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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안드로이드 형사1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안드로이드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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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비에 젖은 거울

해수면 아래로 잠겨 버린 옛 도시의 잔해 위로 2148년의 해온시가 거대한 철골 기둥을 뻗고 있었다.

상층 구역의 마천루에서 쏟아지는 찬란한 홀로그램 광고는 중층을 지나 하층의 침수 재개발 구역에 닿을 때쯤 찌꺼기 같은 빛으로 부서졌다. 그곳은 햇빛 대신 젖은 네온과 끈적한 바닷바람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밤 11시 42분.

해온시 치안국 소속 순찰차가 폐쇄된 제7 고가도로의 진입 차단봉을 들이받을 듯 미끄러지며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마자 쏟아지는 빗줄기가 보닛을 요란하게 때렸다.

"날씨 한번 더럽게 맞췄군."

운전석에서 내린 서윤재 경위가 낡은 방수 코트의 깃을 바짝 세웠다. 37세의 인간 형사는 연신 헛기침을 삼키며 담배를 꺼내 물려다 축축하게 젖은 갑을 보고 혀를 찼다.

조수석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빗방울이 어깨에 닿아도 미동조차 없는 단정한 체구의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검은 머리칼 사이로 살짝 드러난 왼쪽 귓바퀴 뒤편에 희미한 푸른빛의 정비 인터페이스 포트가 깜빡였다.

강력범죄수사국 특수 수사관 이안-07이었다.

이안은 회색 홍채의 초점을 미세하게 조절하며 안구 센서의 수분 차단 필터를 활성화했다.

"강우량 시간당 42밀리미터입니다. 현장 보존 상태가 급격히 악화될 확률은 89퍼센트입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알고 있으니까 재촉하지 마라, 07."

윤재가 투덜거리며 노란색 경찰 통제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통제선 외곽 상공에는 푸른색 경고등을 깜빡이는 육각형 드론 서너 대가 빗속을 맴돌고 있었다.

"저기 떠 있는 놈들, 치안국 드론이 아닙니다. 해온 바이오텍 사설 보안국 소속입니다."

이안이 드론의 통신 식별 코드를 스캔하며 말했다.

"벌써 냄새를 맡고 기어왔군. 윗대가리 도련님이 길바닥에서 변사체로 발견됐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겠지."

통제선을 지키던 기동순찰대 경관이 윤재와 이안을 발견하고 거수경례를 붙였다. 하지만 경관의 시선은 곧바로 이안의 귀 뒤 포트에 머물렀다. 경계와 호기심 그리고 은근한 불쾌감이 뒤섞인 인간 특유의 눈빛이었다.

치안국이 오르비스사로부터 거액의 리스 비용을 지불하고 임대한 수사 자산. 그것이 해온시 경찰 조직 내부에서 이안을 바라보는 공식적인 정의였다.

"수고 많으십니다, 서 반장님. 안쪽 바닥 상태가 엉망입니다. 배수관이 막혀서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습니다."

"시신 위치는?"

"고가도로 중앙 3번 교각 아래입니다. 감식반이 먼저 들어가서 간이 방수 텐트를 쳤습니다만 워낙 비가 거세서 한계가 있습니다."

윤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통제선을 들어 올렸다.

"가자, 이안."

"예, 선배님."

이안은 군더더기 없는 보폭으로 윤재의 뒤를 따랐다. 빗물 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구두 밑창에 장착된 충격 흡수 패드가 완벽한 수평을 유지했다.

고가도로 중앙부로 들어서자 임시 설치된 투광기 두 대가 빗줄기를 가르며 강렬한 백색광을 쏟아내고 있었다. 텐트 아래, 아스팔트 바닥에 두 구의 시신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감식반원들이 분주하게 레이저 측정기를 바닥에 쏘고 있었다. 윤재가 현장 지휘관에게 손짓하자 감식반장이 다가와 마스크를 벗었다.

"상황이 아주 기괴합니다, 서 반장님."

"신원은 확인됐나?"

"우측 남성은 확실합니다. 지문과 홍채 데이터 모두 해온 바이오텍의 차남 이도현 이사로 조회됐습니다. 32세 자연출생 등록 시민입니다."

