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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삼키는 보급관이 기사단을 키우는 법7화

거짓말을 삼키는 보급관이 기사단을 키우는 법

거짓말을 삼키는 보급관이 기사단을 키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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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솥에 담긴 온기

새벽안개 사이로 장작불이 일어났다.

주방의 커다란 무쇠솥은 오랫동안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바닥에 눌어붙은 재를 긁어내자 눅눅한 쇠 냄새가 번졌다. 마틴은 불을 지피면서도 솥 안에 맹물만 연거푸 들이부었다.

“물이라도 넉넉히 잡아야 열두 명이 한 모금씩 넘기지.”

마틴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곁에 선 젊은 기사가 품에 콩 자루를 안고 서성거렸다. 어젯밤 바르트에게서 검수한 마른콩이었다.

“한 바가지면 됩니까?”

“반 바가지만 넣어라. 내일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젊은 기사가 바가지를 기울이려 할 때 문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엘리나가 걸어 들어왔다. 은발을 끈으로 묶은 그녀의 손에는 숯으로 적은 배급표가 들려 있었다.

“세 바가지를 넣으세요.”

마틴이 부지깽이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세 바가지? 그렇게 퍼 넣으면 사흘도 못 간다.”

“사흘을 버티기 전에 오늘 사람이 쓰러집니다.”

엘리나는 솥 앞으로 다가갔다. 식어 있던 무쇠 가장자리에 손을 얹자 냉기가 전해졌다.

“부상자 열둘은 피를 흘렸고 남은 단원 열 명은 밤새 보초를 섰습니다. 귀리 두 포대와 마른콩 두 포대가 창고에 있습니다. 담보로 묶어둔 콩 한 포대를 빼더라도 오늘 정량을 먹지 않으면 내일 움직일 힘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아끼는 건 굶기는 게 아닙니다. 정해진 몫을 먹여서 사람을 살려 두는 게 보급입니다.”

엘리나는 바가지를 건네받았다. 단단한 콩알들이 바가지 안에서 맑은 소리를 냈다. 그녀는 콩 세 바가지를 씻어 솥 안으로 쏟아부었다. 뒤이어 마른 귀리 세 바가지가 거센 물살 속으로 흩어졌다.

“소금통은 어디 있습니까?”

마틴이 벽 구석의 나무 상자를 가리켰다. 엘리나는 뚜껑을 열고 나무 숟가락으로 하얀 소금을 펐다. 어젯밤 되찾은 소금이었다.

소금 세 숟가락이 솥물에 풀렸다.

탁하던 물속에서 콩알이 부풀고 귀리가 부드럽게 퍼졌다. 불길이 거세지자 솥뚜껑 틈새로 뽀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주방 가득 구수하고 짭조름한 곡물 향이 차올랐다.

마틴은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다가 침을 삼켰다. 주둔지에서 이런 냄새가 피어오른 것은 몇 달 만이었다.

첫 번째 그릇은 의무실로 향했다.

엘리나는 나무 그릇 두 개를 받쳐 들고 문을 열었다. 붕대 냄새가 가득하던 방 안에 온기가 스며들자 침상의 부상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베른은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어젯밤 정해진 시각에 약을 쓴 덕에 고열은 내렸으나 입술은 부르터 있었다.

“베른 씨. 일어나실 수 있습니까?”

베른이 눈을 깜빡였다.

“보급관님…?”

엘리나는 침상 곁에 앉아 그릇을 건넸다. 누런 콩이 부드럽게 으깨져 있고 알알이 퍼진 귀리가 걸쭉한 국물과 엉켜 있었다. 소금 간이 알맞게 밴 따끈한 김이 그의 뺨을 감쌌다.

베른은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한 숟가락을 삼키자마자 그의 목젖이 크게 울렁거렸다.

모래알 같던 목구멍으로 고소하고 짭조름한 온기가 미끄러져 들어갔다. 맹물에 탄 쓴 풀뿌리가 아니었다. 혀끝을 감도는 소금 맛이 생기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짜지 않습니다.”

베른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습니다. 사람 먹는 죽입니다.”

“소금은 피를 돌게 하고 곡물은 살을 붙입니다. 천천히 다 비우세요.”

엘리나는 다른 부상자들에게도 그릇을 나누어 주었다. 벽에 기대앉았던 젊은 기사들이 허겁지겁 그릇을 비우기 시작했다. 숟가락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직 음식을 넘기는 소리와 가쁜 숨소리만이 이어졌다.

그들의 눈가에 서려 있던 경계심이 한 숟가락의 온기 속에서 녹아내렸다. 교단의 사제들은 기적을 말하며 신도들에게 고통을 견디라 일렀다. 그러나 엘리나는 알았다. 사람을 일으키는 것은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정확한 장부에서 나오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이었다.

앞마당으로 나오자 단원들이 모여 서 있었다. 칼릭스는 돌계단에 걸터앉아 빈 그릇을 내려놓고 있었다.

“소금이 제값을 하는군.”

칼릭스가 턱짓으로 솥을 가리켰다.

