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물 장부로 문파 재건함

6화: 생중계된 빈 장부
남문 계단 아래의 바람은 해 질 무렵 냄새를 먼저 끌고 왔다. 튀김 기름과 마른 흙 냄새 사이로 청각초 가루의 톡 쏘는 향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유건하는 계단 아래 골목 입구에서 걸음을 멈췄다. 수레바퀴가 진흙을 눌러 만든 자국이 마른 채 남아 있었다. 그 옆에 선 노파는 손수건 끝을 너무 세게 비틀어 손등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약낭을 주운 분이십니까."
노파는 건하의 귀물각 패를 보고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잘못한 건 없지요? 길바닥에 떨어져 있길래 신고만 하려 했는데."
"잘못을 묻는 자리가 아닙니다. 약낭을 본 때와 장소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건하는 계단에 작은 접이상을 폈다. 종이 한 장과 먹, 물그릇을 차례로 올려놓았다. 한소탁은 그 곁에서 장부판을 들고 서 있었다.
노파의 시선이 소탁의 손으로 갔다. 소탁은 장부판 모서리를 쥔 손가락을 얼른 폈다.
"저기, 이 아이가 적는 겁니까?"
"제가 들은 대로 적습니다." 소탁이 대답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끝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적겠습니다."
건하는 종이의 첫 줄에 신고자 진술이라 썼다. 둘째 줄에는 직접 본 일이라고 적었다.
"처음에는 직접 보신 일만 말씀하십시오. 누가 한 말이나 짐작은 그 다음 줄에 적겠습니다."
노파는 한참 입술만 달싹였다. 그러다 계단이 아니라 골목 안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수레가 지나간 자리요. 바퀴가 물웅덩이를 밟아서 흙이 튀었지. 그 옆에 약낭이 있었어."
"누가 놓는 것도 보셨습니까?"
"등은 봤지. 푸른 옷자락이었는데 소매 끝에서 실이 풀려 있었어. 수레 뒤로 급히 돌아갔고. 얼굴은 못 봤네."
소탁의 붓끝이 잠깐 멎었다. 을열 18번 안쪽 통로에서 주운 푸른 실밥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건하는 눈짓으로 소탁을 재촉하지 않았다. 소탁은 푸른 소매. 풀린 실. 얼굴 미확인.이라고 또박또박 적었다.
"약낭을 만지셨을 때 냄새가 났습니까?"
"풀 냄새가 세더군. 손에 닿았던 곳이 얼얼해서 물로 씻었어."
노파는 소매 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은전이 아니라 얇은 동전이었다. 가장자리에 회색 밀랍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걸 받았네. 아까 젊은이가 왔어. 하늘에 화면 띄우는 사람이랬지. 귀물각이 약낭을 빼앗았다고 말하면 은전 한 냥을 준다고 했어. 이건 말 잘 들으면 먼저 준다며 놓고 갔고."
건하는 동전을 손대지 않았다. 소탁에게 빈 종이 조각과 집게를 건넸다.
"물건은 따로 싸서 임시번호를 붙여. 증언과 섞지 마."
"네."
소탁은 동전을 종이 위에 올리고 계-341-초봄-003-5, 회색 밀랍 묻은 동전이라고 적었다. 그 아래에 발견 시각과 노파의 이름을 확인해 넣었다.
노파가 소탁의 글씨를 오래 바라봤다.
"내 말이 저대로 적혔나?"
"예. 직접 보신 것과 들으신 것은 줄을 나눴습니다."
노파는 종이를 받아 천천히 읽었다. 글자를 더듬던 손가락이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그녀는 말없이 붉은 인주를 눌러 손도장을 찍었다.
그 순간 천명패가 맑게 울렸다.
[하급 공략방 현장 취재 개시]
[청연문 귀물각, 분실물 관리 부실 의혹]
남문 위 허공에 푸른 빛막이 펼쳐졌다. 화면 안에는 낯선 젊은 무인이 서 있었다. 반듯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지나치게 깨끗한 흑색 도포가 골목의 먼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시청자 여러분. 저는 흑해방 하급 공략방의 곽준입니다. 청연문 귀물각이 왕실 물품을 어디에 감췄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노파의 어깨가 움찔했다.
건하는 진술서 위에 마른 종이를 덮었다.
"귀물각으로 돌아갑시다. 이 진술은 서문린 사저 입회 아래 대조하겠습니다."
