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배 버프 쿠키를 굽는 연금술사는 파티를 고른다

1화: 노른불과 낡은 장부
탁자 위에 놓인 양피지 두 장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루칸의 숨통을 죄고 있었다.
왼쪽에 놓인 것은 루메른 모험가 길드의 붉은 압인이 찍힌 통지서였다.
[하급 포션 제조 및 유통 허가 신청 — 3차 반려]
[사유: 규격 유리 초자 미비 마력 증류탑 등급 미달 및 공방 보증금 부족.]
오른쪽에 놓인 것은 거친 먹물로 휘갈겨 쓴 사채 상단의 채무 독촉장이었다.
[원리금 합산 은화 백이십 닢. 기한 삼 일. 불이행 시 공방 부지와 내부 비품 일체 압류 집행.]
루칸 베일은 밀가루와 약초 찌꺼기가 묻은 낡은 회색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손등마다 덴 자국과 굳은살이 박여 있었지만 손끝은 차분했다. 당황할수록 맥박이 빨라지고 맥박이 빨라지면 재료의 배합 비율을 놓친다는 것을 그는 스승 밑에서 지겹도록 배웠다.
하지만 차분함만으로는 은화 백이십 닢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스승님도 참 무책임하십니다."
루칸은 텅 빈 공방을 둘러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삼 주 전 스승은 '새로운 촉매를 구하러 간다'는 쪽지 한 장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남겨진 것은 고스란히 루칸의 몫이 된 빚과 바닥난 저장고 그리고 낡은 마력 화덕 하나뿐이었다.
스승이 남긴 화덕 '노른불'은 도시 변방의 고철상에서 주워 온 낡은 석조 화덕이었다. 일반적인 연금술 공방에서 쓰는 번쩍이는 은제 증류탑이나 백은 마탑의 수정 플라스크와는 거리가 멀었다. 화력은 약했지만 내부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 하나만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루칸은 삐걱거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구석에 쌓인 나무 궤짝을 열었다. 스승이 버리고 간 잡동사니 속에서 팔아치울 만한 것이라도 찾아볼 생각이었다.
깨진 비커 조각 마른 풀뿌리 가루가 날리는 가죽 부대들. 손에 잡히는 것들은 하나같이 벼룩시장에서도 동전 몇 닢 건지기 힘든 잡동사니뿐이었다.
그러다 궤짝 바닥에 깔린 두꺼운 가죽 장부 한 권이 손끝에 걸렸다.
모서리가 불에 까맣게 타들어가 있었고 표지에는 어떤 제목도 적혀 있지 않았다. 스승이 폐기물을 소각할 때 태우다 만 장부 더미 중 하나였다.
루칸은 그을음을 털어내며 장부를 넘겼다. 앞쪽 수십 장은 이미 불길에 타서 검은 재로 바스러졌다. 그러나 뒷면의 마지막 몇 장은 바싹 마른 양피지 상태로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정갈하지만 어딘가 군대식으로 딱딱하게 끊어 쓴 필체였다.
[전장 배급식 야전 연성 제3형 — 미승인 시험 배합]
[기본 원리: 마력 결정의 불안정한 파동을 당류의 사슬과 지질의 피막에 가두어 복용 시 급속 소모를 유도함.]
[재료: 거친 호밀가루 40마르크 독침벌의 꿀 결정 12마르크 저급 마력 결정 가루 5마르크 염장 발효 버터 15마르크.]
[주의: 일반적인 물약 형태로는 마력 분해가 일어나 장기 손상을 유발함. 반드시 고온 건식 소성(구이) 과정을 거쳐 고형물로 완성할 것.]
루칸의 눈이 가늘어졌다.
"포션이 아니라…… 구움 과자라고?"
연금술계에서 식품 형태의 마력 전달체는 거의 이단 취급을 받았다. 마력은 액체나 기체 상태에서 가장 흡수가 빠르며 고체 음식물에 마력을 깃들게 하려다가는 열기 때문에 마력 결이 산산이 부서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루칸에게는 남들과 다른 기이한 감각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약초의 쓴맛보다 곡물과 당분이 열을 만났을 때 변화하는 마력의 결을 훨씬 선명하게 느꼈다. 스승은 그것을 [감미 연성]이라는 기묘한 이름으로 부르며 '포션도 못 만드는 헛손질'이라 혀를 찼지만 루칸은 알고 있었다. 당분은 마력을 가두는 가장 질긴 그물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루칸은 곧장 작업대로 다가갔다.
남은 시간은 삼 일. 길드의 허가를 기다릴 여유도 사채업자에게 무릎 꿇을 돈도 없었다. 어차피 공방이 넘어가면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였다. 스승의 폐기 장부에 적힌 미친 배합이라도 시험해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루칸은 선반을 뒤져 재료를 모았다.
