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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님, 꿈속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8화

황태자님, 꿈속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황태자님, 꿈속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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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여덟 시간의 잠

백합 향을 뿌리는 소리는 침실 한가운데에서 났다.

로제트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카이엔의 손이 어깨를 눌렀다.

“움직이지 마라.”

“전하. 제 침실인데요.”

“그래서 더 움직이지 마라.”

카이엔은 침대에서 내려와 검을 뽑았다. 칼끝이 향이 흘러나온 바닥을 향했지만 돌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수지 병도 은제 쟁반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때 두 번째 문이 다시 울렸다.

꿈속에서만 들리던 둔탁한 소리가 바닥을 타고 번졌다. 수지 병 뒤편의 허공에 검은 선이 길게 그어졌다. 벽도 바닥도 아닌 곳에 문이 생기고 있었다.

로제트는 손을 뻗지 않고 몸을 낮췄다. 백합 향은 수지 병에서 퍼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병의 바닥과 허공의 문 사이를 가느다란 검은 실이 잇고 있었다. 향이 피어날 때만 실이 희미한 은빛으로 반짝였다.

“수지가 통로를 만들었어요.”

“끊을 수 있나.”

“지금 끊으면 안 돼요. 어디로 이어졌는지 확인해야 해요.”

카이엔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위험하다는 건 알 수 있다.”

“위험하니까 더 확인해야 하죠. 아무 데나 칼을 휘두르면 통로가 커질 수도 있어요.”

로제트는 레온을 불러 수지 병 주변을 봉쇄하게 했다. 문밖의 시종에게는 허락 없이 들어오지 말라고 지시했다. 안에서 세 번 종이 울리거나 로제트가 직접 부를 때만 문을 열라는 명령이었다.

카이엔은 새 담요와 안락의자를 직접 검사했다. 향이 배지 않은 물잔까지 확인한 뒤에야 로제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네 눈앞에 둔다.”

“전하께서 잠들면 제 몸을 지켜 주실 수는 있고요?”

“잠들지 않겠다.”

“그게 더 위험해요. 전하의 정신력도 이미 많이 깎였잖아요.”

카이엔은 대답 대신 로제트의 오른손을 가져갔다. 가는 은실이 손목을 세 번 감았다. 매듭은 놀랄 만큼 느슨했다.

“세 번 당기면 돌아온다.”

“꿈속에서는 이름을 한 번만 부르기.”

“두 번이면 저주가 따라 한다.”

“그리고 절대로 제 손을 놓지 않기.”

카이엔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것도 규칙인가.”

“이번에는 꼭 필요해요.”

그는 은실 위에 손을 겹쳤다.

“좋다.”

로제트가 눈을 감았다. 백합 향이 차갑게 목을 훑는 순간 현실의 침실이 뒤집혔다.

눈을 뜬 곳은 황태자 침실과 비슷한 방이었다. 침대와 창문과 탁자가 있었지만 모든 가구가 한 치씩 어긋나 있었다. 책상 다리는 왼쪽만 짧았고 창문의 경첩은 바깥쪽에 달려 있었다. 벽난로의 금도 실제 기억과 반대 방향으로 갈라져 있었다.

가짜였다.

“들어오면 안 돼.”

아이의 목소리가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얼굴 없는 아이가 침대 밑에서 기어 나왔다. 젖은 머리카락 아래의 검은 손가락 끝에는 장미 가시가 돋아 있었다.

“아버지가 기다려.”

로제트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 목소리는 오래전 불타던 집 안에서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하지만 진짜 목소리는 언제나 마지막 음절을 낮게 눌렀다. 이 목소리는 끝을 길게 끌었다.

“로제트.”

카이엔이 이름을 한 번 불렀다.

아이의 목소리가 끊겼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작은 불꽃이 튀었다.

“여기 있어요.”

로제트는 카이엔의 손을 잡았다. 방 안의 벽마다 피 묻은 손자국이 번졌다. 손자국 사이에서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칼을 놓으면 모두 살 수 있었다.

그 여자를 내보내면 너는 편해진다.

카이엔의 시선이 흔들렸지만 그는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방 한가운데에 검을 꽂았다.

