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과거 급제한 학사가 무림을 통제함1화

과거 급제한 학사가 무림을 통제함

과거 급제한 학사가 무림을 통제함

AD
스폰서 광고

1화: 장원 급제자의 독배

목구멍 안쪽이 불에 달군 쇳덩이를 삼킨 것처럼 타들어 갔다.

숨을 들이켤 때마다 폐포가 찢겨 나가는 통증이 전신을 덮쳤다.

무너져 내리던 공사 현장의 콘크리트 분진, 사람들을 비상계단으로 밀어 넣던 자신의 거친 고함, 그리고 마지막 순간 척추를 짓누르던 파쇄음. 그 모든 감각이 순식간에 흩어지더니 지독히 차가운 방바닥의 감촉으로 바뀌었다.

"쿨럭! 컥……!"

윤도현은 바닥을 짚으며 피를 토해 냈다.

토사물 속에는 검붉은 핏덩이와 함께 마시다 만 찻물이 엉겨 있었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은제 찻잔의 안쪽 벽면이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비상(砒霜), 그리고 혈관을 수축시키는 음독초의 냄새였다.

'붕괴 사고가 아니다.'

도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현장에서 거칠어진 손마디 대신 희고 마른 손가락, 붓을 쥐어 생긴 세 번째 손가락 안쪽의 굳은살이 선명했다.

그와 동시에 뇌리에 거센 기억의 격류가 밀려들었다.

대명 황조, 황도 천경.

삼 년마다 열리는 대례 전시(殿試)에서 당당히 장원(壯元)으로 급제한 스물일곱의 학사 서문진(西門振).

어제 정오 황궁에서 장원 홍패를 하사받고 사저로 돌아온 직후였다. 축하의 명목으로 누군가가 보낸 황실 하사명차를 마신 서문진은 이 방에서 숨을 거두었고 그 빈 껍데기에 현대의 위기관리 공무원 윤도현이 들이닥친 것이었다.

'독살이다.'

도현, 아니 이제는 서문진이 된 그는 지체 없이 몸을 움직였다.

행정고시 재경직을 거쳐 중앙재난대책본부에서 십 년간 뼈를 깎아 온 본능이 통증보다 먼저 작동했다. 상황을 한탄하거나 경악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위기 대응의 제1원칙은 즉각적인 생체 안정화와 현장 보존이었다.

서문진은 탁자 위에 놓인 식은 물주전자를 들어 망설임 없이 입안에 쏟아부었다.

손가락 두 개를 목구멍 깊숙이 찔러 넣었다.

"우웨엑!"

식도와 위장을 쥐어짜듯 두 차례 더 토해 냈다. 위벽에 남아 있던 잔여 독물이 쏟아져 나오자 흐릿하던 시야가 조금씩 맑아졌다.

이 몸의 단전 깊은 곳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초급의 도가(道家) 기운이 꿈틀거렸다. 학사들이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익히는 섭생의 조식결이었다.

서문진은 숨을 가다듬으며 기운을 천천히 순환시켜 오장육부로 퍼지려는 독기를 억눌렀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으나 심장의 고동은 안정을 되찾아 갔다.

'독이 퍼져 즉사하기 직전 내가 깨어났다. 토해 낸 덕분에 치사량은 면했어.'

서문진은 바닥에 엎질러진 찻잔과 주전자를 서안 위로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현장의 증거는 훼손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다. 대신 옷장에 걸려 있던 정갈한 유학자의 청포를 꺼내 걸쳤다.

피 묻은 옷을 털어내고 옷깃을 여미는 손길은 놀라울 만큼 침착했다.

장원 급제자가 하룻밤 사이에 독살당했다면 이는 단순한 원한이 아니다.

과거 시험의 결과가 누군가의 거대한 이해관계를 침범했거나 서문진이라는 인물이 살아 있어서는 안 될 명백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였다.

사저의 마당 바깥에서 바스락거리는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는 둘. 하나는 무겁고 절제된 무인의 걸음걸이였고 다른 하나는 빠르고 조심스러운 환관의 보폭이었다.

서문진은 서안 앞 의자에 단정히 앉아 문을 응시했다.

똑, 똑.

"서문 학사님, 안에 계십니까?"

낮게 억눌린 목소리가 문풍지를 울렸다.

"들어오시오."

