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 주방장의 은밀한 무공

2화: 그릇 바닥의 발자국
화로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진도겸은 무쇠솥을 옆으로 밀어 놓고 긴 부지깽이로 재를 천천히 헤쳤다. 벽돌 사이에 박힌 문양은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칼날처럼 뻗은 두 줄과 그 아래를 감싼 반달 하나. 사부 연적산이 종종 쓰던 약호였다.
사부는 글로 남기는 것을 싫어했다. 종이와 먹은 불에 타고 손에 넘어가지만 주방의 흠집은 늘 곁에 남는다고 했다. 국자 손잡이의 나뭇결과 도마의 칼자국, 물동이 밑바닥에 생긴 녹까지도 사부에게는 글자였다.
도겸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오른손의 칼상처가 묵직하게 당겼다.
'그릇 밑을 보라.'
각인을 손끝으로 더듬자 뜻이 또렷해졌다. 반달의 끝이 화로 바깥이 아니라 설거지통 쪽을 향하고 있었다. 식도팔결의 첫 동작처럼 칼끝을 세우지 않고 그릇을 뒤집어 보는 이에게만 읽히는 방향이었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벽돌 틈 가장자리에 갓 떨어진 숯가루가 끼어 있었다. 불을 피운 도겸이나 마루의 손길과 달리 한쪽만 깊게 파헤친 흔적이었다. 누군가 재를 한 움큼 쥐고 이 문양을 더듬은 뒤 급히 덮어 놓았다.
누군가 이 문양을 찾았다.
도겸은 부지깽이를 내려놓고 재를 다시 고르게 폈다. 흔적을 알아챘다는 표시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 화로 위에 솥을 올리고 물을 채우는 손이 평소보다 느려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저씨, 불 꺼뜨렸어요?"
마루가 장작 꾸러미를 안고 들어오다 멈칫했다. 도겸은 아무렇지 않게 장작 두 토막을 받아 화로에 넣었다.
"안 꺼졌다. 어제 쓴 뚝배기들은 어디에 있지?"
"설거지통 옆에요. 아직 덜 닦은 것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왜요?"
"골이 간 게 있나 보려고. 손님 앞에서 깨지면 곤란하니까."
마루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도겸이 장작을 가지런히 쌓는 모양을 보고는 자기도 괜히 바닥에 떨어진 나뭇조각을 주워 들었다.
설거지통 곁에는 어제 아침 손님들이 쓴 뚝배기 여섯 개가 엎어져 있었다. 도겸은 손에 쥐어 들지 않고 먼저 바닥을 훑었다. 굽이 조금 닳은 회색 뚝배기 하나가 눈에 걸렸다. 장 표사 앞에 놓였던 그릇이었다.
바닥 한가운데에 미세한 흠집이 있었다. 누군가 칼끝으로 긁어 낸 듯 둥근 굽을 따라 두 번 휘어진 선이었다.
"그 그릇 말이에요? 제가 어제 밤에 닦으려다가 말았어요. 바닥이 너무 까매서요."
마루가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왜 말았지?"
"홀 닫고 물 버리러 갔는데 주방에서 끼익 소리가 났거든요. 쥐인 줄 알았는데 들어와 보니 아무도 없었어요. 연화 누나가 늦게까지 장부 보고 있었으니까 누나가 움직인 줄 알았죠."
도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마루는 말끝을 흐리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자기 말 때문에 누군가 의심받을까 봐 겁먹은 얼굴이었다.
"네가 잘못한 건 아니다. 다음에 그런 소리가 나면 혼자 들어가지 말고 연화 객주나 나를 불러라."
마루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겸은 물동이에서 쌀뜨물을 떠 와 뚝배기 바닥에 천천히 부었다. 기름때와 숯가루가 흘러내리자 긁힌 자리에 남은 흰 흙가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손톱 끝으로 가루를 걷어 내고 화로의 문양과 뚝배기의 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줄과 반달.
화로 벽돌의 문양을 어설프게 옮긴 흔적이었다. 그러나 원래의 각인에는 없던 짧은 선이 하나 더 있었다. 쌀뜨물이 선을 채우자 선은 그릇 굽의 가장 낮은 곳을 가리켰다. 도겸이 그 부분을 엄지로 눌러 보니 유약 아래에 남은 작은 찍힘이 손끝에 닿았다.
'불을 지키고 손님을 살펴라.'
사부가 이런 문장을 남길 때는 경고를 뜻했다. 누구를 경계해야 하는지까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답은 늘 부엌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릇 하나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문가에서 서연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화는 장부를 옆구리에 끼운 채 뚝배기를 보았다. 밤새 잠을 설친 탓인지 눈가가 평소보다 짙었다.
도겸은 뚝배기를 엎어 놓았다.
"누가 바닥을 긁었습니다. 화로 주변도 건드렸고요."
연화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도둑이라도 들었다는 말이에요? 돈통은 멀쩡한데."
"돈을 찾은 자는 아닙니다. 뭘 찾는지는 아직 모르겠고요."
"아직 모른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단정하죠?"
도겸은 쌀뜨물이 고인 바닥을 가리켰다.
"돈을 찾는 사람은 서랍과 장부부터 봅니다. 이건 화로의 재와 그릇 밑만 뒤졌습니다. 들어온 사람도 주방일을 잘 모릅니다. 숯을 쥐고 벽돌 틈을 헤쳤으니 손이 검어졌을 겁니다."
연화는 잠시 말이 없었다. 객잔의 돈통을 지키는 일은 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손님이 자는 객잔 안을 누군가 마음대로 드나들었다면 장부에 적힌 빚보다 더 위험한 일이었다.
