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 타이탄 로봇의 역전 신화

2화: 낡은 센서의 추적
암반이 터져 나가며 솟구친 것은 거대한 지네를 닮은 흉물이었다.
검푸른 규소 외피는 채굴장의 투광기 불빛을 산란시키며 번들거렸다. 마디마다 돋아난 가시발들이 바위를 긁을 때마다 귀를 찢는 쇳소리가 진동 센서를 타고 올라왔다.
길이는 십여 미터. 브리치에서 쏟아져 나오는 외계 생명체, 통칭 공명종의 초기 척후 개체였다.
―표적 확인. 생체 공명 파형 감지. 외피 규소 밀도 극상.
철심의 음성 안내가 단말기를 울렸다. 화면 중앙의 조준선은 먼지와 괴수가 뿜어내는 공명 왜곡 때문에 자꾸만 빗나갔다.
“젠장, 초점이 안 잡혀.”
도윤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칠 틈도 없이 조종간을 쥐었다.
괴수의 대가리가 빠르게 허공을 훑더니 채굴장 출입로 쪽으로 틀어졌다. 그곳에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비탈을 기어오르는 민간 셔틀 2호기가 있었다.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주파 추진 진동이 괴수의 신경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도윤! 즉시 사격해서 시선을 돌려요!”
통신창 너머로 서윤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격은 안 됩니다. 조준이 번집니다.”
“셔틀이 사정거리에 들어갑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탄약이 여섯 발뿐입니다.”
무턱대고 쐈다가는 허공에 탄환을 버리고 기체만 노출시킬 뿐이었다. 도윤은 페달을 밟아 철심의 오른발을 단단한 기반암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쿵!
백 톤에 달하는 거구가 육중한 충격을 바닥으로 전달했다. 발목 센서를 통해 전달되는 지면의 파동을 신경 단자로 직접 읽어 들였다. 광학 센서가 거짓을 보여 준다면 발바닥에 닿는 대지의 진동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위를 부수며 전진하는 간격은 영점 육 초.’
괴수가 셔틀의 후미를 향해 도약하려 몸을 웅크린 순간이었다.
도윤은 괴수의 몸체가 아니라 괴수가 딛고 선 전방 십오 미터 위의 암벽 모서리로 포신을 돌렸다.
탕!
철심의 어깨에 거치된 구형 중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육각 장갑 철갑탄 한 발이 어둠을 가르고 날아가 취약한 암벽 이음매에 정확히 박혔다.
채굴장의 발파 작업으로 금이 가 있던 암반이 폭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수 톤에 달하는 낙석이 괴수의 앞길로 쏟아졌다.
끼에에엑!
예상치 못한 낙석 세례에 균형을 잃은 괴수가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굴렀다. 셔틀을 향하던 돌진 궤적이 크게 꺾였다. 그 틈을 타 셔틀 2호기는 비명을 지르듯 터빈을 분사하며 채굴장 외곽 게이트를 통과했다.
―시험탄 잔여 5발. 냉각수 잔량 28퍼센트.
셔틀은 빠져나갔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낙석 더미에서 몸을 빼낸 괴수는 지상에 머무르지 않았다. 놈은 강철 송곳 같은 머리로 바닥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단단한 화강암층이 두부처럼 으스러지며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도윤이 외치자 윤서의 차가운 목소리가 응답했다.
“채굴장 출입구는 완전히 봉쇄되었습니다. 셔틀 2호기는 외곽 방어선에 진입했습니다. 한도윤 기체, 임무는 끝났습니다. 즉시 후퇴하세요.”
“아닙니다. 놈이 향하는 곳이 있습니다.”
“지하 신호는 방위대 메카도 추적할 수 없어요. 낡은 센서로 지하를 보겠다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퇴역 전 기록에 제2 채굴 갱도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하 승강 타워 쪽입니다.”
도윤의 손가락이 콘솔의 비상 레버로 향했다.
―지질 공명 레이더, 수동 가동.
순간 도윤의 관자놀이에 굵은 쇠꼬챙이가 찔려 들어오는 듯한 격통이 번졌다. 귓속에서 고압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이명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크윽……!”
―감각 과부하 경고. 파일럿 뇌파 왜곡률 48퍼센트. 3초 이상 유지 금지.
