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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급 파티 매니저가 항구 경제를 접수함6화

폐급 파티 매니저가 항구 경제를 접수함

폐급 파티 매니저가 항구 경제를 접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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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하역 지연의 대가

바닷물이 방파제 계단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며 젖은 이끼와 굴 껍데기를 드러냈다.

정오 종이 멎자마자 조류가 방향을 바꾸었다. 거칠게 차오르던 서쪽 해류가 잦아들고 제7방파제 안쪽 수로를 가득 채웠던 검은 바닷물이 썰물을 타고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창고 문턱을 넘나들던 물살이 자갈 바닥 아래로 내려앉으며 거품 섞인 찌꺼기를 토해 냈다.

아린이 황동 확대경을 눈가에 바짝 붙인 채 창고 입구 바닥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의 무거운 가죽 장화가 진흙을 밟을 때마다 쩍 하는 소리가 났다.

“물이 빠진다. 다음 만조가 차오를 때까지 길어야 두 시간 반이야.”

아린은 품에서 굵은 황동 쐐기 세 개와 끝이 뭉툭한 끌을 꺼냈다.

“수문 축에 감긴 합금 사슬은 바깥쪽에서 장력을 걸어 놓은 구조야. 안에서 물이 차오를수록 빗장이 문틀을 더 세게 물도록 설계됐지. 썰물로 안쪽과 바깥쪽 수압이 같아지는 지금이 아니면 망치 열 개를 가져와도 못 연다.”

미르카가 팔 보호구의 끈을 단단히 고쳐 맸다. 여과통에서 떼어낸 황동 격자가 그녀의 손목과 아래팔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아까 안쪽에서 났던 소리는 뭐야? 쇠가 긁히는 소리가 일정하게 났어.”

“그걸 보러 가는 겁니다.”

한결이 기름종이로 감싼 기록판과 석유 램프를 챙겨 들었다.

“수문 너머에 무엇이 있든 외부에서 강제로 차단한 흔적을 먼저 확보해야 합니다. 세아 씨는 여기서 방파제 수위와 시간을 기록해 주세요. 물이 다시 계단 첫 번째 턱을 넘으면 즉시 신호 줄을 당기셔야 합니다.”

“네. 삼 분 간격으로 수위를 체크할게요. 줄은 방파제 닻 고리에 이중으로 걸어 뒀어요.”

세아가 잉크병을 나무 상자 틈에 단단히 고정하며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얇은 손가락 끝에는 팽팽한 긴장이 묻어 있었다.

조합 상급 검수관 바란이 남기고 간 오후 만조라는 시한.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파티의 숨통을 끊으러 오겠다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전에 수문 뒤의 진실을 끌어내야만 했다.

“들어갑니다.”

한결이 앞장서며 창고 안쪽 통로로 발을 들였다.

바닥의 물은 이미 발목 아래로 빠져 있었다.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끈적한 바닷물 사이로 부서진 목재 상자와 찢긴 방수포들이 흉물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통로 끝 벽면 아래 두꺼운 주철 수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2미터 남짓한 철문 가장자리에는 아린의 말대로 내압성 강화 합금으로 된 빗장이 가로질러 걸려 있었다.

그리고 빗장의 중앙 회전축에는 붉은 납 봉인이 박힌 굵은 쇠사슬이 칭칭 감겨 있었다.

“이것 봐.”

미르카가 수문 빗장 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빗장 걸쇠 틈에 쐐기 핀이 박혀 있어. 조합 검수관들이 밀수품 창고를 봉쇄할 때 쓰는 특수 핀이야.”

한결이 램프 불빛을 가까이 댔다.

강철로 된 핀의 머리에는 항만조합의 공식 마크인 닻 문양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물속에 잠겨 있었음에도 기름을 두껍게 먹여 두어 녹이 전혀 슬지 않은 상태였다.

“외부에서 의도적으로 걸쇠를 내리고 조합 규격 핀을 박아 잠근 겁니다. 페른이 가져왔던 마른 봉투와 일치하는 정황이에요.”

한결이 가방에서 쇠집게를 꺼내 조심스럽게 봉인 핀을 뽑아냈다. 핀이 빠져나오자 빗장이 덜컥거리며 미세한 틈을 만들었다.

끼이익.

바로 그 순간 철문 너머에서 다시 한번 금속이 긁히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렸다.

