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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등선자(登仙者)9화

출근길의 등선자(登仙者)

출근길의 등선자(登仙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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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바닥 아래의 첫 신호

한리는 문을 다시 열었다.

바닥 아래에서 올라온 냉기가 발목을 훑었다. 곰팡이 냄새와 젖은 돌 냄새 사이에 금속이 오래 물에 잠겼을 때 나는 비린 향이 섞여 있었다.

`구조 공명 감지`

`위치: 동부 지하`

`잔류 주파수: 미확인`

푸른 글자는 한 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한리는 바닥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손바닥 아래 돌은 차가웠다. 그러나 차갑기만 한 돌이라면 이 정도로 일정한 떨림을 만들 수는 없었다.

쿵.

아주 낮은 울림이 뼈를 타고 올라왔다.

그는 벽 쪽으로 물러났다. 바닥의 물기가 한곳으로 흐르고 있었다. 문가가 아니라 동부 뒤편의 낮은 틈이었다.

동부는 허름했다. 비뚤어진 문은 닫아도 틈이 남았고 한 사람이 눕기도 좁은 바닥에는 푸른 곰팡이가 띠처럼 번져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는 문이 있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걸어 잠글 수 있는 문이었다.

한리는 바닥에 내려둔 새 명패를 바라봤다. 영로원의 잡역 명부에서 이름이 빠졌다는 사실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마삼의 회초리 아래에서 하루치 죽을 계산하던 몸이 하루 만에 외문 도포를 걸쳤다.

달라진 것은 도포 한 벌뿐일지도 몰랐다. 몸은 여전히 약했고 마삼의 장부 심문도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낮은 권한이라도 자기 이름으로 받은 방이었다. 그 방 아래에서 무언가가 울리고 있다면 외면하고 남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

한리는 빗자루를 들고 곰팡이를 걷어 냈다. 돌 사이에는 얇은 배수 홈이 있었다. 오래전에 막혀 물길로 쓰이지 않은 흔적이었다.

`수분 흐름: 남서 방향`

`잔류 주파수 동기율: 18%`

`권장: 배수 경로 확인`

밖으로 나오자 인근 동부의 외문 제자 둘이 그를 힐끗 보았다. 한 명은 새 회색 도포의 소매를 털며 말했다.

"거기 배정받았나? 운도 없군. 비만 오면 바닥이 젖는 곳이야."

"젖는 것뿐이면 괜찮습니다."

"예전에는 밤마다 돌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고도 했어. 그래서 비어 있었지."

다른 제자가 낮게 웃었다.

"괜히 바닥을 파지는 마라. 배정청에 말해도 다른 동부는 안 나온다."

한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소문은 원인을 알려 주지 않는다. 다만 자신보다 먼저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는 동부 뒤편으로 돌아갔다. 잡초 아래에 납작한 석판 하나가 묻혀 있었다. 석판 가장자리에는 흙이 새로 밀려난 자국이 있었다.

손을 넣어 들어 올리려는 순간 옆 산길에서 왕력이 내려왔다. 그의 어깨에는 맹수원 표식이 붙은 작은 자루가 걸려 있었다.

"새 방 청소도 하루 만에 끝낼 셈이냐."

"막힌 물길이 있어서 보려 합니다."

왕력은 석판을 내려다봤다.

"그 밑은 공동 수로다. 장마철에도 사람 안 들어간다. 돌이 약해."

"그럼 더 안쪽으로는 안 가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고 눈은 이미 들어가 있군."

왕력은 자루에서 마른 고기 한 조각을 꺼내 던졌다. 한리는 받아 들었다.

"외문 밥 기다리다 쓰러지지 말고 먹어라. 그리고 혼자 무너지면 내가 꺼내러 안 간다."

"안 무너지겠습니다."

"그 대답이 제일 못 믿겠다."

왕력은 돌아섰다. 한리는 손안의 마른 고기를 잠시 내려다보다 품에 넣었다. 몸을 버티는 것도 계산에 넣어야 했다.

해가 산 너머로 기울자 그는 석판을 옆으로 밀었다. 아래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기어갈 폭의 수로가 있었다. 물은 거의 말랐지만 바닥에는 검은 진흙이 얇게 남아 있었다.

`구조 안정도: 61%`

`붕괴 위험 구간: 전방 7보`

`권장 하중 경로: 좌측 벽면`

한리는 몸을 낮췄다. 왼손으로 벽을 짚고 오른발부터 좁은 돌을 밟았다. 세 걸음마다 울림이 발바닥으로 번졌다. 공명은 동부 쪽이 아니라 수로 더 깊은 곳에서 왔다.

전방 일곱 걸음에서 돌무더기가 길을 막았다. 큰 돌을 밀면 천장이 함께 무너질 수 있었다.

그는 숨을 고르고 틈을 살폈다. 돌무더기 아래에 삼각형 쐐기 하나가 끼어 있었다.

`하중 집중점: 쐐기석 하단`

`필요 출력: 미세 영기 1회`

`실행 후 순환 불안정 가능성: 34%`

한리는 바로 손을 대지 않았다. 수로 벽에 등을 기대고 어깨 상처의 열이 가라앉을 때까지 호흡을 맞췄다. 억지로 기를 끌어올렸다면 지금은 눈앞의 길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손끝의 얇은 기운을 쐐기석 아래로 밀어 넣었다.

딱.

쐐기석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돌아갔다. 돌무더기는 무너지지 않고 옆으로 기울었다. 사람이 비집고 지날 틈이 열렸다.

