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신의 손을 가진 외과의가 수술을 너무 잘함7화

신의 손을 가진 외과의가 수술을 너무 잘함

신의 손을 가진 외과의가 수술을 너무 잘함

AD
스폰서 광고

7화: 불가능한 암 절제

스테이션의 공기는 아침 햇살이 비쳐 드는 창문가와 달리 차가웠다.

강혁의 시선은 최민석이 내려놓은 차트의 CT 판독지에 멎어 있었다.

[환자명: 김성환 (남, 67세)]
[진단: 간세포암 4기 (Hepatocellular Carcinoma, Stage IV)]
[특이사항: 거대 종괴(14.8cm). 간문맥 주간부 및 하대정맥 광범위 압박 및 침범 의심. 본원 간담췌외과 수술 불가(Unresectable) 판정.]

흑백 영상 속에서 환자의 오른쪽 간은 정상 조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어둠 속을 비집고 자란 거대한 종양이 간으로 들어가는 대혈관인 문맥을 짓누르고 심장으로 향하는 하대정맥까지 뱀처럼 칭칭 감고 있었다.

“본원 간담췌 주임교수님이 직접 보셨답니다.”

최민석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칼을 대는 순간 하대정맥이 파열되어 테이블 위에서 즉사할 확률이 90%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손댈 수 없으니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권유했는데 환자 딸이 포기하지 못하고 오늘 아침 우리 응급실로 모시고 왔습니다.”

“환자분 지금 어디 계십니까?”

강혁의 물음에 윤수아가 차트 옆의 혈액 검사 수치를 가리켰다.

“외래 격리 병상에 계세요. 혈청 빌리루빈 수치가 급상승 중이고 복수도 차기 시작했습니다. 종양이 담관과 혈관을 동시에 틀어막아서 황달이 심각합니다.”

강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스테이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백강혁!”

과장실에서 물러났던 한성호 과장이었다.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온 그는 최민석의 손에 들린 차트를 홱 낚아챘다.

“방금 응급실 접수대에서 들었다. 본원에서 수술 포기하고 호스피스 권고받은 간암 말기 환자가 왜 여기 외과 병상에 올라와 있어?”

“환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내원했습니다. 정밀 진찰이 필요합니다.”

“필요는 무슨 얼어 죽을 필요!”

한성호가 차트 철을 데스크 위로 내동댕이쳤다.

“본원 간담췌 최고 권위자인 박 교수가 손을 뗐어. 그 박 교수가 수술 불가 도장을 찍은 환자란 말이다! 그런데 지방 분원인 성모병원에서 그 환자를 받아서 수술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한성호의 기름진 턱이 분노로 잘게 떨렸다.

“가슴 열고 배 짼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또 날뛰어? 이 환자가 수술대 위에서 피를 뿜고 죽으면 그 책임은 누가 져? 본원에서는 ‘분원 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덤비다 사람 잡았다’고 손가락질할 테고 우리 외과 평가 점수는 바닥으로 처박혀! 당장 전원 취소하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돌려보내.”

강혁은 흩어진 차트를 차분하게 한 장씩 정리해 모았다. 그의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과장님.”

“뭐야, 또 말대답하려고?”

“본원에서 수술을 포기했다고 환자의 심장이 멈춘 것은 아닙니다.”

강혁의 서늘한 음성이 스테이션 안을 가득 메웠다.

“의사가 칼을 놓으면 저 환자에게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일주일입니다. 종양이 문맥을 완전히 틀어막아 간부전으로 사망할 겁니다.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배를 열어 확인하는 것이 외과의의 도리입니다.”

“1%? 네 헛된 영웅심에 환자 목숨을 걸겠다고? 전공의 따위가 본원 교수진의 판독을 무시해?”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보는 겁니다. 제가 직접 환자를 확인하고 판단하겠습니다.”

강혁은 한성호의 험악한 표정을 지나쳐 곧장 복도 끝 격리 병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강혁! 야, 백강혁!”

뒤에서 들려오는 신경질적인 고함은 더 이상 그의 귀에 닿지 않았다.


병실 안은 시큼한 땀 냄새와 특유의 약품 냄새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침대 위에는 뼈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난 노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얼굴과 눈 흰자위는 샛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부풀어 오른 복부 위로 푸른 핏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 곁에서 밤을 새운 듯 눈이 붉게 짓무른 중년 여성이 강혁의 가운을 보자마자 떨리는 손으로 소매를 붙잡았다.

