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쓸모없는 막내아들이었다]

6화: 경계에 선 벽
공명판의 바늘은 새벽이 밝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카엘은 대장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바늘과 창문 사이를 번갈아 보았다. 화로에는 불도 없었고 바람이 드는 틈은 진흙으로 막아 두었다.
첫 햇빛이 창틀을 넘자 바늘이 북동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었다.
팅.
전선용 강철판이 혼자 울었다.
에리나는 망치를 든 채 굳었다.
“광산 쪽이 아니에요.”
카엘은 종이에 방향을 표시했다. 폐광은 서쪽 언덕 아래였다. 바늘이 가리킨 곳은 말라붙은 수로를 지나 그레이몬트 자작령과 맞닿는 북동쪽 경계였다.
“어제도 이쪽이었어?”
“처음에는 광산 쪽 같았는데 오늘은 확실히 달라요.”
에리나는 철판에 귀를 댔다가 이내 고개를 들었다.
“화로 소리도 아니고 땅이 갈리는 소리도 아니에요. 안에서 누가 두 번 두드리고 멈춘 것 같아요.”
카엘은 대답 대신 공명판 아래에 적어 둔 기록을 훑었다. 두 번의 진동. 일정한 간격. 불을 끄고도 남는 반응.
전생의 지식은 그 현상에 이름을 붙여 주지 못했다.
대장간 문이 거칠게 열렸다. 로웬의 젖은 망토 끝에서 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도련님. 공작 각하께서 북동 경계로 오라 하십니다.”
“무슨 일입니까?”
“그레이몬트 자작가의 집사가 병사 스무 명을 데리고 수로 측량을 하겠답니다. 오래된 물길이 자기네 땅까지 이어진다고요.”
카엘의 눈이 다시 종이 위 화살표로 내려갔다.
마정석 한 조각이 나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그레이몬트가 말라붙은 수로를 기억해 낸 시점은 지나치게 절묘했다.
“공명판을 챙겨.”
에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걸 경계까지요?”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어.”
바란의 집무실에는 젖은 흙 냄새가 배어 있었다.
창가에는 테오도르가 서 있었고 탁자 위에는 누렇게 바랜 수로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지도 한쪽에는 붉은 왁스가 찍힌 문서가 놓여 있었다.
“그레이몬트의 집사 벨트람이 가져온 사본이다.”
바란이 말했다.
“백여 년 전 수로 보수 때 경계를 잠시 넘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다만 수로가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지.”
카엘은 문서를 들여다보았다. 인장은 오래됐지만 사본의 가장자리는 지나치게 새것이었다.
“그들은 보수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근거는?”
“물이 흐르려면 수로 바닥이 북쪽으로 더 낮아야 합니다. 이 지도에서는 반대예요. 그레이몬트 쪽에서 손을 대면 물은 자기 땅으로 가지 않고 우리 폐광 아래로 돌아옵니다.”
테오도르가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뭘 보러 온 거지?”
“광산 쪽 지형일 겁니다. 수로 아래가 비어 있는지 확인하려는 걸 수도 있고요.”
바란의 손가락이 문서 위에서 멈췄다.
“중앙 재조사관이 닷새 뒤에 온다. 여기서 피를 보면 그 문서 한 장이 켈른을 물고 늘어질 구실이 된다.”
“그렇다고 말뚝을 넘게 둘 수는 없습니다.”
테오도르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바란은 카엘을 보았다.
“네가 간다고 들었다.”
“공명판이 북동쪽 땅에서 반응했습니다. 광산의 현상과 관계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병사들 뒤에 서서 기록만 해라.”
“장치 하나를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테오도르의 시선이 곧장 날아왔다.
“없다.”
“형님.”
“네 장치는 화로 옆에서도 스스로 울었다. 경계에서 터지면 누가 책임지지?”
카엘은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테오도르의 말은 맞았다. 그래서 그는 품에서 얇은 종이를 꺼냈다.