한리는 기운을 거두었다. 하단전이 묵직하게 당겼지만 숨은 끊기지 않았다.

그가 틈을 빠져나오는 순간 뒤쪽 천장에서 진흙 섞인 물이 쏟아졌다. 열린 돌 사이로 고인 물이 한꺼번에 밀려든 것이었다.

수로 바닥이 미끄러졌다. 한리는 벽을 짚으려 했지만 젖은 이끼가 손바닥 아래에서 미끄러졌다.

`수위 상승: 급격`

`안전 지점: 전방 우측 돌기`

`권장: 하중 분산 후 이동`

로그가 길을 보여 줘도 발을 옮기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한리는 몸을 세우지 않았다. 무릎을 낮춘 채 왼발을 바닥에 끌어 무게를 분산하고 오른쪽 돌기를 향해 팔꿈치를 뻗었다.

손끝이 돌에 닿았다. 물이 종아리까지 차오르기 전에 몸을 끌어올렸다.

뒤에서 돌 하나가 굴러내렸다. 조금 전에 서 있던 자리를 세게 때린 돌이 물보라를 튀겼다.

한리는 한동안 돌기에 매달린 채 숨을 골랐다. 가슴이 빠르게 들썩였고 갈비뼈 옆이 욱신거렸다. 보이는 경고를 믿는 것과 그 경고를 따라 움직일 몸을 만드는 일은 전혀 달랐다.

물이 잦아들자 그는 다시 안쪽으로 기어갔다.

틈 너머에는 둥근 방 하나가 있었다.

방 바닥 중앙에는 손바닥보다 큰 검은 돌이 박혀 있었다. 표면은 금속처럼 매끈했고 창명종에서 본 부적 문양과 전혀 다른 선들이 겹쳐 있었다. 사각형 안에 사각형이 이어지는 문양이었다.

`미확인 구조체 감지`

`잔류 주파수: 동부 권한과 동기화`

`접근 요청: 사용자 신분 식별값`

한리는 외문 명패를 꺼냈다. 명패의 나무 결이 검은 돌을 향하자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명패를 곧장 대지 못했다. 낯선 장치에 신분을 넘기는 일은 회사 계정으로 출처 모를 첨부 파일을 여는 일과 닮아 있었다. 한 번 잘못 넘기면 어디까지 털리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온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가면 다음에는 더 큰 위험이 닥쳐도 원인을 모른다. 한리는 동부를 받았을 때 문을 잠글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 안도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봉인석 가장자리의 흐름을 읽었다. 힘을 넣어 부수라는 경고는 없었다. 명패를 대고 안정된 기운을 한 번 흘려 보내라는 작은 표시뿐이었다.

한리는 명패를 돌 위에 올렸다.

차가운 진동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하단전의 기운이 저절로 끌려 나가려 하자 그는 호흡을 세 번으로 쪼개 속도를 늦췄다.

`권한 확인: 창명종 외문 제자`

`사용자 식별: 한리`

`세그먼트 노드 탐색: Tower-01`

`접근 좌표: 서쪽 외문 경계 외측`

`개방 조건: 외문 권한 / 구조 공명 해석`

글자 끝이 깨졌다. 한리는 명패를 떼려 했지만 봉인석이 한 번 더 울렸다.

`좌표 오류`

`보정 필요: 공명원 1개 추가`

`주의: 감시 반응 활성화`

감시 반응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봉인석을 만든 자가 감시하는지 아니면 창명종의 장치가 변화를 읽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수로 바깥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났다.

한리는 숨을 죽였다. 발소리는 석판 위에서 멈췄다.

"한리."

조 집사의 목소리였다.

"동부 아래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한리는 봉인석에서 명패를 떼었다. 검은 돌의 문양은 곧장 지워졌다. 수로는 다시 젖은 돌과 진흙뿐인 곳처럼 보였다.

그는 빠져나와 석판을 덮었다. 수로에서 기어 나온 순간 무릎이 휘청였지만 손으로 바닥을 짚어 버텼다.

조 집사는 동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의 시선은 한리의 진흙 묻은 무릎과 젖은 도포 끝을 차례로 훑었다.

"배수구가 막힌 듯해서 확인했습니다."

"배수구 때문에 외문 경계 감시패가 미세한 공명을 토했나?"

한리는 시선을 들었다. 조 집사가 이곳에 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돌이 약했습니다. 작은 틈을 움직였습니다."

"그 작은 틈 때문에 네 기운이 흔들렸고."

거짓말을 크게 만들수록 들킬 곳도 많아진다. 한리는 숨을 고르게 골랐다.

"예. 더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조 집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동부 바닥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이곳은 예전부터 영기가 고르지 않았다. 외문 제자라고 해서 네 몸값이 갑자기 올라간 것은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오늘 밤은 수련하지 마라. 바닥 아래도 다시 건드리지 마라. 감시패가 한 번 더 울리면 배정청에 동부를 봉할 수밖에 없다."

한리는 고개를 숙였다.

"예."

조 집사가 돌아간 뒤에도 그의 등은 굳어 있었다. 집사는 봉인석의 정체를 모르는 듯했다. 하지만 감시패가 공명을 읽는다면 다음 조사는 더 어렵다.

동부 안으로 돌아온 한리는 문을 잠그고 명패를 손에 쥐었다.

푸른 글자가 마지막으로 떠올랐다.

`Tower-01 접근 대기`

`미확인 반응자: 접근 중`

한리는 글자를 오래 바라봤다.

첫 번째 좌표를 얻었다. 그러나 그 좌표를 향해 가기 전에 누가 같은 신호를 따라오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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