미르카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며 손톱을 세웠다.

“소리가 바로 문 뒤야.”

“괴물이 아니다.”

아린이 통로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손에 든 황동 쐐기를 빗장 틈에 능숙하게 밀어 넣었다.

“수류가 빠져나가면서 안쪽에 묶여 있던 무거운 쇳덩이가 흔들리는 소리야. 물살을 타고 쇠사슬이 문짝 안쪽을 긁고 있는 거지. 비켜 봐. 빗장을 제낀다.”

아린이 여과통에서 회수한 공명핵을 쐐기 머리에 접촉시켰다.

위이잉―!

공명핵에서 흘러나온 미세한 마력 진동이 황동 쐐기를 타고 수문 축으로 전달되었다. 오랫동안 소금기에 쩔어 굳어 있던 결착 부위에서 흰 가루가 바스러져 내리며 뻑뻑하던 나사산이 느슨해졌다.

“미르카. 지금이다! 아래쪽 걸쇠를 위로 쳐올려!”

“하압!”

미르카가 낮게 기합을 내지르며 양팔로 합금 빗장 끝을 움켜쥐었다. 황동 격자가 장착된 보호구가 그녀의 완력을 지탱하며 삐걱거리는 금속 비명을 삼켜 냈다.

쾅!

묵직한 쇠 빗장이 위로 들리며 마침내 잠금이 풀렸다.

수문 틈새로 고여 있던 검은 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썩은 해초 냄새와 기름 냄새가 섞인 비릿한 악취가 통로를 가득 채웠다.

한결과 아린이 문짝 양쪽을 잡고 힘껏 바깥으로 당겼다.

끼기기긱― 쿵!

거대한 철문이 마침내 활짝 열리며 그 뒤편에 숨겨져 있던 격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 램프 불빛이 가닿은 곳은 일반적인 침수 창고가 아니었다. 사방이 화강암 판석으로 빽빽하게 보강된 밀폐 격실이었다.

수위가 낮아지며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격실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직사각형 물체가 굵은 쇠사슬에 묶인 채 웅크리고 있었다.

“저건…… 화물 상자?”

미르카가 눈을 크게 떴다.

수문 안쪽에 갇혀 있던 것은 마수도 썩은 시체도 아니었다.

두꺼운 방수 피혁으로 세 겹이나 둘러싸인 거대한 삼중 철제 컨테이너였다. 수문 안쪽 쇠고리에 단단히 결속되어 있던 컨테이너의 모서리가 썰물에 흔들릴 때마다 수문 안쪽 철판을 긁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한결이 성큼성큼 격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발밑에서 찰랑이는 물을 헤치고 컨테이너 앞으로 다가선 한결은 방수 가죽 표면에 찍힌 거대한 낙인을 확인했다. 푸른색 잉크로 깊게 새겨진 문양.

그것은 항만조합의 표식이 아니었다. 서대륙 최대의 민간 상선 연합인 ‘서대륙 무역 상단 연합’의 정식 특급 직송 인장이었다.

그리고 그 인장 바로 옆 쇠사슬 매듭에는 붉은색 양피지 딱지 하나가 철사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화물 관리 번호: 특-0842]
[품목: 심해 마수 정제 골재 및 내열 합금 원자재]
[화주: 서대륙 무역 상단 연합 제3선단]
[조치 사항: 항만조합 검수국 지침에 따른 ‘입항 검수 보류’ 및 임시 격리 보관]

한결의 눈이 가늘어졌다.

‘입항 검수 보류.’

모든 의문이 완벽하게 풀리는 순간이었다.

조합은 단순한 침수 사고를 수습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상단 연합의 핵심 고가 화물이 실린 이 컨테이너를 제7방파제 격실에 가두고 고의로 수문을 막아 버렸다.

그 결과 해당 상단의 선박들은 외항에 닻을 내린 채 부두에 접안하지 못했고 기약 없는 대기 상태에 갇혔다.

배가 항구에 들어오지 못하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매 순간 선원 인건비, 용선료, 식량 소모, 화물 지연 배상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게 바로 삼백이십 골드였다.’

조합은 상단을 압박해 막대한 급행료를 뜯어내거나 시세를 조작하기 위해 고의로 하역을 지연시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지연 손실의 뒤처리를 위해 제7방파제를 폐쇄 구역으로 묶고 애꿎은 조수갈매기 파티에게 허위 접안료 백사십 골드를 덮어씌워 쫓아내려 한 것이다.

