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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에서 죽는 삼류 악당이 되었다5화

1화에서 죽는 삼류 악당이 되었다

1화에서 죽는 삼류 악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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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빈채의 등불

동쪽 빈채의 문이 닫히자 백위량은 창호 앞에 멈춰 섰다.

방 안에는 등잔 하나와 낮은 탁자 하나뿐이었다. 창호지는 새것이었고 달빛을 받아 희게 빛났다. 바깥에서 보면 이 방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을 만큼 좋은 창호였다.

조금 전 지붕 위에서 번뜩인 빛도 그 창호를 향하고 있었다.

문가에 선 설수연이 팔짱을 꼈다.

"무엇을 봤습니까?"

"안마당 서쪽 지붕에서 빛이 두 번 꺾였습니다. 빈채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

백위량은 대답 대신 등잔을 가리켰다.

"불을 켜십시오."

설수연은 눈썹을 찌푸렸지만 심지를 세웠다. 노란 불빛이 방 안을 채우자 창호 위로 사람 그림자가 또렷하게 비쳤다.

백위량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림자도 따라서 멀어졌다.

"이 방은 담장 너머에서도 보일 겁니다. 포박된 사파 무사가 어느 방에 갇혔는지 확인하기에는 이보다 쉬운 곳이 없지요."

설수연의 시선이 창호와 백위량 사이를 오갔다.

"누군가가 당신의 자리를 확인했다고 보는군요."

"장부에는 장원 안의 불빛을 기다린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서문에서 온 놈들도 불빛을 보면 마구간으로 유인하라는 지시를 받았고요."

"그 신호가 다시 왔으니 네가 여기 있다는 뜻을 전하려 했다는 말이다."

"그렇습니다."

백위량은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말은 쉬웠다. 문제는 다음 신호가 오기 전에 누군가가 창호 너머로 쇠뇌를 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은전 백 냥은 사람을 충분히 부지런하게 만들었다.

설수연이 낮게 말했다.

"그럼 이 방의 불을 끄겠습니다."

"그러면 저쪽도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당신을 창가에 세울 수는 없어요."

백위량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말에는 의심뿐 아니라 책임감도 섞여 있었다. 설수연은 자신이 죽으면 골치 아픈 증인을 잃는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도 고마웠다.

"창가에 서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도망칠 생각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자는 겁니다."

설수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설가장에서 도망치겠다고?"

"도망치려는 사파 말단이 창문을 반쯤 열고 손목 붕대를 푼다면 바깥의 놈도 믿기 쉽겠지요. 저를 기다리던 놈이 있다면 신호를 보낼 겁니다."

"그리고 그 신호를 보낸 자를 잡는다."

"신호를 받는 자도요."

백위량은 창 밖 담장을 바라보았다.

"빛이 지붕에서만 끝난다면 장원 안의 전달책입니다. 하지만 저쪽에서 빛을 본 뒤 수로문이나 약방 담장 쪽이 움직이면 밖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설수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검집 끝을 천천히 두드렸다.

"네가 일부러 틀린 정보를 흘려 나를 끌고 나가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백위량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서 저를 묶어 두고 무사들을 숨기십시오. 제가 창문으로 나가려 하면 바로 베어도 됩니다."

설수연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목숨을 걸고 믿으라고 하는군요."

"목숨 말고는 내놓을 것이 없어서요."

그 말은 진심이었다.

설수연이 문을 열었다. 복도에 있던 젊은 무사가 고개를 들었다.

"하준. 안마당 서쪽 처마와 약방 뒤 담장을 막아. 눈에 띄지 않게."

"예."

"사람 하나라도 담장을 넘으면 다치게 잡아. 죽이지는 마라."

하준이 물러가자 설수연은 백위량의 손목 밧줄을 확인했다. 묶인 자리가 다시 팽팽해졌다.

"창문은 내가 연다. 네가 멋대로 한 발이라도 움직이면 작전은 끝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날 밤 빈채의 등잔은 꺼지지 않았다.

백위량은 탁자 앞에 앉아 손목의 붕대를 천천히 풀었다. 상처를 살피는 척했지만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바람이 들어와 등불의 심지를 흔들었다.