“단원들이 네가 차린 밥을 먹었다. 이제는 네가 창고 문을 잠가도 아무도 불만을 품지 않을 거다.”

“당연한 몫을 돌려드렸을 뿐입니다.”

“당연한 걸 해주는 놈이 없어서 망해가던 곳이다.”

칼릭스는 짧게 대답하고 일어섰다. 엘리나는 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바르트의 마차에서 확보한 운송표와 헤르만의 차용증이었다.

“밥은 먹었으니 이제 빚을 털어야 합니다.”

칼릭스의 시선이 종이로 떨어졌다.

“약초상 놈한테 갈 생각인가?”

“네. 콩 한 포대를 담보로 묶어둔 채로는 다음 배급을 설계할 수 없습니다. 의무실 선반의 소독약도 비어 있고요.”

“내가 가서 멱살을 잡으면 콩도 돌려주고 약도 뱉을 텐데.”

“그렇게 하시면 기사단은 강도가 됩니다.”

엘리나는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상인 조합에 강도로 고발당하면 국경 일대의 모든 상단이 거래를 끊을 겁니다. 보급로가 막힌 기사단은 싸우기도 전에 굶어 죽습니다.”

칼릭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넌 어떻게 할 건데?”

“장부로 멱살을 잡겠습니다.”

엘리나는 운송표를 펼쳤다.

“헤르만 씨가 치료소 구호 약재를 빼돌려 바르트의 마차에 실었다는 표식입니다. 그 상자 번호와 우리 차용증 날짜가 일치합니다. 치료소로 갈 무상 약재를 기사단에 은화 여섯 닢으로 청구하고 늪길 운반료까지 이중으로 붙였습니다.”

칼릭스의 눈가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도둑놈이군.”

“도둑에게 도둑질의 대가를 물리는 건 강도질이 아닙니다. 정당한 회수입니다.”

칼릭스는 검대를 고쳐 맸다.

“앞장서라. 네 뒤에 서 있는 건 내 일이니까.”

마을 어귀의 약초상 가게는 아침부터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처마 밑 말린 약초 다발에서 씁쓸한 냄새가 풍겼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카운터 뒤에서 약재를 정리하던 헤르만이 고개를 들었다. 칼릭스의 거대한 체구와 엘리나의 단호한 얼굴을 보자마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약초 뿌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기, 기사단장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헤르만은 뒷걸음질을 치며 구석의 작은 방문을 힐끗 보았다. 그 틈으로 어젯밤 견습의 눈동자가 비쳤다.

“열흘 뒤에 콩을 받기로 하지 않았소? 아직 기일이 남았는데….”

“콩을 넘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엘리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안고 온 나무 상자를 카운터 위에 쿵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어젯밤 회수한 치료소 빈 약 상자였다.

헤르만의 동공이 흔들렸다.

“이, 이건….”

“어젯밤 북쪽 길에서 바르트 씨의 마차를 세웠습니다.”

엘리나는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마차 안에는 콩과 소금 외에도 이 상자가 실려 있었습니다. 겉면에 찍힌 번호는 47번. 마을 영주령 치료소로 납품된 구호용 소독약 상자입니다.”

“그걸 왜 나한테 따지시오? 바르트 놈이 주운 거겠지!”

“바르트 씨의 운송표 원본입니다.”

엘리나는 표를 헤르만의 코앞에 펼쳤다.

“수령인 서명 자리에 찍힌 인장을 보세요. 세 갈래 잎 문양입니다. 견습의 손등에 찍혀 있던 먹물 도장과 완전히 같습니다.”

헤르만의 턱이 떨렸다. 그는 방문 쪽을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저 철없는 놈이! 내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혼자 벌인 모양이오!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엘리나의 가슴 한가운데가 바늘로 찌르듯 조여 왔다.

숨이 턱 막히며 흉통이 명치 끝을 쥐어짰다. 엘리나는 이를 악물고 카운터 모서리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명백한 도피를 품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칼릭스가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엘리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헤르만의 눈을 똑바로 겨누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목소리는 낮았지만 얼음처럼 차가웠다.

“견습은 열다섯 살도 되지 않았습니다. 상단 운송표에 약초상의 직인을 찍고 치료소 장부 번호를 조작할 권한이 아이에게 있을 리 없습니다.”

“증거가…!”

“치료소 장부의 날짜와 수량이 증거입니다.”

엘리나는 단호하게 몰아붙였다.

“사흘 전 치료소에 무상 지급된 소독약 세 병 중 두 병이 장부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우리 차용증에 소독약 두 병과 남쪽 수면초가 적혔지요. 당신은 무상 구호 약재를 빼돌려 기사단에 은화 여섯 닢으로 청구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존재하지도 않는 북쪽 늪길 특별 운반료 두 닢을 얹었습니다.”

헤르만의 뺨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시장 조합과 관아에 이 운송표와 치료소 상자를 넘기겠습니다. 구호 약재 횡령과 사기 청구. 약초상 조합 제명은 물론이고 최소 삼 년은 광산 노역형에 처해질 범죄입니다.”

“보, 보급관님!”

