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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에서 죽는 삼류 악당이 되었다7화

1화에서 죽는 삼류 악당이 되었다

1화에서 죽는 삼류 악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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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이것은 소장주님의 것입니다

새벽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시각 설가장의 후문이 조용히 열렸다.

말발굽에 두꺼운 천을 덧대 소리를 죽인 일행 넷이 산길을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선두에는 설가장의 소장주 설소운이 섰고 그의 곁에는 단출한 가죽옷 차림의 백위량이 나란히 달렸다. 그 뒤를 가문의 정예 무사인 하준과 오태가 삼엄하게 호위했다.

서늘한 새벽바람이 뺨을 스쳤다. 백위량은 고삐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목이 잘릴까 전전긍긍하던 처지였으나 지금은 장원의 귀빈 대접을 받으며 당당히 기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사람 팔자 참 알 수 없었다.

장원을 벗어나 북쪽으로 한 시진 남짓 달리자 풍경이 급격히 험악해졌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뾰족한 암벽들이 솟구쳤고 협곡 사이로 음산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망월곡(望月谷) 초입이었다.

말에서 내린 하준이 전방의 기괴한 바위들을 살피며 경고했다.

"여기서부터는 말이 다닐 수 없는 험로입니다. 칠성애로 이어지는 능선은 발을 헛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라 사냥꾼들도 발길을 꺼리는 악지입니다."

설소운이 백위량을 돌아보았다.

"백 형 길이 매우 험하오. 내 뒤를 바짝 따르시오."

"소장주님이야말로 조심하십시오. 소인은 사파 시절 산을 타던 버릇이 있어 제 몸 하나는 챙길 줄 압니다."

백위량은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시선은 쉴 새 없이 바위의 균열을 훑었다. 원작 소설 <천마강림>에서 묘사된 등반로는 머릿속에 선명했다.

"저쪽입니다. 벼락 맞은 고목 뒤편으로 돌아가면 완만한 길이가 나옵니다."

백위량이 가리킨 곳을 본 오태의 눈이 커졌다. 덤불에 가려져 있어 언뜻 보면 막다른 절벽처럼 보이는 틈새였다.

하준이 칼등으로 덤불을 쳐내자 사람 둘이 걸을 만한 좁은 길이 드러났다.

오태가 감탄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숨겨진 길을 어찌 아셨습니까?"

"사파 놈들은 도망칠 구멍부터 파 두는 법이지요. 살기 위해 눈여겨보았을 뿐입니다."

백위량은 능청스럽게 대꾸하며 앞장섰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신시(申時).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그 시각이 되어야만 계곡을 메운 운무가 걷히고 은월동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 능선을 타고 오른 지 두 시진. 마침내 일행은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칠성애 남쪽 단애에 도착했다.

계곡 바닥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자욱한 백색 운무로 가득 차 있었다. 차가운 냉기가 피어오르는 골짜기는 마치 괴수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듯했다.

오태가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안개가 너무 짙습니다. 이런 곳에서 동굴을 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설소운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백위량은 여유롭게 서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산마루에 걸치기 시작했다. 때가 되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곧 바람이 바뀔 겁니다."

백위량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골짜기 북서쪽 협곡에서 거센 칼바람이 불어 닥쳤다. 냉랭한 기류가 한순간에 방향을 틀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계곡 바닥을 짓누르고 있던 짙은 안개가 거짓말처럼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안개가 흩어지며 드러난 절벽 중턱에 거대한 암벽의 갈라진 틈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빽빽하게 얽힌 덩굴풀에 가려져 평소라면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은밀한 동굴이었다.

은월동(隱月洞).

원작에서 굴러떨어진 설소운이 기적처럼 기어들어 갔던 바로 그 동굴이었다.

게다가 동굴 입구 주변의 바위틈에는 핏빛처럼 붉은 잎사귀를 지닌 풀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하준이 다가가 잎사귀 냄새를 맡더니 눈을 크게 떴다.

"적심초(赤心草)입니다! 그것도 이렇게 커다란 군락은 난생처음 봅니다! 부상당한 무사들을 치료하고도 남을 양입니다!"

하준과 오태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백위량을 바라보았다. 바람길의 변화를 짚어낸 것도 모자라 귀한 지혈초의 군락지까지 귀신같이 맞혀낸 것이다. 설소운의 눈빛 역시 깊은 경외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백 형 식견이 대체 어디까지 닿아 있는 것이오? 진정 하늘이 우리 가문을 돕기 위해 형님을 보내주셨소."

