과 주황색으로 번갈아 반짝였다. 서하는 개인 패드의 무선 수신 단자를 라우터 밑바닥에 밀착시켰다. 패드 화면이 까맣게 꺼졌다가 촘촘한 디지털 프레임으로 쪼개졌다.
[보조 장치 비인가 저장 영역 접근]
[복원 프레임: 02:05:12 ~ 02:17:44]
화면 위로 굵은 입자의 흑백 영상 썸네일들이 쏟아져 나왔다. 편의점 계산대와 냉장고 사이의 사각지대를 촬영한 카메라 영상이었다.
02:05:12.
편의점 자동문이 열리고 빗물에 젖은 무거운 택배 상자 하나가 들어왔다. 배송 기사의 얼굴은 검은 헬멧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자 위에는 검은 부적이 붙어 있었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민채가 그 썸네일을 보자마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저거예요... 저 상자예요. 밤에 오면 안 되는 물건이었어요."
"저 안에 뭐가 들었습니까?"
"몰라요. 그런데 엄청 뜨거웠어요. 얼음 냉장고 옆에 두었는데도 손이 데일 것처럼..."
서하는 영상의 시간을 앞으로 돌렸다.
02:08:33.
유리문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점주가 편의점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점주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허둥지둥 배송 상자를 받아서 냉장고 뒤쪽 좁은 공간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인수증 단말기를 민채의 얼굴 앞에 바짝 붙였다.
영상 속의 민채는 고개를 저으며 서명을 거부하고 있었다. 야간 규정상 인가되지 않은 특수 배송물은 절대로 수령 서명을 해 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점주의 눈빛이 험악하게 바뀌었다.
점주는 민채의 멱살을 잡고 계산대 구석으로 밀쳐냈다. 민채가 쓰러지자 점주는 강제로 여자의 오른손을 낚아채 수령 단말기 화면에 눌렀다.
두 번째 서명.
그것은 민채가 자발적으로 찍은 서명이 아니었다. 점주가 죽은 자의 손을 강제로 틀어쥐고 찍은 위조 서명이었다.
"내 손이... 아니었어."
민채의 눈에서 흘러내린 검은 물이 바닥의 성에를 녹였다.
"내가 서명한 게 아니었어."
[영혼 진술과 영상 기록 일치 감지]
[핵심 충돌 항목: 수령 자발성 / 사망 경위 은폐]
서하는 숨을 낮게 쉬며 영상의 마지막 구간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02:14:05.
강제 서명이 끝나자 점주는 민채를 냉장고 뒤 틈새로 거칠게 밀쳤다. 뜨거운 김이 나는 배송 상자와 성에 낀 냉장고 모터 사이에 끼인 민채는 중심을 잃고 머리를 벽에 부딪혔다. 의식을 잃은 민채의 몸 위로 배송 상자에서 흘러나온 검은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점주는 당황해서 민채의 몸을 냉장고 안쪽으로 구겨 넣었다. 그리고 02:17:00에 보조 라우터의 봉인선을 찢어 본청 메인 전송을 끊어 버렸다.
모든 것이 12분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살도, 악령의 돌발 행동도 아니었다. 비인가 물품을 강제 수령시키려다 벌어진 치사 사고이자 완벽한 은폐 공작이었다.
서하는 패드의 캡처 버튼을 눌러 영상 프레임과 붉은 봉인선의 시리얼 코드를 묶었다.
"사장님이 민채 씨를 강제로 밀어 넣고 기록을 닫은 겁니다."
민채의 형상이 거세게 흔들렸다. 냉장고 유리문이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금이 갔다. 분노가 영체 전체를 휩싸며 검은 기운이 솟구쳤다.
"그 사람이... 나한테..."
"민채 씨, 참으세요."
서하는 단호한 목소리로 민채의 시선을 가로챘다.
"지금 분노해서 악령화되면 본청 소각팀에게 가장 좋은 명분을 주게 됩니다. 저 사람들은 '악령이 발작해서 소각했다'고 적으면 끝입니다. 분노는 사건 번호가 완전히 바뀐 뒤에 하세요."
민채는 이를 악물었다. 영체의 떨림이 조금씩 진정되며 서하의 패드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때 편의점 유리문이 쾅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자동문이 강제로 열리고 강도윤 팀장이 직접 들어섰다. 젖은 정장 위에 본청 현장대응팀의 검은 패딩을 걸친 강도윤의 눈빛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윤서하. 3분 지났다. 손 떼."
"팀장님, 이거 보십시오."
서하는 패드를 강도윤의 가슴 앞으로 내밀었다. 복원된 12분의 영상 캡처와 붉은 봉인선의 사진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민채 씨 사건은 단순 자해나 악령 건이 아닙니다. 비인가 영적 배송물 수령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입니다. 점주가 강제로 서명을 위조하고 냉장고 뒤에 시신을 은닉했습니다."
강도윤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그는 패드 화면의 붉은 봉인선을 보는 순간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 봉인선... 청명회 특수 배송망 인장이다."
"아시지 않습니까. 본청 배정 코드가 AG-0217-78로 튀었던 이유도 이 배송 건을 감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걸 소각하면 본청이 청명회의 불법 배송 사고를 은폐해 준 꼴이 됩니다."
강도윤은 서하의 패드와 냉장고 뒤 지박령을 번갈아 보았다. 그의 손이 권총형 봉인장비 위에서 갈등하듯 떨렸다. 본청 팀장으로서 현장을 닫아야 하는 의무와 눈앞에 드러난 명백한 조작 사이에서 균형이 흔들리고 있었다.
유리문 밖에서 점주가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저... 저놈이 거짓말하는 겁니다! 하청 직원이 유성 사기 치는 거라고요! 빨리 태워 버려요!"
강도윤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던졌다.
"조용히 해. 당신 진술은 나중에 경찰과 감찰국에서 따로 받는다."
점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서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패드의 최하단 중앙에 위치한 [현장 조정 신청]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신청 조건 검토]
[1. 영혼 진술 확보: 완료 ("두 번째 서명은 제 손이 아닙니다")]
[2. 현장 물증 확보: 완료 (비인가 봉인선 및 12분 은폐 영상)]
[3. 사건 분류 충돌: 확인 (하급 악령 자해 -> 은폐된 불법 배송 치사)]
패드 화면 전체가 푸른빛에서 붉은빛으로 전환되며 거대한 알림 창이 떠올랐다.
[현장 조정자 임시 권한: 신청 조건 충족]
[임시 권한 승인 절차를 개시합니다.]
동시에 화면 구석에서 까만 바탕의 경고창이 겹쳐 떴다.
[대가 차감 절차 개시]
[대상: 윤서하 개인 통화기록 1건]
[삭제 대상 항목: 2019-11-04 23:14 부재중 전화]
서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2019년 11월 4일. 누나 윤서윤이 실종되기 직전 밤, 서하의 휴대폰에 찍혔던 마지막 부재중 전화 시각이었다. 서하가 7년 동안 단 한 번도 지우지 못하고 가슴속에 품고 있던 그 숫자가 화면 위에서 붉은 불꽃에 휩싸여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윤서하!"
강도윤이 소리쳤다.
"너 지금 무슨 짓을..."
서하는 이를 악물고 패드를 움켜쥐었다. 가슴 안쪽이 칼로 베여 나가는 것처럼 쓰라렸지만 그는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결재는 늦고 진실은 태워집니다."
서하의 낮은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러니까 현장직이 바꿉니다."
패드 화면에서 부재중 전화의 숫자가 까맣게 타올라 사라지는 순간, 편의점 전체를 누르던 차가운 성에가 거대한 진동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