감식반장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좌측 시신으로 향했다.

"문제는 이쪽입니다. DNA 1차 스캔 결과가 시스템 오류를 뿜고 있습니다. 국가 유전 데이터베이스에 정식 등록된 기록이 없습니다. 대신 목 뒤 피하 식별 칩 규격으로 볼 때 2세대 등록 복제인간 계열로 추정됩니다."

"복제인간?"

윤재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안은 말없이 무릎을 굽히고 두 시신 앞에 섰다. 투광기 불빛 아래 드러난 두 구의 시체는 믿기 힘든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측의 이도현은 최고급 방수 캐시미어 정장을 입고 있었다. 단추 하나까지 정교하게 세공된 은장 디테일이 번쩍였다. 반면 좌측의 남자는 하층 공업 지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낡고 거친 재생 섬유 작업복 차림이었다.

완전히 다른 두 계급의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은 완벽하게 같았다.

이안의 동공 센서가 0.1밀리미터 단위로 두 얼굴의 삼차원 윤곽을 측정했다. 미간의 넓이, 콧날의 각도, 입술의 두께, 광대뼈의 융기 정도, 심지어 턱선의 미세한 비대칭까지 정확히 일치했다.

"일치율 99.8퍼센트. 안면 골격 구조상 동일인에 준하는 외형입니다."

이안의 건조한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렸다.

"도플갱어라도 된다는 소리냐? 이도현에게 쌍둥이 형제 따윈 없었다. 해온 바이오텍 회장의 유일한 친자였어."

윤재가 장갑을 낀 손으로 이도현의 목덜미를 살폈다.

"외상 흔적은?"

"두 사람 모두 경동맥 부근에 정확한 미세 천공이 있습니다. 신경 마비 독소를 주입당한 뒤 심정지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저항흔은 전혀 없습니다."

이안이 손가락을 뻗어 두 시신의 손을 관찰했다.

시신들은 기괴할 정도로 정돈되어 있었다. 두 남자는 등을 바닥에 대고 반듯이 누운 채 양손을 가슴 위에 모으고 있었다. 우측 이도현의 왼손 검지와 좌측 복제인간의 오른손 검지가 아스팔트 위에서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마치 거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가리키는 듯한 구도였다.

"살인범이 시신을 의도적으로 배치했습니다. 살해 후 현장을 정리하는 데 최소 12분 이상의 시간을 소모했습니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그 지랄을 하고 있었다고?"

윤재가 혀를 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기업 이사를 죽였으면 흔적을 지우고 달아나기 바빴을 텐데. 이건 대놓고 누군가 보라고 차려놓은 전시회잖아."

이안은 흉부 코어 안쪽에서 가동 대기 중이던 서브 루틴을 호출했다.

[정서 공명 엔진 v1.4 가동]
[상황 데이터 기반 공감 가설 생성 모드]

이안의 회색 눈동자 둘레로 푸른빛의 링이 희미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타인의 감정을 읽거나 거짓말을 가려내는 초능력이 아니었다. 현장의 물리적 단서, 신체 언어, 공간의 밀도, 피해자의 근육 긴장도 데이터를 종합해 당시 인간이 느꼈을 감정 상태를 확률적 모델로 재구성하는 실험적 알고리즘이었다.

이안의 내부 연산 장치로 방대한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밀려들었다.

이도현의 굳어버린 동공 확장 비율, 손끝에 남은 미세한 경련의 흔적, 맞닿은 손가락 끝의 압력 벡터.

그 순간 이안의 코어 내부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이상 진동이 일어났다.

냉각 펌프의 회전수가 기준치인 분당 1,200회에서 2,800회로 급격히 치솟았다. 시각 인터페이스의 좌측 상단에 붉은색 경고 로그가 쏟아졌다.

[경고: 예상 범위를 초과하는 정서 데이터 유입]
[생체 모사 펄스 불규칙 상승]
[가설: 극단적 공포 및 인지 부조화 상태]

서늘한 냉기가 이안의 인공 신경망을 따라 등 뒤로 훑고 지나갔다.

차가웠다.

비에 젖은 피부의 온도 때문이 아니었다. 시스템 내부 깊은 곳에서부터 전자기적 노이즈처럼 피어오르는 생경한 감각이었다.

