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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들은 방송 중입니다1화

성좌들은 방송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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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알현의 방]

심연의 왕이 쓰러진 자리에 검은 피가 고였다.

신유진은 검끝을 바닥에 박은 채 숨을 골랐다. 허리 아래로 감각이 희미했다. 옆구리를 꿰뚫었던 촉수는 뽑아 냈지만 상처는 아직 따뜻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서 있었다.

그것이면 됐다.

발아래로 늘어진 거대한 시체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인간의 얼굴을 닮은 비늘들 사이로 동료들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던 괴물이었다. 놈은 마지막까지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빈자리가 보일 터였다. 마력 고갈로 쓰러진 선우의 방패와 반으로 부러진 민재의 창이 보일 터였다. 그들이 끝까지 버틴 덕분에 유진은 이곳에 닿았다.

탑이 나타난 지 십 년. 수많은 공략대가 100층을 향해 올라갔고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

유진은 처음으로 그 끝을 밟았다.

심연의 왕 너머에 있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틈에서는 성스러운 빛이 아니라 희끗한 백색광이 흘러나왔다.

그는 피 묻은 손으로 검자루를 고쳐 쥐었다.

“알현의 방.”

성좌의 계시가 여러 번 말해 준 이름이었다. 최후의 시련을 넘은 자만 신을 마주하고 인류의 미래를 묻는 장소.

그 말을 믿었다.

믿었기에 선우가 마지막 성좌의 가호를 자신에게 넘기며 웃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곳에 오면 모든 죽음에 이유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유진은 문을 넘었다.

문이 등 뒤에서 닫혔다.

방은 이상할 만큼 넓고 낮았다. 천장은 어둠에 잠겨 높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중앙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설 만한 원형 단상이 놓여 있었다. 벽은 검은 유리처럼 매끈했다.

제단도 없었다.

성화도 없었다.

신을 맞이할 자리라기보다 아무것도 전시하지 않은 텅 빈 전시장 같았다.

유진이 단상 쪽으로 세 걸음 옮기자 바닥이 낮게 울렸다. 검은 벽의 어딘가에서 작은 점들이 켜졌다. 처음에는 별빛처럼 보였다.

점들은 곧 사각형이 됐다.

사방을 둘러싼 벽 전체가 화면으로 바뀌었다.

[지구 채널 ‘탑의 생존자들’ 최종화 라이브 송출을 시작합니다.]

유진의 손이 멈췄다.

정면의 가장 큰 화면에 피투성이 남자가 비쳤다. 낯선 각도였다. 위쪽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부서진 갑옷과 얼굴에 묻은 피, 떨리는 손가락까지 숨길 곳 없이 잡혀 있었다.

화면 속 남자가 눈을 찡그렸다.

유진도 눈을 찡그렸다.

그 순간 화면 아래로 글자가 지나갔다.

[와. 막판 표정 봤냐?]

[이번 시즌 캐스팅은 인정.]

[심연의 왕 디자인은 좋은데 사망 연출이 조금 길었음.]

[아까 방패 든 조연 퇴장한 건 아깝다.]

유진은 글자를 한 줄씩 읽었다.

처음에는 계시의 새로운 형식이라고 여겼다. 성좌들이 말을 건넬 때 보였던 금빛 문장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장마다 붙은 작은 얼굴 그림과 반복되는 웃음 표시, 사망 연출이라는 단어가 눈에 박혔다.

방패 든 조연.

선우를 그렇게 불렀다.

유진의 호흡이 한번 끊겼다.

선우는 조연이 아니었다. 열일곱 살에 탑으로 끌려온 동생을 먹여 살리겠다며 매일 가장 앞에 섰던 사람이었다. 93층에서 왼팔을 잃고도 떠나지 않은 공략대장이었다.

그가 죽는 장면을 누군가는 아깝다고 썼다.

누군가는 디자인이 좋다고 썼다.

화면 오른쪽 위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현재 시청자: 2,381,442명]
[실시간 반응: 상승 중]
[추천 노출: 은하권 17위]

유진은 그 숫자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검은 벽에는 같은 화면이 수백 개 떠 있었다. 어떤 화면에는 자신의 얼굴이 커다랗게 잡혀 있었다. 어떤 화면에는 심연의 왕의 촉수가 선우를 꿰뚫던 장면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화면 아래에는 ‘명장면 다시 보기’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속이 비어 가는 기분이었다.