“선생님… 제발 저희 아버지 좀 살려주세요. 서울 큰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손도 못 댄다고 집으로 가라는데… 아버지가 숨이 차서 물 한 모금도 못 넘기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환자의 딸 김은정 씨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강혁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찰부터 하겠습니다. 환자분, 배에 손을 조금 올리겠습니다.”

강혁이 침대 곁으로 다가가 노인의 오른쪽 갈비뼈 아래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악!

강혁의 시야를 가득 채우던 병실의 풍경이 순간적으로 반투명하게 흐려지며 노인의 복부 내부가 찬란한 푸른빛의 3D 그래픽으로 솟아올랐다.

피부와 근육 레이어가 스르륵 분리되더니 거대한 간의 형상이 허공에 입체적으로 회전했다.

[환자: 김성환 (남, 67세)]
[병변: 간 우엽 및 미상엽 거대 간세포암 (14.8cm)]
[주요 침범: 간문맥 주간부, 우측 간정맥, 하대정맥(IVC)]
[기존 수술 성공률: 12%]

12%.

본원의 권위자가 수술을 거부한 이유가 여실히 드러나는 수치였다.

종양은 간의 우측 절반을 완전히 잠식한 채 대혈관들을 으스러뜨릴 듯 감싸 쥐고 있었다. 일반적인 절제술을 시도한다면 하대정맥 벽이 찢어지며 1분 만에 3천 밀리리터가 넘는 피가 쏟아져 나올 구조였다.

하지만 강혁은 숫자에 멈추지 않았다.

‘더 깊게 본다.’

강혁이 숨을 멈추고 집중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자 3D 그래픽이 혈관 단위의 초미세 레이어로 분해되며 확대되었다.

종양 조직과 혈관벽의 경계면이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세밀하게 나뉘었다.

‘……!’

강혁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CT 필름상에서는 종양이 하대정맥과 문맥의 혈관벽 안쪽까지 뚫고 들어간 진성 침윤처럼 뭉개져 보였다.

그러나 스캐닝 마인드가 투영해 낸 혈관벽의 두께는 온전했다.

거대한 종양이 하대정맥 외막을 강하게 짓누르며 염증성 유착을 일으켰을 뿐 혈관 내막까지 파고들지 않은 상태였다.

종양과 하대정맥 외막 사이.

단 0.8밀리미터에 불과한 미세한 틈새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찰나 허공의 그래픽 위로 가느다란 녹색 안내선이 미세한 빛을 내뿜으며 꼬리를 물었다.

[절제 경로 가이드라인 활성화]
[하대정맥 외막 미세 박리 시 성공률: 94.6%]
[예상 완전 절제율: 98.2%]

길이 있었다.

바늘구멍보다 좁고 벼랑 끝보다 아슬아슬하지만 칼끝이 0.1밀리미터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대혈관을 보존한 채 종양 덩어리만 통째로 발라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강혁이 손을 거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환자의 딸이 마른침을 삼키며 강혁의 입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정말 수술이 안 되는 건가요?”

강혁은 환자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딸의 젖은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수술할 수 있습니다.”

“네……?”

딸 김은정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매우 위험하고 거대한 수술입니다. 종양이 혈관과 맞닿아 있어 수술 도중 대량 출혈이 일어날 위험이 큽니다. 하지만 혈관을 다치지 않고 종양만 분리해 낼 수 있는 틈이 있습니다.”

강혁은 명확하게 설명했다.

“제가 직접 집도하겠습니다. 아버님을 수술실로 올리시겠습니까?”

딸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바닥에 무릎을 꿇으려 했다.

“하겠습니다! 선생님, 제발 아버지 좀 살려주세요. 뭐든 다 하겠습니다!”

강혁이 서둘러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수술 준비하겠습니다. 수아 선생.”

병실 문가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던 윤수아가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네, 선생님!”

“외과 1번 수술실 비우라고 하세요. 혈액은행에 농축적혈구 열 단위와 신선동결혈장 여덟 단위 선확보 요청하고 마취과에 초응급 수술 콜 넣으세요. 지금 바로 들어갑니다.”