“낮은 출력으로 화살 한 번을 막는 장치입니다. 실패하면 회로가 먼저 끊어지게 만들겠습니다.”
바란이 물었다.
“막지 못하면?”
“사람이 막습니다. 장치는 병사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그 말은 네가 믿을 만하다는 뜻인가?”
“아닙니다. 장치의 한계를 먼저 정하겠다는 뜻입니다.”
바란은 한참 말이 없었다. 테오도르가 카엘이 든 종이를 받아 들었다.
‘중심석의 빛이 세 번 흔들리면 즉시 회로를 끊는다.’
테오도르는 그 줄을 읽고 종이를 돌려주었다.
“그 조건을 네가 지키면 된다. 장치가 아니라 네가 멈추는지 보겠다.”
바란은 로웬에게 지도를 접으라고 지시했다.
“해 지기 전까지 만든다. 테오도르의 승인 없이는 경계에 세우지 마라.”
에리나는 전선용 강철판을 세 조각으로 잘랐다.
“이걸 벽으로 세우는 거예요?”
“벽 자체가 아니야. 충격이 들어오면 마력을 넓게 펴서 밀어 내는 틀이지.”
카엘은 세 판을 반원으로 벌리고 끝마다 구리선을 감았다. 중앙에는 가장 작은 마정석 조각을 끼웠다. 빛을 내기에는 초라한 조각이었지만 화살 하나에 반응할 만큼의 잔류 마력은 있었다.
“세 방향으로 말뚝을 박으면 들어온 힘이 땅으로 빠집니다. 중심석은 문을 여는 역할만 해요.”
에리나는 구리선이 이어진 납땜 자리를 살폈다.
“공명판이 또 울리면요?”
카엘의 손이 멈췄다.
“중심석이 그 소리를 받아 버릴 수 있어요. 그러면 화살보다 먼저 장치가 흔들릴 거예요.”
카엘은 회로를 다시 보았다. 전생의 장벽은 정제된 마정석과 마법사의 제어를 전제로 했다. 지금 손에 있는 것은 거친 강철과 저순도 마석뿐이었다.
에리나가 납땜 인두를 내려놓았다.
“여기를 얇게 잇죠. 힘이 너무 들어오면 이 고리가 먼저 끊어져야 해요. 장치가 망가지는 대신 사람은 안 다치게요.”
“그러면 한 번밖에 못 막아.”
“한 번 막고 다 같이 물러날 수 있으면 충분해요.”
그 말은 장치가 아니라 카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카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종이 맨 아래에 중지 조건을 다시 적었다.
‘중심석의 빛이 세 번 흔들리면 회로를 끊는다.’
에리나는 그 글을 확인하고 납땜 고리를 붙였다.
공명판의 바늘이 다시 한 번 북동쪽으로 튀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시간이 없네요.”
“그래도 한 번 시험하고 가자.”
카엘은 모루 앞에 장치를 세웠다. 모리스가 낡은 쇠망치를 들고 다가왔다.
“정말 이걸 때리라고요?”
“중심석은 건드리지 말고 판 가운데를 쳐요.”
망치가 강철판을 때렸다.
쨍.
세 판 사이로 푸른 막이 손바닥 너비만큼 펼쳐졌다가 사라졌다. 충격은 바닥의 말뚝으로 흘렀고 중심석은 한 번만 깜빡였다.
에리나는 철판을 만져 보았다.
“버텼어요.”
카엘은 웃지 않았다. 공명판 바늘이 반응한 순간과 같은 때에 중심석이 아주 작게 두 번 떨리고 있었다.
북동 경계의 수로는 흙먼지뿐인 얕은 골이었다.
켈른 병사들은 말뚝 앞에 두 줄로 섰다. 테오도르는 맨 앞에서 검집을 옆으로 밀었다. 그 너머에는 회색 망토를 걸친 벨트람과 그레이몬트 병사들이 있었다.