성좌의 축복을 받을 때마다 들었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위대한 존재가 인류를 굽어살핀다고. 시련을 이겨 내면 구원을 내리겠다고.

그 목소리는 누군가의 집 소파에서 흘러나오는 방송 음성 같았다.

“누구지.”

유진의 목소리가 방 안에 낮게 번졌다.

대답 대신 경쾌한 알림음이 울렸다.

[‘구르는 은하’가 후원 코인 1,000개를 보냈습니다!]

별빛으로 된 투구를 쓴 아바타가 화면 중앙에 튀어 올랐다. 투구 아래로는 인간과 비슷한 입만 보였다. 그 입이 활짝 웃었다.

[구르는 은하: 이번 주인공은 마음에 드는군. 그 검 들고 한 바퀴 돌아 봐. 클로즈업이 아깝잖아.]

유진의 시선이 후원 알림 아래에 붙은 숫자로 내려갔다.

[후원 코인 1,000]
[교환 가능]
[보상 등급 보정 +1]

금빛 계시가 떠오를 때마다 사람들은 무릎을 꿇었다. 성좌가 하사한 기적이라 믿었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문구는 그 기적의 가격표처럼 보였다.

유진은 아바타를 노려봤다.

“네가 성좌인가?”

채팅이 조금 느려졌다.

[오. 대사 추가됨?]

[반응형 연출인가 보다.]

[구르는 은하: 정확히는 네 채널의 상위 후원자지. 성좌라는 호칭도 나쁘진 않고.]

상위 후원자.

유진은 그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입안에 쇠 맛이 번졌다. 신이 아니라 돈을 많이 낸 시청자. 성좌의 위계는 신성의 순서가 아니라 지갑의 무게였다.

화면 한쪽이 새로 갈라지며 정보창이 떠올랐다.

[코스모 튜브]
[콘텐츠 분류: 미개척 문명 관찰형 생존 라이브]
[채널명: 탑의 생존자들]
[출연 문명: 지구]
[후원금은 출연자 보상 및 연출 자원으로 환산됩니다.]

문장을 읽을수록 방 안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미개척 문명.

관찰형 생존 라이브.

출연 문명.

탑은 인류를 시험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시험장을 만들고 사람을 몰아넣은 뒤 돈을 벌고 있었다.

유진은 벽을 향해 걸었다. 상처가 벌어질 때마다 옆구리가 찢어지는 듯 아팠다. 하지만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화면 속 자신의 손이 커졌다. 보이지 않던 시선 하나가 천장 어딘가에서 따라붙고 있었다.

“선우도 네 콘텐츠였나.”

구르는 은하의 아바타가 잠시 멈췄다.

[구르는 은하: 그 방패? 서사는 나쁘지 않았지. 하지만 인기 없는 서브는 오래 끌면 흐름이 처져.]

유진의 손등에서 핏줄이 솟았다.

검을 뽑아 화면을 베어 버리고 싶었다. 이 벽 너머에 있는 자들을 전부 끌어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검날이 닿기도 전에 화면은 유리처럼 흐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무단 장비 훼손은 방송 점수에 불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불이익.

이곳은 분노로 부술 수 있는 방이 아니었다.

유진은 검을 내렸다. 채팅은 그 움직임 하나에도 다시 빨라졌다.

[오오 화났네.]

[이런 감정선 좋다.]

[구르는 은하: 지금 표정이면 2,000도 가능하다. 검을 들어.]

그 문장을 본 순간 유진의 눈빛이 달라졌다.

상대는 자신이 화난 것을 좋아했다. 슬퍼하는 것도 좋아할 것이다. 누군가 죽는 장면도 좋아했으니.

그렇다면 저들은 신이 아니었다.

변덕스럽고 시끄럽고 돈을 쓰면서도 대접받고 싶어 하는 관객이었다.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제물이 아니라 다음 장면이다.

유진은 후원 창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손끝이 빛에 닿자 수많은 문장이 겹쳐졌다.

[후원 수락]
[보상 정산]
[시청자 반응 분석]
[출연자 권한]

마지막 항목은 흐릿했다. 잠긴 자물쇠가 겹겹이 붙은 메뉴 아래에 아주 작은 톱니바퀴가 보였다.

