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의 객잔에서 만두를 빚습니다

1화: 빚더미 객잔의 빈 솥
숨을 들이쉬자마자 눅눅한 곰팡내와 흙냄새가 폐부를 찔렀다.
매캐한 가스 냄새도 불길에 녹아내리던 환풍기 소리도 없었다. 귓가를 때리는 것은 처마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낡은 나무 바닥의 삐걱거림뿐이었다.
강도윤은 거칠어진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평생 주방에서 칼과 만두대를 쥐느라 굳은살이 박여 있었지만 지금 눈앞의 손은 분명 달랐다. 손마디는 가늘고 손등은 파리했으며 손톱 밑에는 희미한 먹물 자국이 배어 있었다.
‘분명 손님을 밀어내고 폭발에 휩쓸렸는데…….’
그 순간 쪼개지듯 머리가 울리며 낯선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중원 청하성 밖 운현고개 아래.
이곳은 오가는 상인과 표사들이 들르던 귀래객잔이었다.
그리고 이 몸의 이름은 연도윤. 객잔을 홀로 지키다 천 냥에 달하는 빚더미와 독촉에 시달린 끝에 이틀 전 장부 앞에서 쓰러져 숨이 끊어진 청년이었다.
도윤은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켜 주방 조리대를 짚었다.
손바닥에 닿는 나무 조리대는 묵은 기름때와 물때로 번들거렸지만 제법 단단한 박달나무였다. 조리대 구석에는 날이 무뎌진 낡은 식칼 두 자루와 흠집투성이인 나무 도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식칼 자루를 쥐는 순간 손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전생에서 수십만 번은 족히 쥐었던 칼자루의 감각이 낯선 몸의 근육 속으로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손목을 가볍게 돌려 보던 도윤의 시선이 주방 한구석의 쌀독과 선반으로 향했다.
쌀독 뚜껑을 열자 바닥에 긁힌 자국만 가득했다.
선반 위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것이라고는 푸대를 털어 겨우 모은 묵은 밀가루 반 포대와 바싹 말라비틀어진 산나물 한 줌, 거친 천일염 한 종지 그리고 굳은 들기름 반 호리병이 전부였다.
“……주방 꼴이 이게 뭐람.”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주방 문이 벌컥 열리며 익숙한 실루엣이 걸어 들어왔다.
소매를 걷어붙인 채 앞치마를 질끈 동여맨 처녀였다. 야무진 눈매에 날카로운 기색을 띤 처녀는 도윤이 서 있는 것을 보자마자 들고 있던 빈 바가지를 덜컥 내려놓았다.
“일어났어요? 정신이 들긴 드나 보네.”
소담이었다. 객잔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장부와 잔심부름을 치르던 유일한 일손이었다.
“소담아.”
“목소리는 멀쩡하네. 이틀 동안 죽은 사람처럼 뻗어 있더니 눈뜨자마자 주방엔 왜 기어들어 온 거예요? 장부 볼 용기는 안 나고 솥단지라도 끌어안고 울려고요?”
말투는 뾰족하기 그지없었지만 바가지를 내려놓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조리대 위에 놓인 묵은 밀가루 포대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거 털어 봐야 세 끼 쑬 죽도 안 나와요. 장만복 영감이 사람들을 끌고 이 고개를 넘고 있다고요. 사흘 뒤가 이자 날인데 오늘 당장 객잔 문서를 내놓으라고 쳐들어올 판인데 대체 어쩔 셈이에요?”
천 냥의 원금에 달마다 붙는 살인적인 이자.
귀래객잔의 전 주인이자 도윤의 백모였던 연진화가 홀연히 사라진 뒤 객잔에 남겨진 것은 오직 빚 문서뿐이었다.
“사흘 뒤라고 했지.”
도윤이 담담하게 묻자 소담이 기가 찬다는 듯 눈을 치떴다.
“기한이 사흘 남았다고 장만복 그 악귀가 기다려 줄 것 같아요? 이미 청하성 건달들까지 사서 데려오는 중이라고요. 객잔 문패 뜯기고 길바닥에 나앉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짐 싸요.”
“짐을 싸서 어디로 가는데?”
“어디든! 빚쟁이 손 안 닿는 곳으로 도망치든 해야지 여기서 굶어 죽을 거예요?”
도윤은 대답 대신 조리대 위의 행주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우물물을 길어와 깨끗이 빤 뒤 지저분하게 얼룩진 박달나무 조리대를 힘주어 닦기 시작했다. 결을 따라 쓱쓱 닦아내자 묵은 먼지 속에 묻혀 있던 나뭇결이 단정한 빛을 드러냈다.
“미쳤어? 지금 청소할 때예요?”
“주방이 더러우면 밥을 못 지어.”
“밥 지을 쌀도 없으면서 무슨 밥 타령이야!”
쾅!
소담의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객잔 정문 쪽에서 거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낡은 판자문이 걷어차이며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험악한 고함이 홀을 울렸다.
“연가 놈 어디 숨었냐! 이틀 동안 앓아누웠다는 핑계로 숨어 있으면 빚이 사라질 줄 알았더냐!”
