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전문 국선 변호사입니다

1화: 첫 번째 최후진술
서울구치소 지하 접견실의 공기는 언제나 소독약과 젖은 시멘트 냄새로 무거웠다.
아크릴 가림막 너머에 앉은 청년은 죄수복 소매를 쥐어뜯고 있었다. 스물네 살의 김우진. 손목에 채워진 수갑이 책상 모서리에 부딪힐 때마다 둔탁한 쇠붙이 소리가 울렸다.
"우진 씨,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 본인이 찌른 게 맞습니까?"
서도윤은 낡은 검은 수첩을 펼쳐 둔 채 담담하게 물었다.
우진은 초점 없는 눈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손톱 밑이 새까맣게 타들어간 것처럼 갈라져 있었다.
"……제가 죽였어요. 제가 다 자백했잖아요."
"칼을 쥔 손이 오른손이었습니까 왼손이었습니까? 현장 감식 보고서의 창상 각도와 우진 씨의 신문조서 진술이 전혀 맞지 않습니다. 경찰 조사 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도윤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우진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냥…… 제가 했다고 해주세요. 변호사님, 저 그냥 벌 받을래요. 여기서 더 떠들어 봤자 아무것도 안 바뀌어요. 그 사람들이 가만 안 둘 거예요."
"그 사람들이 누굽니까?"
우진은 입술을 피가 맺히도록 깨물며 입을 닫았다.
면회 종료를 알리는 부저가 거칠게 울렸다. 교도관이 다가와 우진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끌려 나가는 청년의 굽은 등 뒤로 짙은 절망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도윤은 펜을 쥔 손을 굳게 쥐었다.
그것이 살아 있는 김우진을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흘 뒤 새벽 공익변호센터의 낡은 유선 전화가 비명처럼 울렸다.
수화기 너머 교도관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피고인 김우진이 독방 안에서 수건으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통보였다.
도윤은 외투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채 구치소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가운 시신이 이미 국과수로 이송되었다는 짤막한 보고서 한 장뿐이었다.
텅 빈 변호인 접견실에 도윤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형사 국선 전담 변호사로 일한 지 3년. 억울함을 호소하다 옥살이를 하는 의뢰인은 수없이 보았지만 변론 기일도 열리기 전에 목숨을 끊어버린 의뢰인은 처음이었다.
"내가 뭘 놓친 거지."
도윤은 마른세수를 하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자백을 의심하면서도 더 집요하게 캐묻지 못했다는 자책이 가슴을 짓눌렀다.
스물네 살의 고시원 총무 살해범. 유흥비를 마련하려고 총무를 흉기로 살해하고 금고에서 현금 삼백만 원을 훔쳤다는 혐의. 언론은 패륜적인 청년 강도 살인이라며 연일 대서특필했고 경찰은 완벽한 자백을 받아냈다며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끝난 사건이었다. 피고인이 죽어버렸으니 검찰은 곧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덮을 터였다.
그때였다.
접견실 내부의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빡거렸다.
치직, 치지직.
동시에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발밑에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3월의 봄바람이 닿지 않는 지하 시설이라 해도 이상할 만큼 비정상적인 한기였다.
입김이 하얗게 번졌다.
"……뭐지?"
도윤이 고개를 든 순간 아크릴 가림막 너머 반대편 의자에 희뿌연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것은 점차 윤곽을 갖추더니 피고인 김우진의 형상으로 변했다. 푸른 죄수복을 입은 채 목에 붉은 울혈 자국을 단 청년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도윤의 숨이 턱 막혔다.
'헛것을 보는 건가? 과로 때문에?'
도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하지만 환영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크릴 판에 이마를 바짝 댄 채 도윤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우진의 영혼이 떨리는 입술을 달싹였다. 유리를 통과하지 못하는 소리가 아니라 도윤의 뇌수 안에서 직접 울리는 듯한 서늘한 음성이었다.
―변호사님.
도윤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공포 속에서도 변호사로서의 본능을 억누르지 못했다.
"김우진 씨……?"
―변호사님…… 전 안 죽였어요. 진짜로요.
피눈물이 우진의 창백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톱 밑이 까맣게 짓물린 손이 아크릴 벽을 긁어댔다.
