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서브남의 식단표로 반란 루트를 막는 법

5화: 시녀장이 알던 길
새벽의 하인 식당에는 아직 죽 냄새가 남아 있었다.
마리는 식은 국자를 뒤집어 놓고 소금 봉인을 천으로 감싼 상자를 노려봤다.
"저걸 계속 여기 둘 겁니까?"
"목록 상자에 넣어 둬요. 주방 물건으로 쓰지 말고요."
"그 목록 상자는 누가 열어요?"
"마리와 제가 같이 엽니다."
마리는 한숨을 삼켰다. 대답은 들었지만 피로가 가시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서윤은 상자를 지나 세탁실 쪽 복도를 보았다. 하인 식당에서 세탁실로 가는 길은 짧았다. 그 뒤로 접힌 이불과 수선할 제복을 나르는 좁은 문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문을 보는 순간 발끝이 먼저 움직였다.
낡은 몸의 기억이 손목을 끌어당기는 듯했다.
서윤은 멈췄다. 자신이 아는 길이 아니었다. 게임의 지도로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문 옆의 작은 못과 물 빠진 돌바닥은 오래전부터 매일 지나온 것처럼 선명했다.
"왜 그래요?"
마리의 물음에 서윤은 문 옆의 작은 못을 가리켰다.
"저 뒤에 표찰함이 있나요?"
마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녀장님이 그걸 왜 물어요?"
"있나요?"
"있죠. 세탁물 표찰이랑 깨진 그릇 확인표를 잠깐 넣어 두는 곳이에요. 집사실까지 들고 갈 사람이 없을 때요."
서윤은 문을 열었다. 세탁실의 습기와 비누 냄새를 지나면 사람 하나가 겨우 비킬 만큼 좁은 회수 복도가 나왔다. 벽에는 작은 나무함이 줄지어 붙어 있었다. 각각의 뚜껑에는 빨랫감, 수선, 파손, 반입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반입 표찰함의 쇠고리는 열려 있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닥에만 말라붙은 검은 기름 자국이 반달처럼 남아 있었다.
서윤은 손을 대지 않고 몸을 낮췄다. 냄새는 없었다. 그러나 어제 소금 봉인의 밀랍 가장자리에서 보았던 자국과 빛깔이 같았다.
"이 함은 언제 비워요?"
"점심 전 한 번이요. 집사실 심부름꾼이 가져가죠."
"교대 직전에도요?"
마리가 답하지 못했다.
세탁실에서 천을 개던 니나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밤에는요. 급한 반입표가 있으면 여기 넣어 둬요. 아침 서기가 가져간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넣었는지는 남아요?"
"표찰 뒤에 이름을 쓰는데요. 안 쓰는 사람도 있어요. 공작님 안 계신 뒤로는 더 그랬고요."
마리의 입가가 굳었다.
"그걸 이제 말해?"
니나는 고개를 숙였다.
"주방 사람이 쓴 건 집사실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서윤은 나무함의 빈 바닥을 보았다. 누군가의 잘못을 니나에게 얹으면 다음부터는 아무도 빈 칸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말해 줘서 고마워요. 오늘부터는 급한 반입표도 표찰함에 넣을 때 두 사람이 확인해요. 하나는 넣는 사람이고 하나는 복도에서 본 사람이에요."
마리가 곧장 반문했다.
"그럼 사람 하나가 더 묶이잖아요."
"한 사람을 밤새 묶는 것보다 나아요. 교대할 때만 열면 됩니다. 확인한 사람도 당번 한 명만 적어요."
장부 위로 흐린 글자가 떠올랐다.
[시녀장 업무 기억: 회수 복도 확인]
[반입 표찰 공백: 2건]
[동선 위험: 북문 방향 상승]
서윤은 글자를 읽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북문이라는 말은 방향일 뿐이었다. 누가 갔는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몸이 기억한 길도 마찬가지였다. 길은 증거가 아니었다. 증거가 될 때까지는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었다.
집사실 문 앞에서 카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세탁실까지 뒤지셨습니까?"
"반입 표찰함을 확인했습니다."
"그 함의 위치를 어떻게 아셨죠?"
서윤은 대답을 고르느라 잠시 침묵했다.
"시녀장이 알아야 할 길이라서요."
카일의 눈빛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어제부터 당신은 알아야 할 것보다 많은 길을 압니다."
"그래서 원본은 만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해요."
토머스는 문서 보관실 안에서 장부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어제의 원본과 다른 날의 회수 목록이 놓여 있었다.
"회수함은 정식 보관함이 아닙니다. 장부에 넣을 수 없습니다."
"정식 보관함이 아니라서 빼도 된다는 뜻은 아니죠."
"관행일 뿐입니다."
"관행이 교대 공백을 만들었다면 확인해야 합니다."
카일이 차갑게 말했다.
"확인은 누가 합니까?"
서윤은 종이 세 장을 책상 위에 놓았다. 첫 장에는 토머스가 읽을 줄이 있었다. 둘째 장에는 카일이 원본 쪽수와 봉인을 적을 칸이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자신과 마리가 들은 내용을 적을 칸이 있었다.