헤르만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카운터 밑으로 주저앉은 그의 두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살려 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기사단이 곧 망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한 푼이라도 건져 두려다 눈이 멀었습니다!”

이번에는 가슴에 통증이 없었다. 비굴할 정도로 명백한 진실이었다. 칼릭스가 서늘한 눈으로 헤르만을 내려다보았다.

“목을 칠까?”

“아닙니다.”

엘리나는 품에서 펜과 종이를 꺼냈다.

“첫째, 기사단에 부당 청구한 은화 여섯 닢의 차용증을 지금 즉시 파기하십시오. 둘째, 콩 한 포대를 걸었던 담보 계약서를 돌려받겠습니다.”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헤르만은 품을 뒤져 종이들을 꺼내더니 제 손으로 갈기갈기 찢었다.

“셋째.”

엘리나의 시선이 약초상 안쪽 선반을 가리켰다.

“빼돌렸던 소독약 두 병을 정식으로 기사단에 넘기십시오. 상처에 바를 지혈 연고 세 단지도 함께 내놓으세요. 우리가 실제로 쓴 약재의 값은 이전에 치른 계약금으로 상계 처리합니다.”

헤르만은 울상이 되었으나 거절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광산으로 끌려가는 것에 비하면 관대한 처분이었다.

그는 허겁지겁 안쪽으로 뛰어가 붉은 밀랍 봉인이 찍힌 유리 약병 두 개와 녹색 지혈 연고 단지 세 개를 상자에 담아 올렸다.

“여, 여기 있습니다. 정품입니다. 절대 섞은 약이 아닙니다!”

엘리나는 약병의 봉인을 꼼꼼히 살폈다. 알싸한 소독약 향이 마개 틈새로 번져 나왔다.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셨으니 조합 고발은 덮어두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번에 또 기사단 장부에 장난을 치신다면 이 운송표 원본이 조합장의 책상에 올라갈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헤르만은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문밖까지 기어 나왔다.

주둔지로 돌아오는 길은 아침보다 한결 홀가분했다. 칼릭스는 엘리나가 들고 있던 약 상자를 말없이 낚아채 자신이 들었다. 거친 손으로 약병을 조심스레 감싸 쥔 모습이 묘하게 어색했다.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약을 털어 오는 보급관이라니.”

“털어 온 게 아니라 되찾은 겁니다.”

“그게 그거지.”

칼릭스가 픽 웃었다. 흉터가 깊게 파인 뺨이 모처럼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기사단 주둔지에 들어서자 로웬과 마틴이 앞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나는 창고 벽의 배급판 앞으로 걸어갔다. 숯 조각을 집어 들고 가장 아래쪽에 적혀 있던 ‘콩 한 포대, 헤르만 담보’라는 글자를 힘차게 그어 지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 글자를 채워 넣었다.

기사단 식량, 콩 세 포대 완비.

마틴이 그 글자를 내려다보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이제 콩을 뺏길 걱정은 없는 거군.”

“없습니다. 온전히 우리 단원들과 말들의 몫입니다.”

엘리나는 의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반 위에 새로 가져온 소독약 두 병과 지혈 연고 세 단지를 반듯하게 올려놓았다.

깨끗한 천에 소독약을 묻혀 베른의 곪아가던 상처를 닦아내자 시원한 약 기운이 번졌다. 지혈 연고를 바르고 새 붕대를 감아주자 베른의 얼굴에 편안한 혈색이 돌았다.

오후가 되자 주둔지 앞마당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상처를 치료받은 단원들이 하나둘 연병장으로 걸어 나왔다. 며칠 동안 누워만 있던 그들의 눈빛에 잃어버렸던 활기가 차올라 있었다.

“몸이 근질근질하군.”

로웬이 목검을 쥐고 허공을 세차게 갈랐다.

“단장님! 대련 한 번 받아 주십시오!”

칼릭스가 겉옷을 벗어 던지고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주둔지에 기합 소리와 활기찬 발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엘리나는 집무실 문턱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창백하던 손끝에 온기가 돌았다. 거짓말을 들을 때마다 찢어지듯 조여오던 가슴이 지금은 고요했다. 아무도 거짓을 말하지 않고 오직 땀과 쇠 냄새만이 바람을 타고 번져왔다.

하지만 엘리나의 시선은 이내 기사들이 쥔 무기로 향했다.

단원들의 몸은 살아났으나 그들이 휘두르는 검은 처참했다. 칼날 곳곳에 이가 부러져 나가 있었고 가죽 갑옷의 끈은 삭아서 덜렁거렸다. 목검조차 금이 가 가죽 끈으로 칭칭 감겨 있었다.

챙! 하는 맑은 소리 대신 둔탁하고 삐걱거리는 마찰음이 마당을 메웠다. 칼릭스가 칼날을 쳐내며 엘리나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땀에 젖은 흑발 사이로 번뜩이는 눈빛이 마주쳤다.

식량과 약은 채웠다. 단원들의 목숨도 건져냈다.

그러나 검은 독수리 기사단을 진짜 군대로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채워야 할 장부의 빈칸이 아직 턱없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엘리나는 품에서 새 장부를 꺼내 무기 목록의 첫 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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