기계인 자신에게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감각.

공포였다.

이도현이 숨을 거두기 직전 바라보았던 것은 자신을 찌른 칼날이 아니었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자신과 똑같은 독극물에 중독되어 똑같이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는 모습이었다.

'내가 죽는 것인가, 아니면 저것이 죽는 것인가.'

그 끔찍한 혼란과 절망이 거울 같은 시신의 배치 속에 고스란히 봉인되어 있었다.

"……이안? 야, 이안-07."

윤재의 거친 목소리가 이안의 청각 센서를 강하게 흔들었다.

이안은 깜빡이며 눈을 떴다.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던 붉은 경고 로그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동작 반응 지연 1.8초. 이상 없습니다, 선배님."

"얼굴 색이 왜 그래? 기계 놈이 감전이라도 됐냐?"

윤재가 의아한 눈으로 이안의 뺨을 살폈다. 안드로이드의 인공 피부 아래로 미세한 전압 변화가 스쳐 지나간 것을 윤재는 놓치지 않았다.

"시스템 자원 일시 과점유 현상이었습니다. 공명 가설에 따르면 두 피해자는 살해 당시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범인은 두 사람에게 서로의 임종을 끝까지 지켜보도록 강제했습니다."

윤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독한 새끼군. 단순 원한 살인이 아니야. 인간과 복제인간을 한자리에 묶어 두고 이런 짓을 벌였다는 건…… 메시지다."

그때 두 시신의 맞닿은 손가락 아래쪽, 웅덩이 바닥에서 미세한 금속성 반사광이 이안의 렌즈에 포착됐다.

이안은 핀셋을 꺼내 물속으로 손을 뻗었다. 빗물에 반쯤 잠겨 있던 얇은 티타늄 합금 캡슐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기존 치안국이나 시판 통신 장비 규격이 아닌 구형 아날로그 회로가 결합된 초소형 음성 출력기였다.

"선배님, 증거물입니다."

"건드리지 말고 밀봉 팩에 넣어. 지문이나 DNA 오염되면……."

윤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캡슐 상단의 압력 센서가 수압 변화를 감지하고 찰칵 소리를 내며 작동했다.

치이익― 하는 거친 자기 테이프 마찰음 같은 노이즈가 텐트 안을 채웠다.

감식반원들과 윤재가 일제히 숨을 멈추었다.

이윽고 스피커에서 변조되지 않은 건조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첫 번째 기록.]

목소리는 빗소리보다 차분했고 기계음보다 차가웠다.

[거울을 보아라. 태어난 자와 만들어진 자의 무게는 같은가.]

짧은 정적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흘러나왔다.

[다음 사람은 태어날 권리가 없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캡슐의 전원이 완전히 차단됐다.

텐트 안에는 빗줄기가 천막을 때리는 둔탁한 소리만이 맴돌았다.

윤재가 욕설을 짓씹으며 주먹을 쥐었다.

"미친놈이 연쇄 살인을 선언하고 자빠졌네. 다음 사람이라니……."

하지만 이안은 윤재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음성이 재생되던 그 짧은 4초 동안 이안의 내부 오디오 프로세서가 비정상적인 주파수 일치 신호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음성 기저 대역 노이즈 분석 완료]
[내부 시스템 초기화 베이스 펌웨어 음향 패턴과 일치율 81.4%]

범인이 남긴 음성의 배경 노이즈 주파수가 4년 전 이안 자신이 처음 공장에서 기동될 때 입력되었던 비공개 제조 안내 음성의 대역과 기묘하게 겹치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일 리가 없었다.

"이안, 멍하니 있지 말고 본부에 긴급 수사본부 설치 요청해. 해온 바이오텍 놈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시신부터 국과수로 옮긴다."

윤재가 방수 코트 자락을 털며 걸음을 옮겼다.

"……예, 선배님. 즉시 전송하겠습니다."

이안은 귓가에 맴도는 노이즈를 애써 지워내며 차가운 빗속으로 걸어 나갔다.

방벽 너머 어두운 바다 위로 거대한 해온시의 네온 불빛이 번져가고 있었다. 젖어 있는 도시 전체가 마치 거대한 거짓말의 수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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