"마루야. 어젯밤 뒷문은 잠갔니?"
"분명 잠갔어요. 제가 걸쇠까지 두 번 당겨 봤는데요."
"그럼 안에서 열어 준 사람이 있다는 뜻인가요?"
마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겸은 아이가 쥔 헝겊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직 누구를 의심할 때는 아닙니다. 문을 따는 데 익숙한 자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부터 주방에 들어오는 사람만 적어 두십시오."
"손님도요?"
"특히 주방 가까이 오는 손님을요."
연화는 대답 대신 장부를 펼쳤다. 도겸이 기대한 건 믿음이 아니라 경계였다. 연화는 잠시 뒤 마루에게 작은 종이와 먹을 건넸다.
"들었지? 낯선 사람이 주방 문턱을 넘으면 이름과 용건을 적어. 모르면 옷차림이라도 적고. 장부는 내게 바로 가져와."
"예. 그런데 도겸 아저씨도 적어야 해요?"
"나는 주방장이다."
"그럼 제일 먼저 적어야겠네요."
마루의 대꾸에 연화가 짧게 웃었다. 굳어 있던 공기가 조금 풀렸다.
도겸은 뚝배기를 선반 가장 안쪽에 넣었다. 깨진 그릇처럼 버리지 않았다. 그것을 본 연화는 묻고 싶은 말을 삼키듯 입술을 다물었다.
점심 장사가 가까워지자 주방에는 다시 칼소리와 물 끓는 소리가 채워졌다. 도겸은 무를 길게 채 썰고 파를 얇게 다듬었다. 손은 일을 했지만 귀는 홀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새 손님 하나가 들어왔다.
발뒤꿈치를 소리 없이 디디는 걸음이었다. 무인이면 일부러 기척을 감추는 버릇일 수 있고 도둑이면 습관일 수 있었다. 도겸은 섣불리 결론 내리지 않았다.
"국수 한 그릇. 어제 그 표사가 먹은 것과 같은 걸로 주시오."
낮고 마른 목소리가 홀에서 들렸다.
연화가 주문을 받으며 말했다.
"맑은 장국수로 내드리겠습니다."
"그릇도 같은 것으로. 바닥이 둥글고 굽이 넓은 걸로 말이오."
국자를 들던 도겸의 손이 멈췄다.
연화도 손님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낯선 사내는 먼지 묻은 회색 포를 입고 있었다. 평범한 길손 차림이었지만 소매 끝에 옅은 숯가루가 번져 있었다.
"그릇까지 골라 드릴 수는 없어요. 깨끗한 걸로 나가니 국수 맛은 같을 겁니다."
연화의 말이 매끄럽게 잘렸다.
사내는 잠깐 웃었다.
"객주가 제법 깐깐하군. 그럼 주방장 손에 맡기지."
도겸은 새 뚝배기를 꺼냈다. 일부러 굽이 낮고 바닥이 매끈한 것을 골랐다. 육수를 붓고 면을 말아 내는 동안 사내는 주방 문틈 너머를 여러 번 훑었다. 화로가 있는 안쪽 구석을 볼 때마다 그의 눈동자가 짧게 멈췄다.
도겸이 쟁반을 들고 홀로 나갔다.
"주문하신 국수입니다."
사내는 젓가락을 들지 않고 그릇부터 뒤집으려 했다. 도겸이 쟁반을 살짝 밀어 그릇 옆을 막았다.
"뜨겁습니다. 먼저 드십시오."
"그릇을 좀 보자는 건데?"
"손님이 데이면 객잔 책임입니다. 국물 식은 뒤에 보셔도 됩니다."
도겸의 말투는 공손했지만 물러설 틈이 없었다. 사내의 손가락 끝이 쟁반 모서리를 한 번 두드렸다. 손가락 마디마다 얇은 검은 때가 끼어 있었다.
"주방장은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소?"
"사흘째입니다."
"그 전에 있던 사람은?"
"국수 드시다가 궁금한 게 많으시군요."
사내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가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들자 도겸은 그릇 가장자리에서 아주 약한 진동을 느꼈다. 손님은 면을 먹는 척하며 다른 손으로 탁자 밑을 더듬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숨기거나 찾는 손이었다.
도겸은 더 묻지 않았다. 이 손님은 문양의 뜻을 모르며 그릇의 존재만 들은 자일 가능성이 컸다. 섣불리 몰아붙이면 뒤에 있는 자에게 경계만 알릴 터였다. 그는 손님이 남긴 손자국과 소매의 숯가루를 기억해 두었다.
"맛은 어떻습니까?"
"싱겁군."
사내는 국물도 절반 남긴 채 일어섰다. 계산을 하며 은전 하나를 탁자에 놓았는데 손끝에서 숯가루가 작은 점처럼 떨어졌다.
그가 문을 나서자 연화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손님을 아는 사람 같았어요?"
"아닙니다. 다만 주방을 찾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뭘 찾는데요?"
도겸은 대답하지 않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화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재를 바라보았다. 아침에 고르게 펴 둔 재 위로 작은 신발 자국 하나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마루의 발보다 작고 어른의 발보다 가벼웠다.
발자국은 화로에서 설거지통까지 이어지다 중간에서 끊겼다. 누군가 문틈으로 들어와 그릇을 확인하고 사내가 홀을 떠나는 틈에 빠져나간 것이다.
도겸은 지워지기 전의 발자국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누군가는 손님을 앞세워 객잔 안을 살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