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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프로게이머가 너무 강함4화

회귀한 프로게이머가 너무 강함

회귀한 프로게이머가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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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악덕 프런트의 그림자

연습실 복도는 낮게 깔린 형광등 불빛 아래 서늘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그 적막을 깨고 복도 끝 구단 사무실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날카롭고 거칠었다.

“이건 재계약이 아니라 강제 처분입니다, 국장님!”

신임 매니저 윤성호의 목소리였다. 평소 냉철하고 침착하던 그의 음성이 거친 호흡과 함께 얇은 문틈을 비집고 복도 전체로 울려 퍼졌다.

“도현이는 지난 스프링 시즌 내내 팀의 소년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성적이 흔들렸던 건 팀 전체의 합이 맞지 않아서였지 도현이 개인의 실력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서머 개막을 코앞에 두고 연봉을 절반으로 깎고 3년 장기 계약으로 묶겠다니요? 이게 구단이 간판선수한테 할 짓입니까?”

강도현은 걸음을 멈추고 반쯤 열린 사무실 문가에 섰다.

문틈 사이로 안경을 치켜올리며 거만한 표정으로 가죽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은 중년 남자가 보였다. 블레이즈의 선수 계약과 예산을 총괄하는 실세, 사무국장 고진태였다.

고진태는 책상 위에 놓인 종이 뭉치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코웃음을 쳤다.

“윤 매니저, 아직 현장 물을 덜 먹어서 순진한 소리를 하는군. 프로는 실력과 성적으로 말하는 바닥이야. 지금 커뮤니티랑 업계에 도현이 손목 나갔다는 소문이 쫙 퍼졌어. 당장 타 팀 스카우트들도 도현이 이름만 나오면 고개부터 젓는 판국인데 연봉 보전이 가당키나 해?”

“그 뜬소문은 구단 내부에서 먼저 흘러나간 것 아닙니까!”

윤성호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선수가 조금만 뻐근하다고 해도 쉬게 해주기는커녕 온갖 무리한 행사와 촬영에 밀어 넣었던 게 프런트입니다. 정밀 검진 한 번 제대로 지원해 준 적 없으면서 이제 와서 부상설을 핑계로 헐값에 묶어 두려는 속셈을 모를 줄 아십니까?”

“말조심해, 윤 매니저!”

고진태의 얼굴이 붉으락푸락해지며 책상을 쾅 내리쳤다.

“구단이 자선 사업하는 곳이야? 손목이 나갈지 안 나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놈을 끌어안고 가는 것만으로도 구단은 은혜를 베푸는 거야. 서명 안 하면? 좋아. 이번 서머 시즌 내내 엔트리에서 빼버리고 벤치에 썩히면 그만이야. 경기 못 뛰고 1년 지나면 어떤 놈이 얘를 찾아? 선수 인생 그대로 끝장나는 거지.”

선수를 선수가 아니라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자 노예로 취급하는 태도.

문 밖에 서 있는 도현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전생의 기억이 서늘하게 떠올랐다.

회귀 전, 손목 통증이 서서히 시작되던 무렵 구단은 치료를 미루게 하고 진통제를 권하며 억지로 경기에 내보냈다. 그러다 기량이 떨어지자 똑같은 수법으로 도현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위약벌 조항이 가득 찬 노예 계약서를 들이밀며 벤치행을 협박했고 도현은 불안감에 쫓겨 도장을 찍었다.

그 계약서의 족쇄에 묶여 치료 시기를 완전히 놓쳤고 결국 돌아온 것은 처참한 은퇴뿐이었다.

‘그때는 어렸고 겁이 나서 끌려다녔지.’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무력한 소년이 아니었다.

도현은 손에 쥔 서류 봉투를 가볍게 쥐고 망설임 없이 사무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두 남자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로 쏠렸다.

윤성호는 문 앞에 선 도현을 보고 흠칫 놀라며 숨을 삼켰다.

“도, 도현아……?”

반면 고진태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뻔뻔한 미소를 입꼬리에 걸치며 헛기침을 했다.

“어, 도현이 왔구나. 밖에서 다 들었지? 안 그래도 윤 매니저랑 네 미래를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참이었다.”

