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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길들이기는 생계형입니다3화

몬스터 길들이기는 생계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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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흙이 돈이 되는 순간

콩이가 흙벽을 파고들 때마다 좁은 굴 안으로 따뜻한 바람이 흘러들었다.

도현은 한 손으로 삽을 세워 천장을 받쳤다. 다른 손으로는 콩이의 등을 살폈다. 깨진 앞발톱 주변이 다시 붉어져 있었다.

“잠깐 쉬자. 발이 또 벌어졌어.”

괜찮다. 여기 흙은 부드럽다.

“괜찮은 얼굴이 아닌데.”

콩이는 대답 대신 코를 벽에 붙였다. 작은 콧구멍이 빠르게 벌어졌다 오므라들었다. 도현은 그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서 방향을 고를 수 있는 존재는 콩이뿐이었다. 무너진 통로는 위에서 돌이 눌러 파고들 수 없었다. 남은 물은 몇 모금이고 영양바도 손가락 두 마디만큼 남았다.

그러니 콩이의 감각을 믿어야 했다.

“어느 쪽이야?”

왼쪽은 돌. 위는 빈 곳이지만 곧 무너진다. 오른쪽은 흙이 이어진다.

콩이가 오른쪽 벽을 앞발로 톡톡 두드렸다. 도현은 램프를 그 방향으로 비췄다. 빛 속에서 가느다란 흙가루가 아래로 떨어졌다. 거미줄처럼 갈라진 틈 사이로 아주 약한 바람이 들어왔다.

“좋아. 오른쪽으로 가자. 네가 먼저 파고 내가 받칠게.”

도현은 삽날을 벽 아래쪽에 비스듬히 꽂았다. 콩이는 그 옆에 몸을 낮췄다. 앞발을 들 때마다 도현은 무의식적으로 상처 난 발톱을 피하는 각도를 확인했다.

사각. 사각.

콩이가 두 번 파면 도현이 한 번 걷어 냈다. 도현이 흙을 바깥으로 밀어낼 때마다 콩이는 파낸 벽을 코로 눌러 보았다. 흙이 단단한 곳에서는 몸을 돌렸고 작은 자갈이 섞인 곳에서는 도현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여기는 내가 할게.”

콩이는 곧바로 바닥에 배를 붙였다. 큰 몸이 좁은 굴 안에서 납작해지는 모습이 우스웠지만 도현은 웃지 못했다. 발톱에서 피 냄새가 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현은 물병을 꺼냈다. 병을 기울이자 바닥에 맺힌 물이 가늘게 흔들렸다.

“마시지는 말고 상처만 씻자. 나도 목이 타지만 네 발이 더 급해.”

콩이는 물병을 보자 고개를 저었다.

도현을 위해 남겨라.

그 뜻이 또렷하게 전해졌다. 도현의 손이 잠시 멈췄다.

“나 혼자 살아서 어디로 가려고. 같이 나가야 밥도 먹지.”

그는 손수건 끝에 물을 적셔 콩이의 발톱 주변을 닦았다. 콩이의 몸이 움찔했지만 이번에는 발을 빼지 않았다. 검은 딱지가 젖은 천에 묻어 떨어졌다.

“조금만 참아. 다 나으면 네 발로 나보다 훨씬 빨리 걸을 거잖아.”

콩이는 낮게 콧김을 내뿜었다. 싫다는 뜻인지 부끄럽다는 뜻인지 도현은 구분하지 못했지만 발을 그대로 맡겨 준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한참을 기어간 끝에 굴의 끝이 갑자기 넓어졌다.

콩이가 먼저 머리를 내밀었다. 도현이 램프를 높이 들자 어둠 속에 천장이 보이지 않는 공간이 드러났다. 넓이는 채굴조가 쓰던 임시 야적장만 했고 바닥은 물결처럼 고른 검은 흙으로 덮여 있었다.

벽 사이에는 푸른 광석 조각이 가느다란 선을 이루고 있었다. 광석 선은 바닥 아래로 이어졌다가 공간 한가운데에서 끊겼다.

“이런 곳이 있었어?”

콩이는 대답하지 않고 코를 바닥에 댔다. 따뜻한 공기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었다. 흙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좋은 흙이다. 잠든 흙이다.

도현은 조심스럽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파 보니 표면 아래에 촉촉한 흙이 나왔다. 던전의 흙은 보통 쇠 냄새와 마력 찌꺼기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하지만 이 흙에서는 비 온 뒤 밭처럼 풋풋한 향이 났다.

콩이가 푸른 광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입을 벌리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먹지 마.”

맛있는 돌이다.

“맛있어 보여도 안 돼. 네 발도 다쳤는데 광석까지 먹으면 속이 어떻게 될지 몰라.”

