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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감독, 축구 신이 되다46화

방구석 감독, 축구 신이 되다

방구석 감독, 축구 신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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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바깥으로 난 길

분석실 중앙 검수대 위에는 투명 아크릴 증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쪽에는 폐기 대기함 최상단에서 회수한 은색 완충 봉투가 밀봉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서 웨스트가 테이블 모서리를 짚으며 몸을 숙였다.

"칼로 봉투 테이프를 살짝만 그으면 끝날 일 아닙니까? 안에 든 것이 유지보수함 보조키인지 아닌지만 확인하면 모든 의문이 풀립니다."

"풀리지 않습니다."

시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에서 키가 나온다 한들 봉투를 뜯는 순간 테이프 절단면의 흔적과 지문이 날아갑니다. 그러면 누가 이 봉투를 밀봉했는지 증명할 방법이 사라집니다."

아서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자 안에 넣어 두기만 해서 무엇을 알 수 있단 말입니까?"

"밖에서부터 봐야 합니다."

시우가 조 코치에게 턱짓을 했다.

조 코치는 검수대 상단의 사광 조명을 켰다.

비스듬한 각도로 쏟아진 빛이 은색 봉투의 굴곡을 도드라지게 드러냈다.

봉투 입구는 폭 4센티미터의 투명 포장용 테이프로 꼼꼼하게 밀봉되어 있었다.

시우가 확대경을 들고 테이프 끝부분을 살폈다.

"테이프 끝이 손으로 뜯긴 게 아닙니다. 반듯한 일자형 칼날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조 코치가 고배율 렌즈로 그 부분을 촬영하며 덧붙였다.

"접착면 모서리에 맨손 지문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미세한 격자무늬가 눌려 있습니다."

"작업용 면장갑의 직조흔이군요."

아서가 안경을 고쳐 쓰며 들여다보았다.

"장갑을 끼고 디스펜서나 커터로 테이프를 잘라 붙였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중앙의 눌림을 보시죠."

시우가 가리킨 봉투 정중앙에는 선명한 직사각형 윤곽이 잡혀 있었다.

정밀 버니어캘리퍼스로 측정한 수치는 가로 5.2센티미터, 세로 2.1센티미터였다.

보관실 맞은편 유지보수함 보조키에 달린 황동 태그의 규격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서의 눈빛이 흔들렸다.

"형태가 같습니다. 안에 보조키가 들어 있는 게 거의 확실하지 않습니까?"

"형태가 같다고 해서 안에 반드시 키가 들어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봉투가 카트와 폐기 대기함을 거쳐 어디로 가려 했는가입니다."

그때 분석실 문이 열리며 앤서 핌스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앤서의 손에는 흑백 인쇄된 서류 한 묶음이 들려 있었다.

"저녁 여섯 시 정기 외주 수거 예정표 원본입니다. 외주 관리 시스템에서 방금 출력했습니다."

시우가 서류를 받아 들고 하단 특기사항란으로 시선을 내렸다.

출력물 중간에 굵은 글씨로 입력된 한 줄의 비고가 눈에 들어왔다.

복도 끝 대기함 4번 우선 수거 후 외부 적치장 직송 (차량 직상차).

아서가 서류 위로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외부 적치장 직송? 차량 직상차라니요?"

"통상적인 절차와 다릅니다."

앤서가 마른침을 삼키며 설명했다.

"원래 복도 대기함의 폐기물은 건물 지하 분리수거장으로 내려가서 재분류를 거칩니다. 그런데 이 지시가 붙으면 지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지상 반출 차량에 실려 나갑니다."

"등록 시각을 확인했습니까?"

시우의 차분한 물음에 앤서가 화면 단말 기록을 넘겼다.

"15:15:30입니다. 보관실 앞 통로 정리 요청이 들어온 직후이자 대체 직원 작업표가 출력된 직후의 시간대입니다."

아서가 허탈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대기함에 봉투를 넣기도 전에 이미 그 봉투를 외부 차량으로 빼낼 통로를 예약해 두었다는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시우의 눈매가 가라앉았다.

