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싹 쓸어서 만렙까지

5화: 내 이름을 건 청소
경기 북부 위탁 청소반 사무실의 형광등은 낮에도 잉잉거리는 소리를 냈다.
플라스틱 마감재가 벗겨진 책상 위에는 서류 뭉치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 서류들의 맨 위쪽에는 붉은색 결재 도장이 찍힌 공문 한 장이 올려져 있었다.
전날 메아리 광맥 현장에서 겪었던 무리한 흡수 탓에 관자놀이가 여전히 미세하게 욱신거렸다. 허리춤에 차고 온 장비 가방 바닥에는 봉인해 둔 검은 가시 조각이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 도현은 턱에 힘을 주고 마스크 끈을 매만졌다. 몸 상태를 수습할 틈도 없이 사무실에 불려 온 참이었다.
"이게 지금 제정신으로 작성한 보고서야?"
위탁 현장 감독 박계장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서류를 내려쳤다. 찌그러진 종이컵 속 커피가 출렁이며 책상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메아리 광맥 긴급 청소 현장 중지? 공명성 마력 감지로 인한 전문 봉쇄반 요청? 최주혁 감독한테 얘기 다 들었어. 위탁 청소반 놈들이 무섭다고 몸을 사리는 바람에 당일 청소 작업이 통째로 멈췄다며!"
박계장의 번들거리는 눈이 책상 건너편에 선 박기문 반장을 노려보았다.
"거기 들어간 인력 일당은 물론이고 현장 지연 손해배상까지 태성 길드 쪽에서 클레임 들어오면 어쩔 거야? 그 손해를 반장이 다 갚을 수 있어?"
박기문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평생 하청 인력으로 일하며 부당한 억지를 참아내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의 얼굴이었다. 박계장은 그 모습에 기고만장해져 삿대질을 계속했다.
"다음 달 계약 연장은 꿈도 꾸지 마. 위탁반 일당에서 수당 차감하고 이번 건 책임 소재 확실히 가릴 테니까."
"책임 소재라면 이미 확실하게 가려져 있습니다."
사무실 문가에 서 있던 강도현이 걸어 나왔다.
도현의 손에는 얇은 흑백 출력물 세 장이 쥐어져 있었다.
박계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또 뭐야. F급 신입 주제에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야?"
"메아리 광맥 현장 측정 로그입니다."
도현은 출력물 첫 장을 박계장의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입구에서 채집한 공명성 마력 분진의 수치 변화 그래프입니다. 물 분사 방식을 썼다면 오염 물질이 팽창해서 통로 전체가 붕괴했을 겁니다. 이건 제가 임의로 작성한 게 아니라 관리청 표준 측정기 메모리에서 직접 추출한 원본 데이터입니다."
"뭐, 데이터?"
"그리고 이건 두 번째 장입니다."
도현은 두 번째 종이를 박계장의 턱밑으로 밀어 넣었다.
"현장에서 발생한 인력 압착 부상 기록 및 최주혁 감독 본인이 직접 서명한 현장 중지 동의서입니다. 현장 책임자가 위험을 인정하고 사인을 남겼는데 이제 와서 청소반의 독단적인 거부라고 주장하시면 공문서 위조나 거짓 보고로 관리청 감사에 들어갈 텐데요."
박계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종이에 적힌 최주혁의 지저분한 서명을 확인한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 미친 놈이…… 감사를 들먹여?"
"감사를 들먹이는 게 아닙니다."
도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공문서 세 번째 장을 펼쳤다.
"위탁 청소 계약서 제14조 2항. 현장 내 예기치 못한 2차 오염 폭발 위험이 확인될 경우 청소 인력은 작업을 즉시 중단하고 안전조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또한 상급 관리자가 이를 무시하고 진입을 강요해 사고가 발생할 경우 모든 민형사상 책임은 관리자에게 돌아간다."
도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박계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서명하신 동의서를 관리청 환경관리과에 접수해 드릴까요? 아니면 여기서 깔끔하게 수당 정상 지급으로 끝내시겠습니까?"
사무실 안이 쥐죽은 듯 정적에 휩싸였다.
박계장은 입술을 부르르 떨며 도현과 서류를 번갈아 보았다. 말 한마디 잘못 얹었다가 자신이 덤터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눈치였다.
"……씨발, 이번만 그냥 넘어간다. 당장 서류 치우고 나가!"
박계장이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빼앗아 서랍 속에 처박았다.
사무실을 나온 박기문 반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어깨는 젖은 솜처럼 무거워 보였다.
"도현아. 잘 해결되긴 했다만…… 박계장 저 사람, 앞으로 우리한테 청소 일거리 안 줄 거다. 위탁반 줄줄이 손가락 빨게 생겼어."
