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후의 헌터 쇼퍼: B급이 구매한 S급 보상

3화: 바닥 아래의 값
협회 정산 창구의 유미란은 비늘등개 가죽을 한참 들여다봤다.
절단면은 마치 처음부터 가죽과 살 사이에 선이 그어져 있었던 것처럼 반듯했다.
"이걸 누가 손질했어요?"
현우는 창구 위에 놓인 정산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희가요."
"보급 검으로요?"
미란의 시선이 준호 허리의 둔한 칼집을 향했다. 준호는 방패에 남은 발톱 자국을 슬쩍 가렸다.
"운이 좋았죠. 약점 쪽이 잘 벌어져서요."
"그 정도 운이면 협회 장비실부터 가 보세요. 정밀 가공 등급으로 처리하면 값이 좀 올라갈 테니까. 대신 특수 장비면 출처 확인이 들어갈 수 있고요."
현우의 손가락이 가방끈을 살짝 조였다.
가방 안쪽에서 커터칼 손잡이가 차갑게 닿았다. 주방용품이라고 우겼지만 협회 직원까지 들여다보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냥 일반 등급으로 처리해 주세요."
준호가 얼른 받았다.
"네. 빨리 팔고 싶어서요."
미란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더 캐묻지 않았다. 그녀는 가죽 봉투와 전리품 신고서를 저울 쪽으로 밀었다.
"가죽 두 장은 준호 씨 명의로 맞죠? 마나스톤 두 개는 현우 씨가 회수했고요."
"맞습니다."
현우는 즉시 대답했다.
마나스톤을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손바닥 안에서 사라지는 돌이야말로 그에게만 현금보다 쓸모 있는 재료였다.
정산기가 짧게 울렸다. 준호의 휴대폰에 입금 예정 금액이 떴다.
"수수료 빼고 십팔만이네요. 어깨 치료비 내도 며칠은 버티겠어요."
준호의 목소리가 조금 풀렸다. 현우는 그 숫자를 보며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가죽 절반만 가져갔어도 관리비 일부는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돌과 피 묻은 살점만 골라 36 HP로 바꿨다. 통장 잔고는 그대로였고 관리비 납부일까지는 이틀뿐이었다.
"준호 씨. 다음부터도 이런 식으로 하죠."
"어떤 식으로요?"
"가공하기 좋은 가죽이나 살은 준호 씨가 챙겨서 협회 정산으로 팔아요. 대신 제가 회수한 마나스톤과 버려질 부산물은 제 몫이고요. 현금이 남으면 가죽값의 절반은 제 계좌로 보내 주세요."
"제가 필요한 건 따로 있어요. 대신 정산은 기록 남는 방식으로만 해요. 서로 빚지는 건 싫으니까."
준호는 잠시 생각했다.
"좋아요. 저도 사체 가공은 자신 있어요. 이상하게 잘린 가죽만 계속 나오면 단골도 만들 수 있을 것 같고요."
현우는 웃지 못했다.
이상하게 잘린 가죽이 계속 나오면 누군가는 이유를 묻게 된다. 그렇다고 커터칼을 장롱 안에 넣어 둘 수도 없었다.
관리비 고지서는 주머니 속에서 종이 한 장이 아니라 목을 조르는 줄처럼 느껴졌다.
준호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하나 더 갈래요? 폐지하역장 게이트요. E급인데 사람들이 잘 안 들어가요."
"이유는요?"
"석장어가 나와요. 가죽은 값이 괜찮은데 전기 때문에 장비가 자주 망가져요. 바닥에 고인 물도 많고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췄다.
"부산물은요?"
준호가 눈을 깜빡였다.
"장어 살이랑 가죽요. 전기주머니 막은 위험하다고 버리고요. 게이트가 끝나면 철판에 남는 마력도 많다고 들었는데 그건 협회 장비가 아니면 못 긁어내요."
버려지는 내장막.
바닥에 남는 마력.
현우에게는 둘 다 같은 뜻이었다.
그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가죠. 대신 안쪽까지 무리해서 들어가진 않아요. 전리품이 있어도 준호 씨가 버티기 어렵다고 하면 바로 나옵니다."
"제가 그 말 하려던 참이었는데요."
준호는 머쓱하게 웃었다. 현우는 정산 창구를 돌아섰다.
현금이 되는 것은 남기고 포인트가 되는 것은 가져간다. 그 기준을 만들 수 있다면 쇼핑몰의 숫자도 더는 막연하지 않을 터였다.
폐지하역장 게이트는 해가 진 뒤에 더 음산해 보였다.
낡은 컨테이너 출입문만 한 균열 너머로 습한 바람이 밀려 나왔다. 쇠 녹는 냄새와 비린 물 냄새가 섞여 코끝에 걸렸다.
준호는 오늘도 두꺼운 방패를 들었지만 손잡이에는 고무 테이프를 몇 겹이나 감아 놓았다.
"바닥이 젖어 있으면 방패부터 세우지 마요. 전기가 타고 들어올 수도 있어요."
