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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공학과 조교의 졸업 논문2화

마법공학과 조교의 졸업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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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잘려 나간 한 줄

성벽 파쇄기가 멈춘 뒤에도 실습동 바닥은 한동안 가늘게 울렸다.

먼지가 가라앉은 바닥에는 포대가 긁고 지나간 긴 흉터가 남아 있었다. 안전선은 그 흉터 한가운데에서 끊겨 있었다. 붉은 칠이 벗겨진 선 너머에 리아가 있었고 토메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에른은 철제 긁개를 바닥에 내려놓고 긁혀 나간 룬판 곁에 무릎을 꿇었다. 뜨거웠던 청동은 이미 식어 가고 있었다. 대신 손끝에는 아직도 일정한 간격의 미세한 떨림이 남아 있었다.

"현장을 봉인해야 합니다."

세라가 서류판을 가슴에 붙인 채 말했다. 목소리는 평소처럼 반듯했지만 왼쪽 소매 끝에는 아까 구르면서 묻은 회색 먼지가 남아 있었다.

"비인가 회로 훼손이 발생한 이상 인장국 절차에 따라 사람부터 물리고 기재를 격리해야 해요. 추가 조사는 감정관이 와서 하는 것이 맞습니다."

"맞습니다."

에른은 곧바로 수긍했다. 세라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

"그래서 지금 기록하겠습니다. 봉인 뒤에는 이 잔향이 식습니다."

그는 낡은 놋쇠 감지판을 룬판의 세 번째 접점 위에 댔다. 마정석 결정 세 알 중 가운데 것만 실오라기처럼 희미한 빛을 품었다가 꺼졌다. 외부 입력 수치는 여전히 0이었다.

그러나 감지판의 가장자리에서는 손가락으로만 느낄 수 있는 진동이 세 번 겹쳐 돌아왔다. 마력로에서 밀려 온 약한 맥동 하나. 룬 회로를 따라 되받아친 파동 하나. 구동 축의 무거운 회전이 금속을 타고 되돌아온 파동 하나.

셋은 서로를 꺼뜨리지 않았다. 박자가 맞을 때마다 조금씩 더 크게 서로를 밀어 올리고 있었다.

에른은 노트 위에 세 개의 선을 그렸다. 첫 번째 선은 약하게 내려갔고 두 번째 선은 중간에서 되돌아섰다. 세 번째 선은 두 선이 만난 자리마다 더 높이 솟았다.

"출력은 없었는데 진동만 돌아왔어요?"

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아까처럼 렌치를 돌리지 못하고 양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

"출력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밖에서 넣은 출력이 없었을 뿐이에요."

에른은 긁힌 회로선을 가리켰다.

"이 장치는 안에서 생긴 진동을 다시 마력로 쪽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게 다시 룬 회로를 지나 구동부로 들어갔고요. 문이 닫힌 방에서 고함을 지르면 소리가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이건 소리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회로선 하나를 끊은 건 문을 연 거군요."

세라의 시선이 룬판과 에른의 노트 사이를 오갔다.

"네. 공명이 빠져나갈 틈을 만든 겁니다."

토메는 대화에 끼지 않고 포대 하부에 엎드려 있었다. 잠시 뒤 그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손에는 파손된 지지대에서 떨어져 나온 검은 금속 조각이 들려 있었다.

"조교님. 이쪽을 보셔야겠습니다."

토메가 조각의 안쪽 면을 닦아 냈다. 부식으로 얼룩진 겉면과 달리 안쪽에는 푸른빛 열 변색이 선명했다. 끊긴 주조선 위로 다른 금속을 억지로 메운 흔적도 보였다.

"고주파 용접입니다. 적어도 몇 년 된 흔적은 아니에요. 열이 완전히 빠진 용접면은 이렇게 반들거리지 않습니다."

그는 손끝에 묻은 기름을 냄새 맡고 미간을 좁혔다.

"고급 마도유까지 썼습니다. 폐기장 지급품은 점도가 더 낮고 쇳내가 강한데 이건 정제한 은분이 섞였어요. 최근에 누군가 구동축과 지지대를 손봤습니다."

리아가 포대 쪽을 돌아보았다.

"고물을 고쳐서 실습동에 가져다놨다고요? 그럼 왜요?"

아무도 바로 답하지 못했다.

세라는 부러진 지지대와 안전선을 한 번씩 살피더니 서류판의 빈칸을 펼쳤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사고 원인란을 비워 두었다.

"감정관에게 이 조각을 넘기겠습니다. 인장국의 절차가 느리더라도 증거물은 남겨야 합니다."