도현은 건물 바깥의 낮게 깔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던전 뒤처리를 전담하는 청소부들은 늘 목숨을 걸고 위험을 치운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푼돈 일당과 사고가 났을 때의 책임 전가뿐이었다. 공략대는 보상과 명예를 챙겨 떠나고 길드는 쓰레기를 방치하며 중간 관리자는 윗선 눈치만 보며 하청을 쥐어짜낸다.
이 기형적인 구조 안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청소해도 쓰레기 취급을 벗어날 수 없었다.
"반장님."
도현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저 독립하겠습니다."
박기문이 깜짝 놀라 도현을 돌아보았다.
"독립? 무슨 소리냐. 인력소 그만두고 어디 딴 데 들어가게?"
"아뇨. 제가 직접 던전 청소 업체를 차릴 겁니다."
"뭐?"
박기문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등급이 F급인 건 둘째 치고 사업자 등록을 하려면 관리청 승인에 기본 장비에 최소 자본금까지 필요한데 그게 쉬운 줄 아느냐? 대형 길드 하청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저등급 던전 청소권 하나 따기도 힘들어."
"길드 밑으로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도현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길드들이 던전을 치우고 가나요? 다 귀찮고 돈 안 된다고 몬스터 시체랑 독낭, 부서진 껍질은 통째로 버리고 갑니다. 방치된 부산물 때문에 오염도가 오르면 관리청은 벌금을 물리죠. 제가 노리는 건 그 틈새입니다."
도현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소형 단말기를 꺼내 법률 조항을 보여주었다.
"던전환경관리법 개정안 제9조. 공략 주체가 포기하거나 방치한 던전 부산물은 현장 청소를 전담하는 정식 사업자에게 소유권이 우선 귀속된다. 특약 하나만 잘 넣으면 남들이 버리고 간 몬스터 시체는 전부 제 소유가 됩니다."
박기문은 도현의 얼굴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한낱 F급 청소부의 허황된 꿈이라 치부하기에는 도현의 눈빛이 너무나 정교하고 깊었다.
"……진짜 할 생각이냐?"
"네. 제 이름을 걸고 내 내일은 내가 결정하겠습니다."
박기문은 씁쓸하면서도 대견한 듯 도현의 어깨를 툭 쳤다.
"고집 센 건 알아줘야지. 그래, 갈 때 가더라도 필요한 장비 몇 개는 챙겨 가라. 반장으로서 해줄 수 있는 건 그거뿐이니까."
"감사합니다, 반장님."
다음 날 오전, 대한이능력관리청 경기지청 민원실.
유리창 너머의 접수 담당관 정 주임은 도현이 제출한 사업자 등록 신청서를 보며 황당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상호명이…… '클린 던전'? 대표자 강도현, F급 각성자?"
"네. 던전 환경 관리 및 부산물 처리 전문 개인 사업자 신청입니다."
정 주임은 신청서를 책상 위에 내던지듯 놓았다.
"강도현 씨. 요즘 F급 각성자들이 헌터 일 포기하고 청소 업체 차린답시고 덤비는 경우가 많은데요. 대형 길드 협력업체 도장 없으면 저등급 던전 입찰도 못 받아갑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입찰을 받으려는 게 아닙니다."
도현은 가방에서 또 다른 계약서 양식을 꺼내 놓았다.
"방치 던전 수시 정화 계약 건입니다."
정 주임의 눈썹이 꿈틀했다.
"방치 던전?"
"대형 길드들이 공략만 끝내고 부산물 처리를 안 해서 잔여 오염도 경보가 뜨는 E급, D급 던전들이 많죠. 관리청 입장에서는 오염도 때문에 브레이크 위험은 커지는데 예산 부족으로 방역 인력을 못 보내고 계실 텐데요."
정 주임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것은 관리청 행정팀의 가장 큰 두통거리였다. 고등급 던전에 예산이 집중되다 보니 버려진 저등급 던전의 2차 오염 문제는 늘 민원의 대상이었다.
"클린 던전이 그 방치 던전들의 청소를 전담하겠습니다. 소요 비용은 기존 관리청 청소 위탁 단가의 70%만 받겠습니다."
"70%? 그 돈 받고 기름값이나 나오겠어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도현이 펜 끝으로 계약서의 특약란을 가리켰다.
"계약서 제5조 특약. 현장 청소 완료 후 회수되는 미수거 몬스터 사체, 마석 파편, 오염 부산물 일체의 소유권은 청소 업체인 '클린 던전'으로 완벽히 귀속된다. 또한 청소 후 잔여 오염도는 기준치 이하인 5% 미만을 보장한다."
정 주임은 눈을 감고 계산을 돌렸다.
관리청 입장에서는 쓰레기 처리 비용도 아끼고 잔여 오염도 5% 미만 보장이라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얻는 셈이었다. 버려진 몬스터 시체나 핏자국 따위야 어차피 돈도 안 되는 쓰레기였으니 청소부가 가져가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진짜 오염도 5% 미만 보장할 수 있어요? 안 되면 계약 파기에 벌금 부과입니다."