“아린 씨. 이 컨테이너 밖으로 꺼낼 수 있겠습니까?”

한결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린이 컨테이너 바닥에 묶인 사슬을 살피더니 혀를 찼다.

“사슬만 끊으면 밑에 바퀴가 달린 하역용 썰매 구조다. 끌어내는 건 일도 아니야. 그런데 한결 매니저. 이 바닥 좀 봐라.”

아린이 램프를 바닥 배수구 쪽으로 비추었다.

물이 완전히 빠져나간 배수구 격자 아래 깊은 틈새에서 기이한 푸른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결이 허리를 숙여 그 틈새를 들여다보았다.

창고 바닥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초 암반 한가운데에 보통의 건축 석재와는 전혀 다른 질감의 검푸른 쐐기돌이 박혀 있었다. 돌 표면에는 정교하고 기하학적인 마력 선이 새겨져 있었고 심장의 박동처럼 아주 미약하게 웅웅거리며 진동하고 있었다.

그 진동은 창고 바닥을 넘어 도시 중심부 방파제 깊은 축으로 아득하게 이어지는 듯했다.

‘이건 뭐지?’

단순한 배수 시설의 석재가 아니었다. 거대한 결계를 억누르고 있는 봉인 장치의 일부분 같은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순간 관자놀이가 찌릿하게 울렸지만 한결은 시선을 돌렸다. 지금 파고들어야 할 문제는 이 돌이 아니었다. 곧 닥쳐올 검수관 바란의 목을 죌 무기는 바로 눈앞의 컨테이너였다.

“사슬을 끊고 끌어냅니다. 만조가 오기 전에 방파제 위로 올려야 합니다.”

미르카가 손톱을 갈고리처럼 세워 쇠사슬 연결 고리를 꺾었다.

끼기긱― 툭!

사슬이 풀리자 세 사람이 달라붙어 썰매 컨테이너를 밀었다. 바퀴가 진흙 섞인 돌바닥을 구르며 통로 밖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끌어올려요!”

방파제 위에서 세아가 닻줄을 던지며 외쳤다.

미르카의 완력과 아린의 지렛대 조작 그리고 한결과 세아의 당김이 하나로 맞물렸다. 거대한 방수 컨테이너가 마침내 축축한 창고 통로를 빠져나와 제7방파제 석판 위로 쿵 소리를 내며 안착했다.

그와 동시에 먼바다 쪽에서 물결이 거세게 뒤척이기 시작했다.

철썩― 철써억!

물이 밀려오고 있었다. 만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물길을 가르며 날카로운 증기 엔진 소리가 안개를 찢고 울려 퍼졌다.

두두두두두―!

항만조합의 쾌속 순찰선이었다. 정오에 물러갔던 배가 약속이라도 한 듯 만조 시간에 맞추어 정확하게 제7방파제로 뱃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순찰선 갑판 위에는 감청색 정복을 입은 바란 검수관이 의장검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 오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는 쇠사슬과 곤봉을 든 여섯 명의 무장 경비병이 정렬해 있었고 잔뜩 겁에 질린 서기 페른의 모습도 보였다.

쿵!

순찰선이 계류장에 거칠게 접안하며 도교가 방파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란이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도교를 밟고 내려섰다.

“만조가 되었다. 류한결.”

바란은 품에서 붉은 직인이 찍힌 두꺼운 서류 한 뭉치를 꺼내 높이 들어 올렸다.

“소명 시간은 끝났다. 너희는 요구한 야간 접안료 백사십 골드를 납부하지 못했고 무단 점유 상태를 지속했다. 조합 총감부의 특별 권한으로 이 자리에서 조수갈매기 파티의 모험가 등록을 영구 말소한다.”

바란이 뒤를 돌아보며 경비병들에게 서슬 퍼런 목소리로 명령했다.

“저 불법 점유자들을 전원 결박해 하층 구치소로 압송해라! 방파제에 널린 모든 도구와 고철은 조합의 자산으로 즉시 몰수한다!”

무장 경비병들이 일제히 쇠몽둥이를 치켜들며 다가왔다.