수술실 내부의 공기는 살을 에는 듯 팽팽했다.

수술대 위에 누운 김성환 환자의 복부 위로 붉은 소독약이 넓게 칠해졌다.

모니터에는 분당 백이십 회에 달하는 빠른 심박수와 위태로운 혈압 수치가 깜빡였다.

마취과 박 교수가 인공호흡기 밸브를 조절하며 수술대 건너편의 강혁을 매서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백 선생. 진짜 이 상태에서 간 절제를 들어가겠다고? 하대정맥 건드리면 피가 천장까지 솟구쳐. 나도 책임 못 져.”

“건드리지 않습니다.”

강혁은 장갑을 낀 양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리며 짧게 대답했다.

“절개창은 역J형으로 크게 엽니다. 우측 늑골 아래 시야를 최대로 확보하겠습니다.”

“메스.”

간호사의 손에서 10번 메스가 강혁의 손바닥으로 건네졌다.

망설임 없는 칼날이 노인의 상복부를 가르고 지나갔다.

치이익!

보비의 타는 냄새와 함께 피하 지방층과 복막이 순식간에 갈라졌다. 견인기가 걸리고 벌어진 복강 안쪽의 모습이 드러나자 보조를 서던 윤수아와 최민석의 입에서 억눌린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윤수아가 석션 팁을 쥔 채 굳어버렸다.

시야를 가득 채운 간 우엽은 정상적인 선홍빛이 아니었다. 울퉁불퉁하고 검붉은 거대 종양이 어른 머리통만 한 크기로 솟아올라 주변 장기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종양 아래로는 시퍼렇게 질린 하대정맥이 거대한 기둥처럼 박동하고 있었고 간문맥은 종양의 압박에 눌려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시야 확보하고 프링글 준비해 주세요.”

강혁의 침착한 목소리가 얼어붙은 수술실을 깨웠다.

프링글 수기. 간으로 들어가는 혈류를 겸자로 일시 차단하여 출혈을 최소화하는 기법이었다. 하지만 차단 시간은 길어야 15분. 그 안에 결판을 내지 못하면 남은 정상 간세포마저 괴사해 버린다.

“혈관 테이프 걸었습니다. 프링글 클램핑 들어갑니다.”

윤수아가 신속하게 혈관 겸자를 체결했다.

동시에 타이머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강혁의 눈앞에 선명한 녹색 가이드라인이 종양의 외곽선을 따라 띠를 형성했다.

[프링글 차단 완료]
[하대정맥 박리 허용 오차: 0.3mm]
[진입 경로 정합도: 99%]

“CUSA 켜고 메이요 가위 주세요.”

강혁의 손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음파 진동을 이용해 정상 간 실질과 섬유성 조직을 흡인하면서도 질긴 혈관벽은 다치지 않게 보존하는 초정밀 장비였다.

위이이잉-

가느다란 금속 팁이 종양의 하단부를 파고들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이 수술실 안을 짓눌렀다.

강혁의 오른손은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미세하게 회전하며 종양을 하대정맥 외막에서 깎아내듯 떼어냈다.

조금만 깊으면 하대정맥이 터지고 조금만 얕으면 종양 조직이 혈관벽에 남아 재발한다.

0.5밀리미터의 틈을 헤집는 강혁의 손에는 미세한 떨림조차 없었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석션, 피 거둬내세요. 혈관 경계면만 정확히 흡인합니다.”

“네, 선생님!”

윤수아는 숨을 참아가며 강혁의 손놀림을 따랐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칼끝이 혈관벽을 스칠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강혁의 집도는 투명한 지도를 보며 걷는 사람처럼 거침이 없었다.

10분이 흘렀다.

거대 종양과 간문맥 주간부의 분리가 기적처럼 끝났다. 눌려 있던 문맥이 팽창하며 정상 혈류의 형태를 되찾았다.

“문맥 박리 성공했습니다. 클램프 잠시 풀고 재관류합니다.”

강혁의 지시에 맞춰 윤수아가 겸자를 풀었다. 산소가 공급되며 남은 좌측 간이 붉은 생기를 되찾았다.

마취과 의사가 모니터를 응시하며 헛숨을 들이켰다.

“혈압 백십에 칠십. 출혈량이… 삼백도 안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수치였다.