눈앞의 모니터가 붉은 잡음으로 뒤덮였다. 시야가 하얗게 탈색되는 가운데 암반 밑을 가르는 파동의 궤적이 선명한 핏빛 선으로 떠올랐다.
도윤은 이를 악물고 삼 초 만에 스위치를 내렸다. 숨을 헐떡이며 조종석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식은땀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놈의 궤적은 똑똑히 보았다.
“제2 갱도 승강 타워의 비상 변전소입니다. 놈은 셔틀이 아니라 잔류 전력망의 진동을 먹으러 가고 있습니다!”
윤서의 통신이 한 박자 멎었다. 작전 패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승강 타워 지하에 차단 작업을 하던 정비 인부 두 명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승강기가 멈춰 고립된 상태입니다.”
“제가 갑니다.”
“철심의 보행 속도로는 지하를 파고드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쫓아가는 게 아닙니다. 기다릴 겁니다.”
도윤은 조종간을 당겼다. 철심의 왼쪽 발목이 삐걱거리며 경고음을 토해 냈다. 0.8초의 반응 지연. 기체는 술 취한 거인처럼 기우뚱거리며 전진했다.
제2 갱도 승강 타워는 철골 구조물 전체가 신음하고 있었다. 지하에서 울려 퍼지는 둔탁한 타격음에 타워를 지탱하는 기둥들이 눈에 띄게 휘어지고 있었다.
타워 상부의 제어실 창문 너머로 겁에 질린 두 정비 인부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은 수동 크레인을 붙잡고 절망적으로 매달려 있었다.
도윤은 타워 앞 십 미터 지점에 철심을 멈춰 세웠다.
―기체 내부 온도 상승 중. 주동력원 방열 지연.
시간이 없었다. 땅을 파고드는 괴수를 상대로 아틀라스 같은 중장갑 기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빠른 반응 속도도 화려한 고기동 회피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틀라스에게는 최신형 기동병기에는 없는 무기가 있었다. 무겁고 둔탁한 질량 그 자체였다.
“발목 관절 잠금장치, 완전 해제.”
―경고. 관절 파손 위험.
“해제해.”
철심의 왼발이 깊은 바위 틈새로 억지로 밀려 들어갔다. 도윤은 유압 밸브를 강제로 비틀어 발목 장갑을 바위 틈에 쐐기처럼 짓이겨 박았다. 이동을 완전히 포기한 자세였다.
도윤은 보조 냉각 밸브의 수동 개방 스위치를 올렸다.
치이이익!
철심의 등 뒤 방열판에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기체의 핵융합 보조 발전기가 한계치까지 회전하며 둔중한 맥동을 지면으로 쏟아냈다.
위이이잉― 쿵, 쿵, 쿵!
백 톤의 쇳덩이가 뿜어내는 거대한 진동이 암반을 타고 지하로 퍼져나갔다.
‘와라. 변전소 따위보다 훨씬 크고 맛있는 진동이다.’
도윤은 호흡을 멈추고 조준 레버를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미끄러웠다.
지하의 울림이 뚝 멎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철심의 발밑 암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괴수가 방향을 바꿨다. 거대한 진동원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영점 팔 초.’
철심의 왼쪽 발목이 부러질 듯 비명을 질렀다. 제어 신호가 유압 파이프를 타고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 도윤의 명령이 기체의 기계적 동작으로 실현되기까지 존재하는 치명적인 시간 차.
보통의 파일럿에게 그것은 죽음을 부르는 결함이었다.
하지만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해 온 정비사에게 지연 시간은 예측 가능한 계산값에 불과했다.
‘놈이 지표면을 뚫고 나오는 순간에 쏘면 늦는다. 나오기 영점 팔 초 전에 당겨야 한다.’
진동의 파동이 발바닥을 타고 정점에 달한 순간, 도윤은 아직 아무것도 없는 맨땅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지금이다!”
탕! 탕!
두 발의 철갑탄이 연속으로 지면을 강타했다.
거의 동시에 단단한 암반이 터져 나가며 괴수의 거대한 아가리가 솟구쳤다. 철심의 다리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던 괴수의 돌진로와 도윤이 0.8초 먼저 쏘아 보낸 철갑탄의 탄도가 기적처럼 허공에서 교차했다.