"버리기 위해 버린 것이 아닙니다. 밖으로 빼내기 위해 폐기라는 이름을 빌렸을 뿐입니다."


훈련장 위로 차가운 오후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4대 4 전환 훈련이 이어지고 있었다.

중앙에서 공을 잡은 벤 올리베리의 발밑으로 잔디 부스러기가 튀었다.

맞은편에서 수비 조끼를 입은 미드필더가 거칠게 거리를 좁혀 왔다.

수비수는 조금 전 훈련에서 벤이 템포를 한 박자 늦춘 뒤 바깥으로 패스를 찔렀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벤이 이번에도 멈칫할 것이라 확신하고 몸의 중심을 아예 오른쪽 바깥 라인으로 기울였다.

벤이 공을 발 안쪽에 둔 채 시선을 들어 올렸다.

수비수가 바깥쪽 통로를 막기 위해 상체를 비틀며 달려들었다.

벤은 당황하지 않고 자세를 낮추었다.

오른쪽 어깨를 슬쩍 떨어뜨리며 바깥으로 공을 칠 듯한 모션을 취했다.

수비수는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고 판단하고 왼쪽 디딤발에 체중을 완전히 실었다.

그 순간 벤치에 앉아 있던 마르코 리드의 굵직한 음성이 피치를 갈랐다.

"상대가 서두르면 버리는 자리가 생긴다."

터치라인 밖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던 리암 애스크도 나지막이 읊조렸다.

"서둘러 닫으려는 문은 뒤쪽 경첩이 빕니다."

벤은 바깥으로 나가려던 디딤발을 멈추었다.

공을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고 발목을 안쪽으로 꺾었다.

수비수의 무게중심이 이미 오른쪽으로 완전히 넘어가 역방향에 걸린 찰나였다.

수비수의 가랑이 사이와 뒤따라오던 센터백 사이로 텅 빈 중앙 공간이 열려 있었다.

수비수가 섣부르게 예측하고 달려들면서 스스로 버려둔 자리였다.

탁.

벤의 발끝을 떠난 공이 바닥을 낮게 깔리며 중앙 빈칸으로 파고들었다.

쇄도하던 공격수가 공을 발밑에 편안하게 받아 두고 곧바로 골문 구석으로 차 넣었다.

골망이 출렁였다.

수비수는 중심을 잃고 잔디 위에 한 손을 짚은 채 허탈하게 벤을 돌아보았다.

마르코가 무릎을 짚고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멈추며 미소를 지었다.

"좋아. 억지로 길을 뚫으려 하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길을 버리게 만들었어. 그게 플레이메이커가 가져야 할 눈이야."

리암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얹었다.

"상대가 내 신호를 읽었다고 느낄 때가 가장 큰 기회입니다. 읽힌 수를 미끼로 던지면 다음 문은 저절로 열립니다."

터치라인 흰 선 밖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조나 그랜트는 패딩 주머니 속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자신이 저 수비수였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벤의 정지 동작에 속아 똑같이 바깥쪽으로 발을 뻗었을지도 모른다는 서늘함이 등줄기를 스쳤다.

조나는 벤의 첫 터치와 어깨 각도를 머릿속으로 집요하게 되감았다.

뛰지 못하는 답답함 너머로 경기장의 호흡을 읽는 새로운 눈이 떠지고 있었다.


훈련 종료를 알리는 긴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시우가 훈련장을 빠져나와 남쪽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 앤서가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시설팀 무전기와 차량 조회 단말이 들려 있었다.

"감독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남쪽 게이트 쪽입니까?"

"그렇습니다. 저녁 여섯 시 수거 차량을 조회했는데 정기 수거 트럭이 아닙니다."

시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기 트럭이 아니라면 대체 차량입니까?"

"당일 배차 변경이 되어 들어온 1톤 탑차입니다. 외부 용달 물류 업체를 통해 배차되었는데 확인 결과 이미 남쪽 외곽 대기 주차장에 도착해 있습니다."