서문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인영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앞선 자는 남색 관복을 입은 중년의 내관이었고 뒤를 따르는 자는 허리에 패도를 찬 채 날카로운 안광을 번뜩이는 황궁 금군이었다.

내관은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의자에 단정히 앉아 있는 서문진을 보더니 순간 숨을 들이켰다. 그의 시선이 바닥에 흩어진 토사물과 변색된 은잔을 스쳐 지나갈 때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학사님…… 무탈하셨습니까?"

내관의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경악이 묻어났다.

서문진은 그 찰나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 자는 내가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직접 독을 쓴 범인은 아니다. 범인의 사주를 받았거나 혹은 독살이 일어날 것을 미리 짐작하고 확인하러 온 자다.'

서문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내관을 응시했다.

"목이 말라 차를 마셨는데 맛이 몹시 고약하여 게워 냈을 뿐이오. 야심한 시각에 황궁의 내관이 군사를 대동하고 사저를 찾은 연유가 무엇입니까?"

내관은 마른침을 삼키며 황급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는 품 속에서 황금빛 비단에 싸인 패를 꺼내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황제 폐하의 밀명이십니다. 지금 즉시 서문 학사님을 편전으로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폐하께서?"

"예. 한 치의 지체도 없어야 합니다. 마차가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서문진의 뇌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장원 급제 당일 밤 황제가 신임 학사를 새벽에 비밀리에 부른다.

그리고 그 직전에 독살 미수가 발생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황제는 서문진에게 닥칠 위험을 알고 있었거나 혹은 서문진을 장원으로 낙점한 것 자체가 누군가를 향한 선전포고였음을 의미했다.

"알겠소. 인도하시오."

서문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 안에서 미열이 피어올랐으나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내관 조필은 앞장서 걸으면서도 연신 서문진의 안색을 훔쳐보았다. 독을 마시고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현장을 내려다보던 젊은 학사의 서늘한 기백에 압도된 기색이었다.


사저 밖에는 황실의 문양이 가려진 검은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문진이 마차에 오르자 두 마리의 준마가 어둠 속을 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서문진은 덧창을 조금 열어 밖을 내다보았다.

새벽의 천경 거리는 짙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대로변의 웅장한 누각들과 관아 건물들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관도가 시작되는 사거리마다 낯선 풍경이 눈에 밟혔다. 관아의 포졸들이 있어야 할 길목에 거친 무복을 입고 검을 찬 무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의 깃발에는 푸른 용의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청룡문(靑龍門).'

서문진의 기억 속에서 문파의 이름이 떠올랐다. 천경 서부의 상권과 수로를 장악하고 있는 도성 최대의 무림 문파 중 하나였다.

무림인들은 황실 마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길을 비켜설 뿐 고개를 숙이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채 마차의 행렬을 오만하게 훑어보고 있었다.

오십 년 전 체결된 무림자치령(武林自治令).

황실과 구대문파가 맺은 맹약에 따라 문파의 영역과 사제 간의 규율은 관아의 법도가 침범하지 못한다는 불문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황제의 발밑인 도성 한복판조차 문파의 사병들이 활보하고 상로를 가로막으며 통행세를 뜯어내도 관아는 손을 대지 못했다. 백성들은 법보다 칼을 쥔 문파의 눈치를 먼저 보았고 황권은 궁궐 담장 안으로 좁혀져 있었다.

'수도의 중심 도로가 무장 집단에 의해 점거되어 있는데도 공권력이 개입하지 못한다. 이것은 국가가 아니다. 행정과 치안이 완전히 마비된 파탄 상태다.'

서문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현대에서 재난과 위기를 수습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통제권의 분산이었다. 지휘 체계가 무너지고 무법이 당연시되는 순간 피해는 고스란히 무고한 백성들에게 돌아간다.

황제가 자신을 부른 이유가 서서히 가닥을 잡혀 갔다.

서문진이 과거 답안에 써낸 글.

그것은 공리공론의 경전 해석이 아니라 도성의 호적과 조세 누락을 지적하고 무림 문파의 불법 상행위를 국가 조운망으로 흡수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치안 및 조세 개혁책'이었다.

그 답안을 장원으로 뽑은 자가 바로 황제 이도겸이었다.

'황제는 나를 장원으로 올려놓음으로써 조정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 그리고 기득권 세력은 내가 관직에 나아가기도 전에 찻잔에 독을 타서 응수한 것이군.'