고진태는 책상 모서리에 놓여 있던 두툼한 서류철을 도현의 쪽으로 쓱 밀어놓았다.

“마침 잘 왔다. 이게 이번에 구단에서 특별히 준비한 3년 갱신 계약서야. 네 손목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걸 알면서도 구단주님을 설득해서 겨우 만들어낸 특별 대우지. 얼른 읽어보고 여기 맨 뒷장에 사인해라.”

도현은 아무런 말 없이 성큼성큼 걸어가 책상 앞에 섰다.

윤성호가 다급하게 도현의 팔을 붙잡으려 했다.

“도현아, 보지 마라. 이 계약은 말도 안 되는 노예 계약이야. 내가 구단주님 직접 만나서 담판 지을 테니까 너는 사인하지 마.”

“괜찮습니다, 매니저님.”

도현은 건조한 목소리로 윤성호를 안심시키며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종이를 넘기는 도현의 손길은 막힘이 없었다. 수십 장에 달하는 복잡한 계약서였지만 도현의 눈은 정확하게 구단의 악랄한 꼼수가 숨겨진 조항들만을 골라 읽어 내려갔다.

“제4조 2항. 선수가 질병이나 부상으로 공식 경기 출전이 불가능하다고 구단이 판단할 경우 해당 기간의 기본급을 전액 삭감하며 구단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권리를 가진다.”

도현이 낭독하듯 읊조리자 고진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제7조 4항. 계약 기간 내 국내외 타 구단과의 이적 협상은 구단의 사전 서면 승인 없이는 일체 불가하며 무단 접촉 시 총연봉의 5배에 달하는 위약벌을 부과한다. 단 구단이 추진하는 일방적 트레이드에 대해서는 선수가 무조건 동의해야 한다.”

책장을 탁 덮은 도현이 고진태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연봉은 지난 시즌 대비 50퍼센트 삭감. 거기에 손목 부상으로 한 세트라도 결장하면 구단 마음대로 자를 수 있고 헐값에 다른 팀으로 팔아넘겨도 선수는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조건이네요.”

고진태는 도현이 계약서의 핵심 독소 조항을 단 몇 초 만에 정확히 짚어내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고진태는 곧바로 특유의 능글맞은 태도로 표정을 바꾸었다.

“도현아, 단어 하나하나에 너무 예민하게 굴 거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구단 차원의 형식적인 안전장치일 뿐이야. 네가 손목 관리 잘해서 경기만 잘 뛰면 아무 문제 없는 조항들이라고. 솔직히 지금 네 폼으로 이적 시장 나가면 불러주는 팀이나 있을 것 같아? 구단이 널 버리지 않고 품어줄 때 감사히 여겨야지.”

“감사라.”

도현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번졌다.

“제 손목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걸 전제로 깔아둔 계약서인데 왜 제가 감사해야 합니까?”

“뭐? 야, 강도현. 너 지금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네가 손목 아프다고 징징대던 게 엊그제야. 스크림에서도 폼 떨어져서 빌빌대던 놈을 구단이 3년이나 보장해 주겠다는데 어디서 건방지게 따져?”

고진태의 목소리에 다시 으름장이 섞여 들었다.

“좋은 말로 할 때 사인해. 개막 로스터 등록 마감이 내일모레야. 여기에 도장 안 찍으면 넌 이번 서머 시즌 내내 연습실 구석에서 모니터만 바라보게 될 테니까.”

협박과 회유. 전생에서 수없이 보았던 프런트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도현은 품 안에서 흰색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고진태의 책상 한가운데로 거칠게 던졌다.

탁!

묵직한 소리와 함께 봉투가 고진태의 찻잔 옆에 멈춰 섰다.

고진태가 흠칫 놀라며 눈을 부라렸다.

“이게 뭐야?”

“직접 열어서 확인해 보시죠. 구단 협력 병원에서 1시간 전에 발급받은 정밀 진단서입니다.”

고진태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봉투를 뜯었다. 안에서 나온 세 장짜리 진단서와 소견서를 훑어내려 가던 고진태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졌다.