아서가 뒤따라오다 말고 경악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라고요? 여섯 시에 싣고 나갈 차가 벌써 문밖에 와 있다는 겁니까?"

"도착 시각이 언제입니까?"

시우가 침착하게 물었다.

"오후 3시 35분에 남쪽 외곽 차단기 앞 대기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시동을 켜 둔 채로 여섯 시 출입 시간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서가 당장이라도 주차장으로 달려갈 기세로 외투를 고쳐 입었다.

"지금 당장 경비들을 데리고 가서 그 차를 포위해야 합니다. 기사를 끌어내서 누구 지시를 받고 왔는지 캐물으면 끝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시우가 단호하게 아서의 어깨를 잡았다.

"아서, 걸음을 멈추세요."

"눈앞에 차가 와 있는데 왜 멈춥니까?"

"그 기사가 배후 인물인지 단순히 배차 호출을 받고 온 무관한 기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덮쳐서 소란을 피우면 배차를 넣은 진짜 손이 흔적을 끊고 도망칠 뿐입니다."

아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지만 시우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자 반박하지 못했다.

"그럼 저 차를 그냥 두고 보자는 겁니까?"

"게이트를 열어 주지 않으면 됩니다."

시우가 앤서를 향해 돌아섰다.

"경비실에 지침을 내리세요. '선수단 훈련 후 시설 청소 지연'을 사유로 대고 남쪽 화물 게이트 개방을 여섯 시 직전까지 보류시키세요."

"기사가 항의하면 어떻게 합니까?"

"구단 내부 절차상 규정이라고만 답하게 하세요. 그리고 차량 번호와 운송장 번호, 배차 호출 단말의 접수 번호만 원격 시스템으로 확보해 두십시오."

앤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전기를 쥐었다.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분석실 화이트보드 앞에는 붉은색 마커로 빼곡하게 채워진 타임라인이 그려져 있었다.

시우는 마커를 들고 기록된 시간들을 하나씩 선으로 연결했다.

15시 06분: 유지보수함 보조키 반출.
15시 08분: 카메라 자동 정렬 예약 생성.
15시 13분: 카메라 벽면 지향 및 구식 포인트 물리 링크 접속.
15시 14분: 보관실 앞 통로 정리 요청.
15시 15분 09초: 비공식 작업표 흑백 인쇄 완료.
15시 15분 30초: 6시 폐기물 직송 및 차량 직상차 특기사항 등록.
15시 17분: 남쪽 발판 접이식 상자 창고 이관.
15시 18분: 카트 2번 적치 구역 도착 및 폐기 대기함 내 은색 봉투 투입.
15시 35분: 외부 변경 배차 1톤 탑차 남쪽 외곽 도착.
18시 00분: 예정된 폐기물 일괄 반출 시각.

아서와 조 코치가 화이트보드에 적힌 시간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서가 떨리는 손으로 마커 선을 짚었다.

"이 모든 게 겨우 삼십 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단 말입니까……."

"우연이 겹친 것이 아닙니다."

시우가 마커 뚜껑을 닫았다.

"구단 내부의 정상적인 작업 흐름을 교묘하게 비틀어 놓았습니다. 보조키를 꺼내 대기함에 넣고 이를 폐기물로 위장해 외부로 실어 나르는 완벽한 일방통행로입니다."

"그 통로의 끝이 저 남쪽 게이트 밖 탑차군요."

조 코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한 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

벽에 걸린 전자시계는 어느덧 5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우의 망막 위로 푸른빛의 시스템 알림창이 조용히 떠올랐다.

[관찰]
나가는 문을 미리 열어 둔 자는 들어온 길을 다시 걷지 않는다.
남은 것은 바깥의 시간이다.

시우는 입꼬리를 가볍게 당기며 창을 닫았다.

남쪽 게이트 바깥에서 울리는 희미한 디젤 엔진 소리가 차가운 저녁 공기를 타고 흘러들고 있었다.

상대가 짜 놓은 시간표는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그 시간표의 마지막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경기장 밖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마침내 진짜 대치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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