"저 사람이 내 이름을 말하면 어쩌지요?"
"그러면 누가 말했는지까지 적겠습니다."
건하의 대답은 짧았다. 노파는 그제야 비틀던 손수건을 놓았다.
귀물각 앞뜰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외문 제자 몇과 장을 보러 왔다가 멈춘 상인들, 구경을 좇아온 아이들까지 문 앞을 채웠다. 곽준은 그 한가운데서 송출석을 들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을열 18번 보관함이 커다랗게 비치고 있었다. 문짝은 열려 있었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곽준은 빈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보십시오. 왕실 신표로 의심받던 물건이 사라졌습니다. 장부에는 최종 보관 번호도 없습니다. 청연문은 지금 무엇을 숨기고 있습니까?"
서문린이 귀물각 문 앞에 섰다. 손은 검집 위에 있었고 턱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
"사저." 건하가 낮게 불렀다.
"저 자가 이곳에서 장부를 훔쳐 읽고 있다."
"지금 쫓아내면 열람을 막았다는 제목만 남습니다."
서문린의 시선이 건하에게 날아왔다.
"그럼 저 소리를 듣고만 있겠다는 거냐?"
"듣게 두되 남기는 것은 우리가 정하겠습니다."
건하는 앞뜰 중앙에 낮은 상을 놓게 했다. 한소탁이 대조 봉인 꾸러미와 임시 이동표 묶음을 가져왔다. 수위 오강은 보관함 열쇠를 허리에서 풀지 않은 채 소탁의 옆에 섰다.
건하는 곽준을 향해 말했다.
"곽 방주. 당신이 든 장부는 003-2 원장의 찢긴 한 장입니다. 최종 번호가 없다는 말은 맞습니다. 다만 그 앞뒤 기록과 오늘 작성된 이동표를 보지 않고 물건을 감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공개하시죠. 왕실 물건부터."
"왕실 물건은 반환 보류 봉인 중입니다. 열람은 요구자 성명과 목적을 적고 서문린 사저 입회 아래 합니다. 당신은 그 절차에 서명하시겠습니까?"
곽준의 웃음이 잠깐 굳었다. 그는 송출석을 조금 더 높이 들었다.
"시청자 여러분, 보셨습니까? 청연문은 또 서류를 핑계로 물러섭니다."
"서류는 핑계가 아니라 남는 증거입니다."
건하는 임시 이동표 한 장을 들어 보였다. 을열 18번 앞 임시 대기라는 글자 아래에 운반자와 확인자 칸이 있었다. 확인자 칸에는 한소탁의 이름이 선명했다.
"이 종이는 해 질 때까지 귀물각 안의 모든 이동에 붙습니다. 봉인을 열고 싶다면 여기 이름을 적으십시오. 거절했다는 사실도 함께 남겠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곽준은 종이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때 건하의 시선이 송출 화면에 걸렸다.
화면 속 을열 18번 보관함 아래로 길고 가느다란 그림자가 비스듬히 뻗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 귀물각 처마 아래의 그림자는 반대편 벽으로 짧게 붙어 있었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화면의 빛은 정오 무렵 남쪽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었다.
건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림자가 이상하다는 자신의 말이 아니라 그 화면이 언제 찍혔는지 대조할 물건이었다.
곽준이 눈치를 채고 송출석 각도를 바꾸려 했다.
바로 그때 뒤뜰 쪽에서 마수의 울음이 터졌다.
쇠를 긁는 듯한 울음에 아이 하나가 울음을 삼켰다. 사람들은 문에서 밀려나며 앞뜰을 어지럽게 가로질렀다. 마수는 우리 안에서 앞발로 나무판을 세 번 쳤다.
쿵. 쿵. 쿵.
한소탁의 얼굴이 순식간에 질렸다. 손에 든 이동표 묶음이 흔들렸다.
"소탁아." 건하가 불렀다.
소탁은 숨을 들이켰다.
"네."
"우리 문턱에 붙었던 천 조각을 가져와. 오강 수위는 사람들을 왼쪽 담장 쪽으로 보내 주십시오. 누구도 뒤뜰 문고리에 손대지 못하게요."
"알겠습니다."
소탁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장부판을 품에 안고 뒤뜰 보관대에서 회색 천 조각이 든 종이 봉투를 꺼냈다.
