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그래프로 갓물주

4화: 바닥을 딛는 발걸음
월요일 아침 8시 30분.
도준은 반지하 원룸 바닥에 정좌한 채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 위에는 장 시작 전 동시호가 창이 띄워져 있었다.
계좌 잔고는 1,542,000원.
물류센터 일당 정산금과 며칠간의 치열한 단타 매매로 불려 놓은 전 재산이었다. 어머니의 병원비와 이번 달 대출 이자는 이미 다른 통장으로 분리해 두었으니 이 돈은 온전히 시장의 승부에 던질 수 있는 총알이었다.
‘오늘이다.’
도준의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진전자의 현재가는 45,200원선이었지만 시초가 예상 체결가는 벌써부터 마이너스 5퍼센트가 찍힌 채 파랗게 질려 있었다.
개장 10분을 앞두고 인터넷 증권 뉴스 탭에 불길한 표제의 기사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단독] 아진전자, 핵심 자율주행 센서 북미 특허 분쟁 피소 위기
[시황] 증권가 “아진전자, 유상증자 가능성 배제 못 해…… 목표주가 하향”
아진전자 종목 토론방: 월요일부터 무슨 날벼락이냐? 대표 나와라!
주포 털고 나갔네. 3만 원 깨지러 간다. 지금이라도 시초가에 던져라.
공포는 순식간에 번졌다.
언론과 증권사 리포트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한 기업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개미 투자자들은 주말 내내 터져 나온 악재 소문에 패닉에 빠졌고 장이 열리기도 전에 던지는 시장가 투매 주문이 호가창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도준의 망막 위에 겹쳐진 붉은선은 전혀 다른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특허 소송 피소설도, 유상증자 찌라시도 전부 거짓이야.’
도준의 시선은 1년 미래 그래프의 출발점을 훑었다.
선은 오늘 오전 10시 무렵 38,000원 선까지 수직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잔인할 정도로 가파른 낙하였다. 그러나 그 깊은 골짜기의 바닥을 찍는 순간 붉은선은 마치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리고 오늘 오후부터 서서히 고개를 쳐들더니 내일부터는 시장의 모든 악재를 비웃듯 가파른 각도로 솟구쳐 오르는 궤적이었다.
이것은 회사가 망해서 떨어지는 하락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개미들의 손에 쥐인 주식을 헐값에 강탈하기 위해 파놓은 잔인한 함정, 즉 ‘골파기’였다.
오전 9시 정각. 요란한 알림음과 함께 정규 장이 열렸다.
“시작됐군.”
도준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예상대로 아진전자는 시초가부터 마이너스 6.8퍼센트인 42,100원에 갭하락으로 출발했다. 개장하자마자 실망 매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호가창이 파란색 숫자로 뒤덮였다.
41,500원, 40,200원, 39,800원.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4만 원 선이 단 15분 만에 허망하게 깨져 나갔다.
증권 방송의 전문가들은 핏대를 세우며 경고를 쏟아냈다.
“시청자 여러분, 아진전자는 지금 칼날이 떨어지는 형국입니다. 기술적 지지선이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절대 저가 매수로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바닥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관망하시거나 비중을 줄이셔야 합니다!”
전문가들의 입술이 바쁘게 움직일수록 개인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호가창에는 손절 물량이 1만 주, 2만 주씩 시장가로 긁혀 내려갔다. 개미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던지는 투매였다.
하지만 도준의 시선은 호가창 아래쪽의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38,000원 바로 위인 38,100원과 38,200원에 누군가 5만 주, 8만 주에 달하는 거대한 매도 벽을 떡하니 세워두고 있었다.
얼핏 보면 주가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게 짓누르는 거대한 악성 매도 매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도준은 그 이면을 꿰뚫어 보았다.
‘허매도벽이야.’
매도 잔량을 산더미처럼 쌓아 올려 공포를 극대화하고 아래에서 겁에 질린 개미들이 던지는 시장가 매도 물량을 야금야금 받아먹는 세력의 고전적인 매집 수법이었다.
실제로 특정 외국계 창구와 정체불명의 사모펀드 계좌에서 수천 주 단위의 매수 체결이 끊임없이 체결창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시계의 초침이 9시 54분을 가리켰다.
주가가 38,150원을 터치했다. 미래 그래프의 붉은선이 가장 깊은 골짜기의 바닥에 닿는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도준의 손가락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다.
계좌 잔고 1,542,000원.
도준은 지정가 38,200원에 40주 매수 주문을 넣었다. 증거금을 제외하고 그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최대 수량이었다.
주문 전송: 아진전자 40주 지정가 매수 (38,200원)
호가창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38,100원에 쏟아지던 패닉 셀 물량을 거대한 세력의 입이 삼키는 찰나 도준의 주문도 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띠링.
귓가를 울리는 경쾌한 체결음.
체결 완료: 아진전자 40주 매수 (평균단가 38,180원)
총 매수 금액 1,527,200원.