보통 이 정도 거대 간암을 박리하면 이미 수천 밀리리터의 출혈로 수혈 팩 대여섯 개가 들어갔어야 했다. 그런데 수술포 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하지만 진짜 고비는 지금부터였다.

간 뒤편 깊숙한 곳에 숨겨진 하대정맥의 본줄기와 우측 간정맥이 합류하는 최후의 분지 부위였다.


“다시 클램핑합니다.”

강혁이 마지막 미세 박리를 위해 종양의 상단을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투둑!

기분 나쁜 파열음과 함께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출혈!”

윤수아가 숨을 들이켰다.

종양 깊숙한 곳에 유착되어 있던 하대정맥의 작은 단축 분지 하나가 종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찢어진 것이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시뻘건 핏물로 뒤덮였다.

쉭, 쉬익!

석션 노즐이 피를 빨아들였지만 쏟아져 나오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마취과 모니터의 알람이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삐- 삐- 삐-!

“혈압 칠십, 육십으로 곤두박질칩니다! 백 선생, 하대정맥 터졌어! 바이탈 못 잡아!”

마취과 교수의 목소리가 공포로 뒤집혔다.

하대정맥 파열.

외과의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몽이자 수술대 위 즉사의 대명사였다.

이대로 1분만 지나면 환자는 저혈량성 쇼크로 심장이 멎는다.

“석션 더 대지 마세요!”

강혁이 날카롭게 외치며 왼손 검지를 피가 솟구치는 상처 부위에 정확히 찔러 넣었다.

쑤욱.

강혁의 손가락 끝이 찢어진 혈관 구멍을 뼈와 근육 사이로 짓누르는 순간 거짓말처럼 뿜어져 나오던 피의 흐름이 멎었다.

블라인드 압박.

시야가 피로 완전히 가려진 상태에서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한 파열점을 찾아 누른 것이었다.

수술실 전체가 숨을 죽였다.

강혁의 안광 속에서 핏물 속에 잠긴 혈관의 단면이 투시되어 떠올랐다.

[경고: 하대정맥 전벽 3.2mm 파열]
[지혈 유지 시간 한계: 45초]
[권장 봉합: Prolene 6-0 연속 봉합]

“수아 선생, 당황하지 말고 내 손가락 바로 옆에 석션 팁 바짝 대세요.”

강혁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그 침착함이 패닉에 빠져 있던 수술팀의 호흡을 단숨에 가라앉혔다.

“네… 댔습니다!”

“피 빨아들이는 즉시 6-0 프롤린 준비하세요. 바늘 홀더 짧게 잡겠습니다.”

강혁은 흔들림 없는 오른손으로 미세 바늘 홀더를 쥐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푸른 봉합사가 은색 바늘 끝에 매달려 있었다.

“손가락 0.5밀리미터 엽니다. 석션 끝까지 당기세요.”

강혁이 누르고 있던 검지를 살짝 비틀었다.

핏물이 솟구치려는 찰나의 틈바구니.

찰칵!

강혁의 바늘이 어둠 속의 혈관벽을 번개처럼 꿰뚫었다.

한 땀.

혈관벽의 가장자리 외막과 내막을 정확히 0.3밀리미터 간격으로 물고 들어갔다.

돌리고 걸고 당겼다.

손가락을 한 번 더 비켜서며 두 번째 땀이 들어갔다.

찰칵, 찰칵!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핏물 속에서 강혁의 바늘 끝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춤을 췄다.

단 10초.

세 바늘의 초미세 연속 봉합이 끝나고 강혁이 매듭기를 이용해 실을 바짝 조여 매었다.

타악.

“지혈 완료. 손 뗍니다.”

강혁이 피 묻은 장갑을 천천히 거두었다.

석션 노즐이 고여 있던 잔여 혈액을 빨아들이자 드러난 하대정맥의 벽은 상처 하나 없었던 것처럼 매끄럽게 봉합되어 있었다.

피 한 방울 새어 나오지 않았다.

“……!”

마취과 교수가 얼어붙은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바닥을 치던 혈압이 팔십을 지나 구십으로 서서히 기어오르고 있었다.

“혈압… 구십오에 육십. 맥박 안정됩니다. 출혈 완전히 잡혔습니다.”

마취과 의사의 떨리는 보고가 수술실의 침묵을 깼다.

