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짜리 아이템으로 세계 제패

8화: 관리국의 시선
엘리베이터가 7층에 멈추자 묵직한 공기가 밀려왔다.
남부 감정소 1층의 어수선한 소음과 달리 7층 복도는 발소리조차 흡수할 것처럼 조용했다. 벽면 전체가 마력 차폐 합금으로 덮여 있었고 천장 구석마다 붉은 렌즈의 감시 장비가 돌아가고 있었다.
한민규가 태성의 앞을 막아서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는 정밀 조사 신청서가 쥐어져 있었다.
“어디서 요행으로 감정서 하나 받았다고 끝난 줄 아나 본데, 관리국은 달라.”
태성은 품에 안은 비닐 봉투를 가볍게 고쳐 쥐었다. 봉투 속에는 방금 D급 조건부 전술 아티팩트로 임시 등록된 [강철 울음 식칼]이 들어 있었다. 겉보기엔 흠집 난 삼천 원짜리 주방용 칼이었지만 등록 번호가 찍힌 봉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팀장님이 흥분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건 팀의 정산 문제야. 게이트에서 나온 부산물은 공용 자산이다.”
한민규가 면담실 출입문 손잡이에 손을 올리는 순간 양옆에 서 있던 정장 차림의 보안 요원 둘이 앞을 막아섰다.
“한민규 헌터님, 호출 대상은 진태성 헌터 단독입니다.”
“내가 현장 책임자요. 저 녀석이 제출한 물건에 대해 공식 이의를 제기했단 말이오.”
보안 요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강이현 팀장님의 직접 지시입니다. 신청 서류는 접수실로 인계되었으니 대기실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단호하고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한민규는 턱을 굳힌 채 태성을 쏘아보았다. 협회 남부지부에서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레이드 팀장이었지만 아티팩트 관리국 앞에서는 그 위세도 먹히지 않았다.
태성은 한민규의 일그러진 얼굴을 뒤로하고 면담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치익.
문이 닫히며 바깥의 모든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면담실 안쪽은 넓고 서늘했다.
통유리창 너머로 서울 시내의 게이트 차단벽이 내려다보이는 방 한가운데에 길쭉한 금속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 테이블 상석에 한 여자가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남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강이현 팀장이었다. 단정하게 묶어 올린 검은 머리칼과 서류를 훑어보는 서늘한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태성의 F급 짐꾼 이력서와 방금 올라온 감정서 그리고 식칼의 마력 파형 그래프가 나란히 펼쳐져 있었다.
강이현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손짓했다.
“앉으세요, 진태성 씨.”
태성은 묵묵히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단단했다. 갈비뼈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아 등을 기대자 뻐근한 통증이 올라왔다.
강이현이 서류 한 장을 톡톡 두드렸다.
“5년 동안 C급과 D급 게이트 짐꾼으로 일하셨군요. 무단결근 없고 장비 분실 기록 없고. 마력 측정치는 최하위 F급.”
그녀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날카로운 눈동자가 태성의 얼굴을 똑바로 꿰뚫었다.
“그런데 방금 감정실에서 올라온 결과가 아주 흥미롭더군요.”
강이현이 테이블 중앙의 스크린을 켰다.
화면에는 쇠갑 늑대의 흉갑 표본이 깔끔하게 두 동강 난 시험 단면 사진이 떠올랐다.
“외형은 시중에서 3,000원에 파는 저가 주방용 식칼. 촉매로 들어간 건 현장에서 폐기 예정이던 F급 쇠갑 늑대 송곳니 하나. 그런데 결과물은 C급 방어체의 금속 이음새를 단숨에 절단하는 조건부 B급 위력의 아티팩트.”
강이현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하지만 단어 하나하나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진태성 씨. 대한민국 아티팩트 등록 역사상 이런 수치 편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태성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운이 좋았나 봅니다.”
“운이요?”
강이현이 얇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비웃음이 아니라 명백한 계산의 미소였다.
“마력 결이 완전히 어긋난 이종 물질을 결합하면 폭발하거나 마력이 증발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 칼은 늑대 송곳니의 파쇄 개념이 칼날의 절단선과 완벽하게 융합되어 있어요. 이건 우연한 마력 오염으로 나올 수 있는 형태가 아닙니다.”
그녀가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배후에 누가 있습니까? 미등록 암시장 연금술사인가요, 아니면 해외 길드의 미공개 가공 기술입니까?”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태성은 긴장으로 굳어지는 손가락을 무릎 위에 얹었다. 시스템의 존재를 그대로 밝힐 수는 없었다. 만약 '천 원짜리 다이소 물건에 가성비 보정이 붙는 시스템'을 정직하게 털어놓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협회 연구소의 실험체가 되거나 모든 권리를 빼앗기고 강제로 물건만 찍어내는 기계로 전락할 것이 뻔했다.
태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배후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럼 본인이 직접 만들었다는 뜻인가요?”
“예. 제가 직접 가공했습니다.”
“F급 마력 보유자가 어떻게 이런 정밀한 마력 결 합성을 해냈다는 거죠?”
태성은 주머니 속 [마력 포획의 손]을 의식하며 침착하게 말을 골랐다.
“각성 후 제 마력 파형에 특이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물건의 마력 흐름을 읽고 형태를 맞추는 고유한 연금술적 감각을 얻었습니다. 고대 연금술 서적과 이론을 오랫동안 연구해 오던 차에 제 감각과 맞아떨어진 것뿐입니다.”
강이현의 눈썹이 가늘게 꿈틀했다.