벨트람은 웃는 얼굴로 문서를 들어 보였다.
“켈른 공작께 인사를 올립니다. 저희는 조항대로 수로를 측량하러 왔을 뿐입니다. 폐광에서 푸른 돌이 나왔다기에 물길을 바꾸면 쓸 곳이 있을지도 살펴보려는 것이지요.”
바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경계 말뚝 밖에서 할 수 있는 측량이라면 막지 않겠다.”
벨트람은 뒤쪽 병사에게 손짓했다. 병사는 기다렸다는 듯 말뚝 안으로 말을 몰았다.
테오도르의 검이 반쯤 빠졌다.
“한 걸음 더 오면 떨어뜨린다.”
“위협으로 기록하겠습니다.”
벨트람의 웃음이 얇아졌다.
카엘은 그의 구두와 수레를 보았다. 삽과 줄자 사이에 긴 쇠갈고리 세 개가 있었다. 수로 바닥을 재는 도구치고 갈고리의 끝은 지나치게 날카로웠다.
“수로를 재려면 높이줄이 필요하지 갈고리는 필요 없습니다.”
벨트람의 눈동자가 카엘에게 향했다.
“공작가의 막내도 측량을 압니까?”
“아뇨. 하지만 광산 입구를 긁어 내는 도구는 압니다.”
카엘은 수레 밑에서 비친 쇠뇌의 나무 몸통을 가리켰다.
“그리고 측량사는 석궁을 숨기지 않습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벨트람이 손가락을 튕겼다.
수레 뒤의 병사 하나가 석궁을 들어 올렸다.
“도련님!”
에리나의 외침과 함께 화살이 날아왔다.
카엘은 장벽틀의 작은 손잡이를 눌렀다.
푸른 막이 수로 둑 위에 반원으로 펼쳐졌다.
화살은 막에 부딪혀 뚝 떨어졌다. 충격은 세 강철판을 타고 흙 속 말뚝으로 흘렀다. 병사들이 놀라 물러났다.
그러나 중심석이 두 번 깜빡였다.
한 번은 화살 때문이었다.
다른 한 번은 땅 아래에서 올라온 박동이었다.
에리나가 카엘의 팔을 잡았다.
“끊어요. 지금 소리가 달라졌어요.”
벨트람 쪽 병사들이 다시 석궁을 들었다. 푸른 막을 조금만 더 유지하면 저들을 말뚝 밖으로 밀어내고 수레까지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납땜 고리는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한 번의 성공을 더 큰 승리로 바꾸려는 순간 장치가 병사들 머리 위에서 갈라질 수 있었다.
카엘은 손잡이를 반대로 젖혔다.
푸른 막이 꺼졌다.
“테오도르 형님!”
테오도르가 앞으로 나갔다. 그의 검이 석궁을 든 병사의 손목을 쳐 냈다. 켈른 병사들이 순식간에 수레와 말뚝 사이를 막았다. 그레이몬트의 병사들은 더 이상 화살을 쏘지 못했다.
테오도르는 쓰러진 석궁을 발로 밀어 멀리 보낸 뒤 카엘을 힐끗 보았다. 짧은 고개 끄덕임이 보였다.
바란은 벨트람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오늘의 일과 그 문서는 중앙 재조사관 앞에서 함께 확인하겠다. 네 자작에게도 그렇게 전해라.”
벨트람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 한 장짜리 장난감으로 경계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카엘은 타 버린 납땜 고리를 바라보았다. 장벽은 한 번 막고 끝났다. 그러나 땅 아래의 박동은 장치를 뚫고 그레이몬트 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오늘은 지켰습니다.”
카엘이 말했다.
“다음에는 왜 여기까지 이어졌는지도 알아낼 겁니다.”
해가 진 뒤 대장간으로 돌아온 공명판은 바늘을 북동쪽에 멈췄다.
그리고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세 번째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