원인과 결과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위협의 실체가 명확해지자 마음속의 혼란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위험한 판국에서 살아남아 주도권을 쥐는 일뿐이었다.


마차는 황궁 북쪽의 작은 암문인 현무문을 통과했다.

내관의 안내를 받아 미로처럼 이어진 궁성 회랑을 지나자 깊은 숲속에 자리한 전각 하나가 나타났다.

황제의 개인 서재인 묵향당(墨香堂)이었다.

문앞을 지키던 시위들이 소리 없이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은은한 침향 냄새와 함께 수천 권의 서책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서안 뒤편에 용포를 입은 사내가 홀로 서 있었다. 서른 남짓의 나이, 파리할 정도로 창백한 안색이었으나 그 눈빛만큼은 밤하늘의 벼락처럼 형형했다.

대명 황조의 주군, 황제 이도겸이었다.

서문진은 어전 세 걸음 앞에 멈춰 서서 공손히 읍급했다.

"신, 과거 장원 서문진.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는 서문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서문진의 핏기 없는 입술과 옷깃에 미세하게 남은 찻물 자국에 닿았다.

황제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살아 있구나."

황제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죽을 고비를 넘겼을 텐데 안색이 놀라울 만큼 태연하구나. 과인이 보낸 차가 입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지?"

서문진은 황제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답했다.

"신에게 차를 보낸 자가 폐하의 이름을 빌렸을 뿐 폐하께서 신을 독살하려 하셨다면 굳이 장원으로 뽑아 도성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황제의 눈썹이 가늘게 꿈틀거렸다.

"과인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확신하느냐?"

"폐하께서 신을 죽이고자 하셨다면 법도를 쓰셨을 것입니다. 장원의 답안을 문제 삼아 역모로 엮거나 관직을 주어 험지로 내몰아도 충분했을 터인데 야밤에 암살자의 독을 쓰는 것은 권력을 쥔 자의 방식이 아니라 황권을 두려워하는 자의 비열한 수법이기 때문입니다."

침묵이 묵향당을 짓눌렀다.

옆에 서 있던 내관 조필이 사색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황제 앞에서 독살의 배후와 황권의 처지를 이토록 직설적으로 논하는 학사는 전례가 없었다.

그러나 황제 이도겸의 입가에는 서서히 기이한 웃음이 번졌다.

"과거 시험장에서 네가 쓴 답안을 보았을 때 세상 물정 모르는 서생의 치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네 눈을 보니 결코 치기가 아니었구나."

황제가 서안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네 말이 맞다. 너에게 독을 보낸 자들은 조정의 권신들과 결탁한 자들이다. 그들은 네가 제안한 조세 개혁과 치안 정비가 자신들의 목을 죄어올 것을 알고 하룻밤도 참지 못해 손을 쓴 것이다."

"황도 천경이 이토록 무법천지일 줄은 몰랐습니다."

서문진의 일침에 황제의 눈빛이 서늘하게 굳었다.

"오십 년 전 맺은 자치령 이후 강호의 문파들은 황실의 법 위에 군림해 왔다. 조정의 대신들은 문파의 뇌물과 무력에 기생하고 금군은 도성의 문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과인이 손을 뻗으려 해도 명분과 증거가 없고 쓸 수 있는 칼이 없다."

황제는 서안 위에 놓여 있던 낡은 흑철패 하나를 집어 들었다.

패의 표면에는 날아오르는 매의 형상과 함께 붉은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너는 살아서 이 자리에 왔다. 그것으로 너는 자격을 증명했다."

황제가 서문진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과인은 너에게 학사의 붓 대신 법봉과 칼을 쥐여 주려 한다. 천하가 썩어 문드러진 껍데기라 비웃는 조직이지만 오직 황명만을 따르는 유일한 칼날이다."

서문진의 시선이 황제의 손에 들린 흑철패로 향했다.

금의위(錦衣衛).

선황 시절 천하를 감찰하며 권세를 떨쳤으나 지금은 내부 부패와 문파의 압력에 밀려 허울만 남은 황실 직속의 감찰 기구였다.

황제가 패를 서안 위에 내려놓으며 서늘하게 속삭였다.

"서문진, 네가 이 썩어 빠진 금의위의 총사령관이 되어 강호의 칼날들을 황실의 법 아래 무릎 꿇려 보겠느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침내 거대한 체스판의 첫 번째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