“이곳의 경계를 내가 정한다.”

검 끝에서 붉은 금이 퍼졌다. 벽이 한 겹 뒤로 물러나며 침대 밑에서 허공의 문으로 이어진 검은 실이 드러났다. 실은 카이엔의 침대에서 시작해 로제트의 발밑을 지나 두 번째 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 자체가 아니에요. 실이 감정을 빨아들여 만든 가면이에요.”

“그럼 실을 끊는다.”

“전하의 심장에 박힌 실금까지 같이 끊어질 수 있어요.”

아이의 목소리가 웃음으로 변했다.

“그럼 여자를 내보내. 너 혼자면 아프지 않아.”

검은 가시가 카이엔의 뒤에서 솟구쳤다. 카이엔은 검으로 가시를 받아쳤다. 충격이 퍼질 때마다 손목의 실금이 짙어졌다.

“전하. 그만 막으세요!”

“네가 실을 정리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

“손목이 갈라지고 있어요.”

“아직 손을 놓지 않았다.”

로제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주는 카이엔에게 죄책감을 보여 주고 자신에게 아버지의 목소리를 던졌다. 둘을 갈라놓으면 실을 심장까지 박아 넣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로제트는 방을 둘러봤다. 에반스 가문의 책상 옆에 황태자 침실의 촛대가 놓여 있었다. 서로 존재할 수 없는 물건이 뒤섞인 모조품이었다. 촛대의 백합 무늬 위로 검은 실이 감겨 있었다.

“저건 기억이 아니라 쓰레기예요.”

로제트가 손가락을 튕기자 촛대가 빗자루로 변하고 탁자는 쓰레기통으로 변했다. 방 안을 채운 백합 향이 검은 실을 따라 한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실의 표면에 황후궁에서 보았던 백합 문양의 절반이 떠올랐다.

“황후궁.”

“아직 누가 연결했는지는 몰라요.”

“알고 있다. 그래서 증거를 모으는 중이지.”

로제트는 검은 실에 손을 뻗었다. 바로 자르는 대신 실에 달라붙은 감정부터 떼어 냈다. 병사들의 죄책감은 회색 먼지가 되어 떨어졌다. 아이의 울음은 젖은 종이처럼 구겨져 장미 정원의 물길로 흘렀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남았다.

“로제트.”

그녀의 손이 흔들렸다. 카이엔이 조용히 말했다.

“네가 듣고 싶은 목소리인지 확인해라.”

로제트는 눈을 감았다. 진짜 목소리는 마지막 음절을 낮게 눌렀다. 저 목소리는 끝을 길게 끌었다. 아버지가 아니었다.

“돌려보내세요.”

“누구를.”

“제 기억을 흉내 낸 쓰레기를요.”

로제트가 손바닥을 펼치자 분홍빛이 번졌다. 검은 실에 붙은 공포와 죄책감이 분리됐다. 실은 약해졌지만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다. 그 끝은 여전히 카이엔의 심장으로 파고들어 있었다.

“심장 쪽 연결만 남겨야 해요. 지금 끊으면 전하가 다칠 수 있어요.”

“그러면 이 문은.”

“다시 보관함으로 만들게요. 열쇠가 없는 문으로요.”

카이엔은 검을 거두었다. 아이의 그림자가 곧장 그의 뒤로 솟구쳤다.

“네가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문을 닫을 수 없어.”

카이엔의 얼굴이 굳었다. 로제트는 그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없다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저주가 시키는 대로 무릎 꿇을 필요도 없어요.”

카이엔은 검은 방을 똑바로 바라봤다.

“나는 지키지 못한 사람이 있다. 그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벽의 손자국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 기억이 내게 누구를 버리라고 명령할 권리는 없다.”

검은 실이 크게 흔들렸다. 심장 부근의 실금은 짙어졌지만 방 전체의 압력은 약해졌다.

로제트는 그 틈에 손을 넣어 감정을 하나씩 씻어 냈다. 실의 표면에 남아 있던 황후궁의 백합 문양이 떨어져 나왔다. 작은 꽃잎 하나가 바닥에 남았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로제트가 손을 돌리자 방이 접혔다. 가구들이 하나의 낡은 보관함으로 겹쳐졌다. 보관함은 검은 회랑의 두 번째 문이 되었고 문고리에는 분홍색 자물쇠가 걸렸다.