"준호 씨는요?"
"오늘은 한 번 맞아 보고 바로 뺄 겁니다. 지난번처럼 버티는 건 못 해요."
현우는 대여 검을 허리에 찼다. 커터칼은 가방 바깥 주머니가 아닌 재킷 안쪽에 넣었다.
입구를 지나자 사방이 낮은 철판 벽으로 막힌 하역장이 나타났다. 무너진 선반과 찌그러진 드럼통 사이로 검은 물이 얕게 고여 있었다. 천장에서는 끊어진 케이블이 젖은 밧줄처럼 늘어져 있었다.
현우는 발을 옮기기 전에 배수구부터 찾았다.
철판 바닥은 가운데가 낮았다. 고인 물은 오른쪽 배수로로 천천히 흘렀고 케이블 몇 가닥은 그 위를 가로질러 놓여 있었다.
"왜 안 들어가요?"
"나갈 길부터 보는 겁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철판 밑에서 끈적한 마찰음이 울렸다.
치익.
검은 물 위로 푸른 불꽃 하나가 튀었다.
"온다."
준호가 방패를 들려다 현우의 손짓을 보고 멈췄다.
드럼통 뒤에서 첫 번째 석장어가 몸을 뽑아냈다. 사람 팔보다 굵은 몸통은 젖은 돌처럼 회색이었고 등줄기를 따라 푸른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놈은 물속에서 꼬리를 한 번 휘둘렀다.
파직!
전기가 검은 물을 따라 퍼졌다. 현우와 준호는 동시에 철제 선반 위로 뛰어올랐다. 바닥을 밟고 있던 장화 밑창이 찌르르 울렸다.
"한 마리면 괜찮은데요."
준호가 속삭인 순간 반대편 철판이 들썩였다.
두 번째 석장어가 배수구에서 솟구쳤다. 뒤이어 작은 놈 하나가 선반 다리를 감고 올라왔다.
"셋입니다."
준호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현우는 전기를 두른 몸통과 발밑 물길을 번갈아 봤다. 커터칼을 쓰려면 한 걸음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바닥 전류에 발이 굳으면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한다.
첫 번째 석장어가 선반을 향해 튀었다.
준호가 방패를 내밀었다. 방패 가장자리에 놈의 머리가 닿는 순간 푸른 빛이 둥글게 번졌다.
"으윽!"
준호의 팔이 경련했다. 방패가 손에서 미끄러져 철판 바닥으로 떨어졌다.
현우는 방패 쪽으로 가려다가 멈췄다. 검은 물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천장 케이블의 끝이 물속이 아니라 배수구 옆 녹슨 상자에 닿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준호 씨! 선반 위로만 뒤로 가요. 방패는 버려요!"
"그거 대여품인데요!"
"목보다 비싸지 않아요!"
현우는 재킷 안쪽에서 커터칼을 꺼냈다. 안전 버튼을 누르지 않은 칼날은 평범한 금속 조각이었다.
그는 선반 난간을 붙잡고 몸을 기울였다. 케이블 끝과 물 사이에는 손바닥 하나만 한 틈이 있었다.
석장어가 다시 꼬리를 휘둘렀다. 전기가 물을 가르며 선반 다리까지 번졌다.
현우는 이를 악물고 칼날을 케이블에 댔다.
"재료 지정. 전선."
손가락이 버튼을 눌렀다.
푸른 선이 칼날 가장자리에 번졌다.
스르륵.
케이블은 소리도 없이 끊어졌다. 잘린 끝이 물에 닿기 전에 현우는 손목을 틀어 배수구 쪽으로 던졌다.
파지직!
남아 있던 전류가 배수구 철망을 타고 쏟아졌다. 검은 물 위로 푸른 불꽃이 일제히 튀었다.
석장어 셋이 동시에 몸을 뒤틀었다. 놈들은 물길을 빼앗기자 배수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물이 약해요!"
준호가 비틀거리며 방패를 주워 들었다. 그는 고무 테이프가 감긴 손잡이를 다시 움켜쥐고 가장 작은 놈의 진로를 막았다.
현우는 선반에서 내려왔다. 장화 밑창에 물이 닿지 않게 드럼통과 철제 상자를 밟고 뛰었다.
가장 큰 석장어의 목 아래가 부풀었다. 두꺼운 가죽보다 한 톤 밝은 회색 주머니가 맥박칠 때마다 전기가 새어 나왔다.
전기주머니.
현우는 놈의 꼬리가 날아오는 것을 보며 마지막 상자 위에 발을 걸쳤다.
그는 몸을 낮췄다.
꼬리가 머리 위를 스쳤다. 매캐한 전기 냄새가 뺨을 훑었다.
현우는 상자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며 주머니에 칼날을 댔다.
서걱.
힘을 준 감각은 없었다. 손목을 한 뼘 당겼을 뿐인데 부푼 막이 깨끗한 선을 남기며 열렸다.
