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AI가 나를 전투 천재로 만든다

1화: 첫 번째 신호
지하 3층 주차장의 공기는 서늘하고 축축했다.
환풍기 돌아가는 둔탁한 기계음 사이로 늦가을의 냉기가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형광등 불빛이 드문드문 꺼진 콘크리트 기둥 너머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강도현은 귀에 꽂힌 무전 리시버의 볼륨을 미세하게 조절했다. 오른쪽 눈앞에 띄워 둔 보급형 AR 글래스의 배터리 표시등이 주황색으로 깜빡였다.
[보안 링크: 대기 중]
[배터리 잔량: 14%]
화면 구석에 뜬 숫자는 위태로웠지만 도현은 글래스를 끄지 않았다.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보다는 흐릿한 잔상이라도 남겨 두는 편이 안전했다.
"강 요원, 너무 각 잡지 마라."
앞서 걷던 팀장 배진태가 담배를 문 채 투덜거렸다. 구겨진 정장 재킷 사이로 낡은 테이저건 손잡이가 언뜻 보였다.
"그냥 밤샘 심부름이야. 화물 하나 싣고 인천 창고까지 넘겨주면 끝나는 3류 오더란 말이다."
"의뢰인 상태가 정상이 아닙니다."
도현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의 시선은 두 걸음 뒤에서 따라오는 중년 남성을 향해 있었다.
체크무늬 패딩을 걸친 남자의 이름은 윤상철이었다. 의뢰서에는 단순 무역업체 대표라고 적혀 있었으나 행색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남자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양손으로는 은색 금속 케이스를 가슴팍에 거의 파묻다시피 꽉 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 핏기가 없었다.
"저 사람, 계단을 내려올 때부터 뒤쪽 비상구를 세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손에 쥔 가방은 군용 방수 밀폐 규격입니다. 일반 샘플 가방이 아닙니다."
"야, 도현아."
배진태가 혀를 차며 뒤를 돌아보았다.
"민간 경호업체 들어온 지 반년도 안 된 놈이 왜 이렇게 매사에 예민해? 사설 보안은 시키는 것만 적당히 해주고 돈 받으면 그만이야. 과민반응하다가 클라이언트 심기 건드리면 시말서 쓰는 건 나다."
"위험 부담이 큰 의뢰는 사전에 보고해야 한다는 게 회사 내규입니다."
"내규 좋아하네. 네가 군대 시절 버릇 못 버려서 그래. 세상이 그렇게 매일 총격전 터지는 전쟁터인 줄 아냐?"
배진태는 말을 마치고 리모컨 키를 눌렀다. 저 멀리 주차 라인에 서 있던 검은색 승합차의 비상등이 깜빡이며 문이 열렸다.
"자, 대표님. 차 열렸으니 타시죠. 1시간만 눈붙이시면 안전하게 도착합니다."
하지만 윤상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승합차가 아니라 주차장 출구 쪽 완만한 램프 구간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저기 불빛."
윤상철의 메마른 입술이 떨렸다.
"뭐가 있습니까?"
도현이 즉시 윤상철의 앞을 가로막으며 허리춤의 충격 진압봉 손잡이를 쥐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뭘 그래……."
배진태가 말을 맺지 못했다.
쾅!
지하주차장 출구 차단봉을 부수며 짙은 선팅을 한 검은색 대형 밴 두 대가 미끄러지듯 진입했다.
엔진 소음이 전혀 없었다. 고출력 전기 모터 특유의 날카로운 고주파음만이 바닥의 에폭시 우레탄을 긁으며 울려 퍼졌다.
헤드라이트가 켜지지 않은 채 주차장 진입로를 막아선 차량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
"뭐, 뭐야? 저 차들 왜 저래?"
배진태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도현의 눈동자가 차갑게 굳었다.
차량에서 쏟아져 나온 괴한들은 여섯 명이었다. 그들은 검은색 전술복에 헬멧을 착용하고 소음기가 장착된 단축형 서브머신건을 겨누고 있었다.
민간 경호나 일반 범죄 조직의 수준이 아니었다. 발을 딛는 위치와 사격선 확보, 상호 엄호 동선이 완벽한 군용 전술 기동이었다.
"엎드려요!"
도현이 윤상철의 어깨를 낚아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피식! 픽!
소음기를 통과한 총탄이 콘크리트 바닥을 파고들며 날카로운 파편을 튀겼다.
"으악!"
배진태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의 허벅지와 어깨에 붉은 피가 번져 나갔다.
"팀장님!"
"도, 도현아…… 저놈들 총…… 실탄이다……!"