에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규정을 앞세우던 세라의 목소리에는 이제 자신을 설득하려는 힘보다 사실을 놓치지 않으려는 긴장이 더 컸다.

그때 실습동 출입문이 거칠게 열렸다.

폐기장 관리인 로브릭이 붉은 봉인이 찍힌 문서를 든 채 들어왔다. 뒤에는 학과 행정실의 심부름꾼 둘이 커다란 봉인 상자를 끌고 있었다.

"전원 물러나십시오. 학장실에서 사고 수습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로브릭은 바닥의 흉터를 훑어보지도 않고 문서를 펼쳤다.

"원인은 기재 노후화에 따른 지지대 붕괴 및 실습생의 안전거리 미준수. 서명할 사람은 여기 서명하세요."

에른은 문서 첫 줄을 읽은 뒤 고개를 들었다.

"학생들은 안전선 안에 있었습니다. 포대가 안전선을 넘어 무너졌습니다."

"그 부분은 학장실에서 판단합니다."

"그리고 원인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수리 흔적이 있습니다."

토메가 금속 조각을 내밀었다. 로브릭은 그것을 받지 않았다.

"군용 반출품의 보수 이력은 학과 조교가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회수반이 오면 알아서 검토하겠죠."

"그럼 최소한 ‘원인 조사 중’이라고 적으십시오."

에른의 말은 낮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로브릭의 입가가 딱딱하게 굳었다.

"바일 조교. 자네가 여기서 한 일은 인가받지 않은 군용 룬 회로를 훼손한 겁니다. 학장님은 그 점을 크게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괜히 서류를 복잡하게 만들지 마세요."

리아가 렌치를 든 손을 내렸다.

"제가 안전선 안에 있었어요."

모두의 눈이 그녀에게 쏠렸다.

리아는 입술을 한 번 깨물고 로브릭을 똑바로 바라봤다.

"포대가 넘어오고 조교님이 저를 밀어냈습니다. 제가 멀리 있었다는 식으로 쓰면 거짓말이에요."

"학생은 충격을 받았을 테니 진술은 나중에 받겠습니다."

"충격을 받았어도 거리 표시는 읽을 줄 압니다."

리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토메가 그녀의 팔꿈치를 살짝 잡았지만 리아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세라는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서류판에서 안전선 도면을 꺼내 바닥의 흉터와 대조했다.

"실습생의 안전거리 미준수라는 항목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현장선이 이동한 것이 아니라 포대가 선을 침범한 것입니다. 이 점은 제 견습관 기록에도 남기겠습니다."

로브릭의 시선이 차갑게 변했다.

"오르벨 양까지 일을 키우겠다는 겁니까?"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제 일입니다."

짧은 침묵이 실습동에 내려앉았다. 에른은 그 사이 룬판의 잔향이 한 겹 더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말싸움에서 이기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노트를 펴서 감지판 수치와 접점 위치를 빠르게 옮겼다. 마력로 차단 밸브의 잔류 압력. 룬 회로의 역위상 간격. 구동 축의 되울림 주기. 글자는 빽빽해졌고 잉크 얼룩은 손등까지 번졌다.

로브릭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개인 기록도 현장 자료입니다. 봉인 상자에 넣으세요."

에른은 펜을 멈췄다. 노트 속에는 성벽 파쇄기의 수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섯 번 반려된 논문 초안과, 이름도 적지 않은 광산 난방로의 진동 메모가 함께 끼워져 있었다.

그는 마지막 줄을 적었다.

‘세 번째 교차점 절단 후 되울림 소멸. 잔향은 47초간 유지.’

그리고 노트를 덮었다.

"사고 기록은 학장실에 직접 제출하겠습니다."

"그것도 봉인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학장실 지시서에 제 개인 노트까지 적혀 있습니까?"

로브릭은 대답하지 못했다.

에른은 노트를 가죽 가방 깊숙이 넣었다. 세라가 아무 말 없이 봉인 상자의 뚜껑을 바라보고 있었고 토메는 금속 조각을 자신의 손수건으로 감쌌다. 리아는 먼지가 묻은 안전선 바깥으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로브릭은 파쇄기와 제어 룬판만 봉인했다. 상자가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실습동의 정적을 갈랐다.

해가 낮게 기울 무렵 에른은 조교실에 돌아왔다.

창문 밖의 종탑 그림자가 책상을 천천히 덮었다. 책상 위에는 심사위원회의 반려 도장이 찍힌 논문 초안 여섯 편이 쌓여 있었다. ‘마력량 부족의 실용적 보완.’ ‘소형 난방로의 열손실 저감.’ 제목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적은 마력으로도 누구나 쓸 수 있는 안전한 장치를 만들고 싶다는 것.