석장어의 몸에서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놈은 울음도 못 내고 철판 위를 두 번 튀었다.
현우는 즉시 버튼을 놓았다.
아직 두 마리가 남아 있었다.
작은 놈이 준호의 다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준호는 방패를 낮게 세웠지만 감전된 팔이 완전히 펴지지 않았다.
현우가 외쳤다.
"왼쪽으로 밀어요!"
준호는 이를 악물고 방패 끝으로 놈의 머리를 쳐 냈다. 석장어가 젖은 드럼통 옆으로 미끄러졌다.
현우는 드럼통과 벽 사이 좁은 틈으로 다가갔다. 놈은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꼬리가 철판에 걸렸다.
커터칼의 푸른 선이 한 번 더 살아났다.
이번에는 몸통을 깊게 가르지 않았다. 전기 흐름이 모이는 목 아래의 얇은 막만 잘랐다.
파직 하고 불꽃이 튀더니 석장어가 축 늘어졌다.
마지막 한 마리는 도망치려 배수구로 기어갔다. 현우는 쫓지 않았다. 대신 준호가 세운 방패 뒤로 물러나 숨을 골랐다.
"왜 안 잡아요?"
"배수구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불리해요. 나올 때까지 기다리죠."
준호는 잠시 현우를 보다가 작게 웃었다.
"현우 씨는 가끔 E급 같지 않아요."
"가끔만 그래야 합니다. 계속 그러면 피곤해져요."
도망친 석장어는 끝내 물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전기주머니가 터진 두 마리에서 새어 나온 자극 냄새에 흥분했는지 배수구를 빠져나와 달려들었다.
준호가 방패로 한 번 밀어 냈다. 현우는 그 순간 목 아래를 갈랐다.
게이트 안이 조용해졌다.
검은 물 위에는 전기 냄새만 얇게 떠 있었다. 현우는 손잡이를 놓지 못한 채 한참 숨을 골랐다.
커터칼은 확실히 강했다. 그렇다고 아무 데서나 꺼낼 수 있는 만능 검은 아니었다. 안전 버튼을 누른 손이 미끄러지면 위험했고 한 걸음 가까워지는 대가는 늘 목숨이었다.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정산 가능한 던전 자원이 감지되었습니다.]
[석장어 3체, 마나스톤 3개, 전기주머니 내장막, 잔류 환경 에너지.]
현우는 창을 끄고 준호를 돌아봤다.
준호는 방패 표면을 닦다가 고개를 들었다.
"사체는 어떻게 나눌까요?"
"살과 가죽은 전부 챙겨요. 마나스톤 세 개와 전기주머니 막은 제가 가져갈게요."
"막은 버릴 건데요. 가공소에서도 받기 싫어할걸요."
"그래서 제가 가져가는 겁니다."
준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고기 손질용 칼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취향도 특이하네요. 대신 가죽값은 협회 정산 들어오는 대로 반 보내 줄게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가 가죽을 벗기는 동안 그는 기둥 뒤로 물러났다. 손바닥 위에는 마나스톤 세 개와 투명한 내장막 조각이 놓였다.
철판 틈에 고인 물에서는 아직 희미한 마력이 피어올랐다.
그는 손을 뻗었다.
[전환을 시작합니다.]
푸른 빛이 손가락 사이로 번졌다. 마나스톤이 먼저 부서졌고 내장막과 바닥의 잔광이 가는 실처럼 손바닥 안으로 말려 들어왔다.
[정산 완료. 174 HP가 적립되었습니다.]
[보유 포인트: 217 HP]
현우는 숫자를 두 번 확인했다.
늘어난 포인트는 반가웠지만 골드 회원까지 필요한 893 HP에는 아직 턱없이 모자랐다. 오늘 같은 공략을 몇 번 더 한다고 해도 구매를 쌓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때 상점 창 아래에서 은빛 테두리가 번쩍였다.
[골드 회원 사전 심사 대상입니다.]
[생활 카테고리 누적 구매가 심사 항목에 반영됩니다.]
[심사 추천 목록을 확인하시겠습니까?]
현우의 시선이 마지막 문장에 박혔다.
커터칼 한 자루는 생존 장비였지만 상점은 그것을 생활용품으로 분류했다. 그 생활용품이 회원 등급까지 건드린 것이다.
"뭘 그렇게 봐요?"
준호의 목소리에 현우는 창을 닫았다.
"다음에 살 물건이요."
"고기 손질용품을 또 사게요?"
현우는 가방 속 커터칼을 만졌다. 오늘 그 칼은 전선을 끊고 전기주머니를 가르고 둘의 목숨값을 벌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비싼 걸 봐야겠네요."
준호는 뜻을 모른 채 웃었다. 현우는 웃지 않았다.
심사 추천 목록의 첫 줄에는 아직 열지 않은 카테고리 하나가 떠 있었다.
[주방 설비 / 골드 사전 심사 전용]
그 아래에는 가격 표시 대신 짧은 문장이 있었다.
[당신의 사냥을 조리할 준비가 되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