쿠콰쾅!
괴수의 단단한 등껍질이 아니라 진동을 일으키기 위해 부풀어 올라 있던 턱밑의 연약한 공명 주머니로 대구경 탄환이 파고들었다.
키야아아악!
고막을 찢는 단말마와 함께 괴수의 머리가 뒤로 꺾였다. 푸른 체액이 비산하며 거대한 몸체가 지상으로 완전히 튕겨져 나왔다.
―시험탄 잔여 3발. 유효 타격 확인.
지상으로 끌어내어진 괴수는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턱밑이 터져나간 놈은 피를 흘리며 발악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가시 돋친 꼬리가 채찍처럼 허공을 갈라 철심의 왼쪽 다리를 후려쳤다.
콰직!
이미 쐐기로 박혀 있던 왼쪽 발목 장갑이 으스러지며 강철 프레임이 흉측하게 휘어졌다. 조종석 전체가 거칠게 요동쳤고 안전벨트가 도윤의 쇄골을 파고들었다.
―경고. 좌측 구동계 변형. 관절 가동률 41퍼센트로 저하.
―냉각수 잔량 19퍼센트. 한계 온도 도달까지 1분 20초.
괴수가 부러진 다리를 디디며 일어서려는 철심을 향해 다시 몸을 솟구쳤다. 찢어진 아가리 안쪽에서 시커먼 독액이 흘러내렸다. 거리는 불과 칠 미터. 빗나갈 수 없는 영거리였다.
도윤은 흔들리는 조종간을 양손으로 단단히 틀어쥐었다.
“고철이라고 얕보지 마라.”
그는 마지막 남은 조준선에 괴수의 미간, 신경 다발이 모여 있는 중앙 외피의 틈새를 올렸다.
탕!
단 한 발.
포탄이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 내부에서 폭발했다. 솟구치던 거체가 허공에서 굳어지더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쿵!
채굴장의 붉은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괴수의 가시발들이 몇 번 경련하듯 허공을 긁다가 완전히 멈춰 섰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도윤은 조종간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저려 왔다.
―표적 활동 정지. 생체 신호 소멸.
―시험탄 잔여 2발.
철심의 무릎 관절에서 김이 뿜어져 나왔다. 도윤은 삐걱거리는 기체의 무릎을 천천히 꿇렸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휘어진 발목 프레임에 무리가 가고 있었다.
“……인부들은요?”
도윤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잠시 침묵하던 통신기에서 윤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냉정하던 그녀의 음성에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비상 통로를 통해 기지 외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부상자는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한도윤. 당신이 뭘 한 건지 압니까?”
“괴수를 잡았습니다.”
“구형 작업기 한 대로 소형 공명종을 격파했어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기체가 버텨 준 덕분입니다.”
도윤은 조종석 벽면을 손바닥으로 툭 쳤다. 낡은 금속판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때 쓰러진 괴수의 사체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파괴된 공명 주머니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피어오르더니 지면을 타고 미세한 고주파 진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레이더가 꺼져 있었음에도 도윤의 귓가에 찌르는 듯한 공명이 울렸다.
―미확인 주파수 발산 감지. 광역 확산 중.
단순한 죽음의 경련이 아니었다. 어딘가로 신호를 쏘아 보내는 비명이었다.
도윤의 표정이 굳어졌다.
“윤서, 이 신호 잡힙니까?”
“……잡힙니다. 기지 메인 레이더에도 포착되었어요. 이건 지원을 부르는 조난 신호에 가깝습니다.”
지하 깊은 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층들이 메아리치듯 공명하기 시작했다. 한 마리가 끝이 아니었다.
바로 그 순간, 기지 북쪽 하늘에서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화면 구석의 장거리 조기경보망에 푸른색 아군 식별 신호 하나가 초음속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오르빗 다이내믹스 소속, 최신형 고속 정찰기 ‘실프’였다.
통신망을 뚫고 거만하면서도 신경질적인 청년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카론-7 방위대, 상황을 보고하라. 신형기 시험 비행 도중 이상 공명파를 감지했다. 현장 좌표로 진입한다.
라울 베르너였다.
철심의 조종석 모니터 위로 찌그러진 발목의 수치와 함께 북쪽 상공을 가르는 신형기의 궤적이 겹쳐졌다.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