“고대 연금술이라.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 가공 공정을 협회 기술팀에 제출하고 재현할 수 있느냐는 뜻입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태성이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제 고유 특성과 감각에 의존하는 가공법입니다. 게다가 헌터 개인의 지적 자산이자 제작 공정은 협회 규정상 비공개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면담실 안에 팽팽한 정적이 감돌았다.
보통의 F급 짐꾼이라면 관리국 팀장의 눈빛 하나에도 바들바들 떨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태성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5년 동안 던전 바닥에서 온갖 멸시를 견디며 생사를 넘나든 짐꾼의 독기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강이현이 서류를 덮었다.
탁.
“영업비밀이라. 법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니군요.”
그녀가 깍지를 끼며 태성을 응시했다.
“하지만 한민규 팀장이 올린 정밀 조사 요청서는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현장에서 C급 보스 몬스터의 코어가 사라졌고 당신의 칼에서는 늑대 계열의 고밀도 마력 잔향이 검출되었습니다. 횡령 혐의로 정식 조사가 들어가면 당신의 그 영업비밀도 압수수색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태성은 코웃음을 치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코어 실물이 없지 않습니까. 감정관님도 과거 촉매의 원형을 특정할 수 없다고 공식 판정했습니다. 심증만으로 정식 인수 기록이 있는 헌터의 자산을 빼앗는다면 협회 관리국의 신뢰는 어디로 갑니까?”
태성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리고 팀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협회가 진짜로 관심 있는 건 사라진 C급 코어 하나가 아니라, 이 식칼이 보여준 ‘전술적 가능성’이라는 걸요.”
강이현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태성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 칼은 C급 방어체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습니다. 수억 원짜리 고급 아티팩트를 살 돈이 없는 하위 헌터들이나 급박한 현장에서 공략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전술 무기입니다. 협회 관리국이 이런 물건을 횡령 시비로 사장시키고 싶어 하진 않을 텐데요.”
강이현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짐꾼으로 5년 썩기에는 머리 회전이 지나치게 빠르시군요.”
그녀가 서랍에서 푸른색 파일 하나를 꺼내 태성 앞에 내려놓았다.
“맞습니다. C급 코어 하나는 협회 입장에서 큰돈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가 물품을 기반으로 특정 전술 능력을 극대화하는 가공 기술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강이현이 펜을 돌리며 조건을 제시했다.
“거래를 하죠, 진태성 씨.”
“어떤 거래입니까?”
“한민규 팀장의 정밀 조사 요청은 관리국 직권으로 기각 및 무기한 보류 처리하겠습니다. 횡령 혐의로 당신을 귀찮게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 대가는 뭡니까?”
“밀착 관찰입니다.”
강이현이 서류를 펼쳤다.
“당신을 관리국의 ‘특수 기술 관찰 대상자’로 지정합니다. 당신이 만드는 아티팩트의 실전 성능과 재현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다음 게이트 레이드에 관리국 관찰관이 동행할 겁니다. 물론 관찰관은 제가 직접 맡습니다.”
태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를 감시하겠다는 뜻입니까?”
“감시이자 보호입니다. 협회의 공식 관찰 대상자가 되면 어떤 길드나 팀장도 당신의 소지품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습니다. 게다가 관리국 직속 지원금과 던전 부산물 우선 구매 권한도 주어집니다.”
지원금과 부산물 우선 구매 권한.
태성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원재료가 싸구려 생필품이라는 사실을 숨기기만 한다면 협회의 그늘 아래에서 합법적으로 온갖 마수 부산물을 헐값에 쓸어 담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재료 조달과 제작 방식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수락하겠습니다.”
태성이 말했다.
강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물만 증명하면 공정 과정은 묻지 않겠습니다. 단, 실전에서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모든 지원은 환수되고 정밀 조사가 재개됩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태성은 망설임 없이 계약 서류에 서명했다.
서명이 끝나자 강이현이 단말을 조작해 태성의 헌터 카드에 관리국 승인 마크를 갱신해 주었다. 삐빅 소리와 함께 태성의 스마트폰으로 선급 지원금 500만 원 입금 알림이 도착했다.
“다음 관찰 일정은 사흘 뒤 C급 화염 도마뱀 서식 게이트입니다. 준비 단단히 해오세요.”
“알겠습니다.”
태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면담실을 나오자 복도 대기실에서 서성이던 한민규가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면담실 문 앞의 보안 요원이 차갑게 길을 가로막았다.
“한민규 헌터님, 해당 건은 관리국 특수 관리 대상으로 이관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개입은 규정 위반입니다.”
한민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태성은 그를 스쳐 지나가며 주머니 속 스마트폰의 입금 내역을 확인했다.
[입금: 5,000,000원 - 대한헌터협회]
통장 잔고가 든든해졌다. 그리고 손에는 공식 등록된 D급 식칼이 쥐어져 있었다.
‘사흘 뒤 C급 화염 도마뱀 게이트라.’
화염 속성 마수들을 상대하려면 단순한 식칼 하나로는 부족하다.
열기를 제어하거나 바람을 일으킬 물건이 필요했다.
태성은 협회 로비 회전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코끝을 스치는 바깥 공기가 시원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버스 정류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동네에서 가장 큰 만물 할인 매장과 전통 시장 철물점이었다.
‘천 원, 이천 원짜리 효자손과 식칼로 이 정도를 만들었는데…… 제대로 쇼핑을 시작하면 어디까지 갈까.’
장바구니를 쥔 태성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