세아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기록판을 가슴에 품었다. 미르카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한 걸음 나섰고 아린도 묵직한 쇠망치를 고쳐 쥐었다.

일촉즉발의 폭력이 터져 나오기 직전 한결이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칼도 망치도 들려 있지 않았다. 오직 몇 장의 양피지 서류와 갓 뜯어낸 붉은 봉인 핀만이 들려 있을 뿐이었다.

“물러서십시오.”

한결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하지만 방파제를 울리는 파도 소리를 뚫고 바란의 귀에 똑똑히 가닿을 만큼 단단하고 서늘했다.

“몰수를 집행하시기 전에 바란 검수관님께서 먼저 확인하셔야 할 서류가 있습니다.”

바란이 가소롭다는 듯 비웃음을 터뜨렸다.

“하급 매니저 놈이 아직도 잠꼬대를 하는군. 어떤 종이 쪼가리를 내밀든 총감부의 공식 처분서를 뒤집을 수는 없다!”

“이 서류는 제 서류가 아닙니다.”

한결이 성큼 걸어가 방파제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컨테이너의 방수포를 거칠게 걷어냈다.

펄럭!

두꺼운 가죽포가 벗겨지며 은빛으로 번쩍이는 삼중 철제 컨테이너와 그 위에 선명하게 찍힌 서대륙 무역 상단 연합의 직송 특급 인장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바란의 비웃음이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그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고 의장검을 쥐고 있던 손가락이 미세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저…… 저건……?!”

페른은 아예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도교 난간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어떻게…… 저게 왜 바깥에……”

한결은 컨테이너 모서리에 매달려 있던 붉은색 양피지 표식을 뜯어내 바란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화물 관리 번호 특-0842. 품목 마수 정제 골재 및 내열 합금 원자재. 화주 서대륙 무역 상단 연합.”

한결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방파제 위에 내려앉았다.

“이 화물은 침수 창고의 수문 안쪽 밀폐 격실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문 빗장에는 바란 검수관님 직속 검수국에서만 사용하는 이 공식 봉인 핀이 박혀 있었지요.”

한결이 손바닥 위에 올려둔 강철 핀을 바란에게 보였다.

“자연 침수가 아니었습니다. 당신들은 이 고가 화물을 틀어막아 상단 연합의 선박들이 항구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화물이 묶인 채 바다 위에서 허비된 시간이 무려 닷새.”

한결은 품에서 누락원가를 통해 확인했던 수치들이 적힌 계산서를 꺼내 들었다.

“선박 대기 비용 일백이십 골드. 선원 지연 수당 팔십 골드. 화물 계약 위반 배상금 일백이십 골드. 합계 삼백이십 골드.”

‘삼백이십 골드’라는 숫자가 튀어나온 순간 바란의 얼굴은 핏기가 완전히 가셔 하얗게 질려 버렸다.

경비병들도 술렁이며 걸음을 멈추었다. 상단 연합의 특급 화물을 고의로 억류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비리가 아니라 왕국 법률과 항만 조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중범죄였다.

한결이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쐐기를 박았다.

“당신은 이 삼백이십 골드에 달하는 막대한 하역 지연 손실의 책임을 은폐하고 상단 연합의 손해 배상 청구를 피하기 위해 제7방파제를 침수 사고 구역으로 위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손실의 일부를 메우기 위해 우리 조수갈매기 파티에게 있지도 않은 허위 야간 접안료 백사십 골드를 청구했지요.”

“이…… 이놈이 유언비어를……!”

바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그의 눈동자는 이미 사방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유언비어인지 아닌지는 상단 연합회와 시청 감사관실이 판단할 겁니다.”

한결이 세아가 들고 있는 두툼한 기록판을 가리켰다.

“저희는 오늘 오전 열 시 삼십 분부터 이 현장의 모든 수위 변화 수문 봉인 해제 과정 그리고 인양된 화물의 일련번호까지 조합 서기 페른 님의 입회하에 분 단위로 기록했습니다. 사본 세 부는 이미 방파제를 빠져나간 신뢰할 만한 인편을 통해 상단 연합회 본부와 시청 감사관실로 보내도록 조치해 두었습니다.”