그것은 인간의 동체시력과 손재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기적 같은 집도였다.

하지만 강혁은 안도할 틈도 없이 왼손으로 종양의 뿌리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마지막 절제선 분리합니다. 하모닉 스칼펠.”

지혈된 하대정맥에서 종양 덩어리가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 정상 간 조직과의 경계면을 따라 초음파 절삭기가 마지막 혈관들을 태우며 잘라냈다.

스걱.

마침내 거대한 암 덩어리가 온전히 분리되어 강혁의 두 손 위로 들려 올려졌다.

무게 1.8킬로그램, 직경 15센티미터에 달하는 검붉은 괴물.

어른 머리통만 한 악성 종양이 환자의 몸 밖으로 완전히 적출되는 순간이었다.

철렁!

간호사가 받쳐 든 스테인리스 농반 위로 거대 종양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강혁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던 그래픽 인터페이스가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종양 완전 절제 성공 (R0 Resection)]
[잔여 간 용적: 38.4% (안정권)]
[수술 성공률: 100%]

100%.

처음 12%에서 출발했던 절망적인 숫자가 완벽한 세 자리 숫자로 바뀌어 있었다.

강혁이 마스크 아래로 깊고 긴 숨을 내쉬었다.

“수술 끝났습니다. 세척하고 배액관 두 개 거치한 뒤 닫겠습니다.”

수술실 안에 있던 모든 의료진의 가슴속에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이 번져 나갔다.


수술실 문이 열렸다.

복도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딸 김은정 씨가 튕겨 나가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시선이 피로 얼룩진 수술 가운을 입은 강혁에게 닿았다.

그녀의 입술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선… 선생님……?”

강혁은 피 묻은 마스크를 턱 밑으로 내리고 지친 기색이 완연한 얼굴로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큼은 맑고 또렷했다.

“수술 잘 끝났습니다.”

“아……”

“간을 짓누르고 있던 종양을 혈관 손상 없이 깨끗하게 전부 떼어냈습니다. 출혈도 거의 없었고 아버님 바이탈도 안정적입니다. 곧 중환자실로 올라가실 겁니다.”

그 순간 김은정 씨의 다리가 풀렸다.

털썩.

차가운 병원 바닥에 무릎을 꿇은 그녀는 강혁의 손을 붙잡고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흐흑… 흑!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 살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바닥을 적시는 눈물 속에는 가족을 잃을 뻔했던 절망과 그 끝에서 마주한 기적에 대한 감사가 온전히 녹아 있었다.

강혁은 묵묵히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얼어붙은 채 서 있는 한 그림자가 있었다.

한성호 과장이었다.

그는 수술실 간호사가 조직검사실로 옮기기 위해 들고 나온 투명 용기 속의 거대한 15센티미터 종괴를 똑똑히 보았다.

단 하나의 찢김도 없이 하대정맥 외막과 문맥의 형태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 적출된 완벽한 검체였다.

“말도 안 돼……”

한성호의 턱관절이 딱딱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본원 간담췌 권위자 박 교수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했던 4기 거대 간암이었다.

사망률 90%라던 그 수술을 일개 3년 차 전공의가 단 3시간 만에 피 한 방울의 사고도 없이 100% 완전 절제로 끝내 버린 것이다.

‘저 녀석의 손은 도대체…… 괴물인가?’

한성호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분노나 질투 따위가 아니었다.

자신의 의학적 상식과 통제를 아득히 초월한 존재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원초적인 공포였다.

피 묻은 장갑을 벗어 던지며 복도를 걸어가는 강혁의 넓은 등을 윤수아가 벅찬 눈빛으로 쫓고 있었다.

성모병원의 작은 분원을 넘어 거대한 소용돌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표지소설
연재중 19%
#현대판타지#연예계물#매니저물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배우들의 숨은 재능과 한계, 작품의 흥행 가능성을 스탯으로 볼 수 있게 된 전직 로드 매니저 강시우가 1인 기획사 루미너스를 세운다. 편의점 알바 유나린, 무너진 연기파 최지환, 이미지에 갇힌 신우진을 발굴하고 신성 엔터의 방해와 금융·제작 전쟁을 뚫고 연예계의 판을 다시 짜는 현대판타지 매니저물.

3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