콩이는 광석 앞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도현은 녀석의 앞을 막고 흙을 한 움큼 집었다.

“이걸 먼저 먹어 봐. 냄새가 좋다고 했잖아.”

콩이는 흙을 바라보다가 도현의 손바닥을 핥았다. 그다음 흙을 조금씩 받아먹기 시작했다.

우적. 우적.

흙을 먹는 소리는 이상했지만 콩이의 표정은 진지했다. 볼이 부풀었다가 가라앉고 작은 귀가 만족스럽게 흔들렸다.

잠시 뒤 콩이의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배탈 난 거 아니지?”

아니다. 밀어내는 중이다.

콩이가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뒤쪽으로 따뜻한 갈색 알갱이 몇 개가 또르르 굴러 나왔다. 일반적인 배설물보다 단단하고 표면이 매끈했다. 알갱이 안쪽에서는 희미한 푸른 빛이 맥박처럼 뛰었다.

도현은 코를 가까이 가져갔다.

흙 냄새였다. 그런데 그냥 흙 냄새가 아니었다. 오래 비워 둔 밭에 처음 삽을 꽂았을 때처럼 생명이 기다리는 냄새가 났다.

시야에 글자가 떠올랐다.

[몬스터 특성의 생산 방향을 확인합니다.]

[영양 마력 토양 배출]

[토양 내 마력 흐름 안정화 및 식물 성장 보조]

도현은 한동안 문장을 읽기만 했다.

“네가 먹은 흙이 이렇게 되는 거야?”

콩이는 배를 내밀었다. 콧김이 어깨를 간질였다.

자랑이다.

“그래. 잘했어. 아주 잘했어.”

도현은 콩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콩이는 몸을 비틀어 손바닥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발톱 하나에도 도현을 공격했지만 이제는 칭찬을 더 달라는 듯 턱을 내밀고 있었다.

그 순간 도현의 머릿속에 숫자가 떠올랐다.

[사회성: 100%]

[생산형 특성의 안정적 발현을 확인했습니다.]

“사회성은 이미 끝났는데 특성은 이제 확인하는 거구나.”

도현은 흙 알갱이를 작업복 주머니에 넣었다. 손바닥만 한 양이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얻은 어떤 마석보다 마음이 급하게 뛰었다.

마력 토양.

이게 농장에 쓰일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반 약초가 자라는 데 한 달이 걸린다고 해도 이 흙이 성장 속도를 줄여 준다면 수확 주기를 크게 앞당길 수 있다. 헌터들이 먹는 회복 약초는 늘 부족했고 길드가 중간에서 값을 올렸다.

도현은 계산을 멈췄다.

“아직은 던전이야. 돈부터 생각하면 콩이 발이 다시 터져.”

그는 배낭을 열었다. 비상 식량 상자에서 챙겨 둔 작은 약초 씨앗 두 알이 나왔다. 채굴 중 허기를 달랠 수 있을까 싶어 넣어 둔 것이었다.

도현은 광장 가장자리의 흙을 손가락으로 파고 씨앗 하나를 심었다. 마력 토양 알갱이 한 개를 씨앗 위에 올린 뒤 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콩이는 도현과 씨앗을 번갈아 바라봤다.

“역시 물이 부족한가.”

도현이 병을 다시 기울이려 하자 콩이가 그의 손목을 앞발로 눌렀다.

물을 아껴라. 흙이 먼저다.

“그렇게 말해도 씨앗은 물이 필요하잖아.”

도현은 손가락 끝에 묻은 물기를 씨앗 주변에 문질렀다. 그리고 콩이에게 알갱이 두 개를 더 배출해 달라고 부탁했다.

콩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흙을 한 번 더 먹었다. 이번에는 광장 가장자리에서 골라 먹었다. 검은 흙 중에서도 푸른 광석 선과 맞닿은 부분만 집어 삼켰다.

“그걸 구분할 수 있어?”

마력이 흐르는 곳은 맛이 다르다.

콩이는 다시 알갱이를 배출했다. 도현이 그것을 부숴 씨앗 주변에 얇게 펴자 흙 속에서 작은 빛이 번졌다.

싹은 처음에는 떨리는 실처럼 올라왔다. 곧 잎 두 장이 벌어졌고 가느다란 줄기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자랐다.

도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성장한 게 아니라 튀어나온 거잖아.”

콩이가 자랑스럽게 꼬리로 바닥을 쳤다.

[새 특성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고속 경작]

[영양 마력 토양과 연계 시 성장 속도 상승]

도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광장 어딘가에서 돌이 갈리는 소리가 들려 입을 다물었다.