―돈이 급해서 총무실 문을 연 건 맞아요. 하지만 제가 문을 열었을 땐…… 이미 방 안에 차가운 피 냄새가 진동했어요. 총무 형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요.
도윤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망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구체적인 진술이었다.
"그럼 왜 자백했습니까?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까!"
도윤이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그 순간 뇌리를 쇠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도윤을 덮쳤다.
"큭……!"
도윤은 관자놀이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동시에 가림막 너머 우진의 영혼이 마치 연기처럼 흐릿하게 일그러졌다.
도윤이 던진 한 번의 질문에 영혼을 유지하던 희미한 형체가 깎여 나가고 있었다. 영혼의 가슴 부근에서 푸른빛의 잔류사념이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그 아저씨들이…… 제가 안 했다고 하면…… 시골에 계신 어머니까지 감옥에 보내겠다고…… 검은 종이를 내밀면서 서명하라고…… 손가락을 억지로 눌렀어요…… 변호사님, 제발…… 제 어머니는…… 제발……
우진의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우진 씨! 그 검은 종이가 뭡니까? 누가 시킨 겁니까!"
도윤이 다시 외치려 했지만 혀가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두 번째 질문을 던지려던 찰나 영혼의 윤곽이 산산조각 나며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접견실의 깜빡이던 형광등이 툭 소리와 함께 정상으로 돌아왔다.
살을 에는 한기도 눈앞의 청년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책상 위에는 도윤이 흘린 차가운 식은땀만이 방울져 떨어져 있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골목 공익변호센터 도윤의 연구실.
창밖으로 젖은 새벽안개가 밀려들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김우진 사건의 수사기록 복사본과 현장 사진, 경찰 신문조서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도윤은 얼음물을 들이켜며 타는 목을 축였다.
환청이었을까. 죄책감이 만들어 낸 망상이었을까.
'영혼의 말은 증거가 될 수 없어.'
도윤은 낡은 수첩을 내려다보았다. 법정은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재판부는 오직 도장 찍힌 조서와 영상, 물적 증거만을 믿는다.
만약 우진의 말이 사실이고 그가 문을 열기 전에 이미 피해자가 살해당해 있었다면 반드시 기록 어딘가에 모순이 남아 있어야 했다.
도윤은 돋보기를 들고 경찰 수사기록을 한 줄 한 줄 대조하기 시작했다.
사건 당일 밤 10시 40분 고시원 복도 CCTV에 우진이 총무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찍혔다. 그리고 11시 05분 우진이 허겁지겁 뛰어나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경찰 조서에는 우진이 25분 동안 피해자와 몸싸움을 벌이다 흉기로 찌르고 돈을 챙겨 달아났다고 적혀 있었다.
"이상해."
도윤의 손가락이 현장 감식 보고서의 한 항목을 짚었다.
'사체 직장 체온 및 시반 형성 상태로 보아 사망 추정 시각은 당일 밤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
부검의의 소견이었다. 하지만 수사관은 '실내 난방 및 개체 차이에 따른 오차'라며 사망 시각을 우진의 침입 시간대로 끼워 맞추어 기소의견을 냈다.
도윤은 곧바로 경찰 피의자 신문 당시 녹화된 영상 CD를 노트북에 넣었다.
화면 속에서 우진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조사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피의자 김우진, 인정합니까?
……아니에요. 제가 갔을 땐 이미……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똑바로 말 안 해?
영상은 거칠게 이어지다가 갑자기 뚝 끊겼다.
화면 하단의 타임코드가 11시 14분에서 곧바로 11시 31분으로 건너뛰었다.
정확히 17분의 공백.
다시 재생된 화면에서 우진은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손가락 끝은 붉은 인주와 정체불명의 검은 자국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도윤은 숨을 삼켰다.
"17분이 삭제됐어."
형사소송법상 피의자 신문 녹화물은 조서 작성의 전 과정을 연속적으로 녹화해야 하며 임의로 중단하거나 편집할 수 없다. 17분 동안 조사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록은 침묵하고 있었다.
도윤은 피의자 신문조서 맨 뒷장을 넘겼다. 우진의 자필 서명과 무인이 찍힌 자리였다.