아이의 그림자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는 널 기다리지 않아.”

“기다리든 말든 제가 찾으러 갈 거예요.”

문이 닫혔다.

방 안에 장미 정원이 펼쳐졌다. 피 대신 분홍 장미가 피었고 검은 물은 맑은 수로로 변했다. 카이엔의 실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짙어지지도 않았다.

그는 정원 벤치에 앉았다. 피로가 얼굴에 선명했다.

“이제 잠들어도 돼요.”

“네가 먼저 나가라.”

“손 놓지 않기로 했잖아요.”

카이엔은 그녀를 보다가 벤치 옆에 자리를 만들었다. 로제트가 앉자 그의 어깨가 닿았다.

“무서우면 깨우세요.”

“이름을 두 번 부르면 안 된다며.”

“한 번만 부르세요.”

카이엔은 눈을 감았다. 그의 손이 로제트의 손등 위에서 힘을 풀었다.

장미 정원의 아침빛이 밝아졌다. 카이엔의 호흡이 고르게 가라앉았다. 로제트는 그가 악몽에 쫓기지 않고 잠드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녀도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현실의 몸이 너무 지쳐 있었다. 곧 은실이 팽팽해졌다.

하나.

둘.

셋.

현실에서 누군가 은실을 당긴 것이다.

로제트는 카이엔의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현실로 돌아왔다.

눈을 뜨자 침실 천장이 보였다. 창밖은 이미 환했다.

카이엔은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손목의 검은 실금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옅어져 있었다.

문밖에서 레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황태자 전하께서 여덟 시간째 한 번도 깨지 않으셨습니다.”

로제트는 멍하니 카이엔을 바라봤다.

여덟 시간.

카이엔이 눈을 떴다. 붉은 눈동자에는 오랜 피로 대신 맑은 빛이 들어 있었다.

“몇 시지.”

“아침 여덟 시입니다. 밤 열두 시부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카이엔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목이 아프지 않다. 머리도 무겁지 않아.”

“잠을 잘 자면 원래 그래요.”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로제트를 보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목에 감긴 은실을 발견했다.

“네가 당겼나.”

“레온 경이요. 약속한 시간이 지나서 확인한 거예요.”

카이엔은 침대에서 내려와 그녀에게 다가왔다. 로제트가 뒤로 물러나려다 의자에 걸려 멈춘 순간 그가 아주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장미 향이 난다.”

“제가 청소를 많이 해서요.”

“아니다.”

그의 손이 로제트의 손목 위에 얹혔다. 꿈속에서 잡고 있던 손과 같은 온기였다.

“꿈속의 향과 같다.”

로제트의 심장이 위험하게 뛰었다.

카이엔은 더 묻기 전에 침대 아래로 손을 뻗었다. 검은 실 조각과 백합 꽃잎이 함께 끌려 나왔다. 꽃잎 끝에는 황후궁 백합 문양 일부가 남아 있었다.

“레온.”

“예.”

“황후궁 뒤편 수로와 연결된 출입 기록을 오늘 안에 가져와라. 향을 사용한 시녀 명단이 아니라 봉인판을 만진 사람의 기록이다.”

“알겠습니다.”

카이엔은 대답을 마친 뒤에도 로제트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너는 오늘 내 곁에 있어라.”

“전담 시녀니까 차를 가져오는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차를 가져온 뒤에도.”

“전하.”

“꿈속에서 네가 내 곁에 있었다. 현실에서도 확인해야 한다.”

로제트는 대꾸하지 못했다. 카이엔은 아직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 그러나 꿈속의 향과 현실의 체향이 같다는 사실은 더 이상 숨기기 어려웠다.

카이엔이 그녀의 이름을 한 번만 불렀다.

침실 바닥에 남은 검은 실 조각이 작게 꿈틀거렸다. 꽃잎의 검은 맥이 황후궁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덟 시간의 잠은 끝났지만 청소할 쓰레기는 아직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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