콰직.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푸른 광석 선이 한 번 깜빡이더니 공간 한쪽의 흙벽이 낮게 흔들렸다.

“여기도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네.”

도현은 빠르게 움직였다. 첫째로 콩이의 발을 살폈다. 피는 멎었지만 통증이 남아 있었다. 둘째로 마력 토양을 작업복 안쪽 주머니에 나눠 담았다. 셋째로 광장 주변에 삽으로 짧은 선을 그었다.

“이 선 안쪽은 안전한 것 같아. 콩이야. 출구를 찾되 무리해서 파지 마.”

콩이는 코를 바닥에 붙인 채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다 광장 반대편의 흙더미 앞에서 멈췄다.

도현이 옆에 앉자 콩이는 발바닥으로 땅을 두드렸다.

바람이 있다. 아주 멀리서 사람이 움직인다.

“사람?”

길드 냄새다. 쇠와 기름 냄새.

도현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무전기를 꺼내 전원을 확인했다. 잡음뿐이던 기계가 그때 짧게 켜졌다.

  • 안쪽 반응은?

최창수의 목소리였다. 이어서 다른 길드원이 낮게 대답했다.

  • 없습니다. 봉쇄 구역으로 보고서 올리면 됩니다.

  • 좋아. 한도현은 낙석에 휩쓸린 걸로 정리해.

무전은 거기서 끊겼다.

도현은 기기를 내려다봤다. 손끝이 떨렸지만 이번에는 분노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짧은 대화는 잡음 사이로 끊겨 있었고 정확한 증거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자신을 찾는 구조대가 아니라 사고 보고서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는 녹음 기능을 켜고 무전기를 가슴 안쪽에 넣었다.

“콩이야. 저 사람들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걸 알면 다시 데려갈 거야.”

데려가면 안 된다.

“그래. 안 돼.”

도현은 광장 한가운데에서 자란 싹을 바라봤다. 불과 몇 분 전까지 그는 살아 나갈 수 있을지조차 계산하지 못했다. 이제는 배낭 안에 새로운 흙이 있고 옆에는 자신을 믿는 동료가 있었다.

돈이 되는지 확인하려면 지상으로 나가야 한다. 지상으로 나가려면 지금 이 굴을 통과해야 한다.

“콩이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부탁할게. 출구를 안정시키자. 네 발에 무리가 가지 않게 내가 먼저 파고 네가 흙을 받쳐 줘.”

콩이는 앞발을 들었다가 도현의 손등 위에 올렸다.

같이 한다.

도현은 먼저 흙벽 아래를 조금씩 팠다. 콩이는 먹어도 되는 흙만 골라 삼켰다. 흙을 배출할 때마다 무너진 가장자리에 둥근 알갱이가 박혔다. 알갱이는 금세 단단해지며 벽을 붙잡았다.

“이건 토양 배출이 아니라 보강재로도 쓸 수 있겠는데.”

도현은 금방 생각을 고쳤다.

“아니. 지금은 탈출부터.”

둘은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다. 도현이 삽으로 작은 구멍을 내면 콩이가 안전한 흙을 골라 파고 그 자리를 마력 토양으로 메웠다. 처음에는 발을 감싸던 통증 때문에 움직임이 느렸지만 콩이는 점점 힘을 조절했다.

이윽고 흙벽 너머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빛과 함께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지상에 가까운 냄새였다. 마른 풀과 낡은 금속 냄새가 섞여 있었다.

도현은 기뻐하기 전에 몸을 낮췄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봉쇄석을 조금만 열어. 안쪽 붕괴가 더 진행됐는지 확인하고 닫는다.”

길드원이었다.

도현은 콩이의 등을 눌러 광장 안쪽으로 물렸다. 콩이는 몸을 낮추고 흙더미 사이에 숨었다. 커다란 몸이 숨겨질 리 없었지만 따뜻한 마력 토양 냄새가 콩이의 체취를 덮었다.

봉쇄석이 흔들렸다.

도현은 배낭 끈을 조였다. 손에는 삽이 있었고 주머니에는 작은 흙 알갱이들이 들어 있었다. 무기를 휘두를 힘은 없었다. 대신 이곳의 길과 콩이의 감각과 기록되지 않은 특성이 있었다.

밖의 사람이 다시 외쳤다.

“안쪽에 생명 반응은?”

도현은 콩이의 눈을 바라봤다. 노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없다고 해.”

콩이의 꼬리가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봉쇄석 사이로 빛이 넓어졌다.

도현은 숨을 죽인 채 손바닥 안의 마력 토양을 꼭 쥐었다. 자신을 버린 길드가 죽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는 동안 그는 처음으로 생계를 만들 흙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출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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