[ 신경 전도 검사: 정중신경 전달 속도 상위 0.01% (정상 범주 초과) ]
[ 초음파 및 엑스레이 판독: 수근관 내부 공간 양호, 인대 염증 및 부종 소견 전무 ]
[ 종합 소견: 관절 및 신경 상태 완벽. 프로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의학적 결함 전혀 없음 ]

“이…… 이게 뭐야?”

고진태의 목소리가 떨렸다.

“협력 병원 전담 주치의 원장님의 직인이 찍힌 정식 소견서입니다.”

도현은 팔짱을 끼며 서늘한 눈빛으로 고진태를 내려다보았다.

“제 손목은 아프지도 않고 염증도 없으며 오히려 리그 어떤 선수보다 건강합니다. 그런데 국장님은 무슨 근거로 제 손목이 시한폭탄이라며 연봉을 반토막 내고 노예 계약을 들이미시는 겁니까?”

“그, 그건……!”

고진태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더듬었다.

옆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윤성호 매니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윤성호는 책상 위의 소견서를 집어 들고 떨리는 손으로 문구를 확인했다. 그의 얼굴에 걷잡을 수 없는 경이로움과 안도감이 차올랐다.

“완전 정상…… 아니, 손목 상태가 일반인보다 훨씬 건강하잖아?”

윤성호의 탄성에 고진태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들이 도현을 찍어 누르기 위해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 손목 부상설이라는 명분이 단 한 장의 공인 진단서 앞에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도현의 반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League 프로 표준 계약 규정 제14조 3항.”

도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법률 조항에 고진태의 어깨가 덜컥 굳었다.

“구단이 선수의 신체적 상태에 대해 객관적인 의학적 근거 없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이를 빌미로 불리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는 경우 선수는 즉시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으며 협회 공정위원회는 구단에 영업 정지 및 제재금을 부과할 수 있다. 알고 계십니까? 국장님.”

“너……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고진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어린 게이머가 알 리 없는 협회 규정집의 세부 조약이었다. 그것도 최근에 개정되어 구단 법무팀이나 사무국장급이 아니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내용이었다.

전생의 도현은 부상으로 은퇴한 뒤 홀로 법적 소송을 준비하며 이 규정집을 수천 번도 넘게 닳도록 읽었었다. 그 모든 기억이 뇌리에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도현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그림자가 고진태의 책상 위를 짙게 드리웠다.

“국장님이 저한테 이런 불공정 계약을 억지로 들이미시는 이유,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도현은 목소리를 낮추며 차갑게 속삭였다.

“지난달부터 외부 에이전시랑 손잡고 저를 헐값에 묶은 다음 다른 중위권 팀으로 트레이드해서 뒷돈 챙기려던 계획 말입니다.”

순간 고진태의 숨이 턱 멎었다.

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어떻게 알았지? 비밀 장부랑 에이전시 미팅은 극소수만 아는 일인데!’

고진태의 등줄기로 차가운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전생에서 고진태가 횡령과 선수 불법 뒷거래로 처벌받았을 때 밝혀졌던 결정적 비리였다. 도현은 지금 시점에서 그들이 막 작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도현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지금 당장 이 계약서 사본과 병원 소견서, 그리고 국장님이 에이전시와 나눈 통화 내역 제보를 협회 공정위원회와 언론사에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너, 너 임마……!”

“내일 아침 스포츠 뉴스 1면에 ‘블레이즈 프런트, 에이스 선수 부상 날조 및 노예 계약 강요 의혹’으로 대문짝만하게 실리겠네요. 구단주님이 과연 국장님 자리를 지켜주실까요?”

고진태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도현의 형형한 눈빛과 마주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완벽한 패배였다.

도현이 쥔 패는 너무나 명확했고 법적·도덕적 명분은 100퍼센트 도현에게 있었다. 여기서 일을 키웠다가는 단순한 재계약 실패로 끝나지 않고 자신의 밥줄과 구단 내 입지 자체가 날아갈 판이었다.

“……자, 잠깐만. 도현아. 오해야.”

고진태의 목소리가 비굴하게 기어들어 갔다.

“내가 네 손목 상태를 정확히 몰라서…… 그래, 네 미래를 걱정하다 보니까 실무진에서 과하게 계약서를 작성한 모양이다. 서명하지 마. 이번 계약 건은 없던 걸로 해.”