건하가 봉투를 우리 앞 바닥에 놓자 마수의 울음이 달라졌다. 짐승은 보관함 쪽을 보지 않았다. 축축한 코를 바닥에 붙인 채 천 조각이 있는 쪽으로 몸을 낮췄다. 청각초와 진정향이 밴 냄새를 따라가는 반응이었다.
"신표가 아닙니다." 건하의 목소리가 앞뜰을 갈랐다. "이 짐승은 냄새와 움직임에 반응합니다. 물건이 보관함에 있든 없든 지금 저걸 좇습니다."
곽준이 송출석을 뒤로 빼며 말했다.
"말로야 뭐든 할 수 있죠."
"그러니 적으십시오. 당신이 본 반응을."
건하는 대답 대신 소탁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탁은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장부판에 적었다. 마수, 회색 천 조각 제시 후 보관함 아닌 천 조각 방향으로 접근. 확인자 한소탁.
그때 군중 틈에서 누군가가 이동표 묶음을 낚아채려 했다. 소탁이 몸을 돌리는 바람에 묶음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여러 장이 흩어졌다.
오강이 범인의 손목을 붙잡으려 했지만 사내는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 담장을 넘었다. 얼굴은 천으로 가렸고 푸른 옷자락만 잠깐 보였다.
소탁은 흩어진 종이를 주우려다 멈췄다. 대신 가장 먼저 밟힌 장을 들어 앞면과 뒷면을 살폈다.
"한 장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순서가 바뀐 것만 같습니다."
건하는 그 말을 듣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서는 다시 맞추면 된다. 먼저 장수를 세어."
곽준이 소동을 등지고 송출석을 접으려 했다. 그는 웃는 낯을 유지했지만 손놀림이 빨라져 있었다. 송출석 밑받침에서 기름 먹은 종이띠 하나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마수의 앞발이 바닥을 치며 바람을 일으켰고 종이띠는 건하의 신발 끝에 걸렸다.
건하는 집게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낡은 등잔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종이 한쪽에는 검은 먹으로 작은 표식이 찍혀 있었다.
귀물각 남쪽 들보. 둘째 등잔 아래.
그 표식은 낯설지 않았다. 흑해방 하급 송출 부적이 붙어 있던 자리와 같은 방향이었다.
곽준의 눈동자가 종이띠에 닿았다가 곧장 군중 쪽으로 피했다.
"그건 내 것이 아닙니다. 누가 떨어뜨렸겠죠."
"그럴 수 있습니다."
건하는 종이띠를 봉투에 넣었다. 겉면에는 소탁이 적은 새 임시번호가 붙었다.
"그래서 발견 장소와 시각, 목격자를 남기겠습니다."
곽준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천명패 화면의 제목을 손끝으로 바꿨다.
[청연문, 제보자 입막음 의혹]
노파가 그 글자를 보고 숨을 삼켰다. 건하는 노파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그녀가 숨을 수 있게 뒤로 물러설 자리만 비워 주었다.
서문린이 낮게 물었다.
"저 제목도 기록으로 이길 수 있다고 보느냐?"
"오늘은 이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건하는 앞뜰에 흩어진 이동표와 노파의 손도장, 봉투 속 종이띠를 차례로 보았다.
"그래도 저들이 버린 것은 남습니다. 화면이 현장보다 먼저 준비됐다는 흔적도요."
서문린의 손이 검집에서 떨어졌다.
"무엇이 더 필요하지?"
"곽준이 쓴 송출석의 폐기 기록입니다. 하급 공략방은 촬영을 끝내면 저장석을 버리거나 갈아 끼웁니다. 그곳에 오늘 화면의 앞부분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한소탁이 이동표를 장수대로 묶어 들고 일어섰다. 얼굴은 아직 창백했지만 장부판을 품에서 놓지 않았다.
"제가 귀물각 기록을 지키겠습니다. 형님은 저장석을 찾으러 가세요."
건하는 소탁의 확인자 칸을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지워진 이름 대신 소탁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그래. 누가 와도 열지 마. 열람을 원하면 이름과 목적부터 적게 해."
곽준은 멀어지며 송출석을 향해 웃었다.
"청연문은 결국 방송이 무서워 도망치는 모양입니다."
건하는 대꾸하지 않았다.
남쪽 들보의 등잔 기름 냄새가 아직 봉투 안에서 새어 나왔다. 화면 속 그림자가 어느 시각의 것이었는지 밝히려면 그 냄새가 묻은 자리와 버려진 저장석을 맞춰 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