유진은 숨을 고르고 톱니를 눌렀다.

[권한 외 접근입니다.]
[접근자를 확인합니다.]

붉은 경고가 화면을 뒤덮었다. 곧 방 전체의 화면이 한순간 꺼졌다.

어둠 속에서 낮은 기계음이 들렸다.

[출연자 신유진의 반응 패턴이 기존 각성자 데이터와 불일치합니다.]
[비정상 접근을 감지했습니다.]
[스트리머 모드 일부를 임시 개방합니다.]

손끝 아래에 새 창이 열렸다.

[스트리머 모드]
[채팅 보기]
[후원 알림 설정]
[방송 제목 변경]
[고급 기능: 잠김]

유진은 한동안 창을 내려다봤다.

출연자 권한.

저들이 정해 준 대사를 읊고 정해 준 시련을 넘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이 되는가. 화면 반대편의 시선을 읽고 원하는 것을 골라 내는 사람. 그들의 지갑이 열릴 만한 순간을 만드는 사람.

제작진이 아니라도 방송은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저들보다 지구의 죽음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 한다면.

카메라가 천장에서 내려왔다. 손바닥만 한 검은 구체였다. 구체 표면에 붉은 점 하나가 켜졌다. 유진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회전했다.

[구르는 은하: 어이. 왜 조용해졌지? 네가 원하면 내가 이번 층 귀환 보상도 밀어 줄 수 있어.]

유진은 카메라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그 작은 붉은 점이 끔찍했다. 수백만 명의 눈이 그 뒤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달랐다.

눈은 보고 싶어 한다.

보여 줄 것을 고르는 쪽이 주도권을 쥔다.

유진은 입가의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그리고 화면에서 가장 크게 떠 있는 별빛 투구의 아바타를 향해 말했다.

“귀환 보상은 됐어.”

채팅이 멎었다.

“대신 네가 2,000을 보낸다고 했지.”

[구르는 은하: 보내지. 뭘 보여 줄 건데?]

유진은 카메라에 한 걸음 다가갔다.

“내가 다음에 죽일 괴물을 보여 줄게.”

잠깐의 정적 뒤에 채팅이 폭발했다.

[뭐? 100층 끝난 거 아니었어?]

[다음 괴물? 숨겨진 보스 있나?]

[구르는 은하: 하! 좋군. 네가 뭘 아는지 모르겠지만 2,000은 지금 보낸다.]

새 알림이 터졌다.

[‘구르는 은하’가 후원 코인 2,000개를 보냈습니다!]

유진은 수락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후원 알림 설정 옆에 떠오른 작은 문장을 읽었다.

[후원 수락 조건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는 천천히 조건란을 열었다.

‘방송을 방해하지 말 것.’

짧은 문장이 채팅창 위에 고정됐다.

곧바로 항의가 쏟아졌다.

[시청자한테 조건을 건다고?]

[저게 출연자 태도냐.]

[구르는 은하: 건방지군.]

유진은 그 반응을 보며 아주 작게 웃었다.

화면 반대편에서 누군가 화를 내고 있었다. 관심이 있다는 뜻이었다. 관심은 숫자가 되고 숫자는 코인이 된다. 코인은 결국 이 탑의 규칙을 움직이는 재료였다.

그는 문장을 하나 더 입력했다.

‘보내기 싫으면 나가도 된다.’

채팅이 한 번 더 멈췄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빠르게 흘렀다.

[미쳤네.]

[이 채널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구르는 은하: 누가 나간댔지? 조건 수락한다. 네가 약속한 걸 보여 봐.]

[후원 조건이 수락되었습니다.]

[시청자 반응 급등]

[보상 등급이 상승합니다.]

유진은 창을 닫지 않았다. 스트리머 모드의 잠긴 항목들이 아주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손에 넣지 못한 문들이었다.

하지만 열쇠가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저들의 호기심.

저들의 돈.

그리고 지구가 더 이상 얌전히 죽어 주지 않겠다는 장면.

카메라의 붉은 불빛이 유진의 눈동자에 비쳤다.

그는 검을 어깨에 걸쳤다.

“좋아. 방송은 계속해.”

방 전체에 시스템 음성이 울렸다.

[다음 콘텐츠를 준비합니다.]

유진은 화면 너머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제부터는 내가 방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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