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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상담 간 천마님이 유통망을 독점함15화

학부모 상담 간 천마님이 유통망을 독점함

학부모 상담 간 천마님이 유통망을 독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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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골목을 잇는 상생의 다리

새벽안개가 걷히기 전부터 낙도 만물상 앞 공터는 거친 숨소리와 엔진 열기로 달아올랐다.

푸른색 방수포를 걷어 올린 3.5톤 통합 화물차가 골목 입구에 멈춰 섰다. 차체 옆면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흰색 글씨가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천마 플랫폼 산지 직송 상생 물류]

운전석에서 뛰어내린 기사가 송장 묶음을 들고 현을 향해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대표님, 경기 북부 파주에서 실은 월동무와 절임 배추 마흔 상자, 서해안 안면도 포구에서 직송한 멸치와 다시마 스무 짝, 인천 공장에서 갓 출고한 친환경 포장 용기 오천 개 전량 도착했습니다. 도로 결빙 없이 정시 하역입니다."

트럭 적재함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겨울 공기 사이로 흙내음과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한데 뒤섞여 쏟아져 나왔다.

어제까지 도매상의 일방적인 납품 거부 통보에 발을 동동 구르던 반찬가게 이복자가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그녀는 얼어붙은 손으로 무 한 포기를 집어 들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머나, 세상에……! 무청에 아직 서리가 내려앉은 채로 왔네. 겉껍질이 이렇게 단단하고 매끄러울 수가 없어. 도매상 놈들이 쥐여 주던 바람 든 무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건어물점 오한석도 상자 틈으로 손을 넣어 말린 멸치를 한 줌 쥐어 올렸다. 은빛 비늘이 깨끗하게 살아 있고 비린내 대신 구수한 향이 확 풍겼다.

"이건 진짜 갓 말린 최상급입니다. 포구에서 바로 싣지 않으면 서울 바닥에서는 구경도 못 할 물건이에요. 게다가 포장재까지 제때 맞춰 오다니……."

현은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장부 수첩을 넘겼다.

"물건의 숨이 살아 있을 때 다뤄야 상인의 도리도 사는 법이다. 두식아, 태식아. 멍하니 서 있지 말고 하역을 도와라. 상자마다 적힌 입점 상호와 수량을 삼분대조로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상한 것이 있으면 즉시 빼내어 별도 기록해라."

"예, 대표님! 다들 들었지? 허리 꼿꼿이 펴고 상자 조심해서 날라!"

최두식의 호통에 조태식과 광풍상사 출신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F급 던전에서 거친 짐짝을 나르던 완력 좋은 사내들이 달라붙자 수십 상자의 식자재가 순식간에 만물상 앞마당에 열을 맞추어 정돈되었다.

김철수가 태블릿 화면을 두드리며 상인들 곁으로 다가왔다.

"사장님들, 최종 정산서 확인해 보세요. 경기 북부 농가와 서해안 선단에서 중간 유통상 세 단계를 건너뛰고 플랫폼 직통망으로 묶었습니다. 운송비는 저희 천마 플랫폼이 40%를 지원하고 나머지 60%를 발주 수량에 맞춰 나눴거든요. 기존 골드 크레센트 위장 도매상들이 넘기던 공급가보다 평균 22% 저렴합니다."

"이십이 퍼센트나?!"

이복자가 입을 틀어막았다.

"거기다 물건은 훨씬 싱싱한데 가격까지 내려갔다고요? 그럼 우리가 반찬값을 올리지 않아도 마진이 남는다는 거잖아요!"

"그렇습니다. 남는 마진으로 음식 양을 넉넉히 채우고 손님들에게 정직한 가격으로 돌려주시면 됩니다. 신용은 장부의 숫자가 아니라 손님의 밥상 위에서 증명되는 것이니까요."

현의 담담한 말에 상인들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때 만물상 문이 삐걱 열리며 책가방을 멘 하은이가 종종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아이의 양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삼촌! 팥 들어간 찐빵 사 왔어. 이복자 할머니랑 오한석 아저씨도 손 시려우니까 이거 드세요."

하은이가 하얀 입김을 뿜으며 상인들에게 따끈한 찐빵을 하나씩 건넸다. 아이의 작은 손끝에 닿은 온기에 어른들의 굳었던 얼굴이 봄눈 녹듯 풀렸다.

"아이고, 우리 하은이가 어쩜 이렇게 마음씨가 고울까."

