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그래프가 미래 뉴스로 보인다

2화: 확인할 수 없는 확신
내일 새벽 세움중공업, 동남아 항만 장비 대형 수주 공시 예정.
도윤은 문장을 소리 내 읽지 않았다.
시계는 화요일 오전 6시 4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차트 위의 글자는 어젯밤보다 선명했지만 여전히 출처도 날짜도 없었다. 흰 글씨 한 줄이 차트 봉 사이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그는 먼저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작업 관리자에서 프로세스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 노트북까지 재부팅했다. 비밀번호를 새로 입력하고 세움중공업 일봉 차트를 열자 문장이 다시 나타났다.
도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해킹이라면 같은 문장이 반복해서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눈앞의 글자를 미래라고 부를 근거도 없었다.
다른 종목의 일봉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세움중공업의 분봉으로 바꾸자 문장도 사라졌다. 일봉으로 돌아오자 다시 나타났다.
그는 노트에 시간을 적었다.
화요일 06시 43분. 재부팅 뒤 동일 문장 확인. 세움중공업 일봉에서만 보임.
그 밑에 ‘매매 금지’라고 썼다가 줄을 그었다. 금지라는 말은 이미 마음속에서 매매를 가정했다는 뜻이었다.
도윤은 세움중공업의 최근 공시를 날짜순으로 펼쳤다. 지난달 회사는 동남아 항만 자동화 장비 사업과 관련해 복수의 업체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계약 상대와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열흘 전에는 현지 항만 확장 사업의 입찰 결과가 이달 안에 나올 수 있다는 업계 기사가 있었다.
가능성은 있었다. 확정은 아니었다.
그는 회사 홈페이지의 투자자 문의 답변까지 내려받았다. 한 투자자가 항만 장비 수주 일정을 묻자 IR 담당자는 ‘협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공시하겠다’고 답했다. 작성일은 사흘 전이었다.
도윤은 그 문장을 확대했다. 답변에는 화요일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그러나 과거 회사 설명회 녹취를 정리한 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현지 발주처의 내부 결과 통보가 화요일 밤으로 예정돼 있습니다.’
도윤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보았다. 겨울 아침이 영등포의 건물 사이로 번지고 있었다.
문장을 만든 사람이 공개 자료를 조합했다면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세움중공업의 어떤 자료에도 ‘내일 새벽 공시 예정’이라는 말은 없었다.
그는 거래량을 30분 단위로 잘랐다. 전날 장 초반부터 평소보다 매수 체결이 많았다. 큰손의 흔적이라고 부르기에는 거래대금이 작았지만 아무 변화가 없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도윤은 계좌 잔액을 확인했다. 63만 2천 원. 검사비 42만 원과 사흘치 생활비를 제외하면 움직일 수 있는 돈은 12만 원 정도였다.
“열두만 원이면 틀려도 버틸 수 있다.”
그는 자기 말을 노트에 옮겼다. 손실 한도는 3만 원. 추가 매수는 하지 않는다. 문장이 사라지면 주문을 취소한다. 이 세 줄을 적고도 손은 한동안 주문 창 위에 머물렀다.
오전 8시 47분. 장 시작을 앞두고 세움중공업 차트의 글자가 흔들렸다.
‘내일 새벽 세움중공업, 동남아 항만 장비 대형 수주—’
마지막 말이 번졌다. 대형 수주라는 네 글자가 흐릿해지더니 차트의 회색 선 속으로 스며들었다.
도윤은 주문 창을 닫으려다 멈췄다.
문장이 바뀐 것인지 자신의 눈이 피로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캡처 키에 손가락이 닿았지만 누르지 않았다. 화면을 저장하려는 순간 문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매수 수량을 입력했다. 12만 원어치. 예상 수수료를 확인하고 손절 기준을 25퍼센트로 설정했다. 가격을 맞히는 주문이 아니었다. 문장이 가리킨 사건이 공개 자료와 함께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주문이었다.
주문 버튼을 누르자 체결 알림이 떴다.
동시에 차트 위의 글자가 한 줄로 줄었다.
‘세움중공업, 동남아 항만 장비 공급 협의 결과 발표 예정.’
도윤의 손이 굳었다.
‘대형 수주’가 ‘공급 협의 결과’로 바뀌었다. 주문 때문에 사건이 달라진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그 정도의 문장이었는데 자신이 잘못 읽은 것일까.
그는 체결 가격을 노트에 적었다. 8천4백 원. 매수 시각 8시 51분 12초. 근거는 공개 자료와 차트 위의 문장. 단, 문장의 정확한 출처는 확인 불가.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8천5백 원, 8천6백 원. 장이 열리자마자 매수 호가가 빠르게 채워졌다. 온라인 종목 게시판에는 ‘수천억 수주 임박’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도윤은 게시판을 닫았다. 소문은 근거가 될 수 없었다. 그는 추가 주문 창을 열지 않았다.
9시 18분. 주가가 8천3백 원까지 밀렸다. 손절 기준까지는 멀었지만 심장은 이미 손실을 계산하고 있었다. 12만 원은 어머니의 검사비에 비하면 작았다. 그렇다고 작다고 무시할 돈도 아니었다.
도윤은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움직이지 않는 것도 선택이었다.
오전 내내 주가는 8천2백 원과 8천8백 원 사이를 오갔다. 점심 무렵 세움중공업은 짧은 안내 공지를 올렸다.