배진태가 피를 흘리며 기둥 뒤로 기어 들어갔다.
도현은 망설이지 않고 허리에서 보급형 가스 분사식 권총을 뽑아 들었다. 상용 호신 무기 따위로 저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벌어야 했다.
치익! 탕!
도현이 압박해 들어오는 선두 괴한을 향해 두 발을 격발했다.
총탄은 괴한의 방탄 플레이트에 튕겨 나갔으나 전진을 반 박자 늦추기에는 충분했다.
"이쪽입니다! 기둥 뒤로 붙으세요!"
도현은 패닉에 빠진 윤상철의 멱살을 잡다시피 끌고 두꺼운 주차장 배력 기둥 뒤로 몸을 던졌다.
등 뒤로 빗발치는 총탄이 콘크리트를 깎아내며 매캐한 분진을 뿜어냈다.
"하, 살려줘…… 제발……."
윤상철이 가슴에 쥔 케이스를 덜덜 떨며 울먹였다.
"저들이 노리는 게 저 가방입니까?"
도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내, 내가 빼돌린 게 아니야! 난 그냥 전달만 해주면 삼억을 준다고 해서……!"
"가방 안에 든 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오르빗…… 오르빗 연구소에서 나온 시험관이야! 사람 뇌에 넣는 신약 샘플이라고……!"
오르빗.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도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생체 인터페이스 의료 기업. 그리고 7년 전 누나 강유라가 마지막으로 연구원 지원서를 냈던 바로 그 기업의 이름이었다.
생각에 잠길 틈은 없었다.
머리 위 천장의 스프링클러 배관이 총탄에 찢겨 나가며 차가운 물줄기가 쏟아졌다.
전기 제어반이 파괴되었는지 지하 3층의 형광등이 일제히 꺼지며 암전이 찾아왔다.
물줄기 소리와 어둠 속에서 괴한들의 전술화 발소리가 바닥을 밟는 소리만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셋. 아니, 넷.
도현은 숨을 멈추고 감각을 곤두세웠다.
적들은 야간투시경을 장착하고 사방에서 기둥을 포위해 오고 있었다.
"윤상철 씨, 제 말 잘 들으세요."
도현이 속삭였다.
"내가 저쪽으로 연막을 치고 시선을 끌 테니, 당신은 반대편 비상계단으로 뛰세요. 계단 문을 열고 1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대로변입니다."
"나, 난 못 뛰어…… 다리에 힘이……."
"살고 싶으면 뛰어야 합니다. 셋을 세면 움직입니다."
도현이 숨을 들이켜며 주머니에서 신호용 섬광 플레어를 꺼냈다.
"하나, 둘……."
그 순간 윤상철이 비명을 지르며 먼저 기둥 밖으로 뛰쳐나갔다.
공포를 이기지 못한 돌발 행동이었다.
"안 돼!"
도현이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피식!
어둠 속에서 발사된 단발 사격이 윤상철의 가슴을 정확히 꿰뚫었다.
"컥……!"
윤상철의 몸이 앞으로 꺾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가 품에 안고 있던 은색 금속 케이스가 손에서 빠져나와 젖은 바닥을 구르며 콘크리트 모서리에 강하게 부딪혔다.
쩌적!
잠금장치가 찌그러지며 케이스 뚜껑이 열렸다.
케이스 내부 충격 흡수 패드 중앙에 고정되어 있던 손가락 굵기의 원통형 유리 앰플이 바닥으로 튕겨져 나왔다.
앰플 내부에는 액체라고 부르기 힘든 기이한 물질이 담겨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은빛과 청색이 뒤섞인 미세한 입자들이 자체 발광하듯 푸른빛을 뿜어내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도현이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의뢰인은 이미 숨이 끊어졌지만 떨어진 물건이 폭발물이나 독극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앰플에 손을 뻗은 찰나 괴한의 총탄이 앰플 바로 옆 바닥을 때렸다.
탕!
파편이 튀며 유리 앰플이 산산조각 났다.
쨍그랑!
앰플이 깨지는 순간 내부에 갇혀 있던 은청색 물질이 기압 차이를 이기지 못하고 안개처럼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큭!"
도현은 얼굴을 가리려 했으나 흩뿌려진 액체 입자가 그의 뺨과 목덜미 그리고 과거의 흉터가 남아 있는 오른쪽 손목의 찰과상으로 사정없이 튀어 들었다.
차가운 빗물과는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살갗에 닿은 푸른 입자들은 바닥으로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모공과 상처 틈새로 순식간에 스며들었다.
치이익.