바깥에서는 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설수연은 처마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백위량의 옆얼굴은 창호 위 그림자로 번졌다. 멀리서 보면 포박이 헐거워진 사내가 빈채 탈출을 고민하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백위량의 손바닥에는 땀이 찼다.

이 작전이 틀리면 설수연은 그를 더욱 의심할 것이다. 맞더라도 신호를 받은 놈이 쇠뇌를 들고 있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편하게 누울 밤은 아니었다.

그때였다.

안마당 건너편에서 작은 빛이 떠올랐다.

약방 뒤편의 낮은 지붕이었다. 등불은 한 번 길게 흔들린 뒤 두 번 짧게 떨렸다. 그리고 곧장 꺼졌다.

백위량이 숨을 죽인 채 속삭였다.

"저기입니다."

설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불빛이 꺼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백위량은 빛보다 그 뒤를 보았다. 약방 담장 아래의 어둠이 잠깐 일그러졌다. 누군가가 몸을 낮추고 수로문 쪽으로 물러나는 그림자였다.

"담장 밖입니다. 하준에게 수로문 길목을 막으라 하십시오."

설수연이 손가락을 튕겼다. 처마 끝에 엎드려 있던 무사 하나가 소리 없이 뛰어내렸다.

동시에 지붕 위에서 기와가 삐걱거렸다.

등불을 든 사람이 아래로 내려오려다 발을 헛디뎠다. 작은 비명과 함께 불빛이 흔들렸다.

설수연의 비도가 어둠을 갈랐다.

퍽!

비도는 사람의 소매를 기와에 박았다. 등불을 든 여인이 주저앉았다.

"움직이지 마."

차가운 목소리가 안마당을 눌렀다.

여인은 고개를 들었다. 약방에서 몇 번 본 시녀였다. 둥근 얼굴에 아직 앳된 기색이 남은 연화였다.

그녀는 등불을 놓지 못한 채 떨었다.

"수연 아가씨. 저는… 저는 시킨 대로 했을 뿐입니다."

"누가 시켰지?"

"곽 총관님이요."

설수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곽노삼은 묶여 있다."

연화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분이 잡히기 전에 말했습니다. 만일 일이 틀어지면 약방에 글이 올 거라고요. 백위량이 장원 안에 있으면 불빛을 보이라고… 그러면 제 동생을 돌려보내 준다고 했습니다."

백위량은 창가에서 몸을 일으켰다.

"동생이 어디 있습니까?"

연화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북문 밖 마구간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는 아무 소식도 없었어요."

목소리에는 거짓을 꾸밀 여유가 없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쥔 협박은 가장 싼 충성보다 질겼다.

설수연이 말했다.

"바깥에 신호를 받은 자가 있다. 그놈도 아느냐?"

"전 몰라요. 불빛을 보이면 약방 뒤 담장 아래에 종이를 두라고만 했습니다."

그 순간 담장 쪽에서 장봉 부딪히는 소리가 터졌다.

"멈춰라!"

하준의 외침이었다.

백위량의 얼굴이 굳었다.

"종이부터 막으십시오."

설수연이 달리기 시작했다. 백위량도 뒤따르려 했지만 밧줄에 묶인 손이 몸을 잡아당겼다.

"너는 여기 있어!"

"연화가 약방을 말했습니다. 아직 안에 남은 것이 있을 겁니다."

설수연이 걸음을 멈췄다. 망설임은 아주 짧았다.

"하준이 담장을 맡는다. 너는 내 눈앞에서 약방으로 간다."

약방 문을 열자 쓴 약재 냄새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선반 위 약초 꾸러미는 가지런했지만 바닥의 발자국은 어지러웠다.

백위량은 등잔을 들어 약재함 아래를 비췄다.

"연화 손톱에 붉은 약가루가 있었습니다. 피를 멎게 하는 적송분입니다. 약방 안에서도 맨 아래 서랍에만 넣어 둡니다."

설수연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장 낮은 약재함을 잡아당겼다. 안쪽 판자가 얇게 들썩였다.

하준이 돌아와 칼끝으로 판자를 들어 올렸다.

그 아래에는 은전 꾸러미와 기름종이에 싼 처방전 뭉치가 있었다. 은전에는 흑풍채의 낙인이 없었다. 대신 설가장의 봉인이 찍힌 작은 약재 운반패가 함께 나왔다.