'원작 지식 앞에서는 천하의 책사도 한낱 범인에 불과하지.'

백위량은 속으로 휘파람을 불며 침착하게 말했다.

"하 형과 오 형은 이곳에서 적심초를 채취하며 주변 동태를 살펴 주십시오. 동굴 안은 협소하니 저와 소장주님 둘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두 무사는 이제 백위량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를 기세였다.

설소운이 검자루를 쥐며 백위량의 앞을 막아섰다.

"동굴 안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오. 내가 앞장설 테니 백 형은 내 등 뒤에서 떨어지지 마시오."

"예 소장주님만 믿겠습니다."

백위량은 냉큼 설소운의 등 뒤로 숨었다. 위험한 일은 주인공이 도맡고 열매는 안전하게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조력자의 참된 도리였다.

동굴 내부는 깊고 서늘했다. 어두컴컴한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앞쪽에서 은은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도착한 동굴의 중심부.

거대한 원형 석실 천장의 갈라진 틈새로 햇살이 한 줄기 빛기둥이 되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마치 숨겨진 달빛이 내리쬐는 것 같아 은월동이라 불리는 장소였다.

빛기둥이 닿는 석대 한가운데 기이한 영약이 자라나고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띤 붉은빛의 삼. 투명한 옥처럼 맑은 뿌리 표면에서 은은한 훈기와 청량한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만년지상(萬年地蔘)!

복용하기만 하면 20년의 순양내공을 단숨에 채워 주는 전설의 영약이었다.

"이 이것은……?!"

설소운이 숨을 들이켜며 걸음을 멈췄다. 삼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혼한 영기는 무공을 익힌 자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감탄할 틈은 길지 않았다.

샤아아아악!

석실 구석의 석순 뒤편에서 소름 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어둠 속에서 번뜩인 것은 두 개의 붉은 안광이었다.

길이가 두 장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며 솟구쳐 올랐다. 뱀의 온몸은 붉은 쇳조각 같은 비늘로 덮여 있었고 머리 위에는 뿔 같은 돌기가 돋아나 있었다.

적린사(赤鱗蛇)!

만년지상의 순양지기를 탐식하며 동굴을 지켜온 맹독의 영물이었다.

"크아아악!"

적린사가 번개 같은 속도로 설소운의 목덜미를 향해 아가리를 쩍 벌렸다.

챙!

설소운의 청강검이 전광석화처럼 뱀의 목을 베었으나 허공을 울린 것은 둔탁한 쇠붙이 소리뿐이었다. 검날이 비늘에 튕겨 나가며 설소운의 손목이 저릿하게 떨렸다.

"비늘이 강철 같소!"

설소운이 물러서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적린사는 꼬리를 바닥에 후려치며 더욱 맹렬하게 쇄도했다. 이류 중급인 설소운의 검기로는 적린사의 갑피를 뚫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백위량의 날카로운 고함이 석실을 뒤흔들었다.

"소장주님! 저놈은 꼬리를 치기 직전에 머리를 왼쪽으로 세 치 비틉니다! 그때 턱밑의 하얀 역린을 노리십시오!"

원작을 수십 번 정독한 고인물의 정밀한 공략법이었다. 설소운이 사투 끝에 찾아냈던 적린사의 유일한 급소였다.

설소운은 단 반 푼의 의심도 품지 않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슈우욱!

적린사가 거대한 꼬리를 휘두르며 머리를 왼쪽으로 비틀었다. 백위량의 말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움직임이었다. 뱀의 턱밑에 숨겨져 있던 백색 비늘 하나가 허공에 노출되었다.

"하압!"

설소운의 검끝에 푸른 검기가 한 점 송곳처럼 응축되었다. 설가장의 비전인 쇄옥검(碎玉劍)의 정수가 허공을 갈랐다.

푸우욱!

"키에에엑!"

단말마의 비명이 동굴을 찢었다. 청강검이 적린사의 역린을 관통하여 뇌수까지 단숨에 꿰뚫어 버린 것이다.

거대한 뱀의 몸뚱이가 바닥으로 쿵 무너져 내렸다. 푸른 피가 바닥을 적시며 괴수의 숨이 끊어졌다.

동굴 안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설소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검을 거두었다.

"백 형……!"

설소운이 떨리는 눈으로 백위량을 돌아보았다. 찰나의 순간에 괴물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어 본 식견이었다. 백위량의 외침이 없었다면 독무에 중독되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

백위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석대 위의 만년지상 앞으로 다가갔다. 붉은 삼의 표면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설소운이 다가와 경외 어린 눈으로 삼을 바라보았다.