피부 밑에서 미세한 고주파음이 들리는 듯하더니 혈관을 타고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크아악!"
도현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혈액을 타고 척수를 거슬러 올라간 무언가가 뇌 뒤쪽 후두엽을 정으로 내려찍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엄습했다.
단순한 화학 약품의 독성이 아니었다.
수억 개의 미세한 바늘이 뇌세포 하나하나를 헤집고 들어가 신경망을 강제로 꿰매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었다.
도현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심장이 찢어질 듯 빠르게 요동쳤고 시야가 사정없이 뒤틀렸다.
[신경망 접촉 감지]
[생체 신호 동기화 개시]
[숙주 뇌파 스캔…… 적합률 계산 중]
머릿속에서 환청 같은 기계 문장들이 시신경을 타고 번쩍였다.
글래스를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현의 망막 위에 푸른색 격자선과 알 수 없는 16진수 코드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게…… 대체 뭐야…….'
도현은 시야를 확보하려 애썼지만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타깃 사망 확인. 회수 대상 앰플 파손."
기둥 너머에서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괴한들의 리더로 보이는 자가 소총을 내린 채 도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헬멧 바이저 너머로 무감각한 눈동자가 번뜩였다.
"잔여 물질이 경호원에게 접촉됐다. 오염체다."
"제거합니까?"
옆에 선 다른 대원이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현장 흔적을 지운다. 탄두를 회수하기 귀찮으니 칼로 끝내."
리더의 명령에 대원 하나가 허리에서 묵직한 전술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서걱.
괴한이 물웅덩이를 밟으며 도현에게 다가왔다.
도현은 고개를 들려 했으나 사지가 마비된 것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뇌 속에서는 여전히 번개가 치듯 신경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계속되고 있었다.
'움직여…… 제발 움직여……!'
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괴한이 도현의 가슴팍을 발로 밟아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도현의 목덜미를 향해 나이프를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인간의 반사신경으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거리와 속도였다.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도현의 시야 속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뚝.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일순간 사라졌다.
떨어지는 물방울이 공중에서 멈춘 듯 정지했고 내리꽂히는 나이프의 칼날이 눈에 보일 정도로 극도로 느려졌다.
0.1초가 영겁처럼 늘어나는 감각.
그리고 도현의 시야 한가운데로 얇은 파란색 궤적선 하나가 선명하게 그어졌다.
[위협 궤적 계산]
[경추 손상 확률 99.4%]
[운동피질 강제 신호 전달: 우측 회피각 32도]
도현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도현의 의지가 아니었다.
목과 어깨의 근육이 비정상적인 전압을 받은 것처럼 팽팽하게 수축하며 도현의 상체를 오른쪽으로 비틀었다.
푸욱!
나이프가 도현의 목덜미 바로 옆 시멘트 바닥을 깊숙이 파고들며 불꽃을 튀겼다. 칼날이 도현의 옷깃만을 스치고 지나갔다.
"……?!"
괴한의 눈이 헬멧 안에서 경악으로 크게 뜨였다.
완벽한 사각에서 내리꽂은 일격을 바닥에 쓰러진 자가 피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괴한이 즉시 나이프를 뽑아 옆으로 베어 넘기려 했다.
하지만 도현의 몸은 이미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반격 루트 생성]
[좌측 대퇴사두근 수축]
도현의 왼발이 바닥을 차올리며 괴한의 무릎 안쪽 관절을 정확하게 걷어찼다.
빠각!
관절이 뒤틀리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거구의 괴한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 자식이……!"
뒤에 서 있던 괴한들이 일제히 총구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 기이한 움직임은 거기까지였다.
쿠웅!
도현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비정상적인 근육 제어와 신경 강제 연결을 버티지 못한 뇌가 일제히 과부하 경고를 뿜어냈다.
코 밑으로 뜨거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시야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칠흑 같은 어둠으로 꺼져 들어갔다.
"위, 위험 경보! 외부 사이렌 접근!"
"경찰 통신망이 열렸다. 철수한다!"
아득한 암전 너머로 당황한 괴한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멀리서 빌딩 전체를 울리는 요란한 방재 비상벨 소리와 다가오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뒤섞였다.
도현의 손가락이 바닥의 차가운 물웅덩이를 긁다가 천천히 힘을 잃었다.
깊은 어둠 속으로 의식이 가라앉는 순간 그의 귓가 깊은 곳에서 낯선 음성 신호의 파편이 아주 작게 울렸다.
[……시스템 초기화 완료.]
[숙주 적합 판정: 양호.]
[동면 모드 전환.]
그것을 끝으로 도현의 의식은 완전히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