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 앞 5성급 호텔의 총지배인

2화: 회색 협곡의 첫 발걸음
새벽안개가 협곡의 바위틈을 채울 무렵 아델리아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손끝이 얼얼할 만큼 차가웠지만 멈출 틈은 없었다. 그녀는 양동이에 미온수를 채우고 낡은 마포를 담갔다.
“루루, 2층 밸브 열어 줘요.”
온천동 쪽 바닥에서 물방울이 퐁 솟아오르더니 잠이 덜 깬 루루가 뾰로통한 얼굴로 나타났다.
“벌써 일해? 해는 아직 협곡 위로 올라오지도 않았어.”
“손님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객실 온도가 올라가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까요.”
아델리아는 걸레를 단단히 쥐어짰다. 전생 특급호텔의 하우스키핑 부서에서 보낸 수많은 새벽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청소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낯선 장소를 안식처로 느끼게 만드는 첫인상의 설계였다.
계단을 올라서자 2층 복도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델리아는 복도 양끝의 환기창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산바람이 들이치며 정체되어 있던 묵은 공기를 밖으로 밀어냈다.
“자, 201호부터 확인합니다.”
벨루아 온천 리조트의 임시 개장 목표는 객실 세 개였다. 그중 201호는 창틀이 가장 온전하고 벽지도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다.
아델리아는 침대 시트를 벗겨냈다. 누렇게 변색된 천에서는 먼지가 풀썩 일었다. 그녀는 시트를 한곳에 모아두고 매트리스의 스프링 탄성을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시험했다.
“다행히 가운데가 꺼지지는 않았네요.”
“그거야 옛날 장인이 온천 열기를 먹인 단단한 참나무로 짠 침대 틀이니까!”
루루가 허공에 둥둥 뜬 채 턱을 치켜들었다.
“루루, 자랑은 나중에 하고 202호 바닥 좀 봐요.”
아델리아의 시선이 옆방으로 향했다. 202호 문틈 아래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아델리아가 문을 열자 벽면을 타고 내려온 물방울이 목재 바닥재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배관 연결 부위의 황동 밸브가 헐거워져 온천 증기가 응결된 물이 새어 나오는 중이었다.
“이 방은 오늘 못 열겠군요.”
“내가 고칠 수 있어! 물길을 살짝 돌리면 되거든.”
루루가 손가락을 튕기자 벽 속에서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누수가 뚝 멎었다. 하지만 이미 바닥 목재가 물을 머금어 눅눅해진 상태였다.
“수고했어요, 루루. 하지만 젖은 바닥이 마르고 냄새가 빠지려면 최소 이틀은 걸립니다. 억지로 손님을 넣었다가는 눅눅한 잠자리에 불만이 터져 나올 거예요.”
아델리아는 수첩을 꺼내 202호에 ‘정비 중’ 표시를 적었다.
“201호와 203호, 두 방만 완벽하게 세팅합니다. 침구는 햇볕에 말리고 난로를 먼저 가동해요.”
그녀는 빗자루를 들고 천장의 거미줄을 털어낸 뒤 바닥 구석구석의 먼지를 쓸어 담았다. 젖은 걸레로 바닥을 닦고 마른 천으로 물기를 닦아내는 손길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눈앞에 환대의 장부가 은은한 푸른빛을 띠며 떠올랐다.
[객실 정비 진행도]
- 201호실: 청결도 78% (이용 가능)
- 203호실: 청결도 72% (이용 가능)
- 202호실: 배관 누수 및 건조 필요 (정비 중)
[시설 평가: 임시 개장 최소 기준 충족 직전]
아델리아는 이마의 땀을 훔쳤다. 장부는 어디까지나 현상을 기록할 뿐이었다. 실제로 방을 쓸고 닦아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사람의 몫이었다.
2층 정리를 마친 아델리아는 1층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방 문을 열자 싸늘한 냉기가 발목을 감쌌다. 커다란 무쇠 화덕은 까맣게 식어 있었고 선반 위에는 녹슨 냄비 몇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식자재 창고의 나무 궤짝들을 열어보았지만 밀가루 한 줌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식당 운영은 아직 무리네요.”
아델리아는 팔짱을 끼고 주방을 둘러보았다. 호텔에서 잠자리만큼 중요한 것이 식음료 서비스였다. 협곡을 건너온 피로한 여행자에게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은 숙박의 만족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다.
하지만 지금의 자금으로는 식자재를 대량으로 구매할 수도 없었고 요리사를 고용할 여력도 없었다.
“무리해서 음식을 만들려다가는 위생 사고가 나거나 재료가 상해 손실만 커집니다.”
그녀는 전생의 경험을 떠올렸다. 작은 부티크 호텔을 열 때도 모든 서비스를 한 번에 갖추려다 실패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핵심은 손님이 당장 갈증과 허기를 달랠 수 있는 현실적인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아델리아는 찬장 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도자기 항아리 하나가 손에 잡혔다. 뚜껑을 열자 그늘에서 바짝 말린 야생 솔잎과 박하 잎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건 쓸 수 있겠어요.”
“그거 옛날 주인이 협곡에서 따다 말려둔 찻잎이야! 향이 엄청 진하다고.”
루루가 주방 화덕 위로 날아와 말했다.
아델리아는 찻잎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다행히 밀봉이 잘되어 곰팡이가 슬지 않았고 상쾌한 박하 향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그녀는 작은 무쇠 주전자에 온천수를 길어 올린 뒤 로비 난로 위에 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전자 주둥이에서 맑은 김이 피어오르며 솔잎과 박하의 향긋한 냄새가 로비 전체로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손님이 도착하면 이 따뜻한 차를 먼저 내어드리면 됩니다. 웰컴 티 한 잔으로 몸을 녹이게 하고 식사는 마을의 단골 식당과 연계해서 보온 마차로 배달받는 방식을 쓰면 되겠어요.”