"도장 찍으시죠."
도현의 단호한 태도에 정 주임은 멍하니 인감도장을 집어 들었다.
쿵.
서류 위에 붉은 인장이 선명하게 찍혔다.
[클린 던전] 사업자 등록 완료.
[대한이능력관리청 방치 던전 전담 청소 계약 체결].
도현은 도장이 찍힌 서류를 품에 넣으며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남들에게는 버려진 쓰레기장이고 부담스러운 오염 현장일 뿐이지만 도현에게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스탯과 스킬을 흡수할 수 있는 거대한 파밍 장소가 열린 셈이었다.
도현이 처음으로 할당받은 현장은 서울 외곽 산자락에 위치한 E급 던전 검은 이끼 동굴이었다.
초보 헌터 파티가 보스 마수만 겨우 잡고 허둥지둥 도망치듯 철수한 곳이었다. 던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썩은 풀 냄새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입구 전광판의 오염도 측정기는 34.2%를 가리키며 붉은등을 켜고 있었다.
"34%라. 놔두면 사흘 안에 독성 안개가 터졌겠군."
도현은 '클린 던전' 마크가 새로 찍힌 방호 슈트를 입고 렌턴을 밝혔다.
동굴 안쪽 바닥에는 맹독 이끼 지네들의 사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길이는 2미터가 넘는 마수들로, 공략대원들이 무식하게 칼을 휘두른 탓에 마력 독낭이 터져 초록색 액체가 바닥을 한강처럼 적시고 있었다.
일반 청소부라면 방호복이 부식될까 봐 중화제 수십 통을 들이붓고 벌벌 떨었을 현장이었다.
하지만 도현에게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뷔페나 다름없었다.
"시작해 볼까."
도현은 손가락 끝을 맹독 이끼 지네의 단단한 등갑에 가져다 대었다.
의식 속에서 낡은 시스템 창이 밝게 빛났다.
[특성: '부산물 흡수(EX)'가 발동합니다.]
[대상: '맹독 이끼 지네' 사체의 잔여 신체 정보 및 잔향을 감지합니다.]
손 끝에서 은은한 금빛 선이 흘러나와 지네의 껍질과 응고된 혈액을 감쌌다.
바삭하는 소리와 함께 지네의 단단한 등갑이 검은 재로 변하며 도현의 손바닥 안으로 흡수되어 들어갔다. 동시에 찌릿한 열감이 팔뚝을 타고 척추로 뻗어 나갔다.
[체력 스탯이 +2 상승합니다.]
[민첩 스탯이 +1 상승합니다.]
"좋아."
도현은 멈추지 않았다. 옆에 널브러진 또 다른 지네 사체와 터진 독낭 필터 조각으로 손을 옮겼다. 반복 흡수에 따른 감쇠 효용을 계산하며 가장 신선한 부위만을 선별해 흡수했다.
[민첩 스탯이 +2 상승합니다.]
[독성 저항 잔향을 흡수합니다. (현재 축적도 12%)]
검은 재가 공기 중으로 산산이 부서져 사라질 때마다 동굴 안을 채우고 있던 자극적인 독성 냄새가 순식간에 옅어졌다. 마수 시체가 사라지자 그 시체가 뿜어내던 잔여 마력과 오염원 자체가 근본적으로 제거된 것이다.
도현은 흡수를 마친 뒤 남은 미세 마석 가루와 약간의 잡동사니를 중화 흡착포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단 두 시간 만에 동굴 전체의 청소가 끝났다.
도현이 입구로 돌아와 오염도 측정기를 켜자 기계 화면에 믿을 수 없는 수치가 떠올랐다.
잔여 오염도: 0.8%
상태: 완전 정화 (안전).
관리청 기준치인 5%는커녕, 어떠한 대형 길드 전문 청소팀도 도달해 본 적 없는 0%대 수치였다.
도현은 단말기를 꺼내 '클린 던전' 명의의 첫 번째 완공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처리 완료 버튼을 눌렀다.
[클린 던전 - 1호 현장 완공 보고서 제출 완료.]
[현재 보유 스탯: 근력 18 | 민첩 14 | 체력 13 | 마력 11]
도현은 자신의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방호 장갑 너머로 굳건해진 근육의 힘과 날렵해진 감각이 느껴졌다. 선명하게 밝아진 단말기 화면 속 '클린 던전'이라는 상호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남들이 쓰레기라고 버리고 간 던전의 바닥에서 도현은 자신만의 거대한 탑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다음 청소 구역은 어디지?"
도현은 렌턴을 끄고 '클린 던전'의 첫 걸음을 디디며 던전 밖 햇살 속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