‘당사는 동남아 항만 자동화 장비 공급과 관련해 발주처와 협의를 진행 중이며 확정되는 즉시 공시하겠습니다.’
도윤은 공지 시각과 문장을 노트에 적었다. 미래 문장이 말한 ‘공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대신 회사가 협의 사실을 인정했다.
문장은 방향을 가리켰지만 시간을 보장하지 않았다.
화요일 밤 10시 12분. 도윤은 어머니 검사비 42만 원을 별도 계좌로 이체했다. 잔액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나서야 숨이 조금 편해졌다.
그는 세움중공업의 장 마감 자료를 다시 확인했다. 종가는 8천7백 원이었다. 평가이익은 4천 원 남짓. 수익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숫자는 중요했다. 문장이 현실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숫자로 적을 수 있게 됐다.
휴대전화에 저장하지 않은 번호로 메시지가 왔다.
‘세움중공업 거래는 본인 판단입니까?’
도윤은 발신 번호를 눌렀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서윤아의 번호였다.
그는 답장을 쓰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세 번 신호가 간 뒤 윤아가 받았다.
“무슨 일입니까?”
“질문은 제가 먼저 했습니다.”
“거래한 종목을 물은 겁니까?”
“오늘 오전 세움중공업을 매수했죠.”
도윤은 창밖 어두운 도로를 보았다.
“공개 자료를 보고 판단했습니다.”
“공개 자료라면 항만 자동화 협의 공지 말입니까?”
“그것도 포함했습니다.”
윤아의 숨이 짧게 들렸다.
“도윤 씨가 매수하기 전부터 세움중공업을 관찰한 계좌가 있습니다. 거래는 하지 않았지만 주문 창을 반복해서 열었어요. 그 계좌가 어떤 계좌인지 아직 확인 중입니다.”
“제 계좌를 조사하고 있습니까?”
“도윤 씨가 참고인 조사 대상이었던 사건의 연장선입니다. 오늘 거래가 이상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연락했습니까?”
“매수 시점이 공지보다 빨랐으니까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래 문장이 보였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공개 자료를 분석했다고 말하면 거짓은 아니지만 전부도 아니었다.
윤아가 다시 물었다.
“세움중공업에서 무슨 소식을 들었습니까?”
“들은 건 없습니다.”
“그럼 직접 찾은 겁니까?”
“자료를 읽었습니다.”
“자료를 읽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전 8시 51분에 주문한 사람은 많지 않죠.”
통화가 끊긴 뒤 도윤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못했다.
차트 위에는 여전히 한 줄이 남아 있었다.
‘세움중공업, 동남아 항만 장비 공급 협의 결과 발표 예정.’
수요일 오전 1시 36분. 문장의 글자 일부가 다시 흐려졌다. ‘협의 결과’라는 말 뒤에 짧은 회색 선이 생겼다.
도윤은 잠을 포기하고 화면을 지켜봤다.
새벽 2시 04분. 세움중공업의 전자공시가 올라왔다.
‘동남아 항만 운영사와 자동화 장비 공급을 위한 기본합의서 체결.’
계약 금액은 적혀 있지 않았다. 본계약 체결 여부와 선급금 조건도 추후 협의한다고 했다. 대형 수주라는 표현은 없었다.
도윤은 공시와 차트를 번갈아 보았다. 방향은 맞았다. 규모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문장이 말한 ‘대형 수주’가 본계약을 뜻하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8천8백 원에 보유 물량의 절반을 매도했다. 원금의 절반과 수수료를 확보한 뒤 남은 물량은 손절선을 올렸다. 곧바로 전량 매도할 수도 있었지만 문장을 믿고 욕심을 부릴 수도 없었다.
매도 체결 알림이 떴다. 작은 이익이 계좌에 남았다.
그 순간 증권사 보안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한도윤 고객님 맞으십니까? 금일 오전 고객님의 계좌에 평소와 다른 접속 기록이 확인돼 연락드렸습니다.”
“접속 기록이요? 계좌 조회 흔적입니까?”
“오전 8시 49분에 다른 기기에서 인증 절차가 시도됐습니다. 로그인은 실패했습니다. 거래 직전이라 확인이 필요합니다.”
도윤은 모니터의 주문 기록을 열었다. 자신이 로그인한 시각은 8시 42분이었다. 보안센터가 말한 접속은 자신의 노트북이 아니었다.
그는 고객센터에 접속 기기와 IP 기록을 요청했다. 상담원은 본인 확인 뒤 제공할 수 있다며 접수 번호를 불러 주었다.
도윤은 접수 번호를 적다가 멈췄다. 차트 위의 문장이 사라지고 있었다.
세움중공업의 봉과 거래량만 남았다. 회색 선이 한 번 번진 뒤 모든 글자가 없어졌다.
도윤은 노트를 펼쳤다. 문장을 적어 둔 종이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종이 위의 기록만으로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서윤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세움중공업을 왜 샀습니까?’
도윤은 답장을 쓰지 못했다. 계좌에는 처음으로 자신의 판단으로 만든 작은 수익이 남았고 노트에는 설명할 수 없는 한 줄이 남았다. 능력을 말할 수 없으니 공개 자료만으로 설명해야 했지만 그 자료만으로는 자신의 거래를 온전히 증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주문보다 2분 먼저 그의 계좌를 들여다보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