다행히 거친 호밀가루 반 포대와 지난달 하급 모험가에게 헐값으로 사둔 독침벌 꿀단지가 남아 있었다. 가장 귀한 것은 부서진 저급 마력 결정 조각이었다. 시험관 바닥을 긁어모으니 간신히 다섯 마르크 남짓한 가루가 모였다.
"시작해 볼까."
루칸은 나무 볼에 호밀가루를 체 쳐 내리고 마력 결정 가루를 섞었다.
그의 손끝에서 옅은 주황색 마력이 흘러나왔다.
보통의 연금술사라면 마력 가루를 물에 녹이려 했겠지만 루칸은 버터의 지방질을 먼저 으깨어 가루 사이사이에 스며들게 만들었다. 굳어 있던 꿀 결정을 미지근한 불에 녹여 부은 뒤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치덕, 치덕.
반죽을 누를 때마다 거친 마력 파동이 손바닥을 찔러왔다. 거칠고 사나운 저급 마력의 칼날이었다. 그냥 삼켰다가는 위장이 찢어질 만한 파동이었다.
하지만 루칸은 당분의 끈적한 점성을 이용해 그 칼날을 둥글게 감싸 안았다. 반죽을 접고 늘리는 과정에서 마력의 결이 꿀의 단맛과 버터의 고소함 속에 차곡차곡 포개졌다.
날카롭던 마력 파동이 숨을 죽이고 반죽 속으로 깊게 가라앉았다.
"온도가 관건이야."
루칸은 노른불 화덕의 뚜껑을 열었다. 바닥에 깔린 마석이 은은한 주황빛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일반 화덕보다 열은 낮았지만 흔들림 없이 바위처럼 묵직한 열기였다.
루칸은 반죽을 굵직한 원형 세 조각으로 떼어 철판 위에 올렸다.
철판이 화덕 안으로 들어가고 무거운 쇠문이 닫혔다.
화덕 틈새로 고소한 버터 냄새와 캐러멜처럼 졸아드는 달콤한 꿀 향이 배어 나왔다. 하지만 그 달콤함의 이면에는 코끝을 찌릿하게 마비시키는 서늘한 전자기적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루칸은 화덕 앞을 떠나지 않고 문틈의 색 변화를 지켜보았다.
십오 분이 흘렀을 때 화덕 내부에서 탁, 하는 작은 파열음이 들렸다.
마력의 결이 당분의 껍질 속에 완전히 봉인되는 소리였다.
루칸은 두꺼운 가죽 장갑을 끼고 쇠문을 열었다.
화덕에서 흘러나온 열기와 함께 짙은 갈색으로 바삭하게 구워진 세 개의 둥근 쿠키가 모습을 드러냈다. 겉면은 꿀이 캐러멜화되어 짙은 윤기를 띠고 있었고 표면에는 마력 결정이 녹아들어 생긴 기하학적인 금빛 균열이 얇게 새겨져 있었다.
루칸은 식힘망 위에 쿠키를 내려놓았다.
달콤한 냄새가 공방 안을 가득 채웠지만 그것을 단순한 간식으로 볼 수는 없었다. 쿠키 주변의 공기가 미세하게 일렁이며 아지랑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루칸은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쉬며 집게로 가장자리의 아주 작은 부스러기 하나를 떼어냈다. 쌀알만 한 크기였다.
"독성은…… 감지되지 않지만."
스승의 장부에 적힌 배합이 진짜 효과를 내는지 아니면 단순한 독극물인지 확인해야 했다. 쥐에게 먹여볼 시간조차 없었다.
루칸은 쌀알만 한 쿠키 부스러기를 혀끝에 올렸다.
바삭한 식감과 함께 진한 단맛과 버터의 풍미가 입안에 퍼졌다.
그리고 일 초 뒤.
쿵!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거세게 뛰었다.
"큭……!"
루칸은 비명을 삼키며 작업대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혀끝에서 녹아내린 당분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자마자 잠들어 있던 마력 회로가 미친 듯이 팽창했다. 보통의 하급 연금술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순환 속도가 아니었다. 혈류가 끓어오르고 시야가 비정상적으로 선명해졌다.
공방 구석의 거미줄 흔들림 벽 틈새로 스며드는 밤바람의 결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밀가루 입자 하나하나가 눈에 박혀 들어왔다.
루칸은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근육 속에 마력이 억지로 주입된 것이 아니었다.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미약한 근력과 마력 순환이 세 배 이상으로 강제로 끌어올려진 상태였다.
작업대 위에 놓인 묵직한 무쇠 절구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렸다. 깃털처럼 가벼웠다.
"이게…… 말이 되나?"
출력이 평소의 세 배.
포션 중에서도 최고급에 속하는 용력의 비약조차 신체 출력을 기껏해야 삼십 퍼센트 올릴 뿐이었다. 그것도 심각한 근육 마비를 대가로 치러야 했다.
그런데 이 쿠키는 쌀알만 한 부스러기 하나로 몸 전체의 출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감탄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확히 일이 분이 지나자 몸 안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던 마력의 불길이 거짓말처럼 푹 꺼졌다.