이복자가 찐빵을 받아 들며 코를 훌쩍였다. 하은이는 현의 옷자락을 쥐며 방긋 웃었다.

"삼촌, 오늘은 진짜 장터 같아! 마당에 좋은 냄새도 엄청 많이 나고 아저씨들도 안 싸우고 일 잘하네!"

현은 하은이의 털모자를 다정하게 바로잡아 주었다.

"상인의 땀이 배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나는 법이란다. 어서 학교에 가거라. 늦지 않게 조심히 걷고."

"응! 다녀오겠습니다!"

하은이가 손을 흔들며 골목을 달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현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조카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그의 눈빛은 다시 냉철한 상단의 총관처럼 가라앉았다.

"철수야. 물건이 들어왔으니 이제 문을 열 차례다."

"준비 끝났습니다, 대표님."

철수가 자판의 엔터 키를 힘차게 내리쳤다.


오전 열 시가 넘어서자 낙도 만물상 내부의 관제 모니터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딩동. 딩동.

[천마 플랫폼: '낙도구 자영업 상인 상생 무료 배송' 코너 오픈]

화면에는 이복자의 반찬가게에서 등록한 즉석 무생채와 겉절이, 오한석의 건어물 국물용 멸치 세트, 골목 빵집의 갓 구운 단팥빵과 과일가게의 제철 귤 상자가 실시간으로 올라와 있었다.

모든 상품에는 [산지 직송 상생 인증] 마크와 함께 [배송비 0원 / 최소 주문 금액 없음]이라는 굵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대표님, 주문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반찬가게 첫 발주 스무 건 돌파했어요!"

철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처음에는 동네 주민 대여섯 명이 반신반의하며 넣은 주문이었다. 하지만 최두식과 배달원들이 보온 가방에 신선한 음식을 담아 주문 접수 20분 만에 골목 구석구석으로 배달을 완료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낙도구 지역 맘카페와 생활 커뮤니티 게시판에 순식간에 후기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 [낙도맘3] "방금 천마 플랫폼 상생 배송으로 이복자네 겉절이랑 무생채 받았는데 미쳤어요…… 무가 달달하고 아삭아삭해요! 배달비도 안 받는데 15분 만에 왔음."
  • [달콤한하루] "요즘 물가 올라서 반찬 사 먹기 겁났는데 양도 엄청 푸짐해요. 골드 크레센트 마트보다 채소가 두 배는 신선하네요."
  • [하늘바람] "듣자 하니 대기업 길드가 동네 가게들 납품 끊어서 쫓아내려 했다던데 상인들이 직접 산지에서 떼어 온 거래요. 이런 착한 가게는 돈쭐을 내줘야 합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백도윤의 모친 송민경과 길드 추종자들이 퍼뜨렸던 악성 소문들이 단숨에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만물상과 엮이면 불량품을 받는다"거나 "아이들에게 해가 된다"는 식의 근거 없는 음해 글 밑에는 성난 주민들의 반박 댓글이 줄을 이었다.

  • [댓글]: "직접 사 먹어보고 그런 소리 하세요? 오늘 아침에 받은 멸치랑 채소 보니까 품질 최고구만."
  • [댓글]: "골드 키즈 체험권인지 뭔지 그거 가지고 유세 떨 때부터 알아봤다. 우리 동네 가게들 건드리지 마라!"

여론이 완전히 뒤집히자 음해 글을 올렸던 계정들은 슬그머니 글을 삭제하고 자취를 감췄다.

철수가 통계 그래프를 띄우며 감탄을 연발했다.

"낙도구 관내 앱 활성 이용자 수 천오백 명 돌파했습니다! 상생 배송 탭 재주문 의사 비율이 무려 88%예요. 상인분들 가게마다 주문서가 밀려들어서 포장할 손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때 플랫폼 특수 주문 창에 알림이 하나 더 떴다.

주문 내역은 예비반 교실로 보내는 겨울 사과와 귤 두 바구니였다. 주문자 명의는 '강서윤'이었다.

배송 요청 사항 란에는 짧고 정갈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하은이가 교실에서 언제나 씩씩하게 웃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살피겠습니다. 상인분들과 대표님의 정직한 걸음을 응원합니다. - 담임 강서윤]

현은 화면 속 문장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무림에서 강대한 적을 무너뜨리는 것은 날카로운 검술이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언제나 한 조각의 진심과 신의였다. 거대 길드가 돈과 권력으로 쳐 놓은 장벽에 진정한 상생의 균열이 가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낙도 만물상 골목은 하루의 치열한 배달을 끝마친 온기로 가득했다.