"강호의 기서에서나 보았던 전설의 영약 만년지상이 분명하오. 족히 수십 년의 내공을 단숨에 증폭시켜 준다는 신물……."

설소운이 진중한 표정으로 백위량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백 형 이 기연은 온전히 형님의 것이오. 형님이 길을 열었고 형님이 괴수의 약점을 짚어 주었소. 형님이 이것을 복용하여 무공을 높이시오. 그것이 강호의 도리요."

백위량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뭐라고?! 내가 저걸 먹으라고?!'

백위량은 속으로 기겁했다. 만년지상은 극양(極陽)의 영약이다. 정통 심법의 기반이 없는 자가 먹었다가는 기혈이 역류하고 혈관이 터져 숯덩이가 되어 즉사한다.

삼류 잡탕 내공밖에 없는 자신이 저걸 삼켰다가는 3초 만에 피를 뿜고 쓰러질 판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먹어서 이류가 되어봤자 혈랑채주 조패의 칼날 아래 고기반죽이 될 뿐이다.

오직 타고난 기골과 정통 순양심법을 지닌 설소운만이 이 약력을 온전히 흡수해 일류 고수로 각성할 수 있었다. 설소운이 강해져야 자신도 안전해진다.

'내 목숨을 지켜줄 천하제일 고기 방패는 바로 너다 이 바보야!'

백위량은 즉시 세상에서 가장 고결하고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설소운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소장주님! 어찌 그런 당치도 않은 말씀을 하십니까!"

"백 형?"

"소인은 본래 무재가 미천한 삼류 한량에 불과합니다. 이런 지고한 영약을 탐하는 것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거는 격이며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죄악입니다!"

백위량은 목소리에 충정과 비장함을 담아 열변을 토했다.

"지금 설가장의 앞날을 보십시오! 장흑산은 달아났고 북문을 빠져나간 배후 세력의 칼날이 장원의 목덜미를 겨누고 있습니다. 조만간 몰아칠 피바람 속에서 가문을 지키고 의기를 바로세울 수 있는 검은 오직 소장주님의 검뿐입니다!"

백위량은 만년지상을 조심스럽게 뽑아 올려 설소운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영약은 소장주님의 대업을 위해 하늘이 예비해 둔 것입니다! 소장주님께서 강해지셔야 가문이 살고 제 목숨 또한 안전할 수 있습니다. 부디 사양하지 마시고 지금 당장 복용하십시오!"

설소운의 눈동자가 세차게 요동쳤다.

강호의 무인들은 10년의 내공을 얻기 위해서라면 부모 형제도 배신하고 피비린내 나는 혈투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물며 20년의 순양내공을 채워주는 기연을 눈앞에 두고도 오직 가문의 안위와 소장주의 대업을 위해 이토록 아낌없이 양보한단 말인가!

'백 형…… 그대는 진정 이 강호에 남아 있는 마지막 의사(義士)요 내 영혼의 은인이다!'

설소운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감격에 목이 메었다.

"백 형의 그 숭고한 뜻…… 내 평생 뼈에 새기고 결코 잊지 않겠소.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형님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것이오!"

'그래 바로 그거야! 그 말을 듣고 싶었어!'

백위량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지만 겉으로는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흩어지기 전에 어서 섭취하고 운기조식에 들어가십시오. 제가 곁을 지키겠습니다."

"알겠소!"

설소운은 붉은 만년지상을 입에 넣고 단숨에 삼켰다.

꿀꺽.

영약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마자 설소운의 몸에서 붉은빛 서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화아아악!

동굴 전체의 공기가 후끈 달아오르며 설소운의 단전에서 거대한 용트림 같은 파공음이 울렸다. 온몸의 혈관이 붉게 달아오르며 맹렬한 순양진기가 전신 경락을 휘몰아쳤다.

설소운은 바닥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급히 가문의 비전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백위량은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에 밀려 서너 걸음 물러섰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지만 입가에는 주체할 수 없는 후련한 미소가 걸렸다.

'좋았어! 드디어 첫 번째 기연을 떠먹였다!'

이제 저 녀석이 눈을 뜨면 20년 순양내공을 장착한 특급 괴물이 탄생한다. 혈랑채든 뭐든 다 덤벼보라지. 내 앞에는 천하제일의 방패가 버티고 서 있을 테니!

백위량은 품속에서 육포 한 조각을 꺼내 질겅질겅 씹으며 붉은 안개에 휩싸인 설소운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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