기름진 얼굴에 붉은 비단 옷을 걸친 사내, 채권자 장만복이었다.
그의 뒤로는 쇠몽둥이와 몽둥이를 든 험상궂은 장정 네 명이 우르르 몰려들어 객잔의 빈 탁자를 걷어차고 있었다.
소담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도윤의 등 뒤로 물러섰다.
도윤은 손에 든 행주를 단정하게 접어 조리대 위에 올려두고 천천히 주방 밖으로 걸어 나갔다.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셨군요, 장 대인.”
도윤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장만복이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장부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며 피를 토할 듯 위태로워 보이던 풋내기 주인이 아니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장만복이 헛기침을 하며 품에서 누렇게 바랜 채권 문서를 꺼내 흔들었다.
“흥, 제 발로 걸어 나오니 수고는 덜었구나. 보다시피 네놈이 물려받은 빚이 원금만 천 냥이다. 이번 달 이자 오십 냥을 오늘 당장 내놓지 못하면 이 객잔 문패는 내 손에 넘어간다!”
도윤이 문서에 적힌 붉은 인장을 눈으로 훑었다.
“이자 납부 기일은 이달 그믐이라 적혀 있습니다. 오늘은 닷새나 남았지요.”
“닥쳐라! 네놈이 굶어 죽어 야반도주할지 어찌 알고 기다린단 말이냐? 쌀 한 톨 없는 빈털터리 객잔 따위 오늘이라도 헐값에 넘기고 목숨이라도 건지는 게 네놈 신상에 좋을 게다.”
장만복의 눈동자가 탐욕스럽게 번들거렸다.
단순히 돈을 받으러 온 채권자의 태도가 아니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 허름한 객잔 터와 건물을 통째로 빼앗기 위해 날짜를 억지로 당겨 압박하는 모양새였다.
도윤은 장만복의 뒤에 선 장정들의 험악한 기세를 훑어보았다.
무공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몸이었다. 여기서 물리적으로 부딪히면 뼈도 못 추릴 것이 뻔했다.
하지만 도윤은 물러서지 않고 객잔 기둥을 가리켰다. 기둥에는 희미하게 먹물로 쓰인 네 글자가 남아 있었다.
‘돌아오는 이가 쉬어 가는 곳, 귀래(歸來).’
“객잔은 돈을 받고 밥을 파는 곳입니다. 채무의 기일이 남았는데도 무단으로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는 것은 청하성 관아의 상업 규율에도 어긋나는 일이지요.”
“뭐, 관아? 이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사흘을 주십시오.”
도윤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사흘 뒤 그믐날 정오까지 이자 오십 냥을 정확히 채워 드리겠습니다. 만약 단 한 푼이라도 모자란다면 제 발로 문패를 떼어 대인의 발밑에 바치지요. 허나 그전에 한 번만 더 객잔의 문턱을 어지럽힌다면 관아에 포청 고발장을 넣고 손해배상부터 청구할 것입니다.”
조용하지만 서늘한 기백이었다.
장만복은 도윤의 서슬 퍼런 눈매에 눌려 턱을 파르르 떨었다. 죽어가던 놈이 관아의 법조문까지 들먹이며 나오자 선뜻 장정들을 휘두르기 망설여진 모양이었다.
“……좋다. 네놈이 제 무덤을 파는구나! 사흘 뒤 정오다. 그때 오십 냥을 내놓지 못하면 네놈 손가락을 잘라 지장을 찍게 만들 테니 그리 알아라!”
장만복은 침을 퉤 뱉고는 장정들을 이끌고 객잔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문이 닫히자 소담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쳤어요, 정말? 오십 냥이 어디서 난다고 사흘 뒤를 약속해요? 우리 주머니엔 엽전 서 푼도 없는데!”
“사흘의 시간을 벌었잖아.”
도윤은 흐트러진 탁자를 바로 세우며 담담하게 답했다.
“시간만 벌면 뭐 해요! 손님 한 명 안 오는 고갯길 흉가 같은 객잔에서 사흘 만에 오십 냥을 어떻게 벌 건데요!”
쿵!
그 순간 객잔 마당 한복판에서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소담이 힉 소리를 내며 입을 틀어막았다.
도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당으로 통하는 판자문을 열어젖혔다.
비에 젖은 진흙 바닥 위에 누군가가 엎어져 있었다.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이었다. 헤진 장포는 온통 비와 흙탕물로 엉망이었고 왼쪽 허리께에서는 검붉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와 마당의 빗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람…… 사람이에요! 피가……!”
소담이 사시나무 떨듯 떨며 뒤로 물러섰다.
“주인장, 절대 엮이면 안 돼요. 강호 칼잡이들 싸움에 휘말리면 객잔이고 뭐고 하룻밤 새 몰살당한다고요!”
도윤은 노인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노인의 호흡은 얕고 거칠었으며 드러난 손목 맥을 짚자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입술은 짙은 청자색으로 말라붙어 있었고 귓가로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더운 것…… 속을…… 덥힐 것…… 한 모금만…….”