에른은 가장 오래된 초안을 펼쳤다. 종이 가장자리에 어린 시절의 자신이 적은 듯한 글씨가 남아 있었다.

‘고장 나면 멈추게 할 것.’

열두 해 전 광산 마을의 겨울은 지나치게 길었다. 난방로가 울기 시작했을 때 어른들은 석탄이 모자라 배관이 떨리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에른은 벽을 타고 올라오는 세 겹의 울림을 들었다. 한 번은 낮고 한 번은 날카롭고 마지막 한 번은 앞의 둘을 밀어 올렸다.

그는 그 소리를 설명할 말을 몰랐다.

그래서 아무도 멈추지 못했다.

에른은 펜 끝으로 옛 제목을 천천히 지웠다.

‘저출력 마력 환경에서의 마도기관 효율 개선.’

그 아래에 새 제목을 적었다.

‘외부 입력 차단 상태에서 발생하는 닫힌 공명 구조의 검증과 차단 조건.’

문이 노크도 없이 반쯤 열렸다. 리아가 고글을 벗어 손에 든 채 문틈에 서 있었다. 평소 같으면 먼저 안으로 들어왔을 테지만 이번에는 에른의 표정을 살핀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깐 들어가도 돼요?"

에른이 고개를 끄덕이자 리아는 접힌 양피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제 도면이에요. 내일 공방 경진회 예선에 낼 소형 양수기인데요. 압력이 약해서 되돌이 룬을 두 개 겹쳤어요."

양피지에는 가느다란 물관과 작은 구동륜, 복잡하게 이어진 룬 배열이 그려져 있었다. 세밀한 선은 자신감 있게 뻗어 있었지만 입력부와 회수부는 지나치게 가까웠다.

"출력 부족을 피하려고 했군요."

"네. 그런데 조교님이 아까 그린 세 줄을 보니까 이게 도움이 아니라 서로 밀어 올리는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리아는 룬 하나를 손끝으로 짚었다.

"여기서 되돌아온 압력이 다시 여기를 건드리면요? 물이 약하게 나오는 게 아니라 계속 흔들리다가 관이 터질 수도 있죠?"

에른은 그녀를 바라봤다. 리아는 답을 아는 척하려는 얼굴이 아니었다. 틀렸다면 고칠 준비를 한 얼굴이었다.

"맞습니다. 다만 바로 터지지는 않아요. 이 구동륜의 무게가 완충 역할을 하니까요."

그는 펜으로 회수 룬의 끝을 가리켰다.

"여기에 열림 접점을 하나 두세요. 압력이 기준을 넘으면 되돌이 고리가 끊어지고 물은 약해져도 관은 살아남습니다."

"멈출 길을 먼저 만든다."

리아가 낮게 따라 말했다.

"네. 잘 돌아가는 장치보다 고장 났을 때 멈추는 장치가 더 오래 갑니다."

리아는 한동안 새 제목을 바라봤다.

"그 논문으로 졸업하실 수 있어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쓰시겠네요."

에른은 대답 대신 노트의 수치들을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손글씨가 낯설지 않았다.

문밖에서 구두 굽 소리가 멈췄다. 검은 제복을 입은 심부름꾼이 봉인된 호출장을 내밀었다.

"베르몬 케이드 학장님께서 즉시 뵙자 하십니다. 사고 기록을 지참하라는 말씀도 함께 전하셨습니다."

리아가 호출장의 붉은 봉인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심부름꾼이 떠난 뒤 에른은 봉인을 뜯었다.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기록을 성실히 제출한다면 다음 논문 심사의 재상정 여부를 검토하겠음.’

그 아래에는 군부 회수반의 관리 번호가 찍혀 있었다. 번호 곁의 표식은 세모 안에 나란한 세 줄이었다.

에른의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그 표식은 낯설지 않았다. 광산 난방로가 무너진 뒤 잔해를 실어 나르던 검은 상자마다 그려져 있던 모양이었다. 당시 그는 그저 사고 뒤처리를 맡은 물자 상단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그것이 군용 마도기관 회수반의 표식이라는 사실이 목을 조여 왔다.

에른은 호출장과 새 논문 제목이 적힌 노트를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침묵의 값을 적은 종이였고 다른 하나는 아직 증명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는 노트를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고 조교실 불을 껐다.

이번에는 반려 도장 하나로 끝낼 수 없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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