동시에 지독한 반동이 덮쳐왔다.
"허억……!"
루칸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의 수분이 순식간에 말라붙은 것처럼 지독한 갈증이 목구멍을 긁었다. 손가락 끝이 심하게 떨려 주먹조차 쥐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끌어올린 출력이 끝난 자리에 극심한 피로와 탈진이 밀려온 것이었다.
루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탁자 위의 물주전자를 찾아 겨우 목을 축였다.
"이건 단순한 비상식량이 아니야."
루칸은 차갑게 식어가는 갈색 쿠키 세 개를 응시했다.
이것은 병사를 전선으로 밀어 넣기 위해 만든 강제 출력제였다. 부스러기만으로도 이 정도라면 쿠키 한 개를 온전히 먹었을 때 신체에 가해질 부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위력은 절망적인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였다.
그때였다.
쾅, 쾅, 쾅!
닫힌 공방 문을 부서질 듯이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한 골목에 울려 퍼졌다.
루칸은 반사적으로 식힘망 위의 쿠키를 서랍 속으로 쓸어 넣었다.
"누구십니까? 야간 영업은 하지 않습니다."
"루칸 씨! 제발 문 좀 열어 주십시오! 루칸 씨!"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거칠게 헐떡이고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루칸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빗장을 풀었다.
문이 열리자 늦가을의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피비린내와 땀 냄새가 훅 끼쳐왔다. 문간에 서 있는 사내는 거구의 체격을 지닌 젊은 모험가 토바 란이었다.
토바의 가죽 갑옷은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왼팔에 묶인 낡은 철제 방패는 가운데가 깊게 찌그러져 있었다. 그의 거친 얼굴은 흙먼지와 핏자국으로 엉망이었고 눈동자는 벼랑 끝에 몰린 짐승처럼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토바 씨? 이 야밤에 무슨 일입니까."
"루칸 씨, 제발…… 남는 약 없습니까? 찌꺼기라도 좋습니다. 팔다 남은 하급 지혈제나 진통제 찌꺼기라도……."
토바는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의 가죽 주머니를 털었다. 탁자 위에 쏟아진 것은 닳고 닳은 동화 몇 닢과 이 빠진 은화 한 닢이 전부였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입니다. 이걸로 살 수 있는 만큼만 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루칸은 차분하게 토바의 상태를 살폈다.
"상처는 깊지 않아 보입니다만. 이 정도 타박상이라면 약 없이도 며칠 쉬면 낫습니다."
"내가 쓸 게 아닙니다!"
토바가 목을 멨다.
"리라가…… 동생 녀석이 열병이 다시 도졌습니다. 약초상에선 은화 세 닢을 부르는데 내겐 돈이 없어요. 내일 아침 길드 원정대에 지원했습니다. 선금을 받아서 약을 사야 하는데……."
루칸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내일 아침 원정대라면 길드에서 공고한 하층 고블린 서식지 소탕 의뢰를 말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 의뢰는 F급 모험가가 갈 곳이 아닙니다. 앞장서서 미끼 역할을 하겠다는 뜻입니까? 방패도 그 모양인데 거길 가면 살아서 못 돌아옵니다."
"알고 있습니다!"
토바가 울분을 터뜨리듯 소리쳤다.
"알고 있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습니까! 길드 놈들은 내 사정 따윈 봐주지 않아요. F급짜리가 선금을 당겨 받으려면 전열 미끼 자리를 서약하는 수밖에 없단 말입니다! 당장 내일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내려갈 순 없어서…… 그래서 혹시 폐기할 포션이라도 있을까 싶어 염치없이 왔습니다."
토바의 거친 손이 찌그러진 방패를 으스러지도록 쥐었다.
그의 눈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동생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뒤엉켜 있었다.
루칸은 아무 말 없이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삼 일. 토바에게 남은 시간은 단 몇 시간.
길드는 힘없는 하급 연금술사에게서 공방을 빼앗으려 하고 힘없는 F급 모험가를 던전의 고기방패로 밀어 넣고 있었다. 가진 자들은 규정과 서류 뒤에 숨어 안전하게 이익을 챙겼고 바닥의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도 동전 몇 닢에 목을 매달아야 했다.
루칸의 시선이 작업대 서랍으로 향했다.
서랍 속에는 방금 구워낸 짙은 갈색 쿠키 세 조각이 아직 미지근한 온기를 품은 채 잠들어 있었다.
복용 시 단시간 동안 출력을 세 배로 끌어올리는 미지의 연금 물품.
잘못 쓰면 몸을 망가뜨릴 독약이지만 제대로 쓴다면 저 찌그러진 방패를 든 사내를 사지에서 살려낼 수도 있는 기적.
루칸은 서랍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토바 씨."
루칸의 목소리가 조용한 공방 안에 낮게 깔렸다.
"당신은 살아 돌아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