살고자 하는 갈망이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살려달라 울부짖던 손님들의 마지막 목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도윤은 망설임 없이 노인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넣었다.
“소담아, 주방 평상에 멍석 깔아라.”
“뭐요? 저런 피투성이를 주방으로 들이겠다고요?”
“손님이 문턱을 넘어왔잖아. 주방에 불 피워.”
도윤의 목소리에는 거스를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소담은 입술을 깨물면서도 주방으로 달려가 평상 위의 먼지를 털어냈다.
노인을 평상에 눕힌 도윤은 낡은 무명천을 찢어 노인의 허리 검상을 단단히 동여맸다. 상처도 깊었지만 노인의 진짜 문제는 뱃속 깊은 곳에서 얼어붙은 채 맥을 틀어막고 있는 지독한 한기였다.
‘속이 완전히 비어 있어. 기혈이 바닥나서 상처를 밀어낼 힘조차 없는 상태다.’
약방의 귀한 영약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지금 객잔에 그런 것은 없었다.
오직 묵은 밀가루와 마른 산나물, 소금과 들기름뿐이었다.
도윤은 우물가로 가 손을 바득바득 씻었다. 손톱 밑까지 깨끗이 헹궈낸 뒤 주방으로 돌아와 소매를 걷어붙였다.
먼저 낡은 질화로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맑은 우물물을 가득 채웠다.
이어 묵은 밀가루를 넓은 목기에 붓고 소금을 탄 미온수를 조금씩 부어가며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밀가루의 묵은 냄새를 잡으려면 치대는 손의 압력과 공기 접촉이 중요했다.
도윤의 손바닥이 반죽을 짓누르고 접고 당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손끝에 닿는 반죽의 결이 차츰 매끄러워지며 찰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도윤의 손끝에서 찌릿한 열감이 일어났다.
단순한 마찰열이 아니었다. 손바닥의 체온을 넘어 반죽 깊숙한 곳으로 은은하고 맑은 기운이 뻗어 들어가는 생생한 감각이었다.
‘이건…… 뭐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손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도윤은 끓는 물에 마른 산나물을 재빨리 데쳐내 찬물에 헹군 뒤 물기를 꽉 짰다. 억센 줄기를 골라내고 연한 잎만을 잘게 다진 후 거친 천일염과 들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버무렸다.
고기 한 점 없는 소였지만 들기름의 고소한 향과 산나물의 그윽한 흙 향이 어우러지며 주방 안을 가득 메웠다.
도윤은 숙성된 반죽을 얇게 밀어 둥근 만두피를 만들어냈다.
가운데가 도톰하고 가장자리가 종잇장처럼 얇은 완벽한 형태였다. 그 위에 산나물 소를 얹고 엄지와 검지로 주름을 잡아 꼭꼭 여몄다.
하나, 둘, 셋.
정갈하게 빚어진 만두 세 알이 낡은 대나무 찜기 위에 얌전히 올라앉았다.
가마솥의 물이 펄펄 끓어오르자 찜기를 얹고 뚜껑을 덮었다.
뽀얀 수증기가 치솟으며 묵은 주방의 공기를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뚜껑을 열자 맑고 투명하게 익은 만두피 속으로 푸른 산나물의 빛깔이 비쳐 보였다. 기름기 하나 없이 맑고 은은한 향이 평상 위에 누워 있던 노인의 코끝을 건드렸다.
노인의 감겨 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번쩍 떠졌다.
흐리멍덩하던 눈동자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 그릇에 가닿았다.
“……이게 무슨 향이냐.”
노인의 쉰 목소리에 도윤이 나무 숟가락으로 만두 한 알을 조심스럽게 떠 노인의 입가로 가져갔다.
“뜨거우니 천천히 씹으십시오. 산나물로 빚은 만두입니다.”
노인은 홀린 듯 입을 벌려 만두를 받아 베어 물었다.
바삭하게 씹히는 쫄깃한 피 사이로 맑고 따뜻한 채즙이 입안 가득 터져 나왔다. 들기름의 은은한 고소함과 산나물의 깊은 떫은맛이 기적적인 조화를 이루며 식도를 타고 흘러내렸다.
단순한 음식의 온도가 아니었다.
만두 한 알이 목구멍을 넘어 위장에 닿는 순간 얼어붙어 있던 단전과 막혀 있던 오장육부의 혈맥을 타고 거대한 열파가 용트림치듯 뻗어나갔다.
“크윽……!”
노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파리하던 얼굴에 핏빛이 돌다 못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노인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어르신!”
소담이 비명을 질렀고 도윤이 노인의 어깨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푸화악!
노인의 입에서 시커멓게 썩은 핏덩어리가 쏟아져 나와 주방 바닥을 물들였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검은 피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치이익 소리를 내며 거품을 일으켰다.
바닥을 적신 것은 단순한 피가 아니었다.
삼십 년 동안 몸속에서 썩어가며 생명을 갉아먹던 지독한 독혈(毒血)이었다.
검은 피를 토해낸 노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으로 가득 찬 노인의 두 눈이 도윤을 꿰뚫을 듯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