이복자는 빈 반찬통을 닦으며 연신 웃음을 터뜨렸고 오한석은 건어물 매대 앞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최두식과 배달원들도 땀에 젖은 점퍼를 털며 만물상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따뜻한 차를 들이켰다.

"대표님, 오늘 낙도구 골목길이란 골목길은 다 쑤시고 다녔습니다. 주민들이 문 열어줄 때마다 수고한다고 음료수 캔 하나씩 쥐여 주는데 가슴이 다 뭉클하더라고요."

최두식이 뿌듯한 얼굴로 캔커피를 들어 보였다.

하지만 평상 한구석에 서 있던 조태식의 표정은 어딘가 무겁게 굳어 있었다. 그는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저……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조태식을 응시했다.

"무슨 일이냐?"

조태식이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오늘 오후 늦게 낙도구 동쪽 외곽인 3년 전 폐쇄된 F급 던전 터 쪽으로 배달을 갔었습니다. 원래 거기는 인적이 완전히 끊긴 폐허인데 낯선 차들이 들락거리는 걸 봤습니다."

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차량의 생김새는 어떠했느냐?"

"일반 화물차가 아니었습니다. 창문마다 새까맣게 방폭 썬팅이 되어 있고 바퀴 축이 무겁게 가라앉은 특수 개조 밴 세 대였습니다. 차체 귀퉁이에 골드 크레센트 물류 경비대 표식이 붙어 있더군요."

철수가 키보드를 두드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네요. 공공 던전 관리청 전산에는 그 폐쇄 던전 부근으로 인가된 화물 배차 기록이 전혀 없는데요? 오늘 골드 크레센트 공식 물류망은 저희 상생 배송 때문에 배차의 절반이 취소된 상태입니다."

"공식 배차가 아니니까 숨어서 움직이는 것이겠지."

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동쪽 하늘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스름이 깔린 겨울 저녁의 차가운 바람을 타고 현의 단전에서 한 줄기 무형의 진기가 뻗어 나갔다. 무림 최고의 감지 무학인 '만물감응(萬物感應)'이었다.

보이지 않는 진기의 파동이 낙도구의 지붕들을 스치고 지나 동쪽 외곽의 음산한 폐허 골짜기로 가닿았다.

순간 현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일반적인 하급 고블린이나 슬라임 따위의 미약한 마력이 아니었다. 찌르는 듯이 날카롭고 부패한 피비린내를 품은 특이한 음기. 규격 외의 변이 던전에서나 흘러나올 법한 짙은 마물의 잔향이 특수 밴의 궤적을 따라 길게 묻어나고 있었다.

'골드 크레센트 놈들이 일반 유통망에서 발이 묶이고 세무 압박을 받자 엉뚱한 구멍을 파기 시작했구나.'

정상적인 경로로는 비자금을 메울 길이 없어진 자들이 규찰을 피해 미등록 던전의 위험한 희귀 부산물을 밤중에 밀수출하려는 냄새였다.

현이 뒤를 돌아보자 조태식과 최두식이 긴장한 눈으로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식아. 네가 본 차량의 이동 시간과 진입로를 장부에 정확히 기록해 두어라."

"예, 대표님! 확실하게 적어 두겠습니다."

현은 코트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하은이가 아침에 건네주었던 딸기맛 사탕이 손끝에 닿았다.

"철수야. 내일부터 우리 플랫폼 배달원들의 단말기 경로에 외곽 순찰 동선을 자연스럽게 겹쳐 놓아라. 상인들의 물건을 나르는 발걸음이 곧 이 골목을 지키는 눈이 될 것이다."

"네! 배달 동선 알고리즘에 거점 감시 포인트를 바로 추가하겠습니다."

골목을 가득 메운 상생의 온기 뒤편으로 새로운 암운이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골목의 주민들과 상인들은 천마의 손을 잡았고 촘촘하게 엮인 배송망은 거대한 정보의 그물이 되어 적들의 비밀스러운 길목을 조용히 조여 가고 있었다.

현의 서늘한 눈빛이 짙어지는 어둠 속을 꿰뚫었다.

그 누구도 아이들이 웃고 상인들이 땀 흘리는 이 장터를 더럽힐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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