설수연이 처방전 한 장을 펼쳤다.

"설가장의 인장이다."

"가짜입니다."

백위량은 종이 끝을 가리켰다.

먹빛이 너무 번져 있었다. 진짜 인장은 붉은 주사 위에 찍혀 가장자리가 선명했지만 이 종이는 검은 먹을 덧칠해 모양만 흉내 냈다.

그 아래에는 작은 세 줄 표식이 있었다.

백위량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원작에서 설가장이 불탄 뒤 약방 잿더미에서 발견된 표식이었다. 그때는 누구도 뜻을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표식이 찍힌 처방전은 북문을 통과한 약재 마차의 짐칸 바닥에서 나왔다.

지금은 아직 장원이 서 있었다.

"이 표식은 약재 마차의 배송표입니다. 새벽 종이 울리기 전에 북문을 나가는 마차에 붙습니다."

설수연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디로 가는 마차지?"

"처방전에는 남쪽 약재상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목적지는 다를 겁니다. 쌀과 약재를 빼돌린 장부까지 있었다면 흑풍채는 물건만 받은 게 아닙니다. 설가장 안의 사정도 함께 넘겨받았겠지요."

그때 약방 밖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설소운이 검을 든 채 문으로 들어왔다.

"수연. 수로문 쪽 사내는 붙잡지 못했소. 담장 바깥에 밧줄을 걸어 두고 도망쳤소."

그는 탁자 위의 처방전과 은전을 보고 눈을 좁혔다.

"이것들은 무엇이오?"

설수연이 짧게 설명했다. 설소운은 연화가 잡혔다는 말에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북문 마차는?"

"당직에게 물어야 합니다."

하준이 곧장 뛰어나갔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 백위량은 처방전 한 장을 더 넘겼다.

맨 끝 장에는 약재 이름 대신 숫자와 물건 수량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 줄의 붉은 점은 이미 지워져 있었다.

마차가 떠났다는 뜻이었다.

하준이 숨을 몰아쉬며 돌아왔다.

"가주님 허가를 받은 약재 마차 한 대가 자정 전에 나갔다고 합니다. 북문 당직은 봉인이 있어 보냈답니다. 마부와 짐꾼의 얼굴은 어두워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설소운의 손이 검자루를 세게 쥐었다.

"추격대를 보내겠소."

"지금은 길을 나누어야 합니다."

백위량이 말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마차가 약재를 싣고 남쪽으로 갔다면 현상금 사냥꾼도 그 길을 노릴 겁니다. 백 냥의 표적이 설가장 안에 있다는 정보를 함께 실었을 수 있습니다."

설소운의 얼굴이 굳었다.

"너를 노리는 자들이 더 온다는 말이오?"

"이미 온 놈들보다 신중한 놈들이요."

백위량은 처방전의 세 줄 표식을 내려다보았다.

원래라면 이 작은 표식은 불타 버릴 장원의 잿더미에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이 사건을 바꿔 놓았기에 더 빨리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고 위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소설에서 정해진 길을 잃은 칼날들이 전보다 가까운 곳을 헤맬 수 있었다.

설수연이 은전 꾸러미를 다시 묶었다.

"가주님께 보고한다. 연화는 산 채로 심문한다. 북문 밖에는 소운 오라버니가 추격대를 보내 주세요."

설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백위량의 손목 밧줄을 바라보았다.

"그는?"

설수연은 잠시 망설였다.

"내가 데리고 갑니다."

백위량은 뜻밖이라는 듯 눈을 들었다.

설수연이 덧붙였다.

"감시는 그대로예요. 다만 빈채 창호 앞에 혼자 두지는 않겠습니다."

그 말은 친절이 아니었다. 그래도 백위량은 그 안에서 처음으로 작은 틈을 보았다.

자신을 믿는 틈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말이 장원의 칼을 움직일 수 있다는 틈이었다.

약방 밖으로 나오자 밤공기가 차갑게 뺨을 스쳤다. 안마당 지붕은 다시 어두웠다.

등불을 든 손 하나는 붙잡았다.

그러나 북문을 나간 마차와 담장을 넘어 달아난 그림자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어딘가에는 은전 백 냥짜리 이름이 실린 종이가 더 많이 퍼지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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