남은 예수금은 14,800원에 불과했다. 도준의 손에 쥐여 있던 현금이 남김없이 아진전자의 지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매수가 체결된 직후 주가는 일시적으로 38,000원까지 밀렸다.
계좌 평가손익에 마이너스 0.47퍼센트가 찍혔다. 온 세상이 하한가를 외치며 절규하는 지옥의 한복판에 홀로 뛰어든 셈이었다.
그러나 도준의 심장은 차분하게 뛰었다.
‘공포의 바닥을 샀다.’
도준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 싱크대로 가 수돗물을 틀어 찬물을 들이켰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던 긴장감이 서서히 서늘한 쾌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가 찬물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온 시각은 10시 10분.
그 짧은 찰나에 호가창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뒤바뀌어 있었다.
38,200원 위에 서슬 퍼렇게 버티고 서 있던 8만 주의 거대한 허매도벽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주문을 취소하고 벽을 치워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향해 수만 주 규모의 시장가 매수 폭탄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38,500원. 39,200원. 40,000원.
주가는 단 10분 만에 4만 원 선을 가볍게 회복했다.
개미들의 손에서 피 묻은 주식을 전부 털어낸 세력이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며 주가를 위로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후 1시가 넘어서자 뉴스 창의 분위기도 급변했다.
[속보] 아진전자 “북미 특허 소송설 사실무근…… 특허청 등록 완료 확인”
[단독] 아진전자,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차세대 자율주행 전장 부품 공급 협의 중
오전에 쏟아졌던 악재성 보도들이 한순간에 정정 기사로 뒤덮였다.
종목 토론방은 오전에 손절한 개미들의 피 섞인 비명과 뒤늦게 추격 매수를 고민하는 투자자들의 글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 내 물량 38,500원에 털렸는데 이게 뭐냐?
세력 놈들 장난질에 제대로 당했다. 한강 가야겠다.
지금이라도 다시 타야 하나요? 상한가 말아 올릴 것 같은데……
도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자본 시장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정보가 늦고 확신이 없는 약자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거대한 고래들이 배를 불린다.
미래 그래프가 없었더라면 자신 역시 저 게시판에서 절규하는 수많은 개미 중 하나였을 터였다.
오후 3시 30분, 정규 장이 마감되었다.
아진전자의 당일 종가는 43,450원이었다.
저점인 38,000원 대비 무려 14.3퍼센트나 치솟은 장대양봉이었다.
도준은 증권 앱의 잔고 화면을 열었다.
종목명: 아진전자
보유수량: 40주
매입단가: 38,180원
현재가: 43,450원
평가손익: +210,800원 (+13.80%)
총 평가금액: 1,738,000원
단 하루 만에 21만 원이 넘는 수익이 발생했다. 물류센터에서 꼬박 이틀 반을 밤새워 상자를 날라야 쥘 수 있었던 거금이 클릭 몇 번으로 통장에 찍혀 있었다.
그러나 도준은 들뜨지 않았다. 13퍼센트의 수익 따위는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파도에 비하면 모래알에 불과했다.
미래 그래프 속 붉은선은 이제 막 고개를 들었을 뿐이었다.
내일부터 시작될 진짜 랠리는 전고점인 5만 원을 넘어 10만 원, 20만 원의 아득한 고지를 향해 수직으로 뻗어 있었다.
도준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낡은 철문을 밀고 나가자 붉게 물든 노을빛이 도준의 얼굴을 비추었다. 저 멀리 여의도와 강남의 마천루들이 석양을 받아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수백조 원의 눈먼 돈이 소용돌이치는 자본의 심장부.
세상의 거인들이 파놓은 함정의 가장 깊은 바닥을 딛고 도준은 마침내 그들의 판에 올라탔다.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어머니의 번호였다.
도준은 숨을 가다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머니, 저예요.”
- 도준아, 밥은 챙겨 먹고 다니니? 병원비 보낸 거 잘 받았다. 너 무리해서 잔업 뛰는 거 아니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힘없는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는 아들을 향한 지극한 염려가 배어 있었다.
도준의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무리 안 해요, 어머니. 회사에서 이번에 특별 보너스가 나왔거든요. 앞으론 병원비 걱정 전혀 안 하셔도 돼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 보너스? 아이고 우리 아들 고생 많네…… 그래도 몸 상하지 않게 밥 잘 챙겨 먹어야 한다.
“네, 어머니도 치료 잘 받으시고요. 주말에 병원 갈게요.”
전화를 끊은 도준은 난간을 짚고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시작이었다.
어머니에게 더 이상 가난의 무게를 짊어지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이 차가운 빌딩 숲에서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지 않는 주인이 되겠다는 결의가 가슴속에서 뜨겁게 피어올랐다.
내일 아침, 아진전자의 공식 공시가 시장을 뒤흔들 것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폭등의 파도 맨 꼭대기에는 가장 낮은 곳에서 패를 던진 도준이 서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