붉은 인주 도장 옆 종이 모서리에 작고 기묘한 인장 자국이 스며들어 있었다. 마치 먹물을 진하게 갠 듯한 검은 잉크 얼룩. 그 문양은 일반적인 관공서 도장이 아니라 낯선 고대 문자나 계약의 쐐기처럼 얽혀 있었다.
도윤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이건…….'
그것은 도윤이 12년 전 옥중에서 사망한 아버지 서진혁의 재심 기록 사본에서 수없이 보았던 바로 그 검은 인장과 흡사했다.
정오가 가까워진 시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부 복도.
서류 봉투를 든 서도윤은 특수형사부 검사실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문이 열리며 단정한 검은 정장 차림의 여성이 걸어 나왔다. 날카로운 눈매와 흐트러짐 없는 단발머리. 서울중앙지검의 에이스로 불리는 강세린 검사였다.
"강 검사님."
세린이 걸음을 멈추고 차가운 시선으로 도윤을 돌아보았다.
"서도윤 변호사님? 김우진 사건 국선 변호인이시죠. 피고인이 사망했다는 보고는 이미 받았습니다. 오늘 중으로 공소권 없음 불기소 처분으로 종결할 예정입니다."
세린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서류철을 고쳐 쥐었다.
도윤은 세린의 앞을 막아서며 품에서 수사기록 사본과 영상 분석표를 꺼내 내밀었다.
"종결 처리를 보류해 주십시오. 자백이 조작되었습니다."
세린의 눈썹이 잘게 꿈틀했다.
"조작이요? 유흥비 때문에 사람을 찌르고 돈을 훔친 자백 범죄입니다. 현장에서 우진의 지문이 묻은 칼도 나왔어요."
"그 칼의 손잡이에 우진의 지문이 남은 건 맞지만 칼날에 묻은 혈흔의 튄 방향은 우진의 키와 전혀 맞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피의자 신문 영상에서 정확히 17분이 삭제되었습니다."
도윤이 서류를 펼쳐 타임코드 비교표를 짚었다.
"11시 14분부터 31분까지 조사실 녹화가 중단된 17분 사이에 우진 씨는 자백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리고 국과수 부검의가 작성한 사망 추정 시간은 우진 씨가 현장에 들어가기 전인 밤 9시 30분입니다."
세린의 눈동자가 서류의 숫자를 빠르게 훑었다. 그녀의 오른손 검지에 희미하게 남은 화상 흉터가 파르르 떨렸다.
"서 변호사님. 피고인은 이미 사망했습니다. 죽은 피고인의 조서상 하자를 다퉈봤자 법정에서 실익이 없다는 걸 모르십니까?"
"실익이요?"
도윤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스물네 살 청년이 억울하게 살인범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목을 맸습니다. 진범은 아직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요. 검사님에게는 단순한 미제 종결 사건 하나일지 몰라도 그 청년에게는 단 하나뿐인 목숨이었습니다."
세린은 도윤의 눈을 쏘아보았다. 국선 변호사 특유의 무기력함 대신 진실을 꿰뚫어 보려는 집요한 광채가 번뜩이고 있었다.
"……증거 영상의 17분 공백은 수사관 측의 기술적 결함인지 확인해 보죠. 하지만 서 변호사님, 감정적인 호소로 검찰의 공소권을 흔들 수는 없습니다. 명확한 반증을 가져오지 못하면 내일 오전 10시에 예정대로 종결 처리합니다."
세린은 냉정하게 말을 맺고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구두 굽 소리가 차갑게 메아리쳤다.
도윤은 떠나가는 검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품 안의 낡은 검은 수첩을 꽉 쥐었다.
손끝에 전해지는 가죽의 감촉 너머로 구치소 접견실에서 들었던 김우진의 마지막 절규가 여전히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문을 열었을 땐 이미 피 냄새가 났어요.'
도윤은 차가운 결의를 다지며 검찰청 계단을 내려갔다.
죽은 자의 증언은 법정에 설 수 없다. 그렇다면 산 자들의 세상에서 그 증언을 증명할 진짜 증거를 찾아내야만 했다.
진실을 향한 첫 번째 재판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