"토머스가 읽고 카일이 쪽수와 봉인을 확인해요. 저는 들은 문장만 적겠습니다. 회수 목록은 마리가 읽고 니나가 시간을 확인해요. 누구도 혼자 원본을 보거나 사본을 만들지 않아요."
토머스가 난처한 표정으로 장부를 내려다봤다.
"하녀가 회수 목록을 읽는 건 규정에 없습니다."
"하녀가 밤에 표찰함을 비우는 것도 규정에 없었겠죠."
카일의 시선이 서윤에게 머물렀다.
"말을 조심하십시오."
"기록도 조심해야 합니다."
한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먼저 고개를 끄덕인 것은 카일이었다.
"이번만입니다. 토머스는 낭독만 하십시오. 누락 여부는 제 서명으로 집사에게 올립니다."
토머스가 봉인된 장부를 펴고 낮은 목소리로 읽었다.
"실종 십칠 일째. 북문 보급 수레 회수 목록. 향신료 빈 상자 하나. 소금 봉인 꾸러미 하나."
마리가 종이 위를 짚었다.
"그날 북문 수레는 안 들어왔어요. 주방에 빈 상자도 안 나갔고요."
"목록에는 들어 있습니다."
"수레 번호는요?"
토머스가 페이지를 넘겼다. 그가 다시 멈췄다.
"수레 번호란이 비어 있습니다."
카일이 원본의 여백을 살폈다.
"이 다음 쪽은?"
"없습니다."
"없다는 게 무슨 뜻이죠?"
"회수 목록은 다음 날 재확인 장과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장부 철에는 이 장만 있습니다."
서윤의 손끝이 종이 위에서 굳었다. 어제 보았던 교대 직전 공백과 같은 모양이었다.
"사본에는요?"
"사본에도 없습니다."
"그럼 누락이라고 적어 주세요."
토머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쓰면 집사실 관리가 문제 됩니다."
"지금도 문제입니다. 다만 종이에 없을 뿐이에요."
카일은 펜을 들어 빈 칸에 한 줄을 적었다. 다음 날 재확인 장 미첨부. 회수함 경유 여부 확인 필요.
그는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문장은 제 이름으로 집사에게 올리겠습니다. 엘나 시녀장은 이 문장을 썼다는 기록만 남기십시오."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이 의심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빈 페이지를 다시 누군가 한 사람의 실수로 만들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후계자 방의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이안은 식단 통지서를 펼쳐 둔 채 서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내 접시가 바뀌어?"
"오늘은 바꾸지 않습니다. 새 소금 상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요."
"그럼 들어오면 바뀌어?"
"확인하고 결정합니다."
이안은 종이의 빈 칸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여기에는 내 이름이 없네."
서윤은 새 통지서를 내밀었다. 맨 아래에는 후계자 명령이 아니라 반입 보류 확인이라는 작은 칸이 있었다.
"후계자님은 수레가 들어온 뒤 이 칸만 보시면 됩니다. 소금 상자가 몇 개인지와 누가 확인했는지만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류라고 쓰세요. 누구를 벌주라는 말은 쓰지 않습니다."
"그럼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주방이 멈춰?"
"그 상자만 멈춥니다. 저녁은 기존 봉인으로 만들고 부족한 건 적습니다."
이안은 오래 종이를 내려다봤다.
"그럼 해."
마리가 뒤에서 말했다.
"북문 수레 바퀴에 바르는 축유가 있어요. 창고 문지기가 수레 세울 때마다 헝겊으로 닦아 내죠."
그녀는 천에 싼 소금 봉인을 들어 올렸다.
"이 얼룩하고 같은 냄새예요. 아니, 냄새가 없어서 더 골치 아프지만 손에 묻으면 미끄러운 게 같아요."
카일이 봉인의 밀랍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북문 수레가 이 봉인을 옮겼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맞아요."
서윤은 대답했다.
"그러니 수레가 오면 증거를 만들지 말고 확인을 남기면 됩니다. 수레 바퀴와 상자 봉인을 같이 봐요."
이안이 창밖을 보았다.
"그 수레는 언제 와?"
"오후 종이 울리기 전입니다."
"그럼 저녁 준비보다 먼저 봐야겠네."
소년의 말은 짧았지만 도망치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장부 위로 다시 글자가 떠올랐다.
[북문 보급 수레: 오후 도착 예정]
[하인 식당 피로: 81%]
[문서 권한 충돌: 높음]
[다음 위험: 반입 확인 전 식사 준비]
서윤은 수치를 지우듯 눈을 한번 감았다.
오후가 오기 전까지 주방은 또 바빠질 것이다. 카일은 집사에게 문장을 올려야 하고 마리는 사람들을 돌려야 했다. 이안은 접시가 아니라 수레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이제 북문에서 들어오는 상자는 누구도 혼자 열 수 없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문을 지키는 사람도 종이를 읽는 사람도 피곤해지면 확인은 다시 형식이 된다. 서윤은 오후 종이 울리기 전에 마리에게 교대 시간을 다시 물어볼 생각이었다. 수레를 막는 일보다 먼저, 그 수레를 볼 사람을 지켜야 했다.
그래도 빈 칸을 다음 사람에게 넘기지는 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