고진태는 떨리는 손으로 책상 위의 계약서철을 허겁지겁 끌어당겨 서랍 속에 처박았다.

도현은 그 꼴을 경멸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며 차갑게 선언했다.

“이번 서머 시즌은 기존 계약대로 진행합니다. 연봉 삭감도 불공정 옵션도 없습니다.”

“그,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한 가지 더.”

도현은 옆에 서 있던 윤성호 매니저를 가리켰다.

“앞으로 제 출전 엔트리와 스크림 일정, 팀 훈련에 관한 모든 권한은 윤성호 매니저님께 일임해 주십시오. 국장님이 경기 외적인 일로 연습실에 간섭하거나 흔드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어야 할 겁니다.”

고진태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알았다…… 윤 매니저가 전담하도록 하지.”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도현은 조금의 미련도 없이 뒤를 돌아 사무실 문을 나섰다.

윤성호 매니저는 넋이 나간 고진태를 쏘아본 뒤 서둘러 도현의 뒤를 따라 나왔다.

탕.

사무실 문이 닫히며 무겁던 긴장감이 복도로 빠져나왔다.

복도 끝 창문으로 붉은 노을빛이 길게 비쳐 들고 있었다.

윤성호는 빠른 걸음으로 도현의 옆에 나란히 서며 도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방금 전까지 사무실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도무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스물한 살의 어린 선수가 구단의 노련한 사무국장을 상대로 법률 규정을 들이밀며 완벽하게 기를 꺾어놓았다. 그 냉철함과 담대함은 웬만한 베테랑 선수나 프런트 베테랑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압도적인 기백이었다.

“도현아.”

윤성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 정말 괜찮은 거냐?”

도현은 걸음을 멈추고 윤성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고진태를 상대할 때의 서늘함과는 달리 한결 차분하고 부드러워져 있었다.

“손목 말씀이십니까? 보셨다시피 완전히 멀쩡합니다. 오늘 연습실에서 팀원들이랑 피지컬 측정도 하고 1대 1도 해봤는데 전성기 때보다 반응이 더 좋습니다.”

“아니, 손목뿐만 아니라…… 방금 네가 보여준 모습 말이다.”

윤성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았다.

“협회 규정집부터 국장의 뒷거래 정황까지 대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었던 거냐? 네가 그런 법적인 지식까지 파고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도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전생에 당신이 저를 위해 혼자 싸우다 잘려 나간 뒤에야 뒤늦게 피눈물을 흘리며 배웠던 것들이니까요.’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도현은 대신 어깨를 가볍게 으쓱해 보였다.

“프로게이머도 자기 권리는 자기가 챙겨야 하니까요. 혼자 인터넷 찾아보고 규정집 읽어봤을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니저님이 사무실에서 저를 위해 화내주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윤성호의 손이 멈칫했다.

도현은 똑바로 윤성호의 눈을 마주 보았다.

“팀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선수를 방패막이 삼지 않는 어른은 매니저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물러서지 않고 제 가치를 증명한 겁니다.”

윤성호의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저려왔다.

무력한 프런트 권력 앞에서 선수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늘 시달려왔던 그였다. 하지만 눈앞의 소년은 지켜주어야 할 연약한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너져가던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는 든든한 거목처럼 서 있었다.

윤성호는 닦아낸 안경을 다시 고쳐 쓰며 입가에 단단한 결의를 담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선수가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을 증명했는데 내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

윤성호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며 눈빛을 번뜩였다.

“국장 놈의 입은 막아뒀으니 이제 우리 차례다. 서머 개막까지 남은 시간 동안 팀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해. 당장 내일부터 상위권 팀들과의 스크림 일정을 잡겠다. 네가 원하는 대로, 네가 지휘하는 대로 판을 깔아주마.”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단단하게 맞물렸다.

악덕 프런트의 그림자를 걷어낸 자리에, 팀 블레이즈를 새롭게 재건할 두 사람의 확고한 연대가 닻을 올렸다.

도현은 연습실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오른손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손끝에 감도는 힘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제 모든 방해물은 치워졌다. 남은 것은 오직 경기장 위에서 자신의 완벽한 강함을 증명하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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