물론 인편 발송은 바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위한 한결의 노련한 블러핑이었다. 하지만 방파제 위에 실제로 놓여 있는 상단의 특급 화물과 페른의 자필 서명이 박힌 실측 기록판을 본 바란에게는 그것이 완벽한 기정사실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무력을 써서 조수갈매기 파티를 입막음하려 든다면 상단 연합 전체가 들고일어나 바란의 목을 매달 것이다. 320골드의 손실을 입은 상단 연합의 분노는 일개 검수관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바란의 이마에서 굵은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바란 검수관님.”

한결이 차분하게 손을 내밀었다.

“선택하십시오.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를 체포하고 상단 연합의 특급 화물을 고의로 억류해 삼백이십 골드의 하역 지연 손실을 초래한 주범으로 감사관실의 조사를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조수갈매기 파티에 대한 허위 접안료 청구와 등록 말소 처분을 즉시 철회하시겠습니까?”

침묵이 방파제를 무겁게 짓눌렀다.

바란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득득 울려 퍼졌다. 눈앞의 애송이 매니저는 단순한 서류철이나 뒤적이는 월급쟁이가 아니었다. 항만의 돈줄과 법률의 빈틈을 완벽하게 쥐고 흔드는 무서운 실무자였다.

마침내 바란이 떨리는 손으로 들고 있던 처분서를 갈기갈기 찢어 바다로 내던졌다.

펄럭이며 흩어지는 종이 조각 위로 바란의 짓이겨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접안료 부과는 행정 착오였다. 파티 등록 말소 처분도…… 취소한다.”

“현장 확인서의 부과 취소란에 서명해 주십시오.”

세아가 차갑게 기록판을 내밀었다.

바란은 굴욕감에 입술을 깨물며 떨리는 손으로 펜을 쥐고 서명했다. 펜촉이 종이를 찢을 듯 사납게 그어졌다.

서명을 마친 바란은 펜을 내팽개치듯 돌려주며 한결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류한결. 오늘 일은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다. 네놈이 건드린 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 날 네놈은 살려 달라고 울부짖게 될 테니까.”

“그건 제가 걱정할 일입니다. 가십시오.”

한결이 담담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바란은 침을 뱉듯 돌아서서 순찰선으로 뛰어 올라갔다.

“출항해! 당장 배를 돌려!”

경비병들과 페른이 쫓기듯 배에 올라타자 순찰선은 요란한 엔진음을 내뿜으며 도망치듯 방파제에서 멀어져 갔다.

검은 연기가 걷히고 방파제 위에는 오직 밀려오는 파도 소리만이 가득 찼다.

“와아……!”

세아가 마침내 긴장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겼어요…… 정말로 해냈어요!”

아린이 망치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확대경 너머 눈가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크하하! 속이 다 뚫리는군! 그 오만방자하던 바란 놈의 낯짝이 허얗게 질려 도망치는 꼴이라니! 백사십 골드를 뜯어내려던 놈이 지 발로 서류를 찢고 튀었어!”

미르카는 품에 팔짱을 낀 채 한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청록빛 눈동자에는 더 이상 이전의 의심이나 불신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칼 한 자루 쥐지 않고 장부와 말 몇 마디로 거대한 권력을 무릎 꿇린 이 기묘한 매니저에 대한 경이로움과 묵직한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류한결.”

미르카가 낮게 입을 열었다.

“너…… 진짜 대단한 녀석이네. 장사꾼도 아니고 기사도 아닌 놈이 어떻게 그렇게 배짱이 두둑해?”

“배짱이 아닙니다.”

한결이 이마의 땀을 훔쳐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책임져야 할 자가 책임을 피하려 할 때 숫자는 가장 무서운 무기가 됩니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외면했던 진짜 비용을 보여 주었을 뿐입니다.”

한결은 방파제 바닥에 놓인 상단의 컨테이너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아까 창고 깊은 바닥에서 보았던 푸른빛 쐐기돌의 진동을 떠올렸다.

140골드의 허위 청구는 막아냈다.

하지만 창고를 고의로 침수시키면서까지 이 거대한 화물을 묶어두려 했던 배후의 진짜 목적 그리고 120골드의 사고 종결 협조비를 뿌리며 도시 밑바닥의 봉인을 건드리고 있는 자들의 정체는 아직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바닷물이 방파제 턱을 완전히 집어삼키며 하얗게 부서져 내렸다.

파티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것은 네리아의 거대한 경제와 권력이 감춰 둔 진짜 장부를 열기 위한 첫 번째 장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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