아델리아는 수첩에 차 서비스 매뉴얼과 외부 식사 위탁 계획을 단정한 글씨로 적어 내려갔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손님을 굶기지 않고 호텔의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최선의 동선이었다.
그때 온천동 쪽에서 맑은 물소리와 함께 루루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아델리아! 잠깐 와봐!”
아델리아는 들고 있던 수첩을 챙겨 온천동으로 달려갔다.
공동 욕탕의 수면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제 붉은 천으로 묶어둔 위험 구역의 검은 얼룩은 다행히 더 번지지 않았지만 물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루루가 수조 난간에 매달려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협곡 입구 쪽에서 뭔가 오고 있어. 엄청 차갑고 무거운 냄새야.”
“상단 사람인가요?”
“아니. 상단 놈들의 돈 냄새나 비열한 마차 소리가 아니야. 살기라고 해야 하나? 칼을 잔뜩 벼린 것 같은 마력이 바람을 타고 밀려오고 있어.”
아델리아는 창가로 다가가 협곡의 외길을 내다보았다.
흐린 하늘 아래로 자갈길이 굽이쳐 있었다. 협곡 사이로 매서운 북풍이 휘몰아치며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저 멀리 회색 먼지 구름을 뚫고 검은 그림자 하나가 리조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차도 아니었고 호위대를 거느린 행렬도 아니었다. 짙은 흑요석빛 망토를 휘두른 단 한 명의 보행자였다.
“루루, 욕탕 물 온도는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나요?”
“응? 그건 문제없지. 내가 온천 정령인데!”
“좋습니다. 위험 구역 붉은 천은 그대로 두고 정상 구역의 온수만 깨끗하게 유지해 줘요.”
“저 손님 진짜 받을 거야? 기운이 심상치 않다고!”
루루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방울을 퐁퐁 튀겼다.
아델리아는 차분하게 매무새를 정돈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넘기고 제복의 옷깃을 바로잡았다.
“호텔은 손님의 얼굴이나 출신을 보고 문을 닫지 않습니다. 규칙을 지키고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라면 국경의 방랑자든 누구든 우리의 손님이에요.”
그녀는 로비로 돌아와 현관문 옆에 섰다. 차 주전자에서는 여전히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로비 벽난로에는 참나무 장작이 붉게 타오르며 훈훈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바깥에서 거친 자갈을 밟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터벅, 터벅.
무거운 가죽 장화가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소리가 로비 문 너머로 울려 퍼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문밖의 그림자는 낡은 간판의 글자를 읽는 듯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끼이익.
마침내 거친 쇳소리와 함께 벨루아 리조트의 육중한 참나무 문이 활짝 열렸다.
차가운 협곡의 돌바람이 로비 안으로 세차게 들이닥쳤다. 난로의 불꽃이 일순간 파르르 흔들렸다.
문간에 선 남자는 키가 훤칠하고 어깨가 넓었다. 그는 먼지와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두꺼운 검은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얼굴은 깊게 눌러쓴 후드와 목까지 끌어올린 깃에 가려져 있어 윤곽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남자의 망토 자락에서 얼어붙은 흙 부스러기가 툭툭 떨어졌다.
그가 로비 안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공기가 얼어붙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오랜 전장을 헤쳐온 자만이 풍길 수 있는 서늘한 위압감이었다.
아델리아는 숨이 턱 막히는 압박감을 느꼈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전생에 온갖 까다로운 VIP와 위압적인 권력자들을 상대하며 단련된 호텔리어의 평정심이 본능적으로 깨어났다.
그녀는 허리를 곧게 펴고 단정하게 두 손을 모은 채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벨루아 온천 리조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맑고 차분한 목소리가 적막한 로비에 울려 퍼졌다.
남자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후드 그늘 속에서 번뜩이는 회색 눈동자가 아델리아를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본래의 붉은빛을 마력으로 억누른 채 차갑게 가라앉힌 눈빛이었다.
남자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금이 간 바닥 타일, 낡았지만 깨끗하게 닦인 카운터,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솔잎차 향기.
남자의 입에서 낮고 거친 음성이 흘러나왔다.
“여관인가.”
“네, 손님. 몸을 녹이고 휴식을 취하실 수 있는 온천 리조트입니다.”
남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직하게 헛웃음을 흘렸다.
“폐허인 줄 알았더니 사람이 있었군. 간판만 새로 건 모양인데 여기서 손님을 받을 수나 있나?”
도발에 가까운 차가운 어조였지만 아델리아의 표정에는 티끌만 한 동요도 없었다. 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완벽한 시설은 아니지만 협곡의 추위를 피하고 따뜻한 온천욕과 안락한 잠자리를 누리시기에는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해 두었습니다.”
남자는 대답 대신 가슴께를 슬며시 짚었다. 외투 아래에서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며 뼈마디를 갉아먹는 듯한 저주의 통증이 밀려들고 있었다. 협곡을 건너오며 누적된 피로가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이 낡은 로비에 들어선 순간부터 난로의 온기와 함께 퍼지는 온천 증기가 그의 곤두선 신경을 미세하게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남자는 후드를 조금 더 깊게 눌러쓰며 카운터 앞으로 다가왔다.
“방이 있나.”
“네, 손님을 위한 객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델리아는 차분하게 카운터 위의 숙박 장부를 펼쳤다.
회색 협곡의 첫 손님, 얼굴을 